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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미야 May 25. 2022

아빠는 멀리멀리 있어

아이 하원을 하는 길, 집 바로 옆 놀이터에서 자주 보던 아이들과 여자들이 나와 있는 게 보였다. 딸이 놀이터로 가자고 졸랐고 나는 그 작은 손을 잡고 이끌려 걸어 들어갔다. 여자들과 인사하고, 아이들 중 이름을 익혀 놓았던 남자애 한 명에게도 인사했다. 그애들은 항상 킥보드를 가지고 나와 놀고 있었는데, 내 딸이 그중 핑크색 킥보드를 타기를 원했다. 친구의 허락을 받고 몇 번 타다가 넘어져서 무릎을 다치기도 했지만 딸은 마냥 즐거워 보였다. 그런데 이제 다른 친구가 탈 차례가 되자 말없이 킥보드를 양보한 딸은 내 품에 와서 흐느끼기 시작했다. 킥보드. 타고 싶어. 킥보드.


나는 훤한 놀이터에서 아이를 데리고 나온 여자들에게 섣불리 말 한번 못 거는 처지다. 몇 살이세요? 어디 사세요? 아이들이 예쁘네요. 그것보다 우리 되게 자주 보네요. 두 분은 자매세요? 궁금한 게 많지만 나는 한마디를 하지 않고 내 딸에게만 집중한다. 그들도 내가 말 걸지 않으니 굳이 다가오지 않는다. 내 얼굴에서 어떤 그늘을 본 걸까, 매번 놀이터에서 봐도 인사만 할 뿐 내 신상을 궁금해하진 않는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조금 섭하다고 해야 하나.


다른 여자들은 아이들이 장난감을 두고 싸우거나 울면 아주 자연스럽게 중재를 한다. 그런데 나는 어쩔 줄을 모른다. 이렇게 해야지, 저렇게 해야지, 친구한테 빌려 준다고 말해 볼까? 옳지, 잘한다. 양보쟁이지, 우리 딸은 양보쟁이야. 그런 말 속에서도 아이들은 냉정했다. 핑크색 킥보드를 타는 아이는 끝까지 내 딸에게 킥보드를 내어 주지 않았고 내 딸은 울기 시작했다. 나는 당황해서 필살기를 꺼내 들었다. "우리 사탕 사러 갈까?" 하지만 오늘은 먹히지 않았다. 딸은 급기야 아빠 소리를 내고 말았다.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옆에 앉아 있던 여자들은 "어머 아빠가 그렇게 보고 싶어? 어서 아빠한테 가 봐."라고 하며 내 딸을 달랬다. 나는 여자들에게 민망한 얼굴로 인사를 하고는 딸의 손을 잡고 "아빠 보러 가자" 하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자 딸이 신발을 신고 놀이터를 박차고 나오는 것이다. 가는 길, 아무래도 거짓말을 한 게 마음에 걸려 "아빠는 일하러 가셨어." 하고 말했다. 그때부터였다. 딸이 용천 지랄을 하면서 콘크리트 바닥을 나뒹굴기 시작한 게. 차는 슝슝 달리고, 12킬로그램의 자그마한 아이는 도로에서 뒹굴었다. 나는 아이를 들쳐엎고 집으로 들어갔다. 현관에서도 드러눕는다. 신발을 마구 던진다. "엄마 정말 나빠! 엄마 이놈!" 그 나이 대에 할 수 있는 최고의 나쁜 말을 한다. 때찌 때찌 하면서 벽을 두드린다. 나는 베란다로 들어가 문을 닫고 담배를 피웠다. 잠시 후 베란다 문을 열고 나오니 바닥에 앉아서 딸이 울고 있었다. 나는 앉아서 물었다.


"킥보드 못 타서 속상했어?"

"응."

"아빠 보고 싶은데 아빠 못 봐서 속상했어?"

"응."

"아빠가 보고 싶어?"

"응,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보고 싶어."

"아빠는 멀리멀리 있어."

"아빠는 멀리멀리 있어?"


나는 그때부터 울음이 터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 아빠는 멀리멀리 있어......" 하면서 통곡을 했다. 아이 앞에서 우는 게 얼마나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지 나도 안다. 그렇지만 순간 통제를 할 수가 없을 정도로 감정이 올라왔다. 나는 조그만 아이 앞에서 주저앉아 울었다. 딸은 나를 보더니 울음을 그치고는 "엄마, 왜 그래?" 한다. 내가 우는 모습을 처음 본 것이다. 그러더니 내 눈을, 내 눈물을 닦아 주었다. "엄마, 괜찮아. 괜찮아." 아이는 계속해서 내 눈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을 손바닥으로 가만히 눌렀다. 나도 딸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우리는 서로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조그만 아이와 어수룩한 중년 여성 한 명, 그렇게 둘이서 현관 앞에서 한참을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아빠는 멀리멀리 있어. 그 말이 왜 그렇게 나를 울게 했나. 아이는 울음을 그치더니 포도를 달라고 성화였다. 예쁘고 맛있는 블루사파이어 포도를 한 움큼 집어 깨끗하게 씻고는 아이에게 주었더니 뽀로로를 보면서 먹느라 정신이 없다. "엄마, 스째고짜우루스야, 스째고 짜우루스." 그러면 나는 바로 대답해준다. "응, 우리 딸은 스테고사우르스가 좋구나." "응!" 아이는 아까 콘크리트 바닥에서 뒹굴었던 일은 이미 깡그리 잊은 듯했다. 웃고 떠들고 거실을 뛰어다니고 냉장고 문을 열어달라고 하더니 치즈를 하나 뚝딱 먹고. 나는 아이의 저녁밥과 목욕을 얼른 끝마치고 티비를 보는 아이의 뒤통수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아이는 그저 킥보드를 타지 못해 분해서, '뭐든 다 해 주는 아빠'를 찾은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아이는 실제로 아까 그 일을 잊고 지금 쿨쿨 잠에 빠져들었다. 모르지, 속에 남아 있는 감정이 쌓이고 있을지. 그런데 왜 내 마음은 이토록 아플까. 내 마음은 왜 이렇게 발기발기 찢겨져 있나. 정말 그런 말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정말 그런 말만은, "아빠는 멀리멀리 있어" 따위의 감상적이고 신파적인 말은 하기 싫었는데. 이혼을 하고 싱글맘으로 살아가면서, 전 남편과 자식과의 관계 때문에 울고 짜고 난리를 피우는 일은 하기 싫었는데. 나는 한없이 가라앉는 거다. 몸이 아파오는 거다. 세상에, 우리가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하는 현타를 거하게 맞으면서. 전 남편, 당신, 그래 내 딸의 아빠. 그리고 내 딸의 엄마인 나, 이 두 사람, 대체 무슨 짓을 저질러 버린 거지, 하면서.


낮에 3살박이 아이를 여름 폭염에 3일간 과자 한 봉지와 음료수, 빵만 주고 방치했다 사망에 이르게 한 엄마가 구속되었다는 뉴스를 보고 한참을 울었다. 그 아이가 너무 가여워서, 그 짧디짧은 생의 '고'가 너무 가혹해서. 그러면서 나는 비열하게도 내 딸은 얼마나 행복한가를 떠올렸다. 내 딸은, 내 집에서, 내가 주는 신선한 과일과 치즈와 고기와 밥을 먹고, 평일에는 시스템이 잘되어 있는, 친절한 어린이집에서 다수의 친구들과 어울리며 실내 야외 활동을 하며, 같이 살진 않지만 2주마다 보는 아빠도 있지 않은가, 하면서. 나를 위로했다. 비겁하게. 그 가여운 3살박이를 떠올리며. 그런데 그렇게 생각한 지 몇 시간이 채 되지 않아 나는 아이와 함께 현관에서 서로의 눈물을 닦아 주고 있었다. 세상 무너진 사람처럼. 혼자 '고'란 '고'는 다 짊어진 사람처럼.


자책하고 싶고, 나를 저주하고 싶고, 내 삶의 잘못된 부분들을 한탄하며 밤새 통곡하고 싶은 욕망에 시달렸다. 하지만 나는 눈물을 닦고 의성 마늘햄 소시지를 굽고,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파프리카를 썰었다. (물론 엄마에게 전화가 왔을 땐 살짝 울먹거리긴 했다) 아이 목욕을 시키고, 양치를 시키고, 혼자 베란다에 숨어 똥을 싸고 온 아이의 바지를 벗겨 축축하고 냄새나는 똥을 맨손으로 닦아 비누칠한다. 챙겨 먹지 못한 저녁을 딸을 재운 뒤에 급히 먹는다. 두유 하나였지만 족하다. 배는 고프지 않으니까. 홧김에 이런 날 술이라도 먹었다간 탈만 나지. 나는 마음을 다잡는다. 엄마에게 구구절절 카톡을 보내고 싶은 유혹을 참는다. 이를 닦고, 세수를 하고, 나는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오늘 일을 소회한다.


아빠는 멀리멀리 있어?

아빠는 멀리멀리 있어.


엄마,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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