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철학책을 읽을까?
1년의 독서 계획을 세우고 읽을 책들을 찾다 보면, 나름대로의 흐름이 생긴다.
연초에는 인생에서 가장 부족하게 느껴지는 금전에 대한 욕구 때문에 경제와 재테크와 관련한 책을 읽으면서 한 푼이라도 아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를 생각한다. 그러다가 책을 읽어도 가정형편이 그렇게 나아지지 않는 것을 느끼고는 인간관계나 건강에 관련한 책을 살펴보게 된다. 그러다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소설을 찾게 되고, 독서와 관련한 추천 글들을 찾다가 목표대로 읽어도 느껴지는 공허감을 감지할 때, 철학책을 살펴보게 된다.
철학은 삶의 방향을 잃었다는 생각이 들 때, 돌아보게 된다. 내가 가는 길이 맞는 길인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그들의 길을 찾아갔는지? 왠지 철학책을 보면 그런 것들을 알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찾게 되는데, 철학자들의 멋진 말을 인용한 글들을 철학책에서는 찾을 수가 없다. 보통은 개론서를 읽게 되고, 그 내용들은 철학사를 포함하여, 어떤 철학자는 어떤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이 철학자의 논리와 저 철학자의 논리는 이런 측면에서 다르다는 식의 설명을 듣게 된다. 나는 삶의 방향을 얻기 위해서 철학책을 찾았는데, 기본이 안된 철학적 지식으로는 방향은커녕 사용하는 용어에 익숙해지는 것도 쉽지가 않다.
그렇게 해답의 철학을 찾다가 지쳐서 다시 뭔가 확실한 진실을 찾고 싶어서 과학으로 가는 것이 나의 독서 경로인 것 같다. 그러다 과학이 채워주지 못하는 자기계발로 넘어가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철학의 어려운 논리를 이해는 못하지만, 방향에 대한 갈증이 있을 때는 생각이 나기도 한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개념-뿌리들(2012, 이정우)"라는 책을 추천받게 되었고 읽었다. 철학책을 읽을 때 이해를 가로막는 허들 중의 한 가지를 이해시켜 주는 책이었다.
이 책에서 기억하고 싶은 것은 너무 많지만,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고, 요즘의 나의 머리는 하나가 들어오면 두 개가 나가고 있어서 너무 아쉽지만, 많은 문장들 중에서 철학을 정의한 문장이 명쾌하고 기억하고 싶은 말이었다.
철학이란 무엇인가? 결국 개념들을 명료화하고 종합한 행위입니다. ~~~ 근본 개념들의 명료화 및 창조적 종합의 행위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P24)
세상의 일들을 살피고, 사유하고 설명하기 위해서 기존의 개념을 가져와 사용하고, 그래도 나의 생각을 설명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런데, 그 용어를 가져다가 쓰는 사람이 원래의 뜻에서 변형된 뜻으로 사용하고 이러한 용어의 개념의 혼선이 서로의 이해에 장벽으로 작용하게 된다. 따라서, 서로의 이해를 위해서는 용어의 개념을 공유해야 하고, 잘못 이해할 가능성이 있는 개념의 뿌리와 그 개념에 접혀있는 다른 차원의 활용들에 대해서 이해할 때 철학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는 말이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책은 쉽게 적혀있지는 않았다. 하루에 20~30페이지를 읽고 나면 머리가 아파지는 듯한 느낌이었고, 잠을 자야 했다. 하지만, 읽으면서 꽤 성취감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왠지, 내 머릿속에서 철학의 분야가 정리되는 듯한 느낌과 몰랐던 용어의 어원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것이 좋았다.
용어 하나를 어원에서 그리스어, 라틴어, 영어로 변화의 과정을 알려주시고 했고, 그 개념어가 시간에 따라서 변화된 내용들도 상세히 알려준다. 읽다보면 철학사를 반복해서 듣게 된다. 자연철학 - 소크라테스 - 플라톤 - 아리스토텔레스에서부터 현대철학으로 이어져오는 철학담론들에 대해서 읽다보면 왠지 철학이 삶에 더 가까이 오는 듯이 느껴졌다.
이제 철학책을 읽으면 이 책을 읽기 전과는 다르게 이해할 수 있을까? 니체를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 읽고 나서도 꼭 하나만 기억할 수 있다면, "너 자신을 알라"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해석일 것 같다. 델포이 신전의 너 자신을 알라와 달리 이 저자가 해석한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의 해석은 내가 삶을 살아가는 동안 두고두고 음미해볼 말인 것 같다.
소크라테스 :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네가 얼마나 대단하고 소중한 존재인가를 알라라는 뜻이에요. (P384)
기독교의 찬송가인지 모르겠지만,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내가 지금까지 너 자신을 알라는 너는 무지하다라는 말로 알았는데, 나의 소중함에 대해서 알라는 말로 해석할 때 굉장히 머리를 한대 맞은 느낌이었다.
이 경험만으로도 이 책을 읽기를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