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깨어있는가?
'포스트트루스'라는 용어는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이 용어는 미디어 용어일지, 정치학 용어일지 모호하긴 하지만, 요즘의 세태를 대변하고, 현세대를 이해하는 대표적 단어인 것에는 동의할 수 있겠습니다.
진행하시는 아이스크림님이 책을 관통하는 요약과 발제로 연결성 있는 얘기를 나누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탈진실이 영향을 미치는 분야, 탈진실의 다른 사례, 인지편향과 가짜뉴스에 대한 의견, 기계적 중립성과 공정한 중립적 태도, 책에서 꼽는 문장 등에 대해서 의견을 나눴습니다.
책의 각 장을 요약하면서 그 장의 중심주제를 통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은 책을 새롭게 기억나게 한다는 측면에서 한번 읽고, 토론했는데 여러 번 읽은 것과 같은 효과가 있어서 좋았습니다.
특히, 탈진실과 관련된 사례를 얘기하면서 나왔던 삼양라면 우지논쟁(식물성 기름 VS 동물성 기름), MSG와 비타민, 우유와 키 크는 것과의 상관성에 대한 잘못된 정보, GMO, 전자기파 인체유해설, 어용학자와 진실된 학자에 대한 논의는 생각하지 못했던 탈진실의 부작용을 일깨워주는 내용이었습니다. 즉, 사실을 파악하기 힘든 정보들에 의해서 나의 소비생활이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다시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깨어있는다'는 것의 중요성을 인지하는 토론시간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생각하는 데로 살지 않으면, 사는 데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도 탈진실의 시대에 걸맞은 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주변의 넘쳐나는 정보들의 출처와 그 말을 하는 사람의 의도를 정확히 알지 못하고, 내가 정확히 알지 못하는 말들을 사실처럼 주변에 전달함으로써 알게 모르게 진실 속에 거짓이 물들게 됩니다. 신선한 요리재료 속에 조그마한 썩은 재료만으로도 음식을 쓰레기로 만들 수 있다는 본문의 문장이 생각납니다.
사람들은 진화적으로 이득을 취하기 위하여 서로 속이고, 속아왔다고 합니다. 이런 속임수에는 퍼뜨리는 사람의 숨겨진 의도가 있고, 그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속임을 많이 당한다면 더 많은 속임수가 만들어지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존 버거의 '다른 방식으로 보기'에서 예술품에 숨겨져 있는 지배계층의 대중을 사고방식을 유도하는 영향에 대해서 얘기를 했던 것이 생각이 났습니다. 탈진실은 경제집단 또는 정치집단이 자신들의 목적(경제적 이득, 정권획득 등)을 쟁취하기 위하여 학계, 미디어를 통해서 대중에게 보내는 프로파간다(=선동)이라는 개념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선동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으로 인지적 편향을 활용하고, 계속적인 노출을 통해서 거짓을 수용가능한 진실로 바꾸게 되는 과정을 잘 이해하고, 맑은 눈과 이성으로 판단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탈진실의 무서운 점에 대해서 진실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가 사라지는 것이 전제주의의 전조증상이라는 말도 기억에 남습니다. 탈진실을 통해서 진실을 감출 수 있다면, 대중들의 눈을 가리고 주도세력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 가능하고, 그 결과는 반대할 수 없는 대세를 만들고, 대세에 반대하는 세력을 숙청하는 방법으로 과격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자유민주주의라는 현 정치체제를 전복시킬 수 있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이번 모임을 통해서 포스트모더니즘의 해체에 대해서 모호한 개념을 가지고 있었는데, 보편적 가치와 고정된 정체성에 대한 거부라는 뜻으로 다시 살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보편적 가치에 대한 해체라는 것만을 중심으로 내세울 경우 믿을 수 있는 진실이라는 것이 사라지고, 진실은 그것을 말하는 개인에 의해서 정해지게 되고, 모두가 동의하는 진실이 사라지는 방식으로 전도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진실에 대한 확실성을 주장하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언론도 '기계적 중립성'이라는 도구로 모든 가치 주장에 대해서 똑같은 정도의 중요도로 보도함으로써 가치에 대한 표현을 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갔다는 것에 대한 얘기는 흥미롭고 재미있었습니다. 누군가의 비평을 피하기 위해서 어떤 것이 진실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목소리 크고,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의 의견으로 편향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임에서 나오는 얘기들은 다양한 생각들을 자극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말은 다른 생각을 떠오르게 하고, 그 생각에서 나온 말이 이야기의 흐름을 끊어먹는 경우도 있고, 책에서도 나오지만 현대사회에서의 개인화, 분절화로 인해서 인지편향이 극대화되는 경향이 있는데, 오늘도 역시 이러한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서로 만나서 의견을 나누고, 나의 생각의 잘못된 부분을 인지하면 바꿀 수 있는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는 것을 재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