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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y Jun 09. 2024

새로운 집으로

환경이 바뀌면 행동이 바뀔까?

"생각하는 데로 살지 않으면, 사는 데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이 문득 떠오른 일요일이다.

거실주방
거실 창 밖


몇 년 만에 이사를 하게 되었다. 전의 집은 채광이 좋고, 4층으로 지금 집보다는 조금 더 넓고, 앞에는 학교가 있어서 탁 틔여 있었지만, 빌라여서 주차하기 힘들고,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여러 가지의 사정으로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이왕이면 확장도 하고, 내부 인테리어를 해서 이사를 하자는 가족의 조언을 따라서 공사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현실에 적응해서 사는 것에 익숙한 사람인 것 같다. 방이 좁으면, 다리를 받칠 의자를 놓고 그 위에 놓고 생활하면 된다는 식이다. 전형적으로 나의 수준에 맞춰서 살고, 그 생활 형식에 맞춰서 생각하는 것이 생활태도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보는 관점에서 이사 가는 아파트는 3 사람이 살기에는 그렇게 작지 않은 편이라고 생각했고, 적당히 수선해서 살면 좋을 것이라고 가볍게 생각했는데, 전문가의 조언을 받다 보니 일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베란다 확장, 마룻바닥 교체, 화장실 전면 리모델링, 천장의 조명공사, 도배, 조그마한 베란다의 정리, 외부 창 추가 설치 등등...이거 공사가 생각보다 훨씬 더 커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시작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보니 이왕 한다면 남들이 보기에도 좋게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다른 집을 전세로 하게 되면 예산은 맞출 수 있을 것 같아서 진행하게 되었다.


약 3주간의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전기공사의 어려움, 천정에 시스템 에어컨 설치의 가능여부, 거실과 부엌의 싱크대 등 모든 것들에 선택해야 할 사항들이 많았다. 공사하는 사람들은 계속 안된다 힘들다를 연발하고,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도 공사와 관련해서 민원을 두려워해서 다양한 갑질 같은 요구사항을 전달한다. 역시, 공사가 쉽게는 안된다는 생각을 할 때, 다행히 도와주시는 전문가분의 세심한 배려로 한 가지 한 가지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었다. 나이는 동생이지만, 차분하고 참을성 있게 작업자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배울 점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


꽤 길게 느껴졌던 공사가 끝나고, 벽의 포인트를 주기 위한 아트월까지 설치하고 나니, 집에 들어올 가전을 바꾸는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공사비는 일반적인 공사비의 30% 이상 더 저렴하게 가장 좋은 소재로 리모델링이 된 것 같아서 가족 모두가 만족했다. 특별히 까끌까끌하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의 바닥재는 호텔에 온 것 같은 느낌도 들어서 좋았다.


세탁건조기, 로봇청소기, 식기세척기, TV, 냉장고 등 오래된 가전과 생활에 편리한 새로운 가전을 추가하기로 하고, 여러 곳을 찾아보고 견적을 받고 선택하는 작업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가전은 LG"라는 광고문구에 휘둘려서 세탁건조기, 식기세척기는 LG 제품으로 하이마트에서 구매했고, 로봇청소기와 삼성 4 도어 김치냉장고는 인터넷을 통해 구매하게 되었다. 가전에 들어가는 자금이 너무 커서, TV는 LG 65인치로 구독서비스 신청을 했다. 한 달에 30만원 카드 구매 시 8,000원씩 5년간 구독료 지불이 조건이었다.


이제, 남은 건 포장이사 후 짐정리만 하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이삿날을 맞이했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우리 집에 숨겨져 있는 짐이 훨씬 많았던 것 같다. 3~4시간이면 끝날 줄 알았던 이사시간이 8시간 정도가 걸렸고, 이사하는 사람들도 정리에 지쳐서 그냥 물건들을 여기저기 쑤셔 넣기 시작했다.


이사가 끝나고, 방 3곳은 모두 짐으로 가득했다. 창고를 3곳이나 만들었는데, 모든 창고도 짐으로 가득했다. 가족 서로서로 어디에 쓰는지 모르는 짐들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상태로 리모델링한 집에 짐으로 가득 찼다. 다시 그 많은 이삿짐에서 버릴 수 있는 짐들을 골라내는데 며칠이 걸렸다. 옷도 버리고, 가구도 버리고, 쓰겠다고 가져온 옛날 TV도 버리고, 다시 찾아서 책도 버리고, 공책도 버리고, 필기도구도 버리고, 미술 그림도 버리고, 옛날 쓰던 노트들도 버리고......


우리가 이렇게 많은 쓸모없는 물건들과 함께 살아왔었다는 것을 이사하면서 알게 된다. 이건 돈이 될 텐데, 저건 나중에 팔 수 있을 텐데, 이건 추억 때문에 못 버리는데, 갖가지 이유로 버리지 못했던 많은 물건들이 이사 온 집을 가득 채우면서 누울 장소가 부족해지니 결국 버리게 된다.


쓸모없는 물건들을 찾아서 버리는 작업이 1주일은 넘어가는 것 같다.


그런 와중에 선반의 필요성이 있어서 인터넷으로 주문을 했다. 세탁건조기 옆에 빈 공간에 800X600X18000의 선반을 놓으면 짐들이 좀 정리되겠다는 생각에 바로 주문했다. 내가 전에 쟀을 때, 틀림없이 600의 폭은 충분히 나오는 것으로 기억되었다. 기억이 잘못되었다. 200이 더 컸다. 어디에도 그 선반을 놓을 수가 없었다. 주문제작이라서 반품이 안 된다고 한다. 손해 보고 팔아야만 한다. 한숨이 나온다.


시멘트 벽에 구멍을 뚫기가 싫어서 무타공 벽지부착 걸이를 샀다. 달력도 달고, 액자도 달았다. 주말 점심때 쉬는데, 우당탕쿵탕.....액자가 떨어졌다.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 3개의 방 중에서 2개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거실의 TV 셋톱박스 정리도 숨고를 통해서 7만원의 견적을 듣고, 14000원짜리 셋톱박스 선반을 사서 직접 설치했다. 에어컨 설치를 위해서도 예산이 필요하다. 한국 사회에서 알바를 통해서 벌 수 있는 방법이 굉장히 많다는 것을 이사하면서 알게 되었다. 전기기사 자격증, 도배, 타일설치, 시트지 부착 등의 기술에 관련한 자격증을 따면 좋겠다. 물론 몸이 더 건강해야 할 것 같긴 하다.


약 1 달반 동안 많은 일들이 생겼다. 이사를 생각하지 않았다면 없었을 많은 스트레스, 약속, 실패, 성공....


어느새 이사한 지도 1주일이 지나고, 잘못 주문한 선반은 재판매를 위해서 당근에 올리고, 2개의 방에는 커튼을 달고, 거실의 커튼은 주문 제작으로 오지 않았지만, 어떻게 설치해야 할지 걱정하면서 배달을 기다리고 있다.


일요일 아침, 가족들이 다 나가고, 바닥의 의자들을 올리고 로봇청소기를 한번 돌리고, 찹찹한 새로운 거실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서 책을 보고 있으니, 집이 예쁘다는 생각도 들고, 이전 집보다 훨씬 편리하다는 생각도 들어서 좋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난 후의 집은 비싼 리조트의 방처럼 깨끗하고 편리하다. 엄청 커진 65인치 TV를 통해 자연의 영상이 나오는 명상음악을 틀어놓고, 바닥을 뒹굴뒹굴하다 보니 조그마한 쓰레기만 보여도 주워서 버리게 된다.


생각하는 데로 사는 것도 있지만, 환경의 변화에 따라 생각이 변하는 부분도 틀림없이 있는 것 같다. 꽤 오랫동안 집에 오는 게 즐거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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