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의 삶도 즐거울 듯....
숙박비의 부담으로 1박 2일로 다녀오자는 얘기를 했었는데, 둘째의 뚝심으로 2박 3일로 일정을 확정 지었고, 한 곳에서 2박을 하는 것보다는 숙소를 두 곳으로 하자는 의견으로 첫째 날은 강릉에서 1박을 하고, 둘째 날은 가평에서 1박을 하기로 했다.
강릉의 숙소는 깨끗하고 멋진 뷰를 가지고 있었고, 바다수영과 일출은 오랫동안 기억될 장면이었다. 가격이 적당하다면 다음에도 한번 가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출과 함께 11시 체크아웃까지 남은 시간 동안 짐을 정리하고 또 다른 곳으로 떠나기 위한 준비를 한다. 유목민들은 날마다 짐을 꾸려서 가축들과 떠나는 삶을 살았을 텐데, 그런 유목민을 영어로 nomad라고 쓰고 노마드라고 읽는다. 돌아다녀야지 미치지 않는다(no+mad)는 말이 포함된 것인지 의문이 들기는 한다.
유목민으로 살려면 일단 소유를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차로 이동을 해서 엄청나게 많은 짐을 챙겨 와서 4명의 짐을 펼치면 숙소가 좁아 보일 정도다. 우리가 노마드가 되기에는 소유물이 너무 많은 것 같기는 하다. 떠나기 위해서 짐을 정리하면서, 혹시 빠진 것은 없는지 이곳저곳을 살핀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가 하는 말씀이 있다. 예전에 삼척솔비치인가 어딘가의 숙소에서 딸의 바지를 놓고 와서 택배로 받았던 번거로웠던 사례를 떠올리면서 잘 살펴야 한다고 두 번 세 번 말씀하신다.
아침을 거르고 점심식사를 위해서 성시경의 <먹을텐데>에 나왔던 속초의 전원식당을 향해서 출발했다. 뭔가 먹어본 적 없는 맛의 두루치기를 경험할 수 있기를 기원하면서.....우리 집에서 가장 빠른 사람은 둘째 여동생이고, 가장 느린 사람은 막내 여동생이다. 나는 속도 면에서는 중도파를 맡고 있다. 역시 둘째와 중도파인 우리가 먼저 여유롭게 출발했다. 날씨는 햇빛에 유리창이 쨍하고 깨어질 듯한, 아스팔트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것 같은 전형적인 화창한 여름날이었다. 속초로 가는 길 옆으로 문득문득 보이는 바다는 우리가 서울이 아닌 휴양지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약 1시간정도가 걸리는 거리였는데, 막내가 늦다는 생각에 여유롭게 둘러보면서 화장실에 들렀는데, 약 20분 정도 늦게 출발했다고 생각한 여동생이 우리보다 10분 빨리 도착했다고 연락이 왔다. 거북이에게 추월당한 토끼가 이런 심정이었을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식당으로 가는데, 가는 도중에 다시 연락이 왔다. 이미 오늘 포장분이 모두 소진되어서 먹을 수도 포장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아니 포장이 오전시간에 끝나는 식당이 어디 있느냐는 어이없는 마음으로 어쨌든 막내를 만나기 위해서 약속장소로 가는데, 이미 막내 가족이 다른 식당을 섭외해서 그쪽으로 가자고 한다.
속초해수욕장에 있는 회덮밥 집이었는데, 가는 중에 차량정체가 서울만큼 복잡한 것 같다. 식당 근처의 주차장은 만차이고, 주차하려는 차와 나오려는 차로 혼잡한 도로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서, 일부가 먼저 내려서 식당에서 자리를 잡기로 했다. 여동생과 나는 주차를 위해서 헤매다가 주차비를 낼 생각으로 근처의 호텔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상가에서 구매하면 주차비가 면제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어려운 주차상황에서 굉장히 현명한 생각이었다고 생각한다.
우선 회덮밥 또는 해산물을 싫어하는 딸과 나는 다른 음식을 먹기로 하고, 튀김과 만두를 샀다. 훌륭한 튀김 아주머니가 튀김가격 결재도 받지 않은 채로 튀김도 주시고, 원래는 안 되는 지하주차장을 결재해 주셨다. 만두를 사러 갔다가 튀김을 결재하지 않고 가져왔다는 걸 알고 다시 찾아가서 결재를 했더니, 와줘서 고맙다고 하신다. 결재 안된 사람 10명 중에 7~8명은 돌아오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최소한 양심이 훌륭한 20~30%에 들어가는 사람인 것 같다.
딸이 먹을 걸 사서 먹고 있는데, 가족들이 자리 잡았다고 와서 식사를 하라고 해서 식당으로 갔다. 식당이 무슨 공장처럼 빌딩 전체가 회덮밥, 물회를 테이블마다 공급하는 곳이었다. 관광지의 펌프업 된 가격으로 점심식사를 마치고, 뜨거운 거리를 걸어서 주차장으로 와서 가평으로 출발했다. 가평으로 가는 길에 동해안으로 가는 차량의 행렬을 자주 마주칠 수 있었다. 가평-울산이 아니라 울산-가평으로 일정을 짠 것을 자화자찬하면서 약 2시간여의 운전을 통해서 두 번째 숙소로 갔다. 가는 도중에 과일과 옥수수를 샀는데, 이게 또 생각보다 양도 많고 맛있어서 좀 더 사지 못한 것에 대해서 아쉬워하게 되었다.
2박을 할 숙소는 산속 저기 위쪽에 있는 <여우가 달을 사랑할 때>라는 풀빌라를 예약했다. 도착했을 때는 입실시간을 넘은 4시경, 주변에는 식당도 다른 가게도 찾기 어려운 고지대였다.
프런트에서 바비큐를 예약하고, 인원수와 추가 요청사항에 따른 추가 요금을 결제했다. 둘째의 적시성 있는 말 한마디에 3만 원의 할인을 받아냈다. 키를 받고 숙소로 갔다. 숙소의 첫인상은 '어! 좀 낡았네', '와~ 풀이 엄청 넓어.', '여기는 물이 차갑네!', '여기가 울산보다는 훨씬 넓다.'였다. 막내 가족은 첫 숙소에 비해서 너무 노후화된 시설에 조금 실망했다는 얘기를 여행 끝나고 했다. 하지만, 풀은 넓고, 야외 풀도 있었다. 우선 숙소 내 풀이 아닌 2개의 야외 풀을 먼저 확인하러 갔다. 울산에서 미온수가 아닌 온수였던데 반해서 여기는 냉수였다. 처음에 들어가기 두려울 정도의 차가움으로 인해 마음을 다잡고 조심해서 들어갔다. 아래의 풀에서 춥다는 의견에 위의 풀을 가 봤더니, 그쪽에는 몸을 데울 수 있는 온수가 있었다. 어머니의 냉수에 대한 불편함을 고려해서 위쪽의 풀로 이동했다. 내가 가져간 숏핀을 막내 조카가 신어보더니 속도감에 완전 마음에 들었는지 계속 신고 수영하고 놀았다.
온수에 들어갔던 어머니는 물에 떠있는 떼처럼 보이는 부유물 때문에 나왔다가 추워서 들어가고,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일을 반복했다. 그래서 그냥 우리 숙소의 월풀과 실내풀을 이용하는 것으로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물도 깊이가 적당했고, 풍덩풍덩 한동안 놀다가 허기를 만나게 되었다. 다행히 6시 30분으로 바비큐 시간 조정을 했고, 햇반이 부족할 것이라는 생각에 추가로 더 사 오고,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숯불 바비큐를 했을 경우, 타지 않은 고기를 먹기가 힘들었다. 굽는 속도가 먹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숯불과 프라이팬을 적절히 같이 사용해서 빠르게 구운 고기(닭고기와 삼겹살)를 공급하기로 했다. 뚜껑을 덮어서 숯불의 열기로 훈제하듯이 절반이상 구워진 고기는 프라이팬을 이용해서 완전히 익혀서 공급했다. 엄청난 속도로 먹는 가족들 때문에 고기를 추가 주문하자는 막내 동생의 주장에 매제가 차라리 배고프면 라면을 더 먹으면 된다는 주장으로 막았다. 다행히, 고기는 모자라지 않았고 다들 배부르게 먹고 쉴 수 있었다.
수영을 하고 난 이후, 펜션에서 제공하는 기념품을 타기 위해서 여동생과 딸은 펜션 주변의 숨겨진 포스터 부착물 9개를 찾는 보물 찾기를 진행했다. 딸이 즐겁게 따라가는 것을 보니, 보기가 좋았다. 저녁시간이 되어서 하늘의 별이 보일까 했지만, 별은 잘 보지도 못하고, 넓은 펜션의 공간과 풀과 샤워시설을 생각보다 많이 이용하지는 못한 것 같은데, 너무 졸려서 잠자리를 찾게 된다. 아래 소파에서 높이 달려있는 티브이를 보다가 목이 결린다는 얘기도 나오면서 서울 집의 티브이 위치가 좋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어떻게 잠들었는지 모르게 소파에서 자다가 아침에 일어나서 어머니가 같이 걷자는 얘기에 나왔는데, 생각보다 걸을 만한 곳이 없었다. 풀 뒤쪽도 살펴보고, 펜션의 위쪽도 살펴보고, 숙소의 옆쪽으로 산을 가려다가 사유지로 보이는 곳을 들어갔다가 다시 돌아 나오면서 대략 걷다가 숙소로 다시 돌아왔다. 나는 풀이 아쉬워서 돌아와서 더운 몸을 가벼운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풀에서 몇 번 수영을 하는데, 이런 풀이 집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가 그 풀은 누군가는 청소해야 한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그냥 일반 수영장에 가서 수영하는 것이 낫겠다고 마음을 돌려먹었다. 어딘가 넓고, 기구들도 많지만 낡아 보이는 두 번째 숙소에서 나와서 어제 먹은 고기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다시 배가 고픈 아이들에게 밥을 먹일 만한 장소를 찾게 되었다.
나가는 길에 유명한 '청평호반닭갈비막국수집'이 찾아내고, 아침 10시 30분의 오픈에 맞춰서 도착할 수 있도록 빨리 출발했다. 20여분의 운전 끝에 도착했더니 우리 앞에도 몇 팀의 손님들이 와 있었다. 딱 맞게 잘 왔다면서 주차하고 자리 잡고 주문을 했다. 여기는 특이하게도 주문 패널이 있는 것이 아니라 QR 코드를 이용한 주문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설치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주문하고 10여분이 지나자 가게가 바로 가득 찼다. 우리가 주차해 놓은 차 앞뒤로 여러 대의 차들이 무작위 주차를 하기 시작했다. 밥 먹으면서도 우리 어떻게 나가지를 걱정하는데, 가게에서는 주차관련해서는 따로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생각하며 일단 밥부터 먹는데, 다들 맛있다고 하면서 밥까지 비벼서 깔끔하게 먹고 나왔다.
마침 내가 나갔을 때, 내 앞의 차가 빠져나가면서 나갈 길을 만들어줘서 그 길을 따라 나오고, 내 뒤를 따라서 막내도 나올 수 있어서 운이 좋았다. 전쟁 같은 오픈런 아침식사를 하고 나오는데, '매제가 이런 아침에 닭갈비, 막국수를 먹는 사람이 어딨 다고 이렇게 일찍 가느냐?'라는 말을 했다고 하면서 그때 아니었으면 기다렸어야 했을 것이라고 운이 좋았다고 웃으며 얘기를 했다. 늦은 아점이 우리 여행의 마지막 일정이었다.
둘째를 판교에서 내려주고, 우리 집으로 가는데 막내는 집에 도착했다고 한다. 우리도 조금 후 집에 도착해서 짐을 내리니, 여행도 좋지만, 집도 좋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편안해진다. 2일 동안 강릉, 가평을 둘러서 오는 꽤 장거리 여행을 하고 돌아왔는데, 어머니는 여전히 더 다니고 싶은 표시를 낸다. '이제 가야 할 시간이다. ', '좀 더 놀고 싶다.'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건강하니 할 수 있는 말인 것 같다. 밥을 먹고 나오면서 옆의 맛있어 보이는 다른 메뉴 얘기를 하는 것처럼, 여행이 끝나고 돌아오면서 언제 또 여행을 갈 수 있을지 아쉬워하는 것을 보면, 우리 집안사람들도 유목민의 피가 흐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름휴가가 끝나니, 바로 추석휴가를 위한 계획을 짜야한다고 얘기하고 있는 둘째를 보면서 참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났지만, 각자가 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모두의 휴가는 끝났지만, 나의 휴가는 아직 3일이 더 남았다. 3일 동안은 빌려 놓은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땅고 수업도 한 번은 가야 하고, 책도 읽어야 하고,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가족여행은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