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서모임

독서모임 - 직관펌프 (대니얼 대닛)

어려운 책의 독서모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by Mooony

추천자, 발제자, 진행자 : jstory

토론도서 : 직관펌프(대니얼 대닛)

참석자 : 샨즈, 둘리, 진진, 루빈, 아이스크림, jstory, 무우니 7명


이 책을 추천하고 발제해 주신 jstory님은 책을 엄청 많이 읽으시는 다독가이시고, 이 책을 너무 좋아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책과 같이 읽어야 할 책으로 <괴델 에셔 바흐>를 추천해 주셨습니다.


이 책을 통해서 인간으로서의 본질, 의식의 본질에 근접한다는 감상이 어떤 느낌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철학자이면서 인지학자인 대니얼 대닛의 저서 중에서 그나마 가장 친절하고 읽기 쉬운 책으로 이 책을 추천한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철학의 개념어는 허황되고 구체적이지 않은 지적인 도전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 책은 개념어와 현실과의 환원이 가능하고, 실패를 인정하는 솔직함도 포함하고 있어서 더 좋아한다고 말씀해 주신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이 책에 대한 인상이 너무 좋다는 쪽과 너무 어렵다는 양 극단으로 나뉜다고 했었는데, 참여하신 대부분의 구성원이 어렵고, 도전적인 책 읽기였고 과학에 대한 기본이 갖춰진 이후 다시 읽어야 할 책으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책모임을 처음으로 하는 분이 2분이 오셨고, 우리 모임에 처음으로 참석하는 분이 1분으로 너무 어려운 책으로 만나서 조금 조심스러운 모임이었습니다.


"모든 책이 어렵다."는 말이 이번 독서모임에서 가장 가슴에 와닿는 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의 사고는 A는 B이거나 B가 아니라는 극단의 의견을 따르는데, 대닛은 극단과 극단 사이에서 양립을 찾는 것 같아서 생각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철학과 불교의 관점을 비교해서 불교는 개인의 수행을 중시하고, 철학은 자신의 깨달음을 전달하려 한다는 차이점도 생각지 못했던 논제였습니다.


이번 독서모임은 책도 어려웠고, 발제문도 어려웠습니다.


그중에서도 첫 번째 발제자의 요청이 '나만의 직관펌프'라는 주제였는데, 이 주제와 관련하여 "쇼윈도의 날파리가 유리문에 부딪치는 모습을 보면서 ~~~ 거기가 밖인데 왜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지?"라는 내용에서 시간의 전환 직관이 달라지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는 말을 해주셨습니다.


생각해 보면, 내가 볼 때는 당연히 여기가 안이고 쇼윈도우의 밖인데, 파리에게는 거기가 안이고 쇼윈도 안이 밖일 수 있다는 장소의 안과 밖이 인식에 따라 바뀐다는 내용은 뭔가 새로운 생각을 불러 일으킵니다.


개인적으로 '직관펌프'라는 책에서 이 용어를 명확히 이해하고 있지도 못한 상태이지만, '반자도지동'이라는 도덕경의 문구가 나에게는 상황과 문제를 달리 볼 수 있도록 하는 직관을 자극하는 문구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또 다른 분은 '질문'이 자신의 직관펌프라고 답하신 분도 있었습니다.


두 번째 주제는 <데닛이 ‘셈이다’의 중요성을 말하면서, ‘의식’ 있는 것과 기능적으로 의식이 있어 보이는 ‘셈인 것’의 구분 불가능성과 궁극적으로는 차이 없음을 주장하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본질주의'에 대한 거부라는 이러한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는지 찬반을 논해 봅시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주제는 사실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의식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구분이 불가능하고 궁극적으로 차이 없다는 주장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본질주의'에 대한 거부라는 것인지도 잘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이후 배경 설명에서 chatgpt가 대화를 할 때, 그 대화의 내용이 맥락에 맞다면 그 컴퓨터는 의식이 있다고 할 것인가? 없다고 할 것인가? chatgpt의 대화가 사람과 거의 동일한 대화를 한다면 그것은 사람과 같은 셈이다가 되는 것이고, 결국 chatgpt가 의식이 없다고 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고, 결국 인간으로 구분하는 본질은 없는 것이라고 설득하듯이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0.9의 무한이 결코 1이 될 수는 없듯이 셈이다와 같다는 다른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나에게는 chatgpt와 인간은 구분이 안될 정도로 똑같은 대화를 이어간다고 하더라도 그 두 본질은 같다고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생각 자체가 책의 내용과 발제의 주제를 명확이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의 대화라는 측면에서 지금까지 독서모임에서 이렇게 까지 이해가 안 되는 때가 있었나?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게 됩니다.


같은 모임에서 얘기를 나눴던 다른 분들의 정확한 의견을 듣기는 어렵지만,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늪에 빠져드는 느낌으로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느낌이었습니다.


3. 이 책의 7부에서는 결정론적 세계와 자유의지의 양립가능성을 주장합니다. 특히 70번째 직관펌프인 '컴퓨터 체스 마라톤'은 흥미로운 예시입니다. 막강한 체스프로그램 C에 대항하는 A와 B라는 체스 프로그램의 차이를 구분하면서 논지를 펼칩니다. 컴퓨터 체스의 단순한 결정론적 세계에서, "A는 달리 행동할 수 있었지만 B는 그럴 수 없었어!"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즉 "달리 행동할 수 있었다."라는 친숙한 문구의 중요한 버전이 비결정론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이에 대한 여러분의 이해와 의견을 논의해 봅시다.
4. 자유의지에 대한 철학자들의 사고실험 중 상당수는 인형술사나, 자신의 명령에 따르도록 환자의 뇌 배선을 조작하는 악독한 신경외과 의사의 이미지를 불러일으킵니다. 이 오싹한 이야기에서 의도하는 교훈은, 우리의 행동이 환경의 여러 특징으로부터 야기된다는 점에서 인형술사가 있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인데(p483), 저자는 이렇게 유도된 결론은 불합리한 추론이라고 말합니다.
환경에 의한 통제가 멀쩡히 작동하는 지각계와 착각하지 않는 뇌를 통해 시행되는 것은 두려워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죠. 주위의 사물과 사건이 우리에게 유리하도록 자신의 행동을 조절할 수 있는 것보다 바람직한 일은 없다는 것이죠.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의 통제된 세계를 연상케 하는 저자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3번과 4번의 주제에 대해서도 명확한 나의 의견을 가지고 대화하지 못하는 답답함이 있었고, 결정론적 세계와 자유의지의 양립가능성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서도 한참 평행선을 달리는 논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결정론적 세계는 그림의 배경화면이고, 그 안에서 자유의지는 캐릭터의 자유도라는 설명을 했었는데, 내가 알고 있는 결정론이라는 정의와 다른 정의를 사용하는 것 같아서 혼란스러웠습니다.


전반적으로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 책으로 서로 다른 사람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듣기 위한 독서모임은 굉장한 곤란함만을 남긴다는 것을 알게 되는 모임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참석했던 독서모임 중에서 이번 모임이 역대급으로 혼란스럽고 주제에 맞지 않는 대화의 연속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한편으로는 이런 책에서 최고의 부분을 찾아내는 시각을 가진 대단한 독서가의 의견을 좀 더 경청해보고 싶었지만, 상대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가 충분히 성장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직관펌프의 77가지 도구에 대한 나 스스로의 배경지식과 이해가 없이는 이 책에 대한 독서토론이 어려울 것 같다는 것이 최종적인 평가가 됩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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