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과연 정의로운 법칙에 의해서 돌아가고 있는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서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한 중동 전쟁을 보면서 과연 세상에는 정의라는 것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국제정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토마스 홉스가 쓴 리바이어던에 나오는 무질서한 자연상태인,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떠오릅니다. 절대적 강자로서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던 미국에서 어느 순간 자국 이기주의에 빠져서 모든 나라에게 관세전쟁을 일으키고, 약소국인 베네수엘라의 수장을 체포하고, 타국의 지도자를 폭사시키는 작전들을 수행했습니다. 이제 각 나라의 잘못을 지적하고 막을 수 있는 절대강자가 사라졌습니다. 앞으로의 국제사회는 다양한 국지전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생물의 진화를 보면 인간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은 인간 개개인의 강함이 원인은 아니었습니다. 인간은 자연계에서 약한 개체이지만, 서로 협력과 집단을 형성해서 지금같은 문명을 이룰 수 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물론 현대에 이르는 역사를 살펴봐도 많은 전쟁을 통해서 민족과 국가들은 서로를 공격하고 협력하면서 이합집산의 흐름을 이루어왔지만, 사람들은 협력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현존하는 문명에 위기가 올 것은 분명합니다.
지금의 세계는 후안무치한 사람이 살아남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얼굴이 두껍고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 강한 힘을 가지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힘을 휘두르면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다는 세계관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빈부의 격차는 커지고, 집단 이기심으로 인한 사회 갈등은 더 커질 것 같다는 부정적인 시각이 많습니다.
가장 힘있는 나라, 미국의 대응 방식은 이세상의 모든 사람들의 대응방식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너도 나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더 높은 담과 더 강력한 무기를 갖기를 희망하고, 서로 간의 약속을 믿지 못하는 상호 투쟁의 시대가 다가 옵니다. 현대의 시대의식은 말하자면 각자도생, 적자생존의 상황인 듯 합니다.
국제사회의 현상과 비슷하게, 대한민국의 직장생활을 살펴보면 MZ 세대의 사람들의 자기 권리를 누리기 위한 이기적인 동맹을 맺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구분하여 대결하고, 나이 많은 사람들과 나이 어린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지 못하는 분쟁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40대 중반이 되면 명퇴를 걱정하고, 정년이후에도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을 위해서 고민을 합니다.
내 주변의 사람들을 개별적으로 살펴보면 착하고 선한 사람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독하고, 남들에게 이득을 취하는 사람들이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착하기만 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당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불합리한 일들을 경험하다보면 과연 하늘은 있는 것인가? 정의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누군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고 이득을 보는 사람들은 언젠가 그에 마땅한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정의에 대한 갈망이 생겨납니다.
이런 상황에서 명심보감에 나오는 말 중에 '천망회회 소이불루'라는 말이 나옵니다. 하늘의 그물은 구멍이 숭숭 뚫려 성긴듯해도 자그마한 것도 빠뜨리지 않는다라는 뜻입니다. 결국, 우리 세계를 다스리는 절대적인 존재가 있어서 이 세상에서 잘못하는 행동에 대한 적절한 처벌을 내려줄 것이라는 희망을 보여줍니다. 또는,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의 선악에 대한 평가를 하는 사후세계를 얘기합니다.
안타깝게도 나는 종교를 믿지도 세계를 다스리는 절대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도 부족하여, 저렇게 막무가내로 남들에게 해를 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얻을까 걱정이 됩니다. 더 나아가서 내가 저런 사람들처럼 살아야만 내가 손해보지 않고 사는 세상이 될까봐 무섭기도 합니다.
내가 사는 세상이 착하고, 서로 돕고, 함께 잘 살 수 있는 세상이라는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맹자의 성선설에서 나오는 양심이라는 마음, 측은지심이라는 마음을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는 믿음이 없으면 우리는 서로에게 적대하는 만인이 서로에게 투쟁하는 지옥같은 사회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