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것은 추억과 여운과 함께
태국 여행의 마지막 날은 일정을 잡기가 애매했다.
코끼리 트랙킹을 가자는 얘기도 있었지만, 조금 힘들어진 상황이었고 저녁 5시까지는 돌아와야 한다는 제약조건이 있어서 멀리 가는 건 심리적으로 부담스러웠다. 일단 점심을 경치 좋은 곳으로 가기 위해서 찾아보고 툭툭이나 택시를 이용해서 이동하려고 했는데, 교통비가 1400바트를 달라고 했다. 너무 비싸서 이동은 포기를 하고, 주변의 좋은 식당을 찾기로 하고 바닷가의 경치 좋은 곳에서 점심을 먹고, 예쁜 카페를 찾아 나섰다.
햇빛이 쨍쨍한 상황에서 20여분을 걷자마자 딸애가 너무 힘들어서 더 이상 걷지 않겠다고 말을 한다. 그 말을 듣고, 갑자기 화가 나서 "우리가 모두 좋은 장소를 찾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데, 그렇게 짜증내면 어떻게 해? 상황을 보고 얘기를 해야지,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한테 그렇게 얘기하면 어떡해?"라고 화를 냈다. 딸애의 약한 체력, 끈기 없는 태도가 햇빛으로 지친 마음에 그대로 드러났던 것 같다. 딸애도 갑자기 급발진으로 화를 내는 나를 보더니, 기분이 다운되고 빨리 시원하고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행히 그 이후 조금 걷자마자 카페를 2개 찾을 수 있었고, 두 곳을 왔다 갔다 하다가 좀 더 조용하고 태국의 전통찻집과 퓨전찻집의 중간 정도로 보이는 카페를 쉴 장소로 정하고 정착했다. 언제 화냈냐는 듯이 다시 안정을 찾고, 주변의 풍경과 경치를 사진 찍고, 카페 안의 소품들을 보면서 감탄하면서 감상했다. 조용한 카페에서 약속시간까지 3시간 이상이 남아 있어서 다른 곳을 갈 생각도 않고, 카페에서 오랫동안 있을 거라고 카페의 일하는 분에게 얘기를 했더니 굉장히 밝게 괜찮다고 말해줬다.
날씨는 너무 화창해서 카페에서 밖을 보면 평화롭고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멋져서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게 된다. 더운 거리를 걸었던 기억이 카페를 더 밝고 예쁘게 보이게 하는 것 같았다. 음료를 주문하다 태국의 전통 과자처럼 보이는 것을 주문했는데, 일본의 화과자 같은 느낌으로 오밀조밀하게 예쁘게 장식된 과자가 나왔다. 9가지의 조그마한 그릇에 담겨있는 가지각색의 전통과자를 맛보면서 태국의 변덕스러운 날씨가 생각나서 딸에게 "이러다가 비 오면 정말 재밌겠다."라고 말했는데, 역시 말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다. 2시간 정도 너무 좋은 날씨였는데,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고 세찬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어....말이 씨가 되었다.'라고 생각하면서도 30분이면 그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칠 듯하다 다시 내리고, 그칠 듯하다가 다시 내린다.
시간은 점점 흘러서 우리가 공항으로 출발하기 위해서 픽업 기사를 만나야 할 시각이 다가왔다. 여동생이 나를 보면서 자기는 지금 입고 있는 옷 입고, 한국에서 출근해야 해서 젖으면 안 된다고 혼자 리조트로 가서 우산을 가져올 수 없겠냐고 묻는다.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내가 좀 더 고생하지 하는 생각에 카페에서 우산 하나를 빌려서 리조트로 갔다. 걸어서 약 7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는데, 비가 정말 세차게 와서 거리가 온통 물바다가 되었다. 다행히 리조트에서 큰 장우산 2개를 빌려줘서 카페에서 리조트로 잘 이동할 수 있었다. 다행히, 우리가 조금 일찍 도착했는데도 공항으로 픽업을 해줄 기사가 먼저 와서 바로 만나서 공항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예상보다 30분 정도 빠르게 도착할 수 있었고, 기사님과 소통이 안돼서 팁도 전달 못하고 공항에 도착하고 헤어졌다. 공항에서 마른 옷으로 각자 갈아입고, 짐을 부치기 위해서 줄을 서는데, 줄이 여러 종류여서 헷갈렸는데 다행히 여동생이 "international line"을 잘 찾아서 짐을 부치는데, 배터리 없냐고 물어봐서 모기채를 얘기를 했더니 여자직원이 항공화물로 붙일 수 없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테이핑 후에 가지고 왔는데, 왜 못 가져가느냐고 주장해 봤지만, 완강히 안된다고 해서 결국 전자 모기채 하나를 태국에 버리고 올 수밖에 없었다. 그 모기체 정말 좋은 거였는데, 기분이 굉장히 나빴다. 태국에 벌레가 많다고 해서 가져왔는데, 실제로 여행 기간 중에는 몇 번 쓰지도 못하고 잃게 되다니 괜히 가져왔다고 후회하는 순간이었다.
입국 수속을 하고, 비행기를 기다리는데 비행기가 1시간 연착을 한다는 메시지가 올라왔다. 너무 빨리 공항에 와서 방콕 공항으로 가서 저녁식사를 할 생각이었는데, 끄라비에서 방콕으로 가는 비행기가 1시간이 늦어지면 방콕 공항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이 너무 부족해진다. 공항 난민이 되어서 비싼 라면을 사서 나눠먹고 배가 고픈데 먹을 것도 없고 거의 2시간을 공항에서 시간 때우다가 한국으로 가져갈 선물인 망고 말린 것도 따서 먹다 보니 비행기 수속을 시작했다. 여동생은 선물로 "Tiger Balm"이라는 호랑이 기름을 사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었고, 한국에서 온라인 가격으로 보니 여기보다 3배 이상 비싼 가격이었다. 연착으로 시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선물을 겨우겨우 사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비행기를 타고, 기내식을 먹고, 자다 깨다 하면서 다시 5시간의 고문을 당하고 난 후 한국에 돌아왔다. 시간은 5일 이상이 지난 것 같은 느낌이었고, 집으로 오는 도중에도 딸애의 꿈 뜬 행동에 신경전을 벌인 것이 갈등이라면 갈등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니 빨래가 한가득이고, 세탁기를 돌리고, 가져갔던 모든 짐을 풀어서 제자리에 놓고 나니, 2023년 태국 끄라비 여행이 끝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비행기 이코노미석의 후유증으로 등짝도 아프고, 오른쪽 골반도 뒤틀린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즐거웠던 기억도, 재밌었던 장면도, 아름다운 풍경도 사진과 글로 남겨서 더 오래 기억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좋은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