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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y Aug 25. 2023

부모라는 것

-내가 만약 바퀴벌레가 된다면??-

저녁에 딸애가 뜬금없이 나한테 질문을 했다.


"아빠, 어느 날 내가 만약 바퀴벌레로 변한다면 어떻게 할 거야?"

"글쎄....너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음....난 그런 모습으로는 충격을 받아서 살고 싶지 않을 것 같아. 얼른 터뜨려 죽이는 게 좋을 것 같아."

"근데, 어느 날 갑자기 바퀴벌레로 변했는데, 다시 딸로 돌아올 수도 있잖아? 조그마한 희망이라도 있다면, 너라는 것을 알고는 죽이지는 못할 것 같은데..."

"오....아빠 대빵 사랑해!"


갑작스러운 질문으로 여러 가지 생각이 나는 대화였다. 딸애의 반응으로 아빠로서는 나쁜 대답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짧은 대화 속에서 인생에 기준이 될 수 있는 점들이 포함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라는 책에서 아잔 브라흐마 스님의 아버지로부터 들었던 감동적인 한마디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었다. "아들아, 네가 삶에서 무엇을 하고 살아가든 이것을 잊지 마라. 내 마음의 문은 너에게 언제나 열려있을 것이다."  이 말을 아잔 브라흐마 스님은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설명해 주었다. '자식이 삶에서 무엇을 하고 살아가든 마음의 문을 열고 언제든지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랑', 그것이 가능할까? 속 썩이는 자식은 웬수가 되지는 않을까? 남보다도 못한 가족들도 존재하는데, 부모와 자식은 어떤 인연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무조건적인 사랑을 줄 수 있을까?


그런데, 딸과의 짧은 대화를 통해서, 아잔 브라흐마의 아버지 말을 온전히 이해하게 된 기분이다. 나는 딸이 잘 살기를 바란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으며, 자신의 삶을 사랑하며, 행복하기를 기원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못했을 때, 세상의 어려움이 닥쳤을 때 힘이 되어주고 싶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 방향을 제시하는 조언을 해 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 더 이상 일어날 힘이 없다고 할 때, 할 수 있다고 격려하고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줄 수 있는 힘이 있기를 바란다.


그런데, 딸에게 감당할 수 없는 불행이 닥쳤을 때도 마음이 변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 어머니는 어떨까? 내가 속 썩이는 존재가 된다고 해도 울면서 나를 돌봐주실 것 같다. 그래서, 나도 그런 어머니를 닮아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해서 상황을 견뎌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마음을 딸애에게 전달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는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자식이 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어머니께 그 얘기를 했더니, 왜 그런 생각을 했었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지금 자랑스러운 자식이 되었다고 말씀해 주셨다. 내가 학생이었을 때 부모님의 마음을 잘 알았다면 더 노력할 수 있었을까? 조그마한 것도 자랑하는데, 자랑거리가 되기 위해서 더 노력하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찾기 위해서 더 노력할 수 있지 않았을까?


어떤 일을 하던지 열심히 노력해야 하지만, 사회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어야만 부모가 자식에게 만족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어떤 삶을 살던지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고 조그마한 자랑거리라도 찾아내서 만족하고 자랑스러워한다는 것을...... 부모의 마음을 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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