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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y Aug 23. 2023

자아성찰(自我省察)

-책을 읽다 문득 발견한 단어-

오늘 아침 2가지 일이 내가 아침에 글을 쓰게 만들었다.

첫 번째는 브런치의 오늘의 글에 대한 응원글이었다. 한동안 글을 못쓰다가 어제 문득 떠오른 게 있어서 글을 쓰고 나니, 오늘의 업로드로 연결되었다.

두 번째는 책에서 읽은 한 단어, "자아성찰(察)"이라는 말이었다. 스스로 자, 나 아, 살필 성, 살필 찰로 비슷한 의미의 단어들이 나열되어서 "스스로에 대해서 반성하고 살피라."는 의미를 강조하는 말인데, 의미 없던 단어가 마음속에 깊이 들어오는 경우가 있는데, 오늘 아침이 그런 날의 하루였다.


자아성찰, 지피지기, 너 자신을 알라 등등 비슷한 경구가 문득 생각해도 여러 개가 떠오른다. 그렇다는 것은 노력해도 잘 알기 힘든 것이 "나라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은 모호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나는 내 나이대의 다른 사람들과 어떤 면에서 다른가?"라는 질문이 나를 더 명료하게 보여주는 질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변하지 않는 나"라는 형태가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긴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하고, 불교에서는 "제행무상"이라는 말로써 모든 사물의 정해진 형태가 없다는 것을 설파하는데, 나라는 존재를 어떻게 특정하는 것이 맞을지는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나는 살도 쪘다가 빠지고, 생각도 좋은 생각이 들었다가 나쁜 생각도 들고, 어떤 때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어떤 때는 타인에게 분노하기도 한다. 변하지 않는 진정한 나라는 것을 정의할 수 있을까?


나에 대한 성찰이 어려운 이유가 이런 나에 대한 정의가 쉽지 않은 일과 연결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아"라는 것이 있고, 나의 행동이 "나"라는 존재에 부합하도록 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로 인해서 나타나는 일관성에 위배되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는 것을 실험으로 밝혀낸 것이 "인지부조화" 이론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개인의 일관성에 맞춰서 행동하려는 경향을 이용해서 설득의 심리학에서 제안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문간에 발 걸치기" 같은 자그마한 우호행동을 유발하는 기법이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나도 역시 나에 대한 "자아상"이 있다. 그런데,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보니, 이 자아상이란 것이 정해진 것이 아닌데, 정해져 있다고 내가 스스로 믿고 있는 것이다. 내가 믿고 있는 "자아상"을 내가 원하는 것으로 바꿀 수 있다면, 나의 행동도 달라지지 않을까? 이런 주제를 맥스웰 몰츠의 "성공의 법칙"에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 나는 변화하는 "자아상"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 스스로는 변화하지 않는 "고정된 자아상", 미지의 자아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자아상 속에서 나는 운동하기는 좋아하지만, 음식을 많이 먹어서 살을 뺄 수가 없고, 근검절약은 하지만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 같다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요즘 자주 듣는 말이 <일체유심조, 할 수 있다고 믿든지, 할 수 없다고 믿든지 당신의 믿음은 옳다>와 같은 말이었는데, 이것도 스스로의 자아상과 연결되는 믿음이 아닐까 생각이 된다.


자아성찰이라는 부분으로 돌아간다면, 내가 살펴봐야 할 것은 나에 대해서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점검해 보는 것이 핵심인 것으로 추측된다. 내가 어떤 자아상을 가지고 있는지를 명확히 알기 위해서, 내가 일상생활에서 한 행동들을 확인해 볼 수 있고, 내가 어떤 행동을 하는 것에 부담감을 느끼는 순간을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자아상을 되돌아보는 일을 자아성찰로 내게 인식시킨다. 나름 나쁘지 않은 결론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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