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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y Jan 30. 2024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읽다가

-일본 중국 기행-

2024년의 독서의 시작은 "그리스인 조르바"로 시작되었다. 어딘가에서 여러 번 적었지만, 나에게 그리스인 조르바는 남들이 칭찬하지만, 그 칭찬을 이해하지 못하는 소설이었다. 왜 사람들은 이 책을 그렇게 좋아하고, 추천하고, 감동받을지를 알고 싶어서 독서모임에 추천을 하기도 했다. 아직, 독서모임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기행문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는 누군가의 추천에 따라서 기행문을 읽게 되었다.


여러 편의 기행문을 찾을 수 있었는데, 그중에서 "일본 중국 기행"을 먼저 시작했다. 약 100여 페이지를 읽으면서 이 기행문을 읽는다는 것이 나에게 어떤 유익이 있을지 의문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일본에 대한 정보는 니코스 카잔차키스보다는 내가 더 많이 알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고,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바라보는 일본 문화에 대한 해석 중에서는 경쟁국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본에 대한 이해와 상충하는 부분도 있었다. 물론,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사와 사물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선과 설명을 따라가다 보니, 점점 책에 빠져드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이 문장을 만나게 되었다.

카부키의 어머니 오쿠니 - 인간의 혼은 하나의 경이이고, 진흙 같은 육체 속에서 솟구쳐 오르는 샘이다. 그것은 모른다.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바라는지, 어찌하여 높이 오르려는 불가사의한 충동을 지녔는지....(P164)


내가 그리스인 조르바를 보면서 이해가 안 되는 몇몇 장면들이 있었다. 그중의 하나가 조르바가 악기를 연주하는데 거슬린다고 자기의 손가락을 잘랐다는 부분이었다. 내가 만난 누군가가 손도끼로 자기 손가락을 잘랐다는 말을 들으면 미친놈으로 봤을 것이 틀림없다.


얼마나 사랑하면 손도끼를 들어 내리치고 아픔을 참을 수 있는 것일까.... (P29)


그런데, 위의 문장을 보면서 니코스 카잔차키스라는 사람의 극단적인 긍정성을 찾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모든 것을 아름답고, 긍정적이고, 발전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현실을 왜곡해서 볼 정도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되도록이면 사물의 밝은 면과 긍정적인 면을 찾을 수 있는 성품을 닦아 온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르바의 모든 행동에서 다른 사람이 발견할 수 없는 긍정적인 측면만을 찾아내서 보여준 것이 아니었을까?


인간의 혼을 하나의 경이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 육체 속에서 솟구쳐 오르는 샘처럼 새로운 시원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존재로 살펴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니, 내가 잘 못 이해한 것일 수도 있지만,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너무나 따뜻하고 가깝게 다가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는 나의 선천적인 유전자의 기록으로부터, 그리고 내가 성장한 환경에서, 더 나아가서는 나의 개인적인 노력을 통해서 바뀔 수 있다. 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시선에 맞출 수 있다면 세상이 한결 따뜻하고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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