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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y Jan 21. 2024

타인의 해석 -말콤 글래드웰-

우리가 나눴던 대화를 얼마나 녹여낼 수 있을까?

추천자, 발제자, 진행자 : 이음님

토론도서 : 타인의 해석 -말콤 글래드웰- 

참석자 : 송윤근, 무우우니, 아이스크림, 타이티, 주디, 메이현, 소암, 이음  8명.

발제의도 : 말콤 글래드웰은 폭넓은 팬층을 보유한 최고의 작가로 블링크, 아웃라이어, 티핑 포인트 등의 작품을 썼고 타인의 해석이라는 독서모임의 4번째 타인 시리즈를 진행하였습니다. 


1. 총평 : 책을 읽고 느꼈던 간단한 소감.

전체적으로 소감은 말콤 글래드웰이라는 사람의 전작을 읽었던 사람들은 아웃라이어를 넘어서지 못했다는 의견, 여러 가지 사례를 통한 있을 법한 결론, 칼럼의 연결로 마무리 짓지 않고 넘어가는 것 같아 연속적인 글 읽기가 힘들었다는 내용, 고민하면서 블로그를 찾아보면서 이해했다는 애기를 통해서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얘기가 진행되던 중 감사의 말까지 완독을 하면서 글래드웰의 아버지가 죽기 전과 후의 글의 변화를 알고 싶다고 하신 분의 소감이 정말 신선했습니다. 또한, 타인을 잘못 판단함으로써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얘기하시면서 시스템의 문제가 아닌 내가 잘못된 타인의 판단에 대해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또한, 이 책을 읽고 개인적으로 여유가 많아졌다는 평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이 책의 목적을 생각과 행동과 맥락에 의해서 집단의 실패 행동이 일어나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음을 찾고 밝혀서 재발할 가능성을 낮추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는 것에 공감했습니다.


책을 사면 산 날자를 적어놓는 습관을 얘기하셔서 저건 배우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데이비드 브룩스 "두 번째 산"을 말콤 글래드웰만큼 좋아하는 작가로 꼽으셔서 저 책은 또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 주제 1. 타인을 해석하는 도구로 세 가지(진실 기본값, 투명성의 가정, 맥락과 행동의 결합)와 이 시대 한국인들의 집단적인 실패


사람들이 타인을 해석하는 세 가지 도구를 발전시킨 이유는 틀림없이 진화적으로 가장 효율적으로 타인을 판단해서 그의 행동의 의미로부터 적대와 우호를 구분해 내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효율적인 타인을 해석하는 도구들이 때로는 오류를 일으켜서 타인을 오해하고 문제를 발생시키기도 합니다. 업무에서 예를 들어서 보험을 가입시킬 때는 진실기본값으로 판단하고, 실효 후 부활시킬 때는 실사, 방문진단, 인터뷰 등을 통해서 불신기본값으로 검증합니다.  진실기본값이 없으면 사회가 이루어질 수 없고, 사회관계에서 판단해야 하는 경우에는 의심하는 쪽으로 근거를 찾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타인의 표정을 보면서 그 사람의 생각을 완전히 안다고 착각하고 자의적으로 판단합니다. 이런 오해를 완전히 피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타인을 해석하는 도구를 사용할 때, 의식적으로 조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맥락, 시간, 장소에 대한 조사를 통해서 우리가 막을 수 있는 불행을 막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불행을 막는 방법으로 번개탄 시중판매 금지, 경찰 권총자살이 많은 것은 권총이 주어지기 때문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캔자스시티의 범죄지역에서의 과잉수사를 통한 총기를 찾아내니 범죄율이 떨어졌다는 얘기와 범죄율이 높지 않은 지역에서의 과잉수사는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다른 방식으로 사람을 파악하는 방법으로 사주, 혈액, MBTI에 대한 얘기가 있었습니다. MBTI를 통한 서로 다른 사람들의 성향에 따른 오해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과 더불어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을 차단시킬 수도 있다는 문제점과 MBTI가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생각으로 타인이 보는 자신과의 차이점을 가진다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상대편이 나의 MBTI 검사를 해주는 MBTI 빙고게임을 오늘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금문교의 쇠그물 얘기는 꼭 출처와 진실여부를 확인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사람을 이해하는 간접적인 방식은 다양하게 많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방법들보다 가장 확실한 것은 그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하는 사람인지를 경험하게 될 때일 것 같습니다. 



3. 타인의 정의와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이해는 사물을 이해하는 틀이자 범주라는 말에서 우리가 타인을 해석하는 방식은 우리 마음속의 세계관에 맞는 범주 속에 넣는 것이고, 이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면 이해했다고 생각하면서 편안함을 느끼고, 이 범주안에 넣지 못할 때는 이해불가로 인한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는 설명이 좋았습니다. 레비나스의 말 <<인간은 이성적 존재로 타인은 인식의 대상이 아니다. 연약한 감성으로 대해야 하는 윤리적 대상>> 속에는 고민할 많은 사유거리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해 못 한다는 말속에서 이성적 이해, 감성적 이해, 동의와 공감이 뭉쳐져서 혼란과 오해를 불러일으킨다는 의견에서 약간 의아함을 느꼈습니다. 언어를 명확하게 구분함으로써 이해의 폭이 넓어질 수 있을지는 동감되지만 그로 인해서 얻는 이해가 분쟁을 없앨만큼 커질지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런 중에 이해한다는 것을 받아들임(=Accept)로, 안다는 것은 좋은 마음으로 받아들임으로 설명해 주신 내용은 왠지 쉽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해하기 위해서는 더 많이 알아야 한다는 말에도 100% 공감했습니다. 


주제4 한국인에 대한 한국인의 정서는 매우 보수적. 이민 노동자들에게 문을 여는 것은 덴마크와 같은 상황을 초래? ‘자제와 겸손의 태도로 타인에게 말걸기’가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까요?

현재 몇 년의 기간으로 연수생으로 받아서 한국의 노동력을 충당하고 있는 방식을 오픈해서 실질적인 노동자 이민을 받는 것에 대한 필요성과 상황을 간단히 얘기했습니다. 허드렛일 하는 카페, 건설노동자에는 한국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서, 외국인이 이민 와서 한국사회에서 일하면서 정착하게 되었을 경우, 우리는 그 사람들을 얼마나 차별 없이 같은 국민으로서의 지위를 보장해 줄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에서는 지역적 차별과 갈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모든 나라들도 동일한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노동 이민자를 전면적으로 허용할 경우, 허용하는 이유는 우리가 하기 싫은 일들을 떠넘기려는 의도가 큰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이민자들이 한국에 정착하고 난 이후는 그들에 대한 차별과 갈등이 심화되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은 누구도 하고 있지 않습니다.


한국사람들은 해외에 가서 인종차별을 당하고 돌아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연수근로자들을 차별합니다. 이런 나와 타인의 구별을 통한 차별이 사회적인 문제로 돌아오는 것은 필연적일 것입니다. 가장 선진화되었고 오랜 역사를 가진 다문화 국가인 미국을 보더라도 차이로 인한 차별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다른 차이를 가진 외계인을 데려오는 방법뿐일 것 같습니다. 분류가 다른 카테고리의 종족과 전투하면 지구인으로 뭉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양한 얘기들을 나누었고, 그 얘기들을 읽으면서 이 얘기를 왜 했었는지 어떤 맥락으로 했었던 건지가 벌써 혼란스럽습니다. 독서모임을 통해서 계속적으로 깨닫게 되는 것은 정말 우리는 완벽하지 않은 세상에서 완벽하지 않은 체계 속에서 많은 문제를 가진 사회를 꾸려서 더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시대(딱히 현재만의 특징은 아닌 것 같지만...)에 살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나는 나의 신체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나의 가족의 경제생활을 반석에 올리지 못했고, 회사에서는 늘 터지는 문제들로 골머리를 싸매고 있습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고 했는데, 수신도 다 못하고 죽을 게 너무 뻔해 보입니다. 어떻게 사람들은 제가를 하고 치국평천하를 하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한주정도 동안 화두가 타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항상 "타인"이라는 화두는 나로 돌아옵니다. 나를 제외한 사람들이 타인입니다. 그래서, 나는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 다시 한번 나를 돌아보게 됩니다. 나에게 있어서 타인의 이해는 나와 얼마나 닮았고, 얼마나 다른지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 타인의 다름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나를 확장한다는 것이고 내가 포용할 수 있는 부분이 늘어날수록 타인에 대한 나의 이해는 늘어날 것이라 생각합니다.


끝나고 마시는 차모임에서의 얘기는 인생을 풍성하게 한다는 느낌으로 너무 좋았습니다. 다시 한번 좋은 시간을 공유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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