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anmar, Kalaw - inle lake - yangon
JJ Express 버스를 타고 새벽 3시 30분에 껄로에 도착했다. 껄로가 최종 종착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중간중간 내려야 할 곳을 확인하느라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이런 거에 상관없이 버스에서 잠을 잘 자는 사람들이 부러울 때가 있다. 평소 자세의 문제인지 목부터 허리, 엉덩이까지 버스를 타기만 하면 안 아픈 곳이 없어 잠을 더 자지 못한다. 내리자마자 버스에 실었던 짐을 내려 잠시 정리를 하고 숙소를 찾아 출발하는데 깜빡하고 놓고 온 식량을 다시 가지러 갔더니 이내 사라졌다. 그 사이에 그걸 누가 가져간 것이다. 대단한 사람들. 나중을 위해 아껴둔 식량이 날아가다니... 그렇게 어두컴컴한 길을 골목골목으로 들어갔는데 아무리 찾아도 숙소가 보이지 않는다. 골목으로 들어가면서도 이곳은 아니다 싶었는데 결국 찾은 숙소는 대로 한복판에 있었다. 가끔 이럴 땐 구글맵을 때리고 싶다. 너무 이른 시간에 도착했지만 당당히 문을 두드렸고, 주인이 나와 주방으로 보이는 곳으로 안내했다. 빨리 체크인을 할 수 있겠냐 물으니 체크인 시간은 12시라는 말에 큰 '좌절'을 했다. 그렇게 추운 주방 식탁에 앉아 쪼그려 잠을 청했다. 그 모습이 불쌍했는지 나는 9시에 체크인을 할 수 있었고 그래도 뻗어서 잠을 잤다.
12시쯤 눈을 떠 창문을 열고 바라본 풍경은 음,, 베트남의 Dalat 같은 느낌이었다. 선선하면서도 조용하고 쾌적한 느낌. 방 안으로 빛이 들어오는 기회를 맞아 필요한 빨래를 널고 기대하던 껄로 트레킹을 신청하러 갔다. 가장 유명한 Sam's family로 가기 전 몇 곳을 확인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쌤 네서 하기로 했다. 그렇게 비용을 지불하고 그 바로 앞 레스토랑에서 볶음밥과 망고주스를 먹었다. 이 레스토랑을 이용한 이유는 단 한 가지 와이파이를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와이파이가 잘 되지 않았고 점심만 해결할 수 있었다.
그리고는 바로 숙소로 돌아와 그냥 쉬었다. 이곳에서 딱히 뭘 할 것도 없었고 단지 트레킹을 위해 들어온 동네이기 때문이다. 오후 5시가 되어서 동네 중심에 있는 마켓에 잠시 마실을 나갔다. 겉에는 일반 음식점과 슈퍼들이 있었고 안쪽에는 야채와 과일을 파는 시장 형식의 마켓이 있었다. 남쪽과 북쪽에 있는 입구 중 하나로 들어가 구경을 했는데 딱히 특별한 것이 없어 들어왔던 입구 반대로 나가려는데 문이 잠겼다. 이리저리 골목길을 통해 나갈 길을 찾아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들어왔던 곳을 통해서 나올 수 있었다. 주변에 사원이 몇 개 있었지만 더 이상의 사원 구경은 나에게 필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숙소로 바로 복귀해 짐을 정리하고 잠을 잤다.
오전 6시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7시 30분에 여행사에 방문해서 출발 준비를 했다. 1박 2일 트레킹에 필요한 짐을 작은 가방에 담았고 나머지 큰 짐은 여행사에서 미리 예약한 나의 숙소로 보내준다. 보아하니 내가 가장 일찍 여행사에 온 것 같았다. 1시간이 지나고서야 사람들이 서서히 오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방금 도착한 사람이 투어에 참가하기도 했다. 여행사는 이제 부랴부랴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어 시장통이었다. 이럴 거였으면 시간을 정확히 하지 준비가 완료돼있던 나는 할 게 없어 멍하니 그들이 준비하는 것을 볼뿐이었다. 그렇게 2시간가량이 흘러 나와 함께할 가이드와 팀이 구성되었고 이동을 위한 트럭에 올라탔다. 우리 팀의 외국인은 칠레에서 온 3명의 친구들이었다.
차량을 타고 이동하면서 본 풍경은 굉장히 푸릇푸릇하고 특이한 모양의 산과 들이었다. 그리고 중간에 잠시 내린 곳에서 칠레 친구들은 모자를 샀다. 여자 2명과 1명의 남자로 구성돼있었는데 여자1이 서로 모르는 남자1과 여자2를 불러서 같이 여행 중인 것이다. (이름은 알지만 쓰기가 워낙 어렵고 길어 숫자로 표현한다.) 처음에는 여자2가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여자1과 남자를 찍어주길래 둘의 신혼여행에 따라온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고 그냥 여자2가 사진을 잘 찍어서 그렇게 자연스럽게 된 것이었다.
처음 얼마 동안은 칠레 친구들의 수다에 감탄을 했고 그 후에는 놀랬다. 어떻게 단 한 번의 쉼 없이 그렇게 말을 할 수 있는지, 그들이 정말 이 풍경을 보고는 있는 것인지 의문이었다. 아무리 사람마다 스타일이 다르다곤 하지만,,, 주로 서양 사람들은 대화가 많은 편이긴 하지만 이 친구들은 정말 대단했다. 날씨는 트레킹을 하기에 적당했고 코스 또한 험난한 코스가 아니었다. 주변을 보면서 조용히 생각도 하고 걷기에 딱 좋았다. 중간중간 꽃구경도 하고 저 멀리 언덕의 소와 말도 구경하고, 일하는 사람들도 구경했다. 흙을 훑고 지나가는 신발 소리마저 좋았다. 하늘 또한 맑았다.
무엇보다 많은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다들 먼저 인사를 건네고 심지어는 우리에게 다가와 노래를 부르기도, 애교를 부리기도 했다. 남자들끼리 있던 집단도 있었는데 그들은 부끄러웠는지 멀리서 다가오지 못하고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우리에 이목을 끌려고 노력했다. 우리가 인사를 건네자 그제야 한 아이가 조금 따라와 인사를 했다. 아이들은 전부 나뭇가지를 뜯어 들고 놀거나 나무를 타거나 자연을 무대로 뭔가를 하면서 놀고 있었다. 유일하게 한명(사진에 있는)이 핸드폰을 가지고 있는 모습을 봤는데 어찌나 이질감이 들던지. 사람 사는 곳이 다 똑같다는 걸 느낀 지 오래됐고 당연히 핸드폰도 가지고 있는 게 맞다고 생각했지만 자연과 어우러지는 아이들이 핸드폰을 가지고 놀고 있으니 큰 이질감이 다가왔다. 칠레 친구들은 이들과 사진을 함께 찍고 우리는 다시 발길을 옮겼다.
몇 시간이 흘러 우리는 한 마을에 들어섰다. 원래는 시멘트가 아닌 나무를 이용해서 집을 지었었지만 지금은 조금씩 시멘트 집으로 바뀌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중 한 집으로 들어가 우리는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그곳에서 우리는 차와 약간의 다과를 먹을 수 있었고 할머니께서 손수 만드시는 전통 무늬의 스카프와 가방 등을 착용해볼 수 있었다.
한 5시간쯤 걸었을까? (아, 이전에 한 곳의 마을에 더 들려 점심을 해결했다. 배도 고프고 피곤해서 먹는데 정신이 팔려 사진이 하나도 없다. 간단한 면 요리와 과일이 나왔고 먹자마자 우리 모두는 1시간 정도를 잤다.) 언제쯤 도착할까 살짝 지쳐갈 때쯤 우리 앞에 높은 산(?)하나가 보였다. 분명 이쯤이면 마을이 나와서 우리가 쉴 곳이라며 소개를 받아야 할 것 같은데 눈 앞에 검고 높은 것이 나타나 살짝 당황했다. 우리 가이드에게 물으니 저산을 넘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일제히 순간 당황했다. 표현은 안 했지만 모두들 살짝 지쳐있던 것이다. 우리의 표정을 보더니 그녀(가이드)는 살짝 웃더니 장난이라며 저 사이로 길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 또한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그 말은 즉, 우리는 갈길이 멀다는 말이니까. 그렇게 2시간 정도를 더 걸어서 우리는 다른 마을에 도착했다. 그곳은 우리 숙소였다.
숙소에 도착해서 우선 2층에 짐을 풀었다. 그리고 샤워는 당연히 생각도 없었고 세수를 하고 손, 발만 씻었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고 동네를 구경했다. 동네는 한적했다. 이유는 아직 일하러 나간 남자들이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을은 집집마다 소가 끄는 마차 같은 것이 있었고 외양간이 있었다. 다른 팀의 관광객들은 몇 개의 집에 방문해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보고 나오는데 6시쯤이 되었다. 그쯤 되니 하나둘씩 소를 끌고 일터에서 돌아오는 남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농사를 짓지 않으면 나무로 베스킷을 만들어 마을에 판다고 한다. 이 때문에 마차가 필요한 것이고.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 해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며 저녁을 맞이 했다. 돌아왔을 때는 저녁이 준비돼 있었고 다 같이 모여 저녁 식사를 하며 얘기를 나눴다. 즐거운 대화 시간이었다. 나도 그렇지만 그들도 영어가 완벽하지 못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를 몰라했다. 그렇지만 좋은 시간임은 틀림없었고 칠레에서 만나기를 기약했다. 부디 그럴 수 있기를.. 내가 칠레에 가려면 적어도 반년은 있어야 하기에 나를 기억할런지. 그리곤 불이 들어오지 않는 이 곳에서 일찍 잠에 들었다.
아침 8시에 일어나 출발 준비를 했다. 그리고 먼저 일어난 나는 먼저 씻으러 나왔다. 내가 안내받은 곳은 ㄹ자형태로된 야외 화장실이었다. 내 가슴 높이까지 오는 벽이 3면을 막아주고 있었다. 버킷의 물은 바로 옆에서 떠와서 쓸 수 있었다. 비가 오면 그곳에 물이 저장되는 형태로 되어있었는데 깊이와 넓이가 상당해서 물을 끌어올리는데도 힘과 시간이 좀 필요했다. 당당히 옷을 싹 다 벗고 찬물을 몸에 뿌리며 샤워를 했다. 그 사이 많은 사람들이 내 옆을 지나갔고 우리는 눈인사를 나눴다. 몸의 2/3만 가려지는 벽 하나를 두고 샤워하며 바로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이 경험을 또 언제 해보겠는가?
모두들 씻고 나서 준비된 아침을 먹고 길을 나섰다. 어제보다는 사뭇 친해진 우리는 이제 섞여서 걷기 시작했고 같이 장난을 치기도 했다. 오늘은 어제보다 살짝 날이 뜨거웠고 많은 시간을 걸어야 했다. 껄로를 벗어나 보트를 타고 인레호수를 낭쉐로 들어가는 일정이었다.
우리가 걸어온 길들은 어제와는 달리 공사 전에 미리 사전 작업을 해놓는 형태의 길이었다. 때문에 먼지가 많이 날렸고 건조했다. 불과 1~2년 전만 해도 이런 길이 아니었는데 공사를 시작하면서 이렇게 됐다며 가이드는 불만을 표현했다. 그는 그 전의 모습이 더 좋았다고 했다. 나도 분명 그때가 더 좋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렇게 가다가 갑자기 가이드가 풀 하나를 가리키며 이 식물에서 나오는 기름으로 오토바이도 가게 만들 수 있다고 했고 비눗방울도 만들 수 있다며 보여줬다. 그 식물의 이름은 custor. 풀을 하나 꺾어 줄기를 반으로 갈라 그곳에서 나오는 기름방울을 비벼서 불면 비눗방울이 날린다. 우리 모두들 시도했지만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중간에 마지막 관문인 나름 급경사의 내리막을 맞이하기 전 쉰 공간에는 큰 나무가 있었다. 그곳 아래서는 동물들이 쉬기도 하고 간지러웠는지 뿔을 나무에 비비기도 했다. 미얀마 사람들은 그 나무가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믿고 기도를 하기도 하고 중요시 여긴다고 한다. 이름을 들었는데 잊어버렸다. 나무는 굉장히 컸고 사람 여러 명이 올라가서 놀아도 될 정도였다. 그 나무를 바라보고 있으면 푸르른 힘이 밖으로 뻗어 나오는 느낌을 받았고 시원했고, 신선했고, 신비롭기도 했다. 동화에 나올법한 나무의 모습이었다.
마침내 마을까지 내려온 우리는 그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음식은 그동안 먹은 음식과 비슷했고 이 식사가 우리가 함께하는 마지막 만찬이었다. 1박 2일 동안 전기가 없어 마시지 못한 찬 음료를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찾았다. 냉장고로 가서 음료가 차가운지 확인하고 바로 사 마셨다. 비록 완전히 차갑지는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밥을 먹고 얼마 동안 또 쉬는 시간을 갖은 뒤 우리는 배를 타러 향했다. 그 배는 마지막 종착지 인레호수를 지나는 낭쉐로 들어가 우리를 마을에 내려줬다.
이들은 수상생활을 하면서 토마토를 키우고 각종 채소와 과일을 재배한다고 한다. 거의 숲을 이룰 정도로 있던 푸른 식물들이 뭔가 했더니 다 토마토라고 했다. 자세히 보니 그 토마토 숲 사이로 사람들이 일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색적인 모습과 드넓게 펼쳐진 물, 그리고 시원하게 그 물을 가르고 가는 배 안에서 편하게 즐길 수 있었다. 다만 한 가지 문제는 처음에는 너무 햇빛이 쨍쨍해서 뜨겁더니 마을에 거의 다 왔을 때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낭쉐에 도착해 내려서 우리는 마지막 사진을 남기고 각자 길로 헤어졌다. 끝까지 헤어지면서 칠레 친구들은 칠레에 오면 자기 여동생들을 소개시켜준다며 잊지 말라고 소리쳤다.
무리와 헤어진 나는 먼저 내 짐이 있는 숙소로 향했다. 숙소에 도착해 체크인을 하고 짐을 찾아 푼 후에 바로 나와서 내일 배를 예약하러 길을 나섰다. 전혀 알지 못하는 이곳을 여행사를 찾아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그때 마참 따라붙는 한 남자애가 있어 말을 해보니 자기가 배를 가지고 있고 5살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배워서 잘한다고 자기소개를 했다. 나는 그에게 먼저 배를 보여달라고 해서 문제없음을 확인하고 내가 방문하고자 하는 곳을 다 설명한 뒤 금액 흥정을 했다. 보통 4만 짯에 이용하는데 2만짯에 해준다고 하니 바로 오케이 !! 하고 내일 아침 8시에 만나기로 하고 헤어져 나는 숙소로 돌아와 쉬었다.
아침에 일어나 7시 30분에 그를 만났다. 배를 끌고 숙소 앞 수로로 오기로 했던 그는 그냥 걸어서 왔고 나는 그를 따라 배 타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첫 번째 목적지였던 수상 마켓을 가려고 했는데 그가 말하길 오늘 수상 마켓이 열리는 곳이 상당히 멀어 우리의 코스 중 하나와 선택을 해야 한다고 했다. 뭔가 찜찜했지만 원래 수상 마켓이 매일 다른 곳에서 열린다고는 알고 있었기에 수상 마켓을 포기하고 은공장, 담배 공장, 실크 공장을 방문했다.
첫 번째 방문한 실크 공장에서는 들어서자마자 한 꼬마가 앉아서 일을 하고 있다. 이 꼬마는 한 풀의 한쪽을 잘라 늘어트려 나오는 물질을 반복해서 엮으면서 실크 뭉치를 만들고 있었다. 꼬마가 한다는 것도 신기했지만 만들어지는 과정도 꽤 신기했다.
그리고는 이층으로 올라가 만들어진 실크 뭉치로 실제 옷이나 기타 물건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줬다. 하나하나 친절히 설명을 해주고는 당연히 그들이 만든 물건을 파는 장소로 나를 인도했다. 당연히 공짜로 그것을 설명해주고 할리가 없었다. 이 물건 저 물건을 구경했지만 딱히 끌리는 물건은 없었고 제품의 질도 생각보다 좋지 못해 구입하지 않고 그곳을 나왔다.
그리고 방문한 담배 공장. 여러 명의 아줌마들이 앉아 풀잎에 무언가를 넣고 돌돌 말고 있었다. 생각보다 비싸지 않은 담배가 괜찮은 선물이 될 것 같아 친구에게 보내주기 위해 담배를 사기로 하고 고르고 있었다. 그랬더니 주인이 공짜로 맛볼 수 있다며 해보라고 권유했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기 때문에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기성 담배와는 성분이 다르고 니코틴, 타르가 거의 없다는 말에 향을 맡아보고 선택하고자 몇 가지 피워봤다. 물론 살짝만 흡입해서 향만 맡았다.
꿀 향과 바닐라, 민트, 일반 이렇게 4가지 종류가 있었는데 너무 단 향이 나던 꿀과 민트를 제외하고 바닐라와 일반 담배를 샀다. 웃긴 건 정말 어느 곳에서도 카드기를 볼 수 없었는데 이곳에서는 카드기를 볼 수 있었다. 기념품을 파는 곳이라 당연히 그만한 현금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없으니 이곳은 카드기가 있던 것이다. 결론은 카드를 사용할 수 있지만 그들이 카드를 받기 싫어 설치를 안 한 것뿐이었다.
다음으로는 은 공장에 방문했다. 이곳도 마찬가지로 은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주고 설명해줬고 그들이 만든 제품을 보여줬다. 이곳에선 아무것도 사지 않았고 금방 나왔다.
그다음으로 방문한 곳, 밖에는 옷도 팔고 음식도 팔며 장이 서있고 건물 안에는 금딱지를 구매하여 어떤 돌상에다가 붙이며 기도를 하는 곳이 있었다. 그 외에 나에게는 별다른 특별한 의미가 없어 금방 나와 오히려 주변을 둘러봤다. 사람들은 보통 이곳을 메인으로 보고 그냥 나가지만 나는 골목 깊숙이 들어가 봤다.
그곳에서 새로 건물을 짓는 사람도 만나고 집 기둥 아래서 노는 아이들도 만났다. 카메라를 들면 숨고 내리면 나오고 한참을 나랑 장난치기를 반복했다. 처음에는 도대체 꼬마들이 왜 건물 아래 위험한 틈에서 노는지 걱정했지만 그 아이들에게는 그곳이 놀이터인 모양이었다. 그 옆으로 가자 포켓볼 형식의 테이블에 물 뚜껑을 이용해 놀고 있는 아이들이 있었다. 한참을 구경하자 애들이 나에게도 뚜껑을 주면서 해보라고 해서 당당히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놀이였다.
나는 유명 관광지를 보는 것보다 이런 마을의 소소한 모습을 보는 것이 훨씬 좋았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 사원 바로 옆에 이런 마을이 있는 줄도 모를 것이다. 어떻게 이 사람들이 사는지, 어떤 놀이를 하는지, 어떻게 건물을 짓는지와 같은 것들을 모르고 지나갈 것이다. 어떻게 아이들이 웃는지도 말이다. 그렇게 마을을 빠져나와 다시 배 주인에게 돌아갔는데 그가 황당한 말을 했다. 내가 이 배를 타기로 한 가장 큰 이유인 오래된 유적지를 못 간다는 것이다. 시간도 너무 늦었고 핑계로는 물 수위가 너무 낮아 배가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하루 사이에 수위가 배가 못 들어갈 정도로 낮아진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너무 화가 났지만 어떻게 따질 방법도, 갈 수 있다고 증명할 방법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가격이라도 깎아 달라고 했지만 그는 오히려 화를 냈고 다른 기사 알아보라고 나를 버려두고 떠났다. 그렇게 친절하던 그가 그렇게 돌변했다. 돈 앞에 그렇게 사람이 변했다. 이곳에서 다른 기사를 찾는 건 당연히 불가능했고 그는 그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은 나는 관심도 없던 사원을 그를 통해 마지막 목적지로 가기로 했다.
이 사원은 고양이가 점프를 한다고 유명했다. 실제로 갔을 때 사원안은 고양이가 별로 없었고 볼 것도 그다지 없었다. 대충 안을 둘러보고 건물 밖으로 나가자 그곳에 몇 마리의 고양이가 있을 뿐이었고 그들이 높이 뛴다거나 크게 동작을 하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실제로 고양이들이 뛴다고 한들 그게 신기 할리 없었다. 그리고 벤치에서 한참 동안이나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배 기사가 괘씸하여서 시간을 최대한 끌고 싶었다. 그가 빨리 돌아가 다른 손님을 더 태우고 나올 생각이라고 나는 판단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나는 그다음 할 일도 없었고 양곤으로 돌아가는 일뿐이 없었기에. 다시 생각해보면 나도 그런 행동을 했어야 했나 싶지만 그때는 정말 너무 화가 났다. 두 번 다시없을 기회를 저 기사의 욕심 때문에 놓친다는 게 화를 내 스스로 감당할 수 없었다.
그렇게 5시까지 빌리기로 돼있던 배는 2시 30분이 되어서 돌아왔고 나는 곧바로 양곤으로 떠날 버스를 예매하러 여행사를 찾아 돌아다녔다. 문제는 내가 현금이 없어 카드로 결제를 해야 하는데 역시나 카드를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1시간가량을 찾아 1곳 카드를 받아주는 곳을 찾았고 다행히 자리도 있어 예약하고 숙소로 돌아와 떠날 준비를 했다. 그렇게 4시에 픽업 차를 타고 버스로 갈아 탄 뒤 이 곳을 떠났다.
11시간의 버스를 타고 다시 양곤으로 돌아왔고, 똑같은 숙소로 복귀했다. 더 이상 양곤에서는 볼 게 없었고 그저 비행기 타는 날을 기다리는 시간을 보냈다. 도착한 첫날은 피로감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둘째 날은 편지를 쓰러 우체국에 갔다.
사진에는 우체국이 깔끔하고 정리가 잘 된 것처럼 나왔지만, 실제로는 사람들이 택배 하나를 보내기 위해 오랜 시간 기다려야 했고 그만큼 줄도 길었다. 바닥에는 짐들이 깔려있고 사람들도 그곳에서 짐을 풀어 다시 패킹을 하기도 했다. 안은 완전 찜통더위였다. 나는 우체국 앞에서 편지와 우표를 사서 6명 정도에게 편지를 쓰고 보냈다. 우체국 안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편지를 쓰고 나와서는 남은 시간을 미리 봐 뒀던 카페에서 그동안 밀렸던 글을 쓰는데 시간을 보냈다.
셋째 날인 오늘은 미얀마를 떠나는 날이다. 별다른 일정 없이 아침 먹고 나와 근처 카페로 향했다. Paris라는 베이커리 겸 커피숍이었는데 분명 한국인이 사장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테리어부터 서비스, 빵 종류까지 너무 한국스러웠기 때문이다. 양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시설이었다. 그곳에서 시간을 때우고 2시에 비행기를 타러 공항으로 향했다. 이때는 남은 돈도 있고 해서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한국을 떠날 때 타고는 처음 타는 비행기였다. 그동안은 쭉 육로로 이동했기에 비행기를 탈 일이 없었다. 벌써 3달 전의 일이다. 멋모르고 출발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니. 한국에서 비행기가 이륙 할 때가 머릿속에 스처지나가며 한국이 잠시 그리워졌다. 하지만 이내 여행 나가는 것처럼 들뜨고 신나는 기분이 들었다. 다음으로는 비행기를 확인했는데 날수 있울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만큼 작았고 허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