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느끼는 그대로 여행

Nepal, Phokhara

by Moon Heehong

히말라야 트레킹을 끝내고 친해준 나의 가이드이자 친구인 빌과 떠나기 전 밥을 함께 먹기로 했다. 그래서 네팔 비자 연장 신청도 할 겸 그날 만나서 먹기로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그 날이 왔다. 오전 6시에 일어나 밥을 먹고 11시까지 온라인으로 서류 작성을 했다. 그런데 주소를 포카라의 주소를 적는 칸이 있었는데 포카라는 주소 체계가 정확하지 않아 뭘 어떻게 적어야 하는지 몰라 한참을 고생했다. 이러다 못하겠다 싶어 현지 한인 게스트하우스 사장님께 여쭤봤지만 사장님 조차 모른다고 하신다. 12시까지만 신청을 받는다고 했기에 미친 듯이 달려서 결국 대행업체로 갔다. 결국 그 오랜 시간을 쏟았는데 돈을 주고 금방 해결했다. 그리고 시간이 너무 부족해서 하는 수 없이 절대 타지 않던 택시르 불러서 출발했다. 그런데 결국 그곳은 12시가 한참 넘어서까지 업무를 했다.


뭐 일을 더 하는 거야 내가 뭐라 할 거 아니니 신청하려고 기다리는데 직원이라고는 딱 2명이 있는데 그 2명이 서로 잡담하느라 일을 너무 느리게 처리했다. 별 달리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계속 기다리면서 동시에 빌을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려서 빌이 왔고 결국 30달러를 내고 비자 연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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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트레킹 중에 고장 난 내 카메라를 고치기 위해 소니 수리점을 찾아 나섰다. 빌의 오토바이를 타고 시내를 갔는데 처음에는 공식 대리점으로 데려가 준다더니 결국 찾지 못하고 사설 수리점으로 향했다. 한 골목 구석에 위치한 그 수리점은 내 카메라를 가져가서 열어보더니 처음에는 부품이 없어 비용이 엄청 많이 든다며 금액을 불렀다. 내가 알겠다고 그냥 가져가려 하자 그제야 한번 해보겠다고 했지만 그 가격 역시 너무 비싸 그냥 가지고 나와버렸다.


그리고는 점심을 먹으러 갈 줄 알았더니 갑자기 어느 빵집으로 데려가더니 빌이 자기 친구 3명을 소개하여줬다. 레스토랑 사장, 경찰 등이었다. 그중 한 명은(니싼 컬키) 부자라는데 알 길은 그 친구와 함께 고기를 먹으러 갔다. 근데 내가 생각한 고기가 아니고 꼬치에 버펄로와 돼지고기를 꽂은 구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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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괄편집1_DSC01186.JPG 맛은 그래도 굿굿굿!

그곳에서 싸다고 막 먹었더니 2700이 나왔다. ㅋㅋㅋ 그러는 사이 비가 많이 와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빌이 직원에게 카드를 달라고 했고 그 자리에서 우리는 카드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맥주 10병, 고기 5 접시, 카드 게임 3시간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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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괄편집1_DSC01183.JPG 빌의 셀카, 본인 외모에 심취하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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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먹고 나와서는 관광을 시켜달라고 했는데 비 때문에 어렵다며 니싼이 자기 집에서 밥을 만들어 먹자고 제안했다. 그리하여 바로 오토바이를 타고 니싼네 집으로 고고! 가는 길에 장을 봐서 삼십 분쯤 달려 도착했다.

일괄편집1_DSC01190.JPG 비오는 와중에 신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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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도착하니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정말 반갑게 맞아 주셨다. 그리고 니싼의 동생도 처음에는 부끄러워하더니 이내 우리 쪽으로 다가와서 같이 얘기를 하며 놀았다. 그리고 니싼과 어머니가 음식을 해주시는 동안 우리는 카드 게임을 다시 시작했다.

일괄편집1_DSC01253.JPG 카드 게임만 하면 잔인해 지는 녀석

그 사이 니싼은 일차로 카레맛 스크램블과 과자를 줬다. 그리고는 치킨 마카로니와 버펄로 우유를 끓여서 줬다. 자기네는 모든 재료를 직접 키워서 먹는다고 한다. 그 말은 즉 버펄로 우유도 방금 직접 만들었다는 뜻이다. 아버지께서 밖에서 뭘 하고 계시나 했더니 버펄로 우유를 끓이고 계셨던 것이다. 오 마이 갓.

일괄편집1_DSC01240.JPG 게임에 정신 팔려 음식 사진이 제대로 없다

그리고 포토타임을 갖었는데 엄마는 치장까지 하고 나오셨고 동생도 불렀다. 엄마는 나보고 SUN(자식)이라며 매년 오라고 했다. 매년 와서 편하게 놀다가 가라고. 참 감사했다. 오늘 처음 본 나에게 이런 호의와 정을 나눠주시다니. 아마도 한국에서 지원받았던 경험과 한국에 방문했던 기억, 그리고 이런 경험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나에게 대신 표현해주시는 것 같다. (니싼은 네팔에서 태권도 사범으로 태권도장을 운영하고 있고 한국에서 지원받아 네팔 학생들을 데리고 한국에 방문한 적이 있다.)

일괄편집1_20170516_205024.jpg 네팔 친구와 가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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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빠가 멀찍이서 서성이시더니 우리에게 끼고 싶으셨는지 점점 다가오셨다. 그리고는 자신이 끓인 버펄로 우유가 어떠냐며 물으셨다. 사실 나는 어릴 적부터 우유를 마시지 않았기에 조금 힘들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마셨다. 그리고 본인의 자랑을 시작하셨다. 대화하면서는 참 인자하신 분이다라고 느꼈지만 막상 빌과 니싼에게 들은 아버지는 참 가정에 무심한 사람이었다. 동네에서는 한자리 차지하시는 분이었지만 집에서는 땅 팔고 돈 날리는 약간 그런 존재였다. 아무렴 어떤가. 그래도 그들은 서로 얼굴 찌푸리지 않고 인정하고 살고 있었다. 그러고는 무슨 눈치를 자꾸 보시기 시작하더니 몰래 귓속말로 담배 있니?라고 물으셨다. 물론 나는 담배가 없었기에 옆에 친구들에게 빌려 몰래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셨다. 엄마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면 바로 숨기시고 ㅋㅋㅋ 담배 피우는 사람들은 어딜 가나 눈치 보는구나. 그리고 우리는 삼차 식사를 했다. 먹다 죽겠다 싶었다. 치킨 커리와 라이스, 직접 만든 천연 버터를 밥에 비벼서 먹었다. 대망에 마지막은 라시. 이 또한 직접 만든 소중한 음식이었다. 맛이 좋다. 코카콜라 빼고 레몬부터 모든 재료가 다 직접 재배한 것. 우리가 먹는 동안 엄마 아빠는 서서 잘 먹나 보셨다. 같이 먹자고 했더니 네팔 문화는 손님이 다 먹고 먹는 거란다. 그렇게 우리는 식사를 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엄청나게 사진을 찍었다. 내 요청이 아닌 니싼 가족이 찍자고 해서. 엄마도 아빠도 동생도 니싼도 각자의 핸드폰으로 찍자고 했다. 너무나 환대받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나올 때 포옹을 하며 나왔다.

일괄편집1_DSC01242.JPG 요리하는 니싼

돌아오는 길에 웃긴 사건이 발생했다. 빌의 오토바이 바퀴에서 바람이 빠지는 것이다. 그 시간에 수리점은 모두 문 닫았고 방법이 없어 수동으로 바람 넣는 장비를 빌려다가 조금 가다가 오토바이 2대를 세워서 니싼이 장비를 잡고 내가 펌프질을 하면서 열심히 바람을 넣었다. 그렇게 한참을 가는 동안 10번 이상은 펌프질을 한 거 같다. 참 오밤에 열심히 팔 운동했다. 참 즐거운 추억을 쌓았다. 그리고 그들은 나를 내려주고 다시 그 길을 이번에는 둘이서 번갈아 펌프질을 하며 돌아갔겠지?


테리 탄니아밧, 하줄 하루라이

온 마음 다해, 감사합니다. 빌&니싼


니싼은 내가 들어갈 때까지 혹시 여행 중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연락하라며 자신을 잊지 말라고 말한 뒤 돌아갔다.

일괄편집1_DSC01233.JPG Thank you. my b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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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늘은 그동안 밀린 일기를 써보고자 아침 일찍 일어났다. 아침 7시에 일어나 살짝 빈 둥 거리다가 숙소 앞에서 샌드위치로 간단히 아점을 해결하고 더 카페로 향했다. 더 카페는 포카라에서 가장 인터넷이 빠른 카페다. (네이버 블로거님들에 의하면...) 그리고 하루 종일 일기를 썼다. 인터넷 환경이 좋지 않아 사진만 업로드하는데 하루 종일이 소요된다. 계속되는 에러에 화가 치솟는다. 그리고 에어컨은 왜 않틀어주는지 더워 죽겠다. 점심이 한참 지나고 오후 4시쯤으로 향하는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 더운 날씨에 내려주는 이 비는 참 시원하니 좋았고 소리마저 좋았다. 그래서 글 쓰다 말고 가족과 친구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목소리를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한참 후에 비가 그치고 노트북을 정리하고 7시쯤 숙소로 돌아갔다. 가는 길에 화덕 피자집이 있었는데 가격이 매우 저렴하길래 들어갔더니 막상 주문하고 보니 그리 저렴한 건 아니었다. 그래도 맛은 있었으니 깨끗이 비웠다. 그 사이 니싼에게 연락이 왔는데 8시에 보자고 해서 숙소 앞에서 기다렸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지난 시간에 나타난 니싼은 한 손에는 과일을 들고 뒤에는 자기 친구를 태우고 있었다. 연락할 때만 해도 내가 밥을 안 먹었다고 했던 상황이라 과일을 사 왔다고 한다. 고마운 친구. 그리고 같이 온 친구는 영어가 굉장히 유창해서 물어보니 호주에서 유학을 하고 있단다. 잠시 시간이 나서 들어왔다는 그 친구는 네팔이 지루하고 할게 아무것도 없다며 신나게 욕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호주에서 즐거운 생활을 하고 있나 보다. 그렇게 1시간 정도 얘기하고 우리는 헤어졌고 그렇게 그 날은 마무리됐다.


오늘도 아침 일찍 일어나 살짝 짐을 정리하고 밖으로 나섰다. 돈이 다 떨어져서 먼저 현금 인출기부 터가서 돈을 뽑고 카트만두로 돌아가는 버스표를 예약했다. 이제 정말로 인도로 넘어가는 최종 비자를 받기 위해 돌아간다. 700루피. 그리고 또다시 샌드위치를 사 먹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원래는 미얀마에서 산 핸드메이드 담배와 편지를 함께 보내려 했으나 포카라의 우체국 상태가 좋지 않다는 말을 듣고 카트만두에서 보내기로 보류했다. 그리고 다시 더 카페로 향했다. 그리고 4시간 동안 사진 정리 및 일기를 썼다. 그 사이 또 비가 쏟아졌다. 이번엔 우박과 함께. 근데 우박이 진짜 돌덩이 같아서 창문을 때리는데 깨지는 거 아닌가 걱정할 정도였다. 그냥 이 비를 뚫고 돌아가기엔 가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 싶은 정도였다. 결국 꼼짝없이 갇혔다. 엄마와 또 통화를 했는데 엄마는 내가 어딘지 말해도 어딘지 모른다며 내일 지도를 사러 간단다. 내가 아무리 핸드폰에서 지도 앱을 켜고 확인하면 된다고 해도 못하겠다고 한다. 지도 산다고 한지가 언젠지. 여행 시작할 때부터 산다고 했던 거 같은데, 내가 어딨는지 정말 궁금한 걸까? 의심이 된다 ㅋㅋ 한 시간이 지나자 비가 좀 잠잠해졌고 그동안 못 본 포카라 구경을 시작했다.


먼저 폐와 호수 쪽으로 걸어갔다.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골목과 풍경이 나왔다. 맨날 지나다니던 바로 옆길에 이런 길이 있었다니. 시간이 시간인 지라 노을이 지고 있있었고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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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앞 호수길과 공원에서는 많은 현지인과 관광객, 그리고 아이들이 각자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특히나 공원에서 외국인들과 현지 어린이들이 어울려 노는 모습이 눈에 담겼다. 내 눈은 한참이나 그 모습을 따라다녔다. 아마도 해외에서 봉사나 교육을 통해 잠시 온 외국 친구들인 것 같았다. 그리고 한쪽에 있는 큰 나무에 줄 2개에 묶인 고무 타이어에서 4명 정도가 서로 타겠다며 투닥거리고 있었다. 놀 거리라고는 그것 하나뿐인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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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그 지역 전체가 정전이 됐다. 아무것도 볼 수 없었기에 나는 그나마 비상 전력을 갖춘 큰 카페로 향했고, 그곳에서 차 한잔 마시며 두 시간 정도를 보내고 복구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날은 전기가 복구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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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늦잠을 자고 일어나 오늘도 포카라 구경을 위해 길을 나섰다. 밥이나 먼저 대충 때우자는 생각으로 둘러보는게 카페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 들어가 아점을 주문하고 음식이 나오길 기다렸다. 그때 한 직원이 다가오더니 한국에서 왔냐며 자기 친구가 나랑 똑 닮았다고 보여준다고 페이스 북에 접속했다. 그가 보여준 친구는 전혀 나랑 닮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그 핑계로 대화를 하려고 했던 것 같다.

일괄편집1_20170519_111818.jpg 직접 페인트칠 하며 인터리어하는 직원

카페에서 나와 항상 호수 건너에 보이던 산 꼭대기에 있는 사원과 그 주변의 관광지를 가기로 결심하고 길을 나섰다. 먼저 직원에게 물어 그 근처까지 가는 방법을 찾은 뒤 30분 정도를 걸어 정류장 같지 않은 정류장에서 지나가는 버스를 잡아탔다. 버스 기사에게 내 목적지를 말해줬다. 어디든 그랬든 아마 내가 내릴 곳이 다가오면 말해줄 거라 생각했다. 역시나 내가 내려야 할 곳 부근에 왔을 때 얘기해줬고 그곳에서 나는 다른 버스를 갈아탔다. 마침내 도착한 다비스 폴.

일괄편집1_20170519_130626.jpg 로컬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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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스 폴은 이곳에서 죽은 사람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앞에서 보고 있으면 그곳만 유일하게 주변과 다른 지형의 특성을 보이고 있다. 꼭 누가 일부러 구멍을 내놓은 것처럼. 생각보다 깊이 파인 곳으로 물이 흐른다. 그리고는 옆에 붙어있는 소소한 구경거리가 있는 곳으로 향하는데 한 외국인이 갑자기 다가와 사진을 찍자고 했다. 평소와 달리 너무 갑작스러워서 당황했고 얼떨결에 촬영까지 했다. 마치 내가 그 사람들의 가족인 양 5명이 넘는 가족 전체와 내가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분도 나를 사진 찍어주셨다.

일괄편집1_20170519_133901.jpg 이렇게.

생각보다 넓지 않아 금방 다 둘러봤고 시간이 남아 스투 파애까지 가기로 하고 다비스 폴을 빠져나왔다. 주변에서 버스를 한참 찾는데 아무도 방법을 모르고 자꾸 택시 기사만 나에게 다가와 가격 흥정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버스가 있고 지나가는 버스도 보이는데 없다고 하니 믿을 수가 없어 스투 파애 방향으로 무작정 걸었다.


그렇게 걷기를 30분째 지역 경계를 지키는 경찰이 있길래 물어보니 자기도 모른단다. 뭐 이런 무책임한 사람이 있는지. 30분만 걸으면 갈 수 있다는 말밖에 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저 산 꼭대기까지 30분 만에 걸어갈 수 있다는 건 말이 안됐다. 일단 더 걸었다. 스투 파애로 오르는 길이 시작되는 것 같은 길이 보였고 걸어가 볼까? 고민했지만 공사 차량이 왔다 갔다 하고 도저히 걸어갈 길은 아니라고 판단돼서 망설이고 있었다. 그런 나고 계시던 할아버지가 정자 아래 의자에서 나를 불러 앉으라고 하신다. 할아버지 옆에 앉았다. 그리고는 갑자기 사진 찍자고 손으로 카메라 손짓을 하셨다. 그래서 나는 당연히 할아버지가 핸드폰을 꺼내실 줄 알았더니 내 핸드폰을 가리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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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내가 저 위에 스투 파애를 가고 싶다고 하니 버스가 올 거라고 하셨다. 언제 오냐고 하니 그냥 기다리면 된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우리는 말없이 햇살이 비치는 정자 아래 의자에서 가만히 앉아있었다. 고요한 시골 풍경이었다. 그 사이 다른 할아버지가 또 오셨고 다 같이 또 사진을 찍었다. 아마 말동무가 필요하셨던 것 같다. 얼마 후, 할아버지는 내 어깨를 툭툭 치시더니 저거 타면 된다고 손짓하셨다. 그리고 나는 버스에 올라타 한참을 걸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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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내릴 때 버스 기사는 막차 시간을 알려주고 같은 장소에서 타면 된다고 알려주고 떠났다. 그리고 계단을 한참 따라 올라 스투 파애 앞에 섰다. 관리인이 어찌나 엄격한지 조금만 소리를 내도 조용하라고 경고했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방문자들을 감시했다.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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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괄편집1_IMG_0516.JPG 포카라 일대가 다 보이는 높은 곳에서

슬렁슬렁 그곳을 둘러보는데 저 멀리서 먹구름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아... 내려가야겠다 느꼈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내려오는 계단에서 저 멀리서 번쩍번쩍 번개가 치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버스가 다시 올 거라던 그 장소에 도착했을 때 비는 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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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피할 곳이 없어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더니 한 가게 주인이 자기 가게 의자에 앉아있으라고 손짓했다. 앉자마자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내가 비에 젖는 건 이제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포기하고 버스가 올 때까지 그곳에서 앉아있었다. 전기도 없고 와이파이도 없는 곳에서 1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내가 심심해 보였는지 가게 주인은 나에게 말을 걸었고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본인이 현대에서 일했었다며 두바이에서 일했던 일들을 얘기해줬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버스가 왔고 왔던 방식 그대로 버스를 타고 가서 다시 갈아타고 숙소에 들어갔다.


어제는 열심히 포카라에서 카트만두로 넘어왔다. 오늘은 오전에 일어나자마자 카메라를 고치러 출발했다. 주변에 알아보니 소니는 인터내셔널 워런티가 적용이 안되고 무엇보다 세계적으로 서비스가 엉망이란 얘기를 들었다. 일본 제품은 좋고 어딜 가나 서비스가 좋을 것이라 믿었는데, 가만 보면 삼성이 정말 어딜 가나 있고 좋은 것 같다. 그래도 우선 고쳐야 하니 카메라를 들고 출발했다. 수리점으로 가기 전에 먼저 미뤄왔던 가방을 만들기 위해 끈을 사러 갔다. 미리 알아뒀던 상점으로 가서 4미터 정도 끈을 샀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 짐을 놓고 수리점으로 출발했다. 가는 길에 배가 고파 현지 음식점에 들어가 네팔 국수를 주문했다. 어제도 먹어봤던 버펄로 고기가 들어간 국수였는데 생각보다 맛이 나쁘지 않고 좋았다. 먹고 나와서는 소니 공식 서비스 센터에 들렸다. 수리 비용에 대해 카드 결제도 된다는 말에 딱이다! 하고 접수를 하는데 어이없게도 방금 전에 수리공이 퇴근했단다. 아니 지금 아직 1시도 안됐는데? 퇴근을 해? 그랬더니 다른 사람을 불러오더니 그 사람 말로는 이 부품은 싱가포르에서 가져와야 한다며 말도 안 되는 금액을 불렀다. 너무 터무니없어서 내가 이 렌즈가 고장이 어니고 이 찌그러진 부분만 펴주면 된다고 했는데 렌즈는 보지도 않고 무조건 안되고 새 걸로 갈아야 한단다. 결국 센터를 나와 사설 수리점이 모여있다는 뉴로드로 갔다.


처음 몇 곳은 카드는 되는데 8000루피를 달라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가격은 아니었기에 다른 곳을 더 찾았다. 그렇게 한 7곳을 보니 얼추 합리적인 가격을 찾았다. 2500루피. 수리를 맡기고 기다리는데 왠지 불안해서 지켜보고 있었다. 이건 그냥 펴주기만 하면 된다, 뭘 교체하거나 고치는 게 아니다라고 분명 얘기했음에도 한참을 렌즈를 분해하고 두드리더니 2시간이 흐른 뒤에야 방법을 찾았다며 기다리란다. 그러면서 렌즈를 보여주는데 이미 렌즈가 너덜너덜하다. 하... 그래도 작동은 되니 다행이라 생각했다. 렌즈를 새로 사는 비용에 비해 훨씬 저렴하고 사진을 못 찍는 것 보다야 나니까 만족해야지. 수리가 끝난 카메라를 들고 부랴부랴 우체국으로 갔다. 우체국으로 가서 미리 썼던 편지와 짐을 보내기 위해 가격을 물어봤다. 굉장히 허름한 우체국 상태를 보아하니 카드는 당연히 안될 것 같았고 잘 배송이 될지조차 의문이었다. 결국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아침에 나왔는데 저녁에나 돼서 숙소로 향했다.


숙소로 가는 길에 여행자 거리를 지나는데 한 가게에 손님이 줄을 서서 기다리길래 보니 햄버거 가게였다. 마침 출출하기도 해서 하나 주문했다. 가격은 170 루피로 비쌌다. 문제는 왜 줄 서서 먹는지 알 수 없었다. 우리나라 학교 앞 피카추 돈가스 하나 들어있고 야채 조금 있고 끝이었다. 세상 후회스럽다. 그리곤 숙소로 들어왔다. 아침에 산 재료를 가지고 본격적으로 가방 만들기를 시작했다. 베트남에서 1 달러 주고산 냉장고 바지를 그냥 버리기 아까웠고 마침 가벼운 천 가방이 필요해서 만들자고 마음먹었다. 열심히 바느질을 해서 뒤집었는데 이런... 한 겹에만 바느질을 했어야 했는데 두 겹에 해버렸다. 그래서 뒤집을 수가 없다. 하는 수 없이 바느질 다 보이는 방향으로 계속해서 만들어 나갔다. 그렇게 세 시간쯤 지났을까? 어느 정도 쓸만한 가방이 만들어졌다. 부디 오래오래 쓸 수 있으면 좋겠다.

일괄편집1_20170601_103832.jpg 완성된 가방

오늘은 두 번째 인도 비자 센터 방문하는 날. 아침 일찍부터 길을 나섰다. 역시나 사방에 흩날리는 먼지들. 여기저기서 흙바닥에 물을 뿌리고 그 물은 고여 지나가는 차, 오토바이, 자전거에 의해 사방으로 물이 튀었다. 얼른 포장도로가 생기길 바라며 도착한 비자센터에는 역시나 사람들이 줄 서 기다리고 있었다. 대략 1시간쯤 기다려 문이 열리는 순간 줄은 무너지고 우르르 들어갔다. 지난번과 달리 오늘은 줄이 무너질걸 예상한 나는 미리 자리를 차지했고 대기 번호 4번을 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례가 왔고 여권을 건네주고 기다리는데 직원 하는 말이 "너 싱글 비자 나올 거야." 그래서 왜냐고 물으니 "몰라 위에서 그렇게 줬어." 당황스럽다. 더블로 신청하지 않았냐고 했더니 맞지만 그렇게 나왔단다. 일단 나와서 옆에 대행사에 갔다. 그랬더니 원래 자기네 맘이란다. 이유는 없다고. 하는 수 없이 돌아가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해서 다시 돌아가 물었다. 내가 인도를 다시 들어가야 하는데 그럼 어쩌냐 하니 다시 받으란다. 얼마 안 한다고. 화가 치밀어 오른다. 싱들이나 더블이나 가격이 똑같은네데 누군 싱글 누군 더블이라니!! 그것도 아무 기준도 없이? 기준이라도 있으면 말을 해주던가!! 더군다나 난 진짜로 더블이 필요한데. 인도에서 스리랑카로 넘어갔다가 다시 인도로 넘어와야 하는데!! 태도는 엉망이고 이유조차 없다니... 싸워봤자 내 손해이니 일단 나와 숙소로 향했다. 그리고 일전에 포카라 갈 때 표를 끊었던 곳에 다시 갔다. 인도 가는 버스를 알아보러. 나를 알아보고 반갑게 맞아줬고 이런저런 방법에 대해 얘기했다. 우선 알아보고 연락 준다고 하고 그리고 같이 우체국에 가게 됐다. 우체국에 가서 일반 택배 센터로 갔는데 시설이 너무 열악했다. 도무지 내 짐을 믿고 맡길 수가 없어 ems로 갔다. 근데 카드를 안 받는단다. 현금이 없어 하는 수 없이 나와 키쏘르 보고 볼 일 보고 가라고 했다. 그랬더니 키쏘르는 괜찮다며 더 같이 알아봐 주겠다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결국은 찾지 못했다. 그럼과 동시에 우리가 찾고 있는 버스도 알아봤다. 그는 자기 일처럼 열심히 도와줬다. 병원에 가야 하는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내가 가라고 했고 나는 다시 우체국으로 가 엽서를 보냈다. 그리고는 타멜 거리로 돌아와 이곳저곳 ems서비스를 찾았다. 그때 한 건물 골목 저 끝에 한 곳이 보여 들갔다. 젊어 보이는 2명이 있었고 싼 방법이 있냐며, 카드 되냐 물었더니 다 오케이란다. 가격도 우체국이랑 200루피 차이였다. 바로 진행했다. 맨날 그렇게 아껴도 이런데 돈 낭비가 더 심하다. 후.. 2만 6천 원. 어쨌든 보내고 다시 소나울리(인도) 가는 버스표를 열심히 찾았다. 어디는 1500, 어디는 2000 그러다 1200짜리를 찾았는데 흥정해서 1100까지 흥정하고 카드로 계산했다. 그리고 저녁 시간이 돼서 식당에 들어가 햄버거를 시켰다. 요즘 햄버거를 자주 먹는다. 빵이 3/4이고 패티 한 장 들었다. 빵이 어찌나 큰지 입에 안 들어가 꾸겨넣어 먹었다. 그래도 배는 찼으니 됐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바로 씻고 빨래를 했다. 그 빨래를 옥상에 널었다. 그리고 천둥번개가 쳤고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그저 안 젖었겠지 하며 무시하고 잠에 든다.


어제 3번 만에 드디어 최종 비자를 받았다. 그리고 오늘 인도로 떠난다. 오전 4시에 일어나 5시 30분까지 정류장 도착해야 했다. 한참을 구글 지도를 따라가는데 없는 길을 알려줘서 강변을 따라 없는 길을 만들어서 나갔다. 그래도 결국 도착한 정류장에서 표를 내밀었는데 아무도 이 표가 뭔지 알아보지 못했다. 당황했고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결국 주변에 보이는 경찰에게 다가가 보여주니 한 창구로 데려가 버스표로 바꿔줬다. 그리고는 친절하게 버스까지 찾아서 알려줬다. 그는 떠나면서 언제든 일이 생기면 경찰을 찾으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내가 맞이한 버스는 예상했던 것과 달리 굉장히 노후된 버스였다. 이번에도 낚인 것이다. 이미 선택권은 없으니 받아들이고 버스에 올라탔다. 그리고 어제 미리산 빵을 한입 베어 물었다. 퍽퍽하고 맛없는 빵이었다. 비주얼은 그럴싸했는데. 결국 목이 막혀서 음료 하나를 샀다. 그리고 출발.


악명 높은 인도 가는 길은 대단했다. 청룡 열차를 안전바 없이 타는 느낌이랄까? 그냥 내 자리에 앉아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버스의 바운스가 내 엉덩이를 좌석에 붙어있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어딘가를 붙들고 버텨야 했다. 그렇게 5시간쯤 달려 11시에 버스가 어딘가에서 멈췄다. 점심을 먹으라는 거겠지 하고 내려서 몇 시까지 오면 되냐고 물으니 4시란다. 읭? 4시? 지금 11시인데? 5시간 후에 오라고?? 갑작스러운 혼란에 4시에 도착한다는 말인가? 생각하고 그냥 근처에서 음료 하나 사 먹고 돌아다녔다. 그런데 12시가 되고 1시가 돼도 갈 생각이 없는 버스와 보이지 않는 버스 기사.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버스 기사를 찾아 도대체 언제 가냐고 물으니 4시란다. 왜냐고 물어보니 갈 수 있는 길이 4시에 열린단다. 아니 그럼 도대체 왜 새벽 6시에 출발한 거야... 여유롭게 늦게 출발해서 열리는 시간에 맞추면 될 것을... 에어컨 버스라고 해놓고 에어컨도 안 틀어주고 미치겠다. 길바닥에 앉아 이북을 읽고 있는데 도저히 안될 것 같아 근처 슈퍼 겸 음식점에 들어갔다. 음료 하나 시키고 더위라도 피하기 위해서 그리고 덤으로 와이파이까지 얻어 쓰려했다. 지쳐서 인지 점점 머리가 아파왔고 졸렸다. 결국 정말로 4시까지 난 그곳에서 기다려야 했고 딱 맞춰 버스가 출발했다.


다시 시작된 롤러코스터를 타고 달려가는데 저녁 9시쯤 갑자기 차를 바꿔 타란다. 이건 뭐 자주 있는 일이니까. 버스를 갈아타고 한 30분 정도 갔을까, 내리란다. 자기는 소나울리까지는 못 가고 3킬로 정도 가면 소나울리가 나온단다. 이 길 한복판에서. 싸울 힘도 없고 그냥 내려서 근처 호텔로 갔다. 국경이 지금까지 열려있기는 하니? 갈 수 있는 방법은 있니?라고 물으니 다행히 10시까지는 열려있고 버스를 타면 된다고 한다. 문제는 그곳까지 갈 차비가 없다. 우리가 타고 온 버스가 국경까지 원래 데려댜줘야했기에 남은 돈을 남기지 않았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답이 없어 그곳에서 숙박을 하고 내일 넘어갈까 고민을 했는데 그 사이 로컬 버스가 왔다. 하지만 역시 돈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사이 옆에서 있던 사람들이 100루피를 쥐어주며 자기들한테는 큰돈이 아니니까 이걸로 버스를 타라 고한다. 그리고 버스 기사에게 부탁해 어디서 내리는지까지 다 설명을 해준다. 정말 고마웠다. 이 사람들 아니었으면 예기치 못한 곳에서 큰 일을 당할 뻔했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국경에 도착했다.


내리자마자 한 남자가 붙었다. 소나울리가는 마지막 버스가 있다며 가잔다. 잘됐다 생각하고 같이 가는데 너무 피곤하고 아직 이미그레이션 일도 남아있는데 옆에서 자꾸 조잘조잘 거려서 다 끝나고 얘기하자고 했더니 그제야 좀 잠잠해졌다. 그렇게 네팔 이미그레이션을 통과하고 인도 이미그레이션에 들어갔다. 내가 당장 급하게 일 처리를 해야 하는데 직원이랑 조잘조잘.. 일 먼저 처리하라고 해버리고 기다리는데 직원이 저 사람 아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모르는 사람이고 버스 있다고 해서 같이 왔다고 했다. 그랬더니 조심하라고 팁이나 물건을 훔치려고 접근하는 사람이라고 해줬고 그 사람을 보내버렸다. 그리고는 최종 도장을 찍어주기 위해 허가가 필요하니 기다리라고 해서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그 사이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결혼 한지 12년 됐고 애가 2명 있고 자기 친구가 한국에서 지샥 시계를 사줬다고, 가만 보니 내가 찬 시계랑 비슷하다고. 그렇게 한참을 얘기했는데도 허가가 떨어지지 않았다. 본사에 전화가 연결이 안돼 자꾸 재다이얼만 하고 있었다. 결국 그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본사가 바쁜 거 같다며 내일 떠나기 전에 다시 오란다. 하는 수 없이 도장 없는 상태로 인도에 들어가 숙소를 잡았다. 결국 불법체류자인 샘이다. 이미그레이션에서 허가해준 불법체류자. 직원이 추천해준 호스텔에 들어가 결재하고 들어가는데 에어컨도 없고 시트는 더럽고... 하 인도가 정말 시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으로 그냥은 잘 수 없겠다는 생각에 네팔 트레킹을 위해 사뒀던 큰 우비를 꺼내 침대에 깔고 잠에 들었다.


그렇게 인도 첫날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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