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느끼는 그대로 여행

Nepal, Pokhara, Himalaya

by Moon Heehong

새벽 3시 45분. 알람이 울렸다. 푼힐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서는 날씨 확인이 먼저 필요했고 밖으로 나왔다. 어제 예상했던 것과 달리 비는 오지 않았고 생각보다 덜 추웠다. 하지만 문제는 빌(가이드)이 같이 가지 않기로 했다.(어제 다녀와서 길을 아니까 갔다 오라고 했다. 무책임한 녀석.) 더 문제는 같이 가려던 일행이 감기 때문에 안 간다고 한다. 그때부터 고민은 시작됐다. 혼자 1시간 동안 침대에 앉아 혼자 올라가야 하나? 다시 있을지 모를 기회니까. 고민 끝에 포기했다. 혼자는 너무 위험하니까. 사실 100% 일출을 볼 수 있다는 보장만 있으면 갔겠지만 구름이 많이 껴서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다시 잠이 들고 7시에 일어났다. 준비하고 정산하고 출발하려는데 계속 숙박비를 안 받는다. 아니 숙박비 안 냈다고. 자기네 기록에 안 냈다는 내용이 없단다. 그래.. 뭐 준다는데 싫다니 어쩌겠니. 공짜 숙박 고맙게 잘 썼어. 땡큐 ^^

오늘은 대부분이 내려가는 길이었다. 시작에 살짝 오르막이었는데 높이가 있는지라 구름 속을 지났다. 심지어 비구름이어서 머리가 젖고 옷이 젖었다. 날씨가 영 도와주지 않는다. 비구름 속을 한동안 지나면서 날씨가 좋아지길 간절히 바랬다. 풍경을 제대로 볼 수 없었으니까. 그런데 한편으론 이 분위기도 좋다고 느꼈다. 그리고 점점 부모님 생각이 났다. 두 시간을 정도를 생각한 것 같다. 나는 더 이상 후회하는 인생을 살고 싶지 않아 다 포기하고 무작정 여행을 시작했는데 여태껏 일하시는 부모님을 생각하니 참 마음이 아팠다. 이곳에 모시고 와서 함께 하고 싶었다. 이곳뿐만 아니라 내가 가본 곳과 갈 곳들 중에서 좋은 곳만 골라 꼭 함께 하리라. 이게 내가 일주를 하는 이유 중에 하나이기도 했다. 한번 사는 인생 돈만 생각하다 죽는 게 너무 억울했고, 내가 밟고 있는 지구라는 곳에서 고작 한국땅 한 곳이라는 이 작은 땅덩어리만 보고 죽는 게 허무했다. 특히나 우리 부모님. 꼭 많은 곳을 보여드리고 기억과 사진을 남겨드리고 싶었다. 내가 직접. 그때까지 건강하시길 바란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한참을 걷다 비구름 속에서 당나귀(?)를 탄 남자가 등장했다. 무슨 백마 탄 왕자 마냥 구름 속에서 신비하게 등장하더니 유유히 다시 사라졌다.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고 어지러웠다. 순간 아 고산병인가? 스위치 온. 바로 멈춰 심호흡을 했다. 조금 괜찮아졌다. 천만다행. 다시 발걸음을 옮겨 뻥뚤린 곳을 맞이했고 좋은 날씨를 만났다.

그곳 절벽에서는 양들이 풀을 뜯고 있었고 며칠 전 지나온 마을을 볼 수 있었다. 얼마 만에 햇빛인지 반가웠고 따뜻했다. 내려오는 길에 수많은 외국인, 엄청난 짐을 진 포터(상상 이상의 짐과 청바지를 입었다.), 등산하기 싫은 꼬마, 현지인, 당나귀, 말, 양, 닭 등등 그중 압권은 원숭이었다. 그렇게 생긴 원숭이는 티브이에서만 봤다. 흰수염 원숭이. 그리고 또 한참을 지나 급경사 내리막을 만났고 바로 급경사 오르막을 만났다. 항상 느끼지만 왜 내려가는 길을 만들고 꼭 다시 올라가게 하는지... 참... 그게 산의 매력 중 하나겠지만. 또다시 내려가는 길을 만나 내려가는데 동화 같은 집을 만났다. 그곳을 지나 더 꿈같은 집을 만났다. 신나서 카메라를 들었다. 집 앞에는 넓은 푸른 잔디, 옆에는 밭, 집을 둘러싼 절벽, 뻥뚤린 전망과 산맥.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는데 그곳이 우리가 1박 할 숙소란다. 올레!

힘들어서 짐 던지고 주저 앉은 빌

먼저 가격 확인부터 했다. 420 달란다. 나 어제 200에 핫 샤워, 와이파이까지 공짜로 썼어. 할인해줘. 알겠어. 300에 프리 와이파이 써. 근데 완전 뜨거운 물은 150이야(한국말로). 태양열은 공짜. 오케이 딜. 더 흥정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너무 만족했다. 그리고 짐을 풀고 샤워(뜨거운 물 잘 나옴) 하고 쉬는데 비가 쏟아진다. 너무 좋았다. 비를 좋아하는 나. 내 인생에 가장 운치 있는 장면이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빌(가이드), 일행과 함께 카드 게임을 했다. 훌라. 그는 모른다더니 연습게임에서 내가 졌다. 분명 빌은 이 게임을 알았던 거 같다. 분명히. 그리고는 빌이 마술을 보여줬고 일본식 카드 게임을 더 알려줬다. 내가 이겼다. 카드 게임을 끝내고 얘기를 하는데 빌이 한국어 공부 중이란다. 내년에 한국에서 일하고 싶다고. 한국에서 일하기 위해 매년 어마어마한 인구가 지원한단다. "응원할게 빌. 한국에서 보자."

한국 오는 시험 합격하면 한국에서 삼겹살 사주기로 했다. 아내가 있고 5살 아기가 있는 인도에서 태어나 네팔에서 가이드하는 빌. 돈을 벌기 위해 그는 3년간 떨어져 있어야 한다. 네팔 한 달 월급이 8000루피. 그는 가족을 위해 혼자 멀리 한국땅에서 일을 해야만 한다. 내 생에서 가장 맛있는 빌이 타 준 블랙티와 커피를 마시며 얘기하다 잠을 청한다.


아직 알람이 울리지 않았는데 누군가 날 깨운다. 아침 해를 보라고. 나는 무슨 소린가 하며 부스스하게 깼다. 그리고 밖을 나갓고 며칠 만에 처음으로 화창한 아침을 맞이했다. 마당의 잔디는 파릇파룻하고 앞의 산골짜기가 뻥하니 뚤려잇엇고 산 끝자락에서 햇빛이 눈부시게 빛나규 이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 설산이 보였다. 처음으로 보눈 깨꿋한 설산은 나를 멍하게 만들었다. 너를 4흘만에 보는구나. 비록 꼭대기 일부였지만 나는 그동안에 날씨때뮨에 우울하였던 마음이 싹 가셨다. 완벽한 장소에 완벽한 빛. 완벽한 설산이었다.

아름다운 내 첫 설산
귀여운 강아지
주인집 아기 옷

반드시 다시 오고 싶은 곳이 됐다. 그렇게 아침부터 열심히 사진을 찍고 출발했다. 가는 길 마저 너무 아름다웠다. 이번엔 가는 길에 양 떼를 만났다. 나와 같은 곳을 향해 가는 양 떼들과 한동안 같이 길을 걸었다. 마치 양치기처럼. 양 떼들은 중간중간 얘 뭐지? 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곤 했다. 한참을 걸어 중간에 한 쉼터에서 벼랑 끝에 나무가 있었는데 그곳을 빌이 올라가 앉았다. 그러고는 나보고 올라가라는데 나는 도저히 엄두가 않았다. 어지간하면 해보자 주의지만 이건 뭐 바로 바이바이니까.

나는 양치기
우리가 지나온 마을이 건너편에 보인다
나무 위엔 올라가지 못하고 그 아래 앉아서

그렇게 산 넘고 물 건너 점심쯤 도착한 촘룸. 그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같은 가격이면 피자와 파스타를 먹자 해서 시켰는데 너무 맛있었다. 하지만 짜긴 너무 짰다. 그래도 남기지 않고 뚝딱. 문제는 너무 과식해서 출발하자마자 거의 뻗었다. 심지어 날씨가 다시 흐려졌고 이내 비까지 내렸다. 처음엔 좀 참고 가려했으나 도무지 안될 것 같아 결국 판초우의를 꺼내 입었다. 그랬더니 공기가 안 통해서 엄청 습하고 꿉꿉했다. 거기에 물까지 다 떨어져고 목이 너무 말라 계곡물을 받아 사전에 준비한 알약을 넣고 30분 기다렸다. 그리고 벌컥벌컥. 배탈 따위는 걱정할 시간조차 없었다. 드디어 도착한 숙소는 상태가 영 아니었다. 다른 곳도 봤지만 고만고만했다. 400 달라는 걸 300으로 깎고 쉬는데 어째 영 주인의 태도가 맘에 안 든다. 너무 배가 불러 저녁을 스킵하려 했는데 주인이 오더니 반드시 주문을 해야 한단다. 아니면 방값을 올라겠다고. 화가 났다. 하지만 여기서 화낼 순 없지. 더 나이가 있는 직원에게 가서 묻자 아무 일 그냥 올라가 자란다. 젊은 직원에게 다시 묻자 나이 많은 직원이 젊은 직원에게 뭐라 말하더니 그냥 가란다. 하... 참아야지... 오늘은 피곤해서 일찍 잠에 청한다. 6시부터.


어김없이 아침부터 비가 쏟아졌다. 건조해서 인지 목이 갑갑해서 블랙티를 시켰다.(며칠 전 빌이 타 준 블랙티가 너무 맛있었다.) 근데 맛이 달랐다. 가는 길에 빌에게 물어보니 자기가 준건 현지 블랙티라서 네팔리티라고 해야 한단다. 젠장 빨리 좀 알려주지. 오늘은 우리 목적지에 거의 다다른 둘렐리까지 가는 날이다. 쉴레-밤부-히말라야-둘렐리(작은 곳은 빼고). 평소보다 많이 걸어야 했다. 역시 물을 받아 약을 넣고 출발. 출발하자마자 버펄로 3마리가 길을 막고 있다. 조심조심 옆으로 지나간다. 그리고는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오르락내리락 그러다가 갑자기 해가 쨍쟁해졌다. 평소와 달리 너무 센 빛 때문에 더웠다. 그래도 빛이 있으니 역시 경치는 좋구나.

중간에 지나간 히말라야

밤부에서 점심을 먹었다. 신라면과 치즈 마카로니. 너무나 맛있는 점심이었다. 다시 출발. 이제는 오로지 오르막길. 근데 이상하게 내가 높은 곳과 잘 맞는 건지 그다지 힘든 느낌이 없었다. 물론 오를 때는 힘들지만 그 느낌이라는 것이.

얼음 아래로 흐르는 물

그리고 둘레리를 바로 앞에 두고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비가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비를 맞으며 사진을 찍었다. 찍지 않을 수 없었다. 어제 본 것이 최고일 거라 느꼈는데 오늘 본 것이 또 최고가 됐다. 매일매일 최고가 바뀐다. 거대한 산으로 둘러싸이고 구름이 깔려있고, 사방에서 엄청난 소리를 내며 폭포가 떨어진다. 발아래는 눈인지 얼음인지 구별되지 않는 것이 깔려있고, 그 가운데 아주 조그마한 존재 내가 놓여있는 기분. 웅장한 자연 앞에 모레알 같은 존재를 느꼈다.

드디어 목적지 둘렐리

더 좋은 것은 그곳에 바로 숙소가 있다는 것. 지금도 엄청난 물소리가 들려온다. 숙소에 도착해서는 찬물로 샤워를 했다. 핫 샤워는 200을 달란다. 와이파이는 300. 안 쓴다. 200-300이면 땅에서 한 끼 밥값이다. 그리곤 다이닝 홀로 들어갔다. 많은 외국인들이 제각각 옹기종기 뭔가 하고 있다. 나도 일행과 빌이 있는 곳에 앉아 네팔리 티를 주문했다. 근데 맛이 또 달랐다. 물어보니 시나몬이 들어갔단다. 도대체 내가 먹은 그 티는 다시는 못 먹는 거니? 그리고 카드 게임을 했다. 내가 계속 이겨서 빌을 30대 이상 때렸다. 그리고 마지막 판에 내가 졌다. 고작 8대를 맞았는데 피멍이 들었다. 심지어 부었다. 비명을 지르며 맞았다. 내가 그렇게 비명을 지르는데 빌은 아주 신나게 웃으며 때렸다. 그곳에 모든 사람이 나를 봤고 도대체 무슨 게임이냐며 물었다. 내 손목 내일 쓸 수 있을까? 빌, 복수하겠다. 그리고 잘 때 쓰려고 챙겨둔 양말을 찾는데 없어졌다. 사라졌다. 없어질만한 곳이 없는데 그냥 사라졌다. 새 양말이었는데 사라졌다. 슬프다. 소중한 내양말... 안녕.


우리의 최종 목적지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도착하기 위해 새벽부터 출발했다. 가는 동안에 날씨가 너무 좋았다. 마지막 베이스캠프 직전까지는. 나는 평소보다 컨디션이 좋아 미친 듯이 직진했다. 일행은 힘이 들었는지 계속 뒤처졌고 빌은 일행을 챙기느라 뒤에서 따라왔다. 나는 줄기차게 앞으로 달렸다.

시원하게 내리는 물 줄기
산맥 사이로 보이는 설산
내가 온길을 돌아보다
빌은 사진찍기 싫었나보다

한참을 앞서가다가 ABC 직전에 한 쉼터에 올랐다. 나는 빌과 일행도 이길로 오는 줄 알고 꼭대기까지 계속 올랐다. 그러다가 아주 예쁜 꽃을 만났다. 이곳에서 이런 색을 띤 꽃을 보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갑자기 그 꽃에 매료돼서 한참을 꽃 사진을 찍었다.

열심히 꽃 사진을 찍고 있으니 멀리서 빌이 보였다. 그래서 한 쉼터까지 올라갔다. 그곳에서 한참을 기다리고 있는데 거의 다 와가던 빌이 손짓한다. 일행과 빌은 그곳으로 올라오지 않고 ABC로 직행한다는 뜻 같았고 나보고 그냥 쭉 가라고 손짓했다. 힘들게 이곳까지 올라왔는데 허무하게 그냥 가는 길이 있었다니. 하는 수 없이 다시 내려서 ABC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ABC 직전의 휴게소

ABC에 다가갈수록 날씨가 흐려졌다. 그리고 점점 더 눈과 비가 보이기 시작했다. 발이 푹푹 빠지는 눈길이 갑자기 체력을 훅 떨어뜨렸다. 한참을 헉헉거리며 올라가야 했다. 중간중간에는 길이 맞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였고 저 멀리 올라가는 사람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그냥 무작정 걷는 수밖에 없었다. 흐렸다 맑았다를 반복하면서 모자를 썼다 벗었다. 옷을 입었다 벗었다 반복했다. 끝까지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싫은 양 올라오지 못하게 하려고 방해하듯 날씨는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결국 나는 ABC에 도착했다.

중간 휴게소에 들렸을 때 나도 글을 남겼다
ABC 베이스 캠프 입구의 표지판
저 아래 중간에 내 사진과 네임 카드

드디어 도착한 ABC. 도착하자마자 주인에게 방을 물었더니 방이 없단다. 그러더니 우리를 한쪽 구석으로 안내하는데 별도로 떨어진 건물이었다. 나무판자로 만들어진 공간을 보여주더니 이곳은 비어있단다. 그리고 400을 달란다. 아니 좋은 방들이 떡하니 비어있는 게 보이는데 어이가 없었다. 심지어 가격도 같게 받았다. 그는 좋은 방은 단체 손님들에게 주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결국 나는 깎아달라고 말했고 주인은 깎아줬다. 그 허름한 공간에서 하루를 보내게 됐다. 짐을 정리하고 씻은 후 공용 공간으로 향했다.


그리고 점심 먹고 주변에 있는 책을 집어 들었다. 서른엔 뭐라도 되어 있을 줄 알았다. 제목이 딱 와 닿았다. 낼모레 서른인 내가 하는 고민의 일부일 테니까.

첫 챕터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슬퍼 이젠 꿈조차 꿀 수 없다는 게..." 깊이 박히는 말이다. 대학생 때까진 그래도 작은 꿈이라고 있었고 직장을 다니면서는 열정이 있었다. 2년 차가 되면서 꿈은 기억도 안 나고 열정은 사치가 됐다. 내가 그토록 재미없고 지루한 직업이라 여겼던 공무원, 연구원, 선생님이란 직업이 왜 모두가 원하는 직업인지 느꼈다. 그리고 서른이 다가오는 나이에 내가 가야 할 방향을 잃었다. 뭐라도 되어 있길 바랬는데. 사실 서른이 올 줄 몰랐겠지. 내가 생각했던 서른은 배바지를 입고 큰 통 정장 바지를 입은 모습의 아저씨였다. 적어도 난 아직 청바지를 입으니까. 무튼. 그래서 돌연 세계 여행을 선택한 것도 있다. 나름 열심히 살았고 열심히 미래를 그리며 살았는데 그 길이 내 길이 아니라는 걸 느끼니까. 내가 모르는 길을 찾아보고자. 내가 꿈꾸지 못했던 것을 꿈꿔보고자. 책을 좀 보다가 문득 이곳을 둘러보지 못했다는 걸 깨닫고 둘러보기 시작했다.


저 경사면에서 누가 내려오는 것을 보고 나도 그것을 오르기 시작했다. 근데 바로 안개구름이 몰려와 시야를 가려 내려와야 했다. 다시 책을 들었다. 한 문장이 갑자기 눈물을 핑 돌게 했다. "엄마는 젊었을 때 뭐 되고 싶었어요?" 한 번도 궁금해 한 적이 없다. 태어났을 때부터 그냥 엄마였으니까. 그래도 엄마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익히 알고 있다. 어느 날 대전 집에 가서 책장에 놓여있는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초등학생 시절 엄마와 놀이터 의자에 앉아 단둘이 찍은 사진이다. 날짜를 보니 엄마 나이 26. 물론 사진에 찍힌 날짜니 정확할지 모르겠지만 그 나이에 저학년의 아이가 있다니 참. 내 26에는 나하나 챙기기도 벅찼는데. 그때 그 사진을 보면서도 뭔가 한방 맞는 느낌이었는데 이 산꼭대기에서 또 한방 맞는 기분이다.


그렇게 종일 책을 보다가 정말로 주변을 둘러보러 나갔다.

베이스 캠프 뒤쪽으로 움푹 파인 공간
ABC 베이스 캠프의 전경

저녁에는 공용 공간에서 불닭볶음면 하나를 끓여서 나눠먹었다. 엄청 매운 음식이라고 빌에게 소개했는데 빌은 먹을 수 있다며 도전했다. 그리고 빌은 미치려고 했다. 주변에 사람들이 다 웃었다. 우리의 매운 음식을 그렇게 얕보면 안 되지 빌. 훗. 며칠 전 내 손목을 그렇게 만든 복수다. 그리고 빌과 함께 우리 방으로 가서 카드 게임을 했다. 빌하고 굉장히 많이 친해졌다. 그래서 원래라면 별도 가이드 공간에서 잠을 자야 했지만 우리 방에 남은 침대에서 빌과 함께 잤다. 밤늦게까지 게임을 하고 차를 마시고 놀았다. 소소한 행복함을 느꼈다. 쓰러질 것 같은 허름한 나무판자 방에서 셋이 앉아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카드 게임하기란.


그렇게 모두 잠이 들었다. 그리고 그 새벽 나는 별을 보기 위해 잠시 밖을 나갔다. 그리고 미친듯한 별들을 보고 말았다. 그리고 그 주변에서 눈들이 무너져 내리는 우광쾅하는 소리를 함께 들었다. 나는 정말 히말라야에 있는 것이었다.



해가 뜨기 전 새벽 5시에 일어나 일출을 보려고 기다렸다. 미리 카메라를 세팅해놓고 오들오들 떨면서 기다렸다. 하나둘씩 사람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내 뒤로는 어둠에 가려진 산들이 둘러쌓고 있었고 반대쪽으로는 뻥 뚫린 전경이 펼쳐져있었다. 그리고 조금씩 빛을 받더니 산이 모습을 또렸다게 드러내기 시작했다.

점점 빛을 받는 산
반대편 해가 떠오르기 직전의 모습
해가 조금씩 떠오르는 모습

아침 일출 모습은 경이로웠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모습이었다. 웅장하고 조용하고 고요하고 평화로운. 그동안의 힘들었던 것들을 모두 잊게 해줬다.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2시간이 넘게 그곳을 지키다가 아침을 먹고 8시 30분이 돼서 하산을 시작했다. 우리의 일정도 이제 거의 끝나갔다.

하산전 입간판에서 기념샷

내려오는 길에 눈얼음길 위를 따라가는데 눈이 무너지면서 발이 빠져버렸다. 순간 아차 싶었다. 근데 이미 빌은 저 아래 가고 있었다. 얼음이 깨지면 아래 물이 흐른다는 것을 알았기에 겁먹을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깊은 곳에 빠지지 않아 다치지 않고 혼자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열심히 내려오는데 어제 올라오면서는 보지 못했던 작은 웅덩이를 발견했다. 그 물에 비친 산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다시 사진을 담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한 중국인이 절대 자리를 비키지 않아 내가 정말로 찍고 싶은 장면은 끝내 담을 수 없었다. 그래도 만족했다. 그리고 조금 내려오는데 마치 자신의 모습을 감추기라도 하듯 다시 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마치 신비롭기 자신을 감춰 자신의 가치를 더 높이기 위해 일부러 가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항상 볼 수 있다면 그만큼 가치가 덜 할 테니까.

다시 발걸음을 옮겨 내려오는데 눈얼음으로 만들어져 있던 길이 무너져 내려 길이 없어졌다. 당황해서 모두 그곳에 멈춰있는데 빌이 거의 다 녹아 구멍이 보이는 그 위를 뛰어서 넘어가라는 것이다.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했는데 별달리 다른 길이 없었다. 결국 우리는 조심조심 넘다가 미친 듯 뛰어 그 길을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전속력을 다해 뛰어 내려왔다. 거의 달린다는 느낌으로 하산을 했다. 그러다가 다시 만난 오르락내리락 길에서 거의 죽을 뻔했다. 우리의 목표인 지노로 가는 길 표지판에 계단 670개의 계단이 있다고 표시돼있었다. 그럼 우리가 지나온 계단은 도대체 몇 개란 말인가. 미친 듯이 내려와서 지노 핫 스프링에 5시 30분에 도착했다. 그리고 거의 탈진했다. 따듯한 탕에 들어갈 생각에 바로 핫 스프링으로 향했다. 바로 옆인 줄 알았던 핫 스프링은 15분을 내려가야 한단다.... 그래도 왔으니 가야지. 그렇게 도착한 핫 스피링은 우리나라 노천탕 느낌이었고 우리밖에 없었다. 늦은 시간이었으니까. 참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 산속 계곡 한 복판에 탕이 있다니. 그것도 뜨거운 물이 나오는. 우리 셋은 그곳에서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다. 그리고 탕에 들어갔다. 여행하고 처음으로 뜨거운 탕에 들어왔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온몸이 녹는듯한 느낌. 그리고 좀 있다 한 외국인 커플이 왔다. 맥주와 담배를 물고 탕으로 들어왔다. 우리는 그리 오래 탕을 즐기지 못했다. 너무 피곤했던 탓인지 금방 지쳤다. 마음 같아선 더 즐기고 싶었지만. 다시 숙소로 향했다. 문제는 예상치 못했던 어둠. 후레시 하나 없었던 우리는 직감으로 발을 디뎌 올라야 했다. 그 와중에 같이 온 일행이 젖은 옷을 그대로 봉투에 넣어 엄청 무거웠다. 무거워 죽는 줄.. 왜 씻었니... 그렇게 나는 땀범벅이 돼서 숙소에 도착했고 바로 뻗었다.


트레킹 마지막 날. 아침 6시에 일어났다. 4시간만 걸어 내려가면 끝. 입맛이 없어서 아침은 초코티로 대신하고 출발했다. 어제 무리한 덕에 무릎이 아팠다. 그래도 별달리 큰 문제없이 내려가는데 일행이 앞서가다 다른 길로 가버렸다. 우리는 그를 기다리느라 1시간을 소비했고 우리보다 늦게 출발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추월당했다. 심지어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기 바로 직전 우리가 타야 하는 버스가 떠나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리고 두 번째 버스가 오길 기다리며 나는 카트만두의 비자 센터에 전화해 내 비자 버리지 말라고 부탁했다. (원래 돌아가야 하는 날보다 늦어졌기에 신청해뒀던 비자를 원래 날짜에 찾으러 갈 수 없었기 때문에) 두 번째 버스가 왔을 때 이미 만차였고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에 탔다. 빌은 버스 전창에 올라탔다. 분명 만차인데 버스는 사람들을 꾸역꾸역 태워 미치게 했다. 그렇게 3시간 좀 넘게 달려 도착했고 거기서 택시를 타고 돌아왔다. 버스에서 너무 힘들었다. 서서 오느라. 그리고 바로 숙소를 잡고 자려 했는데 씻고 뭐하니 잠이 안 들어서 저녁을 먹었다. 치킨. 그리고 돌아와서 씻고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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