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dia, Varanasi
새벽부터 일어나서 인도 이미그레이션을 향한다. 다섯 시에 오겠다고 말해놔서 인지 의자에 앉아 딱 기다렸다는 듯 반겨주고는 어제 11시 30분이나 돼서야 전화 와서 승인해줬다고 한탄한다. 그리고 바로 도장 쾅. 그렇게 1일 불법체류를 끝내고 근처 정류장으로 갔다.
원래대로라면 바라나시 가냐고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는데 물어봐주기는커녕 내가 붙잡고 물어봐야 했다. 마침 딱 출발하는 버스가 바라나시를 간다길래 탔다. 우리가 타려고 했던 버스가 맞는지 아닌지도 모른다. 우선 가격은 예산보다 싸니까 다행. 그렇게 다시 또 버스 여행이 시작됐다. 그나마 다행인 건 도로가 포장도로라는 거 불행은 에어컨이 없다는 거. 더 불행은 인도는 42도 가장 더운 달이라는 것. 최악은 승객이 정원 초과라는 것.
처음 갈 때는 너무 덥고 답답해서 약간 공포증이 왔다. 어차피 가야 되는 거 좋은 생각 하자고 나에게 최면을 걸었다. 그러자 어느 순간 좀 괜찮아졌다. 새벽 5시에 출발해 어느덧 12시가 넘었다. 생각해보니 한 끼도 안 먹고 물만 마셨다. 왜인지 배가 고프지 않았다. 물이 다 떨어져 얼음물을 샀는데 완전 생명수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또 차는 달렸고 점점 적응하며 주변 사람과 말을 섞어본다. 옆에 있는 여자 애한테 "어디 살아?" 뭐 이거저것 물어본다. 그리고 다른 아저씨와 또 말을 해본다. 그런데 그분은 영어를 잘 못 하신다. 서로 영어를 잘 못하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잘 통하지도 않는 말을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그리고 그분은 나에게 과자도 건네고 물도 주셨다. 왜일까? 그는 이상하리만큼 나에게 친절했다. 그리고 함께 사진도 찍었다.
또다시 한 정류장에서 쉬어간다. 그 사이 아저씨는 밖에 있던 사람에게 무언가 건네받아서 나를 준다. 어떤 토기에 담긴 음식이었다. 인도에 들어오기 전에 아무거나 받아먹지 말라는 소리를 너무 많이 들었지만 이 아저씨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나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주저 없이 먹었다. 그건 카레였다. 맛도 나쁘지 않았고 양도 그리 많지 않고 특히나 한 끼도 뭘 먹지 못했기 때문에 맛있게 먹었다. 다 먹고 이 쓰레기를 어떻게 하냐고 물으니 아저씨는 내 손에서 토기를 가져가서 창 밖으로 던졌다. 이들이 쓰레기를 처리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주변 사람들과 얘기하고 즐기다 보니 처음에 느꼈던 그 답답함과 공포는 어느덧 다 사라지고 시간도 금방 흘렀다. 그리고는 버스 차장과 얘기했다. 그는 자기 옆에 앉으라 했고 갔더니 뭔가 보여준다. 그리고 그가 하는 말 "러닝 헤드". 머리가 빙빙 돈다는 표현 같다. 결국 마약이라는 뜻이겠지? 그 사이 또 버스는 어느 정류장에 멈췄고 그 차장은 나에게 하러 가자고 나오라고 했다. 그때 아까 그 아저씨가 손짓으로 하지 말라는 표시를 했다. 물론 나는 하지 않았다. 그 차장은 어디론가 사라지더니 돌아와서는 나에게 왜 안 왔냐며 꿍시렁 꿍시렁 거렸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1박 2일 만에 바라나시에 도착했다. 이상한 건 우리 최종 목적지까지 버스가 데려다주긴 했지만 돈을 더 받았다. 원래 이 버스가 우리가 원하는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려면 돈을 더 받는다나? 딱 봐도 말이 안됐지만 주고 말았다. 도착해서는 릭샤라는 인력거를 타고 숙소 근처로 향했다. 상당히 나이가 있으신 분이었는데 나를 포함해서 내 짐까지 정말로 자전거로 하실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그분이 가격을 제일 저렴하게 말씀하셔서 그분 릭샤에 올라탔다. 그런데 길이 공사 중이라며 갑자기 내려야 한단다. 눈으로 봐도 뭔가 공사 중인듯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약속했던 돈을 주고 걸어가는데 다른 인력거들은 그 안을 잘 다니고 있었다. 한 마디로 낚였다. 먼저 생각보다 늦은 시간에 도착해 숙소보다 심카드 개통이 급했다. 부랴부랴 심을 개통할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녔지만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같이 온 일행이 지칠 대로 지쳐 숙소를 먼저 잡자고 해서 하는 수 없이 숙소를 찾으러 골목길로 들어갔다. 길이 미로같이 복잡해서 한참을 숙소가 모여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미리 들었던 숙소에 금액을 체크하는데 알고 있었던 금액과 천차만별이라 다른 곳에 가격을 확인하고 마침내 숙소를 잡고 짐을 풀었다. 그리고는 곧장 유심 카드를 신청하러 나갔다. 골목골목에 한국 말로 글들이 써져있었다. 그만큼 한국인들이 이곳 여행을 많이 하는 것 같다. 평소에는 심카드를 사지 않지만 와이파이 보급이 잘 안된 인도에서는 심카드가 있는 것이 안전하다고 판단했다. 한국에선 한 달에 1Gb도 안 쓰던 내가 매일 1Gb씩 주는 요금제를 선택했다. 그리고는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배도 않고픈데 음식을 억지로 먹었다. 그리고 숙소로 복귀했다. 너무 더운 방, 에어컨은 없다. 이곳에서 어찌 잘 수 있을지.. 결국 새벽에 몇 번을 깨고 잠이 들었다. 첫날 너무 힘들고 인도가 어떤지 느낄 여유조차 없었다. 그저 예상보다는 깨끗했고 베트남만큼 경적이 심하게 울렸다.
잠을 잤다고 해야 맞을까? 땀으로 샤워를 했다고 해야 맞을까? 결국 그렇게 아침을 맞이했다. 일어나서 씻고 12시까지 만나기로 했던 분들을 기다렸다. 한분은 며칠 전부터 이미 연락해서 바라나시에서 만나기로 했었고 다른 한분은 아프리카를 알아보다 알게 되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두 분이 룸쉐어를 같이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참 세상 이럴 땐 세상 좁다.
만나자마자 우리는 재선이네 식당에 가서 먼저 밥을 먹었다. 라볶이. 당연히 떡과 라면일 줄 알았는데 정말 라면만 볶아 나왔다. 인도식 라볶이 인가 보오. 아무튼 그렇게 먹으며 이런저런 일정 얘기를 했다. 그리고는 바로 팥빙수를 먹으러 갔다. 이번에는 철수네. 아마 인도 여행을 한 분이거나 계획 중인 사람이 있다면 철수네는 무조건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이곳은 현지인들이 한국말을 매우 잘하고 한국 이름도 가지고 있으며 한국 음식도 많고 심지어 김치를 직점 담가 자랑하기도 한다. 참 아이러니한 곳이다. 어떤 분에 의하면 바라나시는 인도의 축소판이라고, 다른 곳은 못가도 바라나시는 꼭 가야 하는 곳이라고 한다. 글쎄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철수네 들어가자 신세계가 열렸다. 작은 골방에 에어컨이 빵빵했다. 처음 맞이하는 에어컨이었다. 이미 한국분 몇 분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빙수 하나를 시키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에어컨이 나갔다. 행복도 잠시... 그리고 빙수가 나왔는데 철수가 팥이 상해서 팥을 빼고 과일을 더 넣었단다. 응??? 팥 없는 빙수라고? 앙코 없는 붕어빵? 아무튼 시원한 얼음을 먹었으니 일단 만족했다. 먹느라 정신 팔려 사진을 남길 생각도 잊었다. 그렇게 한분은 떠날 시간이 돼서 가시고 남은 한분과 나는 ATM을 향했다. 바라나시의 ATM은 고장이거나, 잔고가 없거나 둘 중 하나여서 거의 첫 시도에 뽑을 수 있는 경우가 드물다고 하는데 나는 가자마자 한 번에 돈을 뽑을 수 있었다. 러키. 그리고는 너무 더워서 6시에 만나기로 하고 숙소로 들어왔다. 그런데 나는 좀 걸어보고 싶은 생각에 나가서 무작정 길을 나섰다.
사실 사람들이 바라나시 하면 멍 때리기 좋고 뭔가 감동(?)이 오는 곳이라 했는데 아직까지 나에겐 아무런 느낌이 없다. 그래서 돌아다니고자 했다. 그렇게 골목골목을 지나 (엄청 미로다) 큰길로 나와 길을 걷는데 한복판에 사원이 있어 잠시 구경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했기에 벗고 첫 발을 내딛는 순간 내 발은 익는 줄 알았다. 온종일 뜨거운 태양에 달궈진 그 바닥을 맨발로 딛어야 한다니... 무튼 이전 사원들과는 또 다른 인도만에 양식이 있는 사원이었다. 그리고 나와서 또 걸어가다 골든 템플이라는 곳이 있다 하여 그곳으로 향했다. 좁은 시장을 지나 도착한 그곳엔 경찰이 있었고 돈 말고는 아무것도 통과되는 것이 없다며 옆에 짐을 보관하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절대 짐을 보관하고 싶지 않았다. 너무도 허름한 그 구조물에 내 짐을 보관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들어가지 못하고 그냥 와야만 했다. 사실 만나기로 한 시간도 거의 다 돼서 돌아와야만 했다.
그렇게 다시 만난 우리는 뿌찌를 보러 갠지스 강으로 향했다. 드디어 보는 갠지스강. 그곳에 모인 많은 사람들. 뿌찌는 한 의식 정도로 보면 된다. 7시부터 시작하며 갠지스 강의 물과 불로 의식을 치른다. 굉장히 많은 인파와 관광객 그리고 소 개 등이 모인다. 사람들 사이사이 함께 자리한 소는 참, 우리나라 소와 다르다. 그렇게 보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분이 오다니 축북 기도를 해주겠다며 다짜고짜 주문을 외운다. 그리고는 기부 좀 하라고 한다. 돈은 무슨 돈이야! 무시했다. 그러고 뿌찌가 끝났다. 덕분에 제대로 보지 못했다. 사실 큰 감흥도 없긴 했다. 끝나고 나서 오히려 사람들이 떠난 그 자리 위 고요함과 갠지스 강이 나에겐 더 좋았다. 뭐랄까. 우리나라 한강도 굉장히 좋아하지만 한강에서 느낄 수 없는 고즈넉함이 있다고 할까(?) 괜히 생각에 잠기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시장으로 나가 망고 주스와 수박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라씨를 먹었다. 망고 라씨는 시원했고 달았다. 도무지 밥은 땡기지 않고 그저 물과 시원한 라씨 정도가 계속 먹고 싶다. 마지막으로 심이 개통될 시간이라 안테나가 들어왔고 바로 전화를 걸었다. 안내원이 인도식 영어를 하는데 도무지 못 알아듣겠고 내 정보를 확인하는 거 같아 다 말해줬더니 완료됐단다. 다시 한번 문제없냐 물으니 없단다. 그래 이제 사용되나 보다 하는데 먹통이었다. 하... 그래서 돌아오는 길 골목 앞에 있던 가게에 물으니 모르겠다며 내일 구매한 곳으로 가보란다. 어느 것 하나 바로 잘 되는 게 없구나. 뒤돌아 바라본 곳엔 나의 숙소가 있었고 들어가기 싫었다. 너무 더웠기에. 이 밤을 또 어떻게 넘기나... 방에 들어가서 바로 샤워하려고 물을 트는데 뜨거운 물이 촤악 쏟아졌다. 내가 뜨거운 물을 틀었던가? 뜨거운 물이 따로 있지도 않은 이곳에선 항상 따듯한 물 샤워다. 자연이 물을 데워놓기 때문에. 오늘은 한번 잠에 들어볼까.
일출 보트를 타기 위해 일찍 일어났다. 새벽 4시쯤. 정신없는 상태로 준비해 나갔는데 뭐지? 선재가 바람이 많이 불어서 오늘은 불가능하단다. 옆에 가보니 철수는 늦잠을 자서 시간에 못 나왔단다. 하는 수 없이 내일 다시 하기로 했다.
일어나긴 했고 할 건 없어서 하는 수 없이 갠지스강을 따라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많이 이른 시간이라 조금은 한적했다. 대신 날씨는 시원해서 전날 밤에 끔찍한 그 더위는 식힐 수 있어 좋았다. 바람을 맞으며 계속 걸었다. 화형이 진행된다는 그곳까지 갈 생각이었다. 가는 길에 해가 조금씩 뜰 기미가 보였다. 간혹 강가에 앉아 수양을 하는 사람, 빨래를 하는 사람, 기도를 드리는 사람, 운동을 하는 사람을 볼 수 있었다.
그곳을 점 지나가자 메인 가트에서는 갠지스 강물에 씻는 사람들이 있었다. 와... 내가 알기론 이 물에는 동물 배변부터, 시체, 쓰레기 등이 다 떠다닌다고 알고 있는데 어떻게 이곳에서 수영하고 씻고 할 수가 있지? 간혹 외국인들이 한 번뿐인 경험을 위해 들어간다고는 들었지만... 놀라웠다. 하지만 이 사람들에게 갠지스강에 의미가 어떤 것인지 들었기에 머리로는 이해하려고 했다.
생각보다 한참을 걸어서 드디어 장례식이 진행되는 곳 근처까지 갔다. 이곳은 가까이에서는 사진을 찍는 게 예의가 아니라 보통 멀리서 사진을 찍곤 한다. 인도에 많은 사람들이 죽을 때가 되면 이곳으로 미리 와서 시간을 보내다가 죽는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에도 이곳으로 보내져서 장례를 치르고 강에 버려진다고 한다. 버려진다는 표현이 좀 다른 의미이지만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장례식장 주변에는 많은 종류에 나무가 있는데 여기서 부자와 가난한 사람에 차이가 나타난다. 부자는 좋은 나무를 그렇지 못한 사람은 일반 나무를 사용한다고 한다. 인도에서도 자본이 흐른다.
끝까지 갔다가 다시 원래 장소로 돌아왔다. 그곳 계단에 앉아 갠지스 강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짜이를 줬다. 내 인생 첫 짜이다. 사람들에 의하면 짜이도 한번 맛보면 빠져나올 수 없다고 하는데 내 짜이의 첫 느낌은 '아 더운데 이 뜨거운걸 왜 또 먹어?"였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왔다.
어제 문제가 됐던 심카드를 해결하기 위해 대리점으로 가려고 9시쯤 나왔는데 나오자마자 비가 쏟아진다. 다시 숙소로 들어가 비가 그치길 기다리며 책을 읽는다. 요즘은 '뇌'를 읽는다. 1시간쯤 있자 비가 누그러 들어 대리점으로 갔는데 문을 닫았다. 하는 수 없이 돌아오는데 길에 어제 만났던 분(리안)을 만나 뭐하냐 그랬더니 라시를 먹으러 간다길래 따라갔다. 가게 주인에게 전화를 빌려 대리점 직원에게 전화를 거는데 비가 와서 안 터진다. 몇 번을 그렇게 전화를 했더니 나중엔 성질을 내면서 전화를 끊어버린다. 참 나원... 그럼 지네들이 제대로 해주던가. 그리고 그곳에서 한국인 부부를 만난다. (이때는 다시 만날 줄 몰랐다.) 이런저런 얘기하다 부부는 먼저 가고 우리는 팔찌를 만들러 영수네로 갔다.
팔찌 하나 만드는데 200루피였다. 이런 곳에서 이걸 하게 될 줄이야 상상도 못 하였다. 1시간 30분 동안 쭈그려 앉아 열심히 팔찌를 만들었다. 뭐 하나 시작하면 또 엄청 집중하는 스타일이라 사진 하나 남길 생각도 못했다. 내가 만든 팔찌는 역시 영수가 만든 것보다 못했다. 하나를 다 만들고 리안은 또 하나를 만든다고 해서 그 사이 나는 다시 대리점에 갔다. 다행히 문이 열려있어 개통에 성공했다. 그렇게 아무도 해결 못하던 문제를 1초 만에 해결했다. 하... 화가 난다. 아무튼 그렇게 해결하고 다시 돌아가서 한 끼도 안 먹은 나와 일행은 선재네로 향한다. 그곳에 아까 그 부부와 여러 한국인이 있었다. 또다시 라볶이를 먹고 한참 얘기를 하다가 저녁 일몰 보트를 타러 나섰다. 리안이는 오늘 떠나야 되는 일정 때문에 여기서 헤어졌다.
바라나시에 건물이 생긴 이유는 바라나시가 '두 신'이 모이는 신성한 곳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죽고 시신을 태워야 천국을 간다고 믿는다. 그래서 미리 이곳으로 와 머물기 위해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왕들이 지었다. 그들은 돈이 많으니까. 때문에 모든 가트는 왕의 이름으로 돼있다. 처음에는 바루나 아씨라는 이름이었지만 지금은 바라나시로 변경됐다고 한다. 철수는 아주 자세하게 설명해줬다. 아 그리고 갠지스 강에는 뱀에 물린 시체, 임신한 여자, 14살 이하, 신도, 동물은 수장을 한다고 한다. 강 건너에서 보는 갠지스 강은 그동안 가트에 앉아 바라보던 강가(갠지스강)와는 느낌이 달랐다. 시점이 완전히 바뀌어 그동안 내가 있던 곳을 바라보니 느낌... 어느덧 해가 넘어갈 때가 되고 주황색 빛의 해가 고대 양식의 건물 뒤로 넘어간다. 아름다운 광경이다. 그렇게 화장터까지 둘러봤다.
보트 투어를 마치고 같이 간 사람들끼리 치킨을 먹으러 다시 철수네로 향했다. 그런데 그곳에 리안이 가 다시 왔다. 기타가 연착되어 7시간 뒤로 한참 미뤄졌단다. 인도의 대중교통 연착은 흔하디 흔한 일이다. 다들 맥주가 고팠던지 맥주를 시켰고 부부네가 2000루피를 지원해서 각자 2~3캔씩 먹을 수 있었다. 이런 건 정말 러키다. 그렇게 10시까지 가야 하는 우리는 모두 11시가 넘어서 들어갔다. 숙소에 문이 잠겨 주인을 깨워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오늘은 일출 보트 타러 또 새벽에 일어났다. 오늘은 부디 배가 뜰 수 있길 바란다. 요즘 이상하리 만큼 갑자기 시원해져서 잠도 그럭저럭 잔다. 현지 사람들도 갑자기 시원해진 날씨에 당황스러워하는 눈치다. 천만다행이다. 그렇게 선재네서 기다리는데 또 선재가 나오지 않는다. 선재랑은 인연이 없나 보다. 결국 그 옆에 있던 철수에게 다가가 갈 수 있냐 물으니 바로 오케이 해서 배에 올라탔다. 그리고 부부네도 참석했다. 그렇게 어제 멤버 비슷하게 일출 보트는 출발했다. 구름이 약간 껴있어서 처음에는 형태만 살짝 보이던 태양이 어느덧 붉은색을 뿜으며 자태를 뽐냈다. 코스는 어제와 동일했다.
그사이 배애서 짜이 한잔을 마셨다. 짜이는 참 묘하다. 막 당기는 것도 아닌데 있으면 먹게 된다. 나도 점점 사람들처럼 자연스럽게 짜이에 동화된 걸까? 아침의 바라나시는 저녁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아침일찍부터 나와 강에 들어가 씻는 사람들. 빨래하는 사람들 그리고 수영하는 사람들. 알고 보니 요즘 방학이라 가트에 아이들이 많은 것이었다. 보트 타는 내내 철수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철수는 참 착하고 현명하다. 형편이 좋지는 않아 아이들에게 똑같이 선물을 사줄 수 없지만 대신 똑같이 좋은 학교에 보내주려 한단다. 서로 싸우지 않고 스스로 좋은 일을 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거라고. 그리고 여기서 하나 더, 그래야 자기한테 돈을 바라지 않는다고. 언제나 밝은 미소와 솔직함 그는 참 현명하고 좋은 아빠다.
배에서 내리고 다음으로는 예정대로 바라나시 왕이 산다는 왕궁에 가기 위해 아씨가트로 걸어갔다. 한 30분쯤 걸었을까? 마땅한 음식점이 없어 한참을 찾아 들어간 식당에 에어컨도 있고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음식을 주문했는데 음식이 나오는데 한 세월이 걸렸다. 결국 우리는 밥 먹는데 2시간이 넘게 걸리고 말았다.(어제 치킨도 사실 1시간 걸림). 심지어 내 메뉴인 샌드위치는 사이드로 후렌치 프라이나 샐러드가 나오는 것인데 묻지도 않고 샐러드를 줬다. 젠장. 당연히 후렌치 프라이 아닌가요?
그리고 나와서는 모터 릭샤를 섭외했다. 처음엔 왕복 250을 불렀다. 하지만 우린 원웨이다!라고 딜을 하다 결국 100으로 협상하고 출발했다. 가는 길은 매우 험난했다. 비포장 도로의 나무다리를 수많은 오토바이와 모터 릭샤 그리고 도보로 건넜다. 먼지는 먼지대로 먹고 쿵쾅쿵쾅 펌핑에 엉덩이가 나갈 것 같았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왕궁, 안으로 들어가서 150루피를 주고 표를 샀다. 그곳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있다. 처음에 들어가자마자 촬영 금지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걸 사진으로 보면 오고 싶은 사람이 다 사라질 것이다. 실제로 볼거리가 너무 없었고 보존 수준도 너무 낮았다. 그냥 방치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박물관인데 이게 뭔지;; 덥긴 엄청 덥고 에어컨도 없다. 그나마 있는 선풍기들은 관리자들이 다 차지했다. 유리엔 먼지가 가득해서 안에 뭐가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보는 거 삼십 분 더워서 쉰 것 30 분해서 우리는 1시간 정도 보고 나왔다.
원래는 대학교까지 가야 했으니 너무 덥고 휴관일이라 바로 숙소 근처 선재네로 이동하기로 했다. 온 길보다 좀 더 멀었기에 150루피를 주고 돌아왔다. 결국 출발 전에 왕복 250을 부르던 기사들이 맞았다.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왕복으로 움직이게 될 거란 것을. 선재네서 부부네가 닭볶음탕 2마리를 시켜 우리와 함께 먹었다. 부부님들 덕에 맛있게 배불리 잘 먹었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빵을 시켰다가 닭볶음탕이 나온 후 내 것이 나왔는데 너무 배불러서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그래도 아까워 한입 물었는데 아뿔싸? 주문 오류였다. 치즈를 시켰는데 토마토가 나왔다. 그래서 안 먹고 내버려두었더니 원래대로 다시 해서 갔다 줬다. 하나는 부부네가 먹고 하난 내가 먹었다. 한 3시간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라씨를 먹으러 바나라씨에 갔다. 내가 가보고 싶었던 그 라씨 집이었다. 테이블이 있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처음으로 플래인을 시켰는데 너무 달고 요구르트 같았다. 그리고 너무 묽었다. 이전에 먹었던 그 라씨집이 내 입맞에는 더 맞았다. 종일 먹고 얘기하고 자고 가 다인 곳이었다 이곳은. 이곳은 그런 곳이다. 그렇게 6시쯤 돼서 부부네가 떠나기 전 가트에서 강가를 본다고 나갔도 모두가 이동했다. 바람은 선선히 불고 강가는 고요했다. 개들 소리만 빼고. 간간히 사진 찍자고 요청이 오고 또 열심히 찍어줬다. 멍하니 지나가는 배, 떨어 지닌 해, 외국인을 보며 앉아 있었다. 또 부부네가 쏜 짜이도 한잔했다. 그리고 부부네가 가기 전 마지막 식사를 하기 위해 다시 선재네로 갔다. 그동안 사주신 음식이 많아 우리도 보답을 좀 해드리고자 부부네 와이프께서 흘리는 말로 라볶이 맛이 궁금하다는 걸 기억하고 저녁으로 라볶이를 사드리기로 했다. 그런데 부부는 자기네가 술도 먹어 많이 나왔다며 극구 사양해서 결국 본인들이 지불하셨다. 이 부부네 역시 기차가 7시간 연착됐다. 또 한참을 얘기하다 순간 소파에 내 한쪽 팔토시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뭐지? 잃어버린지도 몰랐던 내 토시였다. 그런데 한쪽만 있다. 계속 찾아도 나오지 않는 내 팔토시. 그동안 많은 나라를 함께 했는데 잃어버리다니 포기했다. 그리고 저녁 10시쯤 우리는 선재네를 나왔다. 나오자마자 바로 앞에 흰 물건이 떨어져 있었다. 그냥 쓰레가 같아 보였다. 평소였음 지나쳤을 것을 유난히 관심이 가서 확인하니 내 남은 한쪽 팔토시였다. 개가 가게에 들어와 물고 나간 모양이었다. 이미 더러워져있었고 구멍까지 나있었다. 하지만 팔토시가 필요했기에 열심히 빤다. 열심히. 그리고 미리 주문해서 가져온 철수네 치킨과 맥주를 또 마신다.
뉴델리로 가는 기차표를 사기 위해 일찍부터 준비해서 길을 나섰다. 기차표를 살 수 있는 방법이 워낙 다양하고 복잡해서 잘 선택해야 한다. 우선 가장 저렴하고 확실한 방법인 직접 가서 표 끊기에 도전해본다. 사람들을 모아 모터 릭샤를 타고 바라나시 정션 역으로 향한다. 가는 길에 수많은 삐끼들이 자기네 릭샤를 타라고 달려든다. 가는 길에 협상을 해서 100에 타기로 했다. 우리가 협상했던 사람이 주인인 줄 알았는데 그는 그냥 중개인였다. 우리를 릭샤 주인에게 넘겨주고는 사라졌다. 목적지에 도착해 내리는데 갑자기 우리가 몇 명인지 보더니 200씩 내란다. 장난하세요 ^^?. 우리는 100을 주고 나와버렸다. 그가 쫒아왔다. 하지만 우리는 무시하고 티켓 뷰스로 향했다.
바라나시 역에는 외국인을 위한 창구가 있다고 들어서 그 창구를 찾았다. 내가 설명 들었던 건 본건물 왼쪽에 다른 건물이라 했는데 사람들이 계속 다른 쪽으로 갔다. 결국 그들을 내가 데리고 창구로 향했다. 우리 앞엔 두 명이 대기하고 있었고 조금 기다리니 우리 차례가 됐다. 뉴델리행이 있냐고 물으니 4자리 있단다. 완전 러키. 다른 곳으로 향하는 1명을 제외하고 우리는 한 칸을 모조리 차지했다. 1칸에 총 3개의 침대로 구성돼있다. 이때 식겁한 게 여권을 안 가져왔다는 것. 원래는 가져와야 하지만 역무원이 일행 여권으로 대신해줬다. 표 구입을 마치고 밥을 먹으러 숙소 근처로 다시 향했다. 샨티 레스토랑을 가려했는데 휴가를 갔는지 계속 문이 닫혀 있다. 결국 근처 스파이시 레스토랑에 갔다. 그곳에서 밥을 먹고 다른 사람들은 라씨를 먹으러 가고 나는 신발을 빨려고 숙소로 향했다. 어제 아씨가트에 갈 때 뭐가 묻었었다. 신발을 봉투에 넣고 세재를 넣고 미친 듯이 흔들고 주물럭 거렸다. 그리고 창문에 걸어놨다. 여긴 너무 더워서 옷은 2시간이면 마르고 신발도 몇 시간만에 다 마른다. 그리고 일행이 있는 팔찌 만드는 곳으로 향했다. 만드는 법을 기억해두기 위해 동영상 촬영으로 기록을 남겼다. 그 좁은 공간에 10명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 선풍기 하나에 열을 식히고 있으니 정신도 없고 더 더웠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졸려서 그 자리에서 누워서 잠을 잤다. 돈을 많이 벌어서 좋았는지 영수가 짜이를 쐈다. 한잔을 들이켜고 마무리했다. 그렇게 그곳에 한시부터 세시 반까지 있었다. 할 게 없던 우리는 고민을 하던 중 철수가 팥을 사 왔다는 것을 기억하고 빙수를 먹으러 갔다. 한껏 기대한 빙수는 생각보다 맛이 그냥 그랬다. 팥맛이 많이 안 나고 잘 안 풀어져서 그냥 그랬다. 그래도 시원한 맛으로 먹었다. 그곳에서 또 한 두세 시간 먹고 누워서 잠들고 했다. 진짜 먹고 자고 가 다인 곳이다. 저녁에는 모나리자 레스토렝에 갔다. 닭볶음탕이 유명하다는 말을 듣고 주문했는데 양이 어마어마하다. 그리고 왼 전 매웠다. 닭은 부드러웠다. 각자 주문한 음식을 멀리하고 닭볶음탕으로 달려들었다. 감자를 으께 국물에 비벼 먹기까지 했다.
우리가 너무 맛있게 먹으니까 좋으셨는지 주인 할아버지는 디저트로 작은 초콜릿 빵 2개를 주셨다. 세상 찐한 초콜릿이었다. 그리고는 하루의 마무리 저녁 시간이 돼서는 강가로 향했다. 강가에서는 역시나 멍~~ 오늘도 역시 누군가 다가와 사진을 찍자고 했다. 흔쾌히 하지만 프레시 뱅!! 플래시는 좀... 그곳에서 에쿠스 홀스 형님을 만나 우리의 저녁 식사 이야기를 전파했더니 내일 먹으러 가잔다. 우리는 흔쾌히 오케이하고 내일 만나기로 했다. 그리고 그날의 마무리는 라씨였다. 스페셜 라시. 먹고 숙소로 돌아가는데 주인이 우리를 조용히 부른다. 개가 출산을 했다. 7마리나. 어쩐지 오전에 나오는데 계속 같은 곳에서 벗어나질 않더라니... 주인의 미소가 맘에 든다. 그는 시크해 보이지만 친절하고 상냥하다. 일본인 엄마와 인도인 아버지를 둔 그. 그의 할아버지는 이번 년에 돌아가셨다. 이쁜 강아지를 뒤로 하고 잠에 들었다.
오늘은 델리로 떠나는 날, 이제 바라나시를 떠나야 한다. 어느덧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바라나시에서 5일이나 있었다. 그리고 어느덧 바라나시에 물들어 있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바라나시에 매력에 대해 이제는 좀 알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먼저 숙소를 체크아웃하고 짐을 모두 선재네로 옮겨서 맡겨놨다. 그리고 사람들과 영화를 보러 시내로 나갔다. 정말 얼마 만에 영화인가? 모터 릭샤를 타고 영화관에 도착했다. 그런데 우리가 보려 했던 인도 최고 인기의 영화는 맞는 시간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케리비안의 해적(?)을 예매했다. 난 본 적이 없는 영화라 내용도 모르지만 외국 영화니까 알아듣기 쉬울 거라 생각해서 이걸로 예매했다. 그리고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 커피숍으로 들어가서 시간을 보냈다. 바라나시 갠지스강 근처에만 있다가 시내로 나오니 이런 카페도 있다니 새삼 놀랐다.
그리고 영화관으로 들어갔다. 생각했던 것보다 좋은 시설에 놀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렴한 가격에 3시간을 에어컨 빵빵하게 보낼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하지만 우리 일행 중 기차를 타야 하는 사람이 있어 우리는 영화를 끝까지 보지는 못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우선 영화를 봤다. 영화관에 들어오기 전 짐 검사까지 했는데 일행 중 한 명이 담배를 보관하고 들어와야 했다. 의자가 뒤로 넘어가 아주 편안한 자세로 영화를 시청했다. 그런데... 외국 영화인데 왜 하나도 말이 안 들리지? 알고 보니 더빙이었다. 이 영화를 인도말로 더빙해놨다. 하... 이럴 수가... 망했다. 결국 내용을 추측해서 봐야 했다. 인도 사람들이 다 웃는데 우린 왜 웃는지 모른다. 그리고 깜짝 놀란 건 인도 사람들이 영화를 보는 중간중간 큰소리로 웃고 손뼉 치고 휘파람을 분다. 더 대박인 건 영화가 갑자기 꺼진다. 그러더니 쉬는 시간이란다. 이 놀라은 인도 영화관 클래스에 감탄한다.
영화가 거의 끝날 무렵 우리는 상영관을 빠져나왔다. 원래 나와야 하는 시간보다 더 늦게 나와 일행이 정말 급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담배를 보관했던 일행이 자기 담배를 무조건 찾아가야 한다며 말리는데도 그냥 찾으러 가버렸다. 어이가 없었다. 담배가 뭐라고... 기차표 예매돼있는 사람은 기차를 놓치면 큰일 나는 건데. 하는 수 없이 내가 먼저 나와서 모터 릭샤를 붙잡아놓고 사람들이 다 나와서 탔다. 그렇게 다시 갠지스강 근처로 돌아와 그 일행을 보내고 우리는 선재네에서 저녁을 먹고 내 기차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물론 우리 기차도 연착이 돼서 한참을 선재네서 있다가 시간에 맞춰 역으로 향했다.
기차역에는 사람들이 다 바닥에 천을 깔고 자고 있거나 그냥 바닥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더러운 바닥에 그냥 누워서 자는 그 사람들이 신기했다. 그리고 어떻게 기차가 이렇게 매번 연착이 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해서 무엇하리. 미리 확인했던 연착 시간보다 열차는 훨씬 연착이 되고 있었다. 갈 곳도 마땅히 없어 그곳에 그나마 좀 깨긋해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열차가 오나 확인했다. 도무지 어디서도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없으니 불안해서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었다. 그래도 결국 들어온 열차에 붙어있는 내 이름을 확인하고 열차에 올라탔다. 인도에서의 첫 슬리퍼 등급 열차를 경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