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인생 사전
●여수: 빛바랜 옛사랑처럼 남겨 둔 여행지.
한때 거의 매년 봄마다 여수에 가던 시절이 있었다. 봄의 한때를 온전히 나만을 위해 사치롭게 사용할 수 있었던, 젊고 덧없던 시절이었다.
여수에 대한 첫 기억은 늘, 저녁 무렵 순천을 떠난 전라선 기차가 바야흐로 완만한 들녘으로 접어드는 풍경이다. 기차는 이제 서두를 필요 없다는 듯이 혹은 여기가 마침내 그렇게 먼 거리를 달려 다다른 고향 앞마당이라는 듯이 느긋한 리듬으로 여수라는 도시의 품으로 안겨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기차에서 내려 걸어 간 진남관 계단에서 저 아래 부두며 돌산대교 쪽을 건너다보는, 아늑하고 서글픈 저녁 정경이다. 그런 때는 반드시, 다리 아래로 지친 고깃배 한 척이 희고 긴 물길을 잡아끌고 부두로 돌아오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은 돌산도 남쪽 끝 향일암에 올라 바로 발밑에 펼쳐지는 아찔한 바다를 내려다보던 나의 시선….
어느새 여수를 가 본 지가 꽤 오래되었다. 흘러간 시간만큼 변한 이 도시가 낯설고 불편하게 다가올까 봐 선뜻 가기가 쉽지 않다. 흘러간 옛사랑을 다시 만나는 일이 그리 간단치 않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