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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실리 가는 길

덩굴 라일락 향기를 찾아서-#11. 아다지에토 2

by 시를아는아이

“대자연의 장엄함 속에 영혼은 다시 태어난다.(In magnificentia naturae, resurgit spiritus.)”

_A. 카뮈/<안과 겉>


1.

‘행복한 사람들은 여행을 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최근에 문득 이런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어요. 하지만 한편 개인적으로 혹은 또다른 의미에서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늘 그렇듯이 이번에도 행복한 기분으로 떠난 여행은 아니었으니까요. 그 언제쯤 홀가분하고, 여유롭고, 평화로운 마음만 가지고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요?


2.

아무튼 대부분 사람들은 여행을 크게는 자연 그러니까 예를 들면 어떤 멋진 풍경과의 만남이라고 생각하는 듯해요. 물론 함께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무엇보다 중요하겠죠.

하지만 가끔씩 혼자 말 없이 여행하는 버릇이 있는 사람에게는, 사람보다 오히려 더 큰 부분은 음악이나 책 같은 말 없는 친구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3.

대략 일 년 홍천에서 고성으로 가는 46번 국도 위에서 구스타프 말러의 1번을 들었는데, 이번에는 5번을 들었어요.*

말러는 빈 오페라 악단 지휘자 시절, 예전에는 오스트리아 땅이었던 토블라흐 등 알프스 산과 호수 주변에 자신만의 작업용 오두막을 지어 놓고 틈 날 때마다 찾아가 작곡을 했다고 하죠. 그래서 말러의 곡들은 알프스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들이 많다고 해요.

어쩌면 그래서 저번에 우연히 1번 교향곡을 들을 때 조금씩 상승하는 백두대간의 고도와 천천히 고조되던 곡의 분위기가 어우러져 그렇게 마음을 뒤흔들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같은 길 위에서 이번에는 5번 교향곡을 한번 들어보리라 마음을 먹고 있었죠.


4.

언제가 짧은 시에서 ‘출근길에 말러를 듣는 것은 위험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왜냐하면 말러의 선율에 매혹되어 버스나 전철에서 내릴 곳을 지나치거나, 영원히 멈추지 않기를 바라면서 계속 자동차를 운전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르니까요… .

완전한 과장이 아닌 것이 10여 년 전 개인적으로 비슷한 경험이 있기도 해요. 출근길에 마침 듣고 있던 1번 4악장이 끝날 때까지 회사 근처를 일부러 조금 더 걷다가 출근 체크를 한 적도 있으니까요… .


5.

아무튼 그날 홍천 화양강 휴게소에서 출발하면서 듣기 시작한 말러 5번 교향곡이 인제의 소양강을 지나 내린천 부근을 지나 ‘아다지에토’에 가까이 다가가면서 제 가슴도 점점 더 뛰기 시작했죠.

드디어 사랑하는 이에게 마음 깊은 곳의 열정과 진심을 다해 고백하듯이 선율이 흐를 때, 마침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면서 안개가 피어나는 푸르른 내설악이 꿈결처럼 나를 향해 다가오고 또 사라져 가고… .

가슴이 벅차 올라 숨을 쉬기 힘들어지기 직전까지 선율은 끊임없이 고조되었고 마침내 나는 또 그 아름다운 선율의 풍경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말았죠. 말러에게, 아바도에게 그리고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음악과 예술 작품들에게… .


6.

그런데 왜 사람들은 꼭 좋아하는 음악의, 늘 그 부분에서 주체할 수 없이 마음이 흔들리고 눈물까지 흘리고 마는 걸까요? 왜 사람들은 기꺼이 아름다운 그 불길 속으로 뛰어들고 마는 걸까요?

그와 똑같이, 왜 사람들은 스스로 위태로운 사랑에 빠지고 말 걸 알면서도 특정한 부류의 사람에게 시선을 빼앗기고 끌리듯이 다가가고야 마는 걸까요? 말러의 위험한 음악처럼 자신의 삶과 영혼을 뒤흔들… .

정말 위험한 건, 음악이 아니라 사랑이죠!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클라우디오 아바도 지휘,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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