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놓친 영화 혹은 지나간 삶

by 시를아는아이

몇 해 전, 주말에 큰 차 사고를 겪을 뻔한 적이 있다.

새벽에 고향으로 내려가다가 깜빡 졸음운전을 했는데, 차가 도로를 벗어나서 산비탈 쪽으로 달리다가 우연히 작은 아카시아 나무에 부딪혀, 가까스로 전복을 면한 것이었다.

오히려 그 아찔했던 순간에는 차분했는데, 그로부터 시간이 조금 흐르면서 ‘정말 내가 죽음 가까이 갔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상념 끝에 문득 영화 <피아니스트>(로만 폴란스키/2002) 속 주인공 애드리언 브로디(블라디슬로프 스필만 역)의 눈빛이 떠올랐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그 숱한 고통과 치욕을 다 견디고 우연히 살아남은 뒤, 라디오 스튜디오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하다가 가끔씩 유리창 너머 함께 살아남은 이들을 바라보던, 연민과 회한으로 촉촉이 젖은 그 눈빛….

‘이것이 삶인가?’

그렇게 그 눈빛은 우리에게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