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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국어 교과서에 반드시 실렸던 시 <국화 옆에서> 단 한 편으로 미당 서정주의 작품 세계를 다 알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착각이듯이,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한 편으로 푸시킨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어이없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필자 역시 대학 시절 교양 수업으로 러시아 문화 관련 수업을 듣기 전까지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듯하다.
어쩌면 그건 흘러간 시절 우리가 외국 문화를 받아들이는 일반적인 방식이나 풍토 중의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문화도 경제 개발처럼 빨리빨리 ‘엑기스’(?)만 수입해서 소비하고 끝내는…. 게다가 러시아가 ‘사랑하고 자랑하는’ 이 시인에게는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라는 우뚝 솟은 산봉우리 같은 후배 작가가 우리 앞에 버티고 서 있었으니….
이곳에 푸시킨 잠들었도다. 어린 뮤즈와 함께
사랑과 함께 즐거운 시절 유유자적 보냈던 그
선한 일 아무것도 한 적 없지만 마음은
진정 착한 자였다.
▪석영중 옮김
멋진 묘비명을 남기는 것은 시인이나 작가, 문장가들의 마지막 특권이다. 한 사람의 부고 기사(obituary)가 사실은 그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삶의 모습을 정직하게 드러내는 것이듯이, 묘비명도 한 사람의 삶에 대한 정확한 성찰이나 평가의 표현이다.
예를 들어 ‘의학계의 계관 시인’으로 불렸던 작가 올리버 색스(1933~2015)는 그의 삶의 마지막 장에 이런 의연하고도 서늘한 목소리를 남겼다.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지각 있는 존재이자 생각하는 동물로 살았다.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특권이자 모험이었다.”
―올리버 색스, 〈나의 생애(My Own Life)〉
이에 비해 푸시킨이 앞의 시를 쓴 때는 겨우 16살이다. 따라서 이 시는 오히려 묘비명의 형식을 빌어 자신이 꿈꾸는 미래의 삶을 예고하고 선언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를 보면 시인은 무엇보다 예술(뮤즈)과 사랑 속에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선한 일)을 딱히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래도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착한 사람이었다고 기억해 주었으면 하고 희망한다.
푸시킨의 시는 이렇게 쓸데없는 진지함이나 엄숙함을 능청스럽게 피한다. 그러면서 참다운 삶은, 세상 고민을 다 짊어진 표정으로 주어진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삶이 아니라, 자신의 천성에 맞게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시인의 실제 운명은 일생 동안 이 시를 닮은 듯 닮지 않은 듯 그 경계를 넘나든다.
철없던 시절의 다 타버린 즐거움
혼란스런 숙취처럼 씁쓸하구나.
그러나 지난날의 슬픔은 포도주처럼
내 영혼 속에 날이 갈수록 더욱 진해져
나의 앞날 어둡기만 하고 미래의 파도치는 바다는
나에게 노동과 고뇌를 약속해 준다.
오 벗들이여, 그러나 나는 죽고 싶지 않다.
살아서 생각하고 고통당하고 싶다
슬픔과 근심과 걱정 속에
즐거움 또한 있으리라는 것을 알기에.
때론 또다시 화음에 도취되고
공상의 산물에 눈물 흘리며
그리고 누가 알랴, 내 슬픈 만년에
사랑이 이별의 미소를 지으며 반짝일지도.
▪석영중 옮김
처음 이 시를 읽으면 단순하고 소박한 구절 어디에 시적인 것이 숨어 있는지 의아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문장도 짧고 간결하게 쓰기가 더 어렵듯이, 시도 단순하면서도 시적으로 쓰는 것이 더 어렵다.
이 시도 ‘엘레지’(비가)라는 직설적인 제목처럼 지나간 시절에 대한 후회와 슬픔 그리고 미래에 대한 암울함을 먼저 드러낸다. 겉으로 열정적이고 무모한 젊은 시절을 보내고 이제는 조금씩 현실을 마주하며 마냥 장밋빛일 수 없는 미래도 함께 예감한다. 영원히 철들지 않을 것 같은 시인에게도 어쩔 수 없이 현실의 삶은 버거운 것이다.
하지만 창조적이고 생기발랄한 시인은 이러한 현실을 피하거나 그 앞에서 주저앉지 않는다. 오히려 당당하게 ‘살아서 생각하고 고통당하’겠다고 한다. 왜냐하면 시인은 ‘슬픔과 근심과 걱정 속에 즐거움’도 함께 있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것이 푸시킨이 자신의 파란만장한 삶을 스스로 견딜 수 있게 한 균형 감각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한 편의 시에 담긴 긍정적이면서도 신선한 깨달음은 푸시킨 서정시의 특징 중 하나이면서 읽는 이에게 따뜻한 위로와 희망을 준다. 그래서 푸시킨의 시를 읽으면 유쾌하고 다정다감하면서도 마음 넉넉한 친구와 즐거운 대화라도 나눈 듯 충만한 기분이 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내 기념비를 세웠다, 기적의 손으로
하여 그리로는 군중의 발길 끊이지 않으니
알렉산드르 첨탑보다 더 높이
꼿꼿한 머리 치켜 쳐 들고 서 있다.
아니, 나는 죽지 않으리, 소중한 리라에 담긴 혼
내 육체보다 오래 살아 썩지 않으리.
이 세상에 단 한 명의 시인이라도 살아 있는 한
나는 영광스레 빛나리.
나의 명성 위대한 러시아 곳곳에 펴져
이 땅에 사는 모든 민족 제 언어로 나를 부르리.
긍지에 찬 슬라브의 후예도 핀 족도
지금은 미개한 퉁구스족도 초원의 벗 깔미끄인도.
나 오래도록 민중의 사랑 받으리라.
리라로 선한 감정 일깨우고
이 가혹한 시대에 자유를 찬양하고
스러진 자에게 자비를 베풀라 외쳤으므로.
오 뮤즈여, 신의 뜻에 따르라.
모욕을 두려워 말고 월계관 청하지 말고
칭찬과 비방을 초연하고 무심하게 받아들이고
어리석은 자와 다투지 마라.
▪석영중 옮김
아무리 대문호의 작품이라고 해도 이 작품의 바탕에는 약간의 자기도취와 오만함이 깔려 있다. 요즘 말로 하면 허세나 문학적 플렉스(flex)라는 비아냥을 듣고도 남을 정도랄까.
하지만 단순한 허세인지 아니면 근거 있는 자신감인지는 결국 실력이 판가름하는 것…. 스스로 자신의 문학적 기념비를 세운 이가 푸시킨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가 시로 예언한 대로 푸시킨의 작품은 지금도 러시아는 물론 세계 곳곳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영원한 생명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대체 푸시킨이 이렇게 야심차게 노래한 자신감의 근거는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그것은 자신의 작품을 포함한 문학이나 예술의 힘에 대한 믿음과 긍정이 아닐까. 그 힘은 현실의 비정한 절대 권력에 맞서 인간성을 옹호하고, 주변의 모욕과 비방을 뛰어넘어 새로운 세계를 꿈꾸게 했다.
어쩌면 위대한 시인에게 돌로 세운 기념비 따위는 굳이 필요 없는 것이 아닐까? 이미 그가 쓴 작품 전체가 곧 진정한 기념비이기에… .
푸시킨을 이해하는 것은 곧 왜 러시아인들이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에 앞서 먼저 푸시킨을 이야기하는지에 공감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단순히 문학적 연대기의 앞자리에 있는 대시인에 대한 예우와는 조금 다르다.
도스토옙스키는 푸시킨의 작품 세계를 한 마디로 ‘모든 것을 포용하는 보편성’이라고 표현했다. 그 이전까지 별다른 문학적 바탕이 없던 러시아에서 서정시로부터 서사시, 단편 소설에서 장편 소설, 희곡, 평론, 기행문 그리고 새로운 장르인 운문 소설까지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게다가 이들 작품은 단순히 해당 장르의 형식에만 맞춘 작품이 아니라 실험적이면서도 완벽한 예술적 가치를 지닌 작품들이라고 한다.
또, 그의 작품 세계는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그리고 사실주의까지 모두 수용하면서도 이에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경계를 넘나든다. 그리고 그 자신이 러시아와 아프리카(에티오피아)의 피가 섞인데다가 러시아의 민담에서 프랑스 문학까지 다양한 문화의 영향을 함께 받아 이러한 이질적인 요소들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새롭게 재창조했다.
푸시킨과 러시아처럼, 서로 영원히 사랑하고 자랑하는 시인을 가진 세상의 모든 민족은 행복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