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아닌 섬
동아문화센터에서 국회의사당 쪽으로 이어지는 길가에는 삼환카뮤빌딩도 있었다. 중견 토목·건설업체인 삼환기업의 사옥이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검색해 본 현재의 삼환카뮤빌딩의 이미지는 당시와 전혀 달랐다. 푸른색 유리로 외부를 마무리한 현재 빌딩은 서울의 여느 빌딩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내가 여의도를 찾던 때는 건축적으로 독특한 외부가 인상적이었다. 10층에 이르는 건물이 아랫층에서 윗층으로 갈수록 점점 폭이 넓어져서 마치 거대한 코끼리 한 마리를 눈앞에서 올려다보는 것처럼 압도적이었다. 이런 건축적 장치는 마치 전통 건축의 배흘림 기둥처럼 구조물에 시각적 안정감과 무게감을 동시에 주었던 듯하다.
그보다 내가 이 건물에 친밀감을 느낀 것은 독특한 이름 때문이었다.
먼저 삼환기업은 어린 시절 고향에서 큰 댐 공사가 있었는데 그때 참여했던 업체 중 하나였다. 고향 앞을 유유히 흐르던 강에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일으킨 그 공사로 인해 어떤 마을은 통째로 수몰되었고, 길이 끊겨 어쩔 수 없이 전학을 온 친구들도 있었으며, 쉴 새 없이 지나다니던 공사 차량에 치여 아이가 목숨을 잃는 비극도 있었다.
그리고 ‘카뮤’… . ‘카뮤(카뮈)’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도 틈 날 때마다 썼지만, 그 시절 나는 작가 알베르 카뮈의 시적이고 철학적인 젊은 시절 에세이(《안과 겉》, 《결혼·여름》)와 그의 스승인 장 그르니에의 《섬》에 깊이 빠져 있던 터였다. 물론 프랑스어 ‘카뮈(Camus, 프랑스어로 ‘들창코’라는 뜻)’는 원래 카뮈의 아버지처럼 알자스 지방 출신 사람들의 성 씨일 뿐이고, 영화감독 마르셀 카뮈도 있다. 어쩌면 ‘롯데(Lotte)’ 그룹처럼 단순히 창업주의 지극히 개인적·문화적 취향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삼환카뮤’는 한국적인 것과 서구적인 것이 결합된 우리 사회·문화의 반영이면서 동시에 그 뒤의 숨은 스토리도 함께 상상해 보게 하는 유니크한 건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