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아닌 섬
갑자기 돈맛을 알게 된 강남 졸부처럼, 1988년 올림픽 이후 흥청거리기 시작해 1994년 ‘아름다운 시절’의 정점을 찍고, 갑작스런 몰락의 롤러코스터를 타기 시작한 1998년, 대한민국, 서울, 여의도에서 나는 뜻밖에(?) 즐겁게 잘 살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아직 청춘이었고, 대학생이었으며, 여의도 어느 신문사 부설 문화 센터에서 좋아하는 영어를 공부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요즘말로 하면 달콤쌉사름한 ‘썸’을 타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다시 생각해 봐도, 정확하게 말하면 한심한 ‘짝사랑’이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다시 그 ‘사랑의 대차대조표’를 아무리 들춰 봐도 그녀에게 받은 사랑보다 내가 일방적으로 보낸 편지, 계산한 커피값, 술값이 훨씬 더 많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그 당시 나는, 지금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낙천적이었고, 솔직했고, 바보 같았고, 무엇보다 그녀가 좋았다.
약간 치켜 올라 간 듯 도도해 보이는 눈빛이나 글래머러스한 체형, 비음이 섞인 낮은 목소리뿐 아니라 때로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당돌하면서도 즉흥적인 성격도 좋았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당장 가수로 데뷔하고도 남을 매혹적인 가창력이 있었다.
실제로 고등학교 시절 당시 인기 있던 영어 강사 출신 O씨가 진행하던 한 라디오 프로그램 노래 경연 대회에서 우승을 한 경력도 있었다.
언젠가 그녀가 비밀이라도 일러 주듯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오빠, 어쩌면 내가 가수 보아(BOA)처럼 될 수도 있었어….”
KBS 근처에 있던 문화 센터의 영어 수업이 오후 일찍 끝나면, 우리는 순복음교회 지나 한강둔치로 나가 오리 배를 타고, 종로 서울극장에서 <태양은 없다>를 보고, 그녀의 집이 있는 은평구 신사동 부근 커피숍에서 지금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시시한 대화들을 나누었다.
하지만 늘 그녀의 시선은 종종 내가 아닌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늘 목말랐고, 그녀는 내가 아닌 ‘그 무엇’에 목말라 있었다.
그녀가 내게 자주 한 말은 이런 거였다. “오빠는 내 어디가 좋아?”라거나 “내가 끼가 있는 거 같아?”….
하지만 내 지나치게 성실한(?) 답변은 늘 과녁을 빗나갔다. 그녀의 표정과 눈빛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영화나 드라마와 달리, 현실에서 이런 관계의 결말은 너무 뻔하다. 사실 서로 너무 달랐던 우리는 그 후 자연스럽게 각자의 삶을 그럭저럭 살아 나갔을 뿐이다.
하지만 1998년, 대한민국호가 역사적인 경제적 대혼란에 빠진 그 시절, 나는 일 년 동안 여의도 그 문화 센터라는, 내 청춘의 작은 도피처에서 학교 안에서는 만날 수 없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실직한 대기업 부장님부터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열아홉 소녀까지, 카리스마 넘치는 패션 디자인 전공 큰언니부터 외국 이민을 준비하던 꽃미남 사랑꾼까지….
이미 지나쳐 버린 그녀와의 사랑이 이렇게 가끔씩 떠오르는 것은, 어쩌면 그 사랑의 흐릿한 배경처럼, 우연히 우리와 함께 비를 맞으며 걸어갔던 그 시절 사람들에 대한 뒤늦은 그리움 혹은 고마움 때문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