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엽

섬 아닌 섬

by 시를아는아이

그러니까 1998년 늦가을이었다. 사람마다 사랑법은 다르기 마련인데, 나의 경우는 조금씩 젖어들다가 나중에는 폭풍우처럼 흠뻑 젖고 격렬하게 흔들리는 타입이었다. 특히 사랑은 감성적인 나를 더 감성적으로 만들었다. 게다가 여의도 은행잎이 샛노랗게 물들어 하나씩 떨어기는 가을날이었다.

마침 김창수라는 분이 진행하는 수업이었다. 당시 민병철이나 오성식 정도의 스타 영어 강사는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강의도 하고 방송도 했던 분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이름 좀 난 영어 강사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경쾌하고 톡톡 튀는 분이었는데, 재미는 있지만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하지만 단 한 번, 그날 그 수업만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어쩐지 가끔씩 생각이 나곤 한다.

그날따라 어울리지 않게 약간 센치해진(?) 건 마침 그날 배웠던 팝송이 샹송으로 더 유명한 <고엽>이었기 때문이었던 듯싶다. 부드럽고 우아한 그 노래는 당연하게도(?) 울긋불긋 단풍이 햇살에 반짝이던 그 가을날 오후와 썩 잘 어울렸다. 선생님도 노래의 가사를 느끼다가 옛사랑이 떠올랐는지도 모른다… .

문득 수업을 받던 우리에게 잠시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게 했다. 과연 전형적인 가을날이었다. 그리고는 한 마디 덧붙이는 것이었다.

“혹시 지금 사랑에 빠진 분 있나요? 그렇다면 자기 옷 중에 가장 좋은 입으세요, 꼭!”

사랑과 옷이 무슨 상관? 처음에는 좀 어리둥절했지만 나는 나도 모르게 내가 입고 있는 옷을 다시 보았다. 청바지에 카키색 폴라 티를… .

그때 이후로 여전히 새로운 사랑에는 서툴지만, 그 말 때문인지 관심이 있는 사람이 있을 때는 이전보다 옷차림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다.

어쩌면 그 말이 우연히 순진한 내게 일깨운 것은, 사랑의 작지만 중요한 본질은 아니었을까? 언제나 사랑은 상대가 있는 게임이고,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때로는 속마음보다 더 중요하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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