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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푸레나무 식탁 Jul 15. 2019

독서 일기 - 장강명 < 산 자들>을 읽고

장강명의 한국 노동 연작소설 < 산 자들>이 출간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서점에 가서 현장 구매했다. 좀 기다리면 동네 도서관에 구비되겠지만 그때까지 기다리기도 어렵고, 도서관 신간들은 부지런쟁이들의 차지인지라 내 차례까지 오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 산 자들>이 궁금했던 것은 단편 <알바생 자르기>를 먼저 만나 봤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회사 사무보조원 알바생 자르는 이야기인데, 알바생을 자르는 나쁜 회사 vs  당하기만 하는 알바생 구도가 아닌 것도 좋았고, 교활한 알바생과 절대 갑인 회사의 한 판 승부도 아니어서 읽는 내내 양쪽 입장을 곱씹어 생각했다. 혜미처럼 알바생인 적도 있었고, (나이가 들다 보니) 은영처럼 갑은 아니지만 갑의 위치에서 사건들을 보게 되는 일도 생기다 보니 <알바생 자르기> 에 담긴 행위가 제목만큼 단순하지 않고 그 행위의 타당성과 부당함이 단편에 그대로 녹아있다. 해고도 아니고 퇴직도 아니고 알바생 자르기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니.


책은 10개의 단편을 삼부작으로 나누어 소개하는데 1부 자르기, 2부 싸우기, 3번 버티기로 나뉜다. <대기발령>, <공장 밖에서>, <현수동 빵집 삼국지>, <사람 사는 집>, <카메라 테스트>, <대외 활동의 신>, <모두 친절하다>, <음악의 가격>, <새들은 나는 게 재미있을까>로 제목으로만 봐도 어딘가 신문 사회면에서 봤을 이야기들을 단편 소설로 풀어냈다. 대기업 사보 팀의 대기 발령, 자동차 공장 해고 사태, 골목 빵집과 프랜차이즈 빵집의 대결, 철거민들의 이주대책, 아나운서 시험 분투기, 대학생 공모전 ,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사립 학교의 부정부패와 싸우는 학생들.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이 모든 얘기가 있는 그대로 픽션은 아니라고 했으나 그렇다고  이 단편들의 얘기가 꾸며낸 얘기가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수록된 열 편 모두 꼼꼼한 취재와 이야기로 현실을 반영한 단편으로 추천할만하지만 그중 <대외 활동의 신>과 <모두, 친절한다>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지방대 출신이라는 딱지를 떼기 위해,  대외 활동의 신이 된 ‘신’의 이야기. <대외 활동의 신>

대학생 공모전이니 인턴이니 하는 제도가 그 시절에도 있었으나 나에겐 별 관심 밖인 것들이라 내가 잘 모르고 있기도 하고, 요즘 젊은이들 얘기를 그저 들어서만 알고 있는 나로서는 <대외 활동의 신>이 되어버린 신의 얘기가 “열심히 살아서 성공했네.” 하는 해피엔딩으로 읽히지 않았다. 스펙 한 줄을 만들기 위해 한 여름에 인형 탈을 쓰고 댄스 배틀을 하는 주인공의 모습과 함께 알량한 스펙 하나 만들어준다고 이 젊은이들을 너무나 막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젊어 고생은 사서 한다고 열정 페이도 한 때라고 하기에 이미 너무 많은 것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 씁쓸하다.


<모두, 친절하다>는 바로 어제, 오늘 내가, 또 당신이 겪을지도 모를 이야기다. A/S 서비스센터, 이사 업체, 당일 배송 택배기사, 피자 배달 알바, 회사의 계약직 직원 등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며 만나는 무수한 노동자들과 사회의 시스템 속에서 갈 길을 잃은 ‘내’가 주인공이다. 분명 생활은 더 편리해졌고, 세상은 살기 좋아지고, 우리는 불과 몇십 년 전과 비교해도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일을 내가 아닌 남의 손으로 돈만 주면 해결할 수 있게 됐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무턱대고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채플린의 말처럼 소설 속 주인공이 나라면 정말 재수 없는 오늘 하루가 이렇게 떨어져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니 이보다 더한 코미디가 없는 희극이 되어버린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웃기다 웃겨 현대 사회.


1970년 전태일이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분신을 한 지 근 50년째, 반세기만큼 세상은 변했고 최저시급과 주 52시간 노동을 둘러싼 갈등이 지면에 오른다. 그 시간만큼 대한민국에서 먹고사는 일은 엄청나게 다양화 세분화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고사는 일은 작가가 분류해둔 것처럼 자르기, 싸우기, 버티기의 어디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싸우기를 거쳐 버티기를 견디다, 자르기 쯤이 되면 성공한 인생, 싸우다 지쳐 버티다 버티는 이도 있을 것이고, 싸우다 지쳐 아예 포기했을 수도 있고, 버티고, 버티다 다시 싸울 수도 있다. 어차피 이 땅에서 먹고사는 문제에 자유로울 수 없다면 나와 당신은 싸우는 누군가, 버티는 누군가, 자르는 누군가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 슬프게도 이 것이 현실이라면 우리는  오늘도 싸우고, 버티고, 자르고 잘리는 누군가들에게 조금 더 다정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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