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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푸레나무 식탁 Aug 05. 2019

한 여름 실화 극장  - 7월 27일에 생긴 일

남자 A. 

비가 개인 토요일이었다.  

하나뿐인 딸이 1박 2일 캠프를 간다며 남편은 친한 선배와 아내와 함께 여름밤에 어울리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저녁에 갈 핫한 주점도 예약해 놨고, 딸애를 보내고 오전엔 느긋하게 브런치를 먹고, 청소를 하며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그저 평범한 주말 중에 하루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집 앞 5분 거리 성당까지 가는데 굳이 엄마에 아빠까지 함께 갈 필요는 없었다. 그저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하겠다며 세 식구가 헐렁한 바지를 입고, 오래된 슬리퍼를 끌고 손만 흔들고 오면 되는 간단한 배웅이었다.

비가 개이고 아직 덜 마른땅에서 나오는 습기로 촉촉한 아침이었다. 비 온 뒤라 오며 가며 슬리퍼가 조금 미끄러웠으나 개의치 않았다. 아내가 슬리퍼를 갈아 신으라고 했을 때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 슬리퍼가 독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딸애를 배웅하고, 성당 앞, 대리석 바닥은 미끄러웠다. 하필 거기서 계단 3층 높이 턱에 올라서서 대리석 바닥을 다 닳은 슬리퍼를 신고 손을 흔들었을 때도, 대리석 바닥이 미끄러운 줄 체감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딸애가 탄 버스가 출발하고, 손을 흔들고 뒤를 돌 때 마침 전화벨이 울렸다. 휴대폰을 들고 몸을 돌리는 순간, 몸이 공중 붕 뜨며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손으로 땅을 짚었는지, 80kg에 육박하는 몸으로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일단 비명과 함께 떨어지고도 딸이 떠나는 버스 안에서 아빠가 길바닥에 누워있는 것을 볼까 봐 벌떡 일어나 보기로 했다. 한참 성당 바닥에 앉아 있었는데도 가시지 않는 고통이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통증이었다.     


여자 B.

남편이 성당 바닥에서 미끄러져 떨어지고 땅바닥에 누워있을 때, 여자는 “내가 아까 슬리퍼 바꿔 신으라고 했지?” 하는 말을 먼저 할 뻔했다. 중요한 것은 슬리퍼보다 남편의 안위였지만 그렇게 말을 안 듣고, 제 멋대로 굴다가 거봐라 넘어지고 말았지? 하고 꼭 짚어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까 슬리퍼 왜 안 바꿔 신었어?”라는 말 보다 괜찮냐고 물어본 것은 정말 다행인 일이었다. 왜냐면 남편은 괜찮지는 않았으니까. 멀쩡히 일어나서 쪼그려 앉길래 그럼 다행히 뼈가 부러진 것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고, “부러졌으면 일어나지도 못 했어.” 라며 동네 정형외과에 갈 때만 해도 그저 근육이 조금 놀랐겠거니 했다.  동네 정형외과엔 토요일 오전부터 사람이 바글바글해서 쪼그려 앉지도 서 있지도 못한 어정쩡한 자세로 남편과 한참을 기다리다가 X-RAY를 찍을 때만 해도 의사가 “다행히 괜찮네요.” 하며 파스 같은 것이나 처방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X-RAY를 판독한 의사는 압박 골절이라며 큰 병원을 가라고 하면서도 아파 죽겠다는 남편의 절규에도 공감하거나 위로의 재스쳐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저 옆에 큰 병원 가라는 사무적인 말과 함께 뼈가 골절됐다면서도 제 발로 걸어서 큰 병원에 가라 하니 이게 진짜 골절된 건지 아니면 골절인지 아닌기 긴가민가 한 건지도 판단이 서지 않았다. 일단 당장 큰 병원으로 갔고, 거기서도 골절된 사람이 아닌 것처럼 X-ray 찍으러 MRI 찍으러 진통제를 맞으러 여기저기 제 발로 걸어 다니고 나서야 당장 입원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고 나서도 실감 나지 않았다. 그저 의사가 세게 말하니까 그럼 주말은 병원에서 지내야 하는 걸까 하고 입원을 시키고, 당장 오늘 저녁 약속은 깨지고 말았네 하는 허무함이 밀려왔다. 간호사가 남편의 침대에 ‘절대 안정’이라는 푯말을 붙이고 갔으나 남편은 “병원 밥 신청하지 마. 나는 딴 거 사다 먹을 거야.”라며 밥 걱정이나 하고 있었으니 이 미끄러운 슬리퍼 사건이 어떻게 흘러갈지, 이때까지도 이 닳고 닳은 슬리퍼가 몰고 올 파장은 생각하지 못했다.   


 여자 C, D

여자 B가 오늘 저녁에 갈 핫한 술집을 예약해 놨으나 갈 수 없다고 했을 때, 여자 C는 마침 여자 B의 집과 가까운 친정에, D는 B와 80Km 떨어진 집에 있었다. 토요일 밤이었으나 D의 애들은 저마다 약속이 있었고, 퇴근한 남편 저녁만 해결해두면 자유로운 저녁이었다. 굳이 예약한 술집을 취소하는 것도 아까우니 그럼 내가 그리로 가겠다고 했고, 그렇다면 친정에 있던 C도 거기서 보자고 했다. 넘어진 여자 A의 남편도 누워있을 수밖에 없으니 여자 A에게 늦더라도 와서 밥이라도 먹으라 했고 하루 종일 굶은 A는 뭔가 불편하고 비현실적인 기분으로 핫하다는 술집에서 맥주는 딱 한 모금만 마시고, 혹시나 모를 비상시를 위해 안주를 밥으로 생수를 술처럼 마셨다. B가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자기가 무서워 친구 C, D는 그동안 그렇게 소원했으나 애 때문에 남편 때문에 도저히 잡을 수 없었던 밤마실을 그날 밤 B네 집에서 할 수 있었다. 아무도 마시지 않았고, 취할 수 없는 밤이었으나 집중호우와 천둥 번개가 시시각각 몰아치는 풍경이 창밖으로 펼쳐졌다. 아직도 꿈인지 생신지 분간할 수 없는 배경에 딱 어울리는 밤이었다.     


남자 E

C와 아이를 맡기러 친정에 갈 때만 해도 분명 부부는 아이를 맡기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점심 무렵 도착해 까무룩 잠이 들고 부스스 일어나니 C는 친정에서 저녁을 먹을 건지 나가서 누굴 만날 건지 집에 갈 건지 당장 정하라고 했다. A가 넘어졌는데 왜 C가 B의 집에 간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고, 정작 친정에 와서 C는 왜 친구 집으로 사라진다 하고 나는 뭘 선택해야 하는 것인지 종잡을 수 없었다. 애들과 친정에 있으라는 것인지 아님 나가서 자유시간을 보내라는 것인지 장인어른과 함께 술이라도 한 잔 하라는 것인지 모호한 질문들이 머리를 떠돌았으나 C는 무척 바빠 보였고 당장 나갈 생각에 여념이 없었다. 당장 나가야 한다니 일단 데려다준다며 나오긴 했는데, C는 혼자 자야 하는 친구 B네 집에 가서 잔다 하고 나는 친정으로 다시 들어가야 하는지 아님 화를 좀 냈어야 하는 것인지 생각하다가 일단 C에게 잘 다녀오라고 하고 생각해보기로 한다.     



남자 A

B에게 나를 신경 쓰지 말고 가라고 했으나 꼼짝없이 누워 혼자 병실에서 밤을 지내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짐작하지 못했다. 3인실 병실에서 국악방송이 흘러나왔고, 이 더위에 에어컨 바람이 추워 먼저 온 환자들은 에어컨을 끄고 있었다. 유난히 더위를 타는 A가 움직이지도 못한 채 간호사에 에어컨을 켜달라고 하고서도 병실 온도는 좀체 떨어지지 않았다. B가 집에 간다며 소변통과 빨대컵, 물티슈와 이어폰을 모두 손에 닿는 곳에 배치해두고 갔으나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없다. 그렇다고 남자만 있는 좁디좁은 병실에서 B를 자라고 하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난생 처음 누워본 병실에서의 밤은 하룻밤은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최악의 상황들이 떠올랐다. 만의 하나 불이라도 난다며 절대 안정 환자인 A는 혼자 일어날 수도 없어 꼼짝없이 변을 당하고야 말 것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과 함께 이 밤이 언제 끝날지 알 수가 없었고, 그 뒤의 일은 무엇이 될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혹시라도 궁금해 하실 누군가를 위해 안부를 전합니다.

이 이야기는 슬프게도 실화입니다.

남편은 7월 27일 오래된 슬리퍼를 신고, 비 온 후 채 마르지 않은 대리석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지금은 병상에 있습니다. 흉추 12번 뼈가 골절되었고, 한 달은 누워있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도, 첫날에는 저렇게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병원 밥 퀄리티를 따져가며 주말만 지나면 집에 갈 수 있을 줄 알았다지요. 하룻밤을 지나고 병원에 가보니 거동도 못하는 환자를 병실에 혼자 두고 온 저의 무지와 남편의 상태가 그제야 온전히 느껴졌습니다. 오늘로 병원 생활 열흘 째, 간병인도 구하고, 남편은 병원 생활에 저는 병원을 오가는 생활에 딸은 아무 이벤트도 없는 방학 생활에 적응 중입니다.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이고, 어처구니없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하고, 누구에게 화를 내야 할지 마땅히 탓할 사람도 없는 일이라 그저 이 일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는 요즘입니다. 그대로 자리에서 누워서 아무 일도 없이 뼈가 딱 달라붙기만을 바라며 이제껏 누려온 당연한 것들이 사실 얼마나 당연한 것이 아니었는지 새삼 깨닫는 시간입니다.

모쪼록 여러분들도 발바닥이 다 닳아 미끄러운 슬리퍼는 모조리 다 쓰레기통에 버려 버리고, 하루하루 사고 없이 무사한 일상을 보내시기를.     


그리하여 1주일 1브런치는 주춤하였으나 병원 생활 안정기에 접어 들며 다시 사부작 써보려 합니다..라는 다짐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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