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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푸레나무 식탁 Oct 22. 2019

식탁 일기 - 책상과 밥상

영화 <와일드 로즈>와 오정희 선생님을 만나고 쓰다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지난주 영화 <와일드 로즈>를 봤다. 10대에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하고, 감옥에 다녀온 주인공 로즈 린은 자신의 꿈인 컨트리 음악을 하고 싶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어린 두 아이와 전과자라는 신분, 자신의 재능을 알아봐 주지 않는 현실에 그럭저럭 적응할 무렵, 그녀의 재능을 알아봐 주는 사람을 만나고, 의도치 않게 전과자와 두 아이의 엄마라는 신분을 숨기고 꿈을 향해 다가지만 전과자인 두 아이의 엄마가 자신의 노래를 부르기는 쉽지 않다.

 음악 영화를 표방한 예고를 보고 그냥 젊은 여자의 재능 발굴 성공기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 속 로즈 린은 전과자였고, 아이가 둘이나 있었고, 꿈을 포기하기엔 너무 젊었다. 그녀가 감옥에 가 있는 동안 로즈 린을 대신해 아이들을 돌본 엄마는 늙고 지쳤다. 로즈 린이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 같아 늘 탐탁지 않다. “ 그까짓 재능을 가진 사람은 넘쳤어. 넌 네 생활을 꾸려야 해야. 아이 둘을 돌보는 게 네 몫이다. 네 책임을 피하려 하지마. ” 아이들은 엄마를 그리워한다. 아이들에겐 깨끗한 집과, 따뜻한 음식, 아이들의 준비물을 챙겨주는 보통의 엄마가 필요하다. 로즈 린도 물론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고, 피자 가게로 외식을 가고, 방학이 되면 같이 바다에도 가고 싶다. 그녀가 꿈꾸는 행복이다. 하지만 이 모든 행복과 엄마로서의 충족감을 얻기 위해 그녀는 자신이 부르고 싶은 노래, 자신이 만든 기회, 자신의 미래를 자주 포기해야 한다. “아 이렇게 자꾸 포기하면 이제 나에게 이젠 기회가 없을 수도 있는데. 나의 꿈은 진짜 내 노래를 부르는 것인데. 나에겐 남이 갖지 못한 재능도 분명히 있는데.”

 로즈 린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왜 그녀는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가기 위해 매번 두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여기저기 눈치를 보고, 억지로 맡기고, 아이들에게도 점수를 잃은 채 나쁜 엄마가 될 수밖에 없는가. 그리고 그렇게 자신의 꿈을 달려가 만난 그곳에 그녀가 원한 성공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면 이야기의 끝은 어떻게 될까?

영화 내내 로즈 린의 마음이 로즈 린 엄마의 마음이 이해가 되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로즈 린 정도의 재능이라면 분명 로즈 린은 아무런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면 되는데, 그러기엔 걸림돌이 너무 많았다. 어찌 보면 로즈 린 엄마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로즈 린 이제 정신을 차려야 해. 애들이 너무 불쌍하잖아. 아이를 낳았으면 책임을 지는 것도 엄마의 몫이야.

 로즈 린이 응급실에 실려간 아이를 두고 노래를 부르러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안절부절못할 때부터 나는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응급실에 아이를 두고 꿈을 찾아 노래를 부르러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지금 이 순간 아이가 제일 필요한 건 엄마인데, 응급실에 실려간 아이를 두고 아무렇지도 않게 일을 하러 갈 수 있는 엄마는 얼마나 되는가.

 이쯤에서 나는 주인공에게 과잉 공감되어 눈물을 주체할 수 없게 된다. 옆자리 남편은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있는데, 나는 혼자 훌쩍거리면서 어쩌질 못하고, 유난히 잔병치례가 많던 딸아이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매일 병원을 들락날락 거리며 이제 출근 따위는 엄두도 못 내겠다고 생각한 시절이 계속 떠올랐다. 독하게 우는 아이를 두고 출근은 못하겠다 싶어. 나도 그렇게 경력단절 여성의 대열에 들어섰다.

 로즈 린도 엄마의 역할을 포기할 순 없었나 보다. 깨끗이 집을 치우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살아보지만 로즈 린의 마음을 짐작하는 것은 엄마뿐이다. 그렇게 이제 생활인이 되어 자신의 인생과 두 아이를 책임지라고 로즈 린에게 말하던 엄마도 꿈을 잃은 딸의 모습을 보긴 안타깝다. 게다가 딸은 너무 젊지 않은가.

 “ 로즈 린, 엄마는 약사가 되고 싶었어. 대학을 가서 공부도 하고, 약사가 되는 게 꿈이었어. 하지만 너를 낳고 나는 너의 엄마가 되기로 했지. 나는 오히려 네 엄마가 되는 편이 더 쉬웠어. 하지만 로즈 린, 너에게 책임감을 가지라는 말이었지. 꿈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었어. 나는 여기서 멀리 나아가 보지 못했지만 너는 나와 달리 네가 원하는 것을 해보길 바라.”  

 꿈을 찾아 집 밖을 나간 로즈 린들과 아직도 집을 벗어나지 못한 많은 로즈 린들. 결혼 육아와 함께 지금 수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로즈 린들은 아마 로즈 린의 엄마가 얘기한 바로 이 대목에서 서성이고 있을 것이다. 나의 꿈, 가정, 육아 사이에서 고민과 선택을 해야 하는 이 땅의 로즈 린들에게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다.  

 엄마의 응원에 로즈 린은 엄마가 20년 동안, 빵집에서 모은 돈을 받아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네슈빌로 향한다. 그리고 그녀는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영화가 끝나고, 자신의 인생과 아이의 인생을 책임지는 엄마의 자세에 대해 생각해 본다. 전통 여성관에서 엄마는 집에서 아이를 돌보고 가사를 돌보고 아이를 훌륭하게 키워내야 했다. 그래야 좋은 엄마, 현모양처로 인정을 받는다. 이제 여기에 한 가지 더 얹어져 엄마는 가정을 잘 돌보고, 사회생활과 경제적 능력까지 있으면 금상첨화다. 아, 어렵다. 엄마는 꿈을 찾아 밖으로 나가지만 집안을 내팽겨 칠 수는 없다. 이 또한 엄마의 숙명이다. 그래서 엄마는 그 어딘가에서 계속 고민을 한다. 가정과 사회, 안에서 엄마가 완벽히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자리는 어디쯤인가?  


  주말엔 우연한 기회로 오정희 선생님의 강연을 들었다. 문학의 원천, 문학과 삶, 문학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주제로 얘기했으나 강의 내내 적당히 긴장을 하고, 본인의 속 얘기를 차분하게 들려주시는 모습이 그저 평범한 옆집 할머니의 지나온 얘기를 듣는 듯 평안하고, 아득한 시간이었다. 스무 살에 등단하여 50여 년을 넘게 글을 쓰신 분이 얘기하는 문학과 삶의 이야기를 들으며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공감이 되어 두 시간 내내 손을 바쁘게 움직여 선생님의 말씀을 받아 적었다. 그중, 얼마 전에 본 영화 <와일드 로즈>와 겹쳐지며 누군가의 엄마이며 꿈을 져버리고 싶지 않은 40대의 내가 밑줄을 쳐 둔 대목은 바로 여기.

 “ 내 삶은 책상과 밥상을 끌어안고 살아온 삶이라 얘기한다. 내 존재 자체가 없어져 버릴 것 같은 모성을 갖게 되고 내 인생의 책임을 모성에 전가하면서 회피해 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끊임없는 성찰을 하며 버텨왔다. 내가 부엌에 책상을 두지 않고 벌판에 책상을 뒀다면 이야기가 또 달라졌을 것이다. ”  

  밥상을 끌어안고, 책상을 끌어안고 50년이 넘게 글을 쓴 오정희 작가도 잘 써지지 않고 힘이 들 때, 이렇게 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회의가 들 때, 차라리 책상을 박차고 일어날 수 있게 아이가 우는 것이 오히려 구원으로 느껴지는 때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가슴 속의 열정으로 자신의 열정과 쓰고 싶은 마음을 일상에 매몰되게 하지 않게 하기 위해 부단히 쓰고 또 쓴 시간이 지금이 되었다고.

 가끔 이 모든 게 다 자식 때문이라는 모양 좋은 핑계를 두고, 어쩌면 내 자신의 본모습을 숨기기도 한다. 사실 나는 이 부지런하고 근면해야만 하는 노동 시장에서 도망치고 싶다고, 두 개를 다 하기에 나는 너무 작은 사람이라고. 그리고 한 편으로 후회를 하고, 이 자리에 안주하기도 한다. 그러니 진정 원한다면 핑계 따위 대지 말고 무조건 노력하라는 말이 아니다. 하늘이 선택해 재능을 주신 것 같은 오정희 선생님도 이렇게 50년을 책상과 밥상을 사이에 두고 어쩌질 못했다는 얘기다. 그러니 내겐, 또 우리에겐 어쩌면 당연한 게 아닌가? 우리가 책상과 밥상 사이에서, 로즈린이 무대와 집 사이에서 고민을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 사이에서 우물쭈물 어정쩡하게 헤매는 것이 삶이며 그 과정과 선택이 나를 만들 것이다. 책상을 선택했다고 한들, 밥상을 선택했다고 한들, 집을 선택했다고 집 밖을 선택했다고 성공과 실패로 나뉘진 않는다. 못 가본 길을 두고 우리는 후회를 하겠지만 그 선택의 순간에서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택을 하길 기도할 뿐이다. 그리고 늘 가만히 자신의 내면을 바라볼 수 있기를. 그리고 나의 욕망에 솔직하고 , 충실하기를. 누구의 엄마이며 아내로 그리고 내 자신의 이름으로 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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