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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푸레나무 식탁 Oct 16. 2019

식탁 일기 -  사십 년 만에 깨달은 조상의 지혜

집이 나갔다. 8년 동안을 산 정든 집이.

비록 동향에 저층이라 해가 들지 않는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가졌지만. 딸애가 4살 때 이사와 초등 5학년을 마칠 때까지 아마 아이의 유년 시절의 기억을 제일 많이 가지고 있는 집이 될 게다.

올 겨울 이사를 앞두고 작년 가을부터 내놓은 집은 영 계약될 기미가 없어서 초조해하고 있던 중이었다. 한글날 휴일을 맞이해 네 집이 집을 보러 온다는 얘기를 듣고, 어떻게든 이 기회를 십분 활용하지 않으면 안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 놓치면 전세금 빼서 이사 가는 것을 걱정하며 가을, 겨울을 다 보내야 될 거란 생각에 먼저 인터넷을 검색해봤다. 우선  ‘집 잘 나가게 하는 법’을 검색했다. 필요 없는 물건은 다 버리고 , 잔짐은 없게 한다. 집은 최대한 밝게, 커튼을 다 열고, 불은 다 켜 놓는다. 클래식을 켜 놓고, 빵이나 커피 향을 나게 한다. 이 정도는 어렵지 않아 보였고, 검색하는 와중엔 이게 말이 되나 싶은 것도 있었다. 가위를 훔쳐와 집 현관에 달기, 가위를 신발장 맨 위칸에 올려두기, 버선을 뒤집어 놓기, 연탄집게를 가져와 달아 놓기, 명태에 주소 이름을 써 놓고 달아 두기, 부적을 쓰기, 소의 코뚜레를 가져와 현관문에 달기 등등 40년 넘게 살면서 한 번도 듣지도 보지도 못한 방법들이 속출했다. 당장 가위를 훔쳐 올 수도 없고, 요즘 세상에 연탄집게는 또 어디서 구할지도 미지수고, 명태에 주소 이름 써 놓고 걸어두는 것도 좀 남사스러운 거 아닌가 싶어서 그중 제일 소극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가위를 신발장 맨 윗 칸에 올려두기. 사실 뭐 딱히 어려운 방법도 아니고 이 정도는 미신 같지도 않고, 안 되면 말아도 된다는 생각에 가위를 신발장 맨 위칸에 올려두고, 오래간만에 온 집안을 깨끗하게 쓸고 닦았다. 손님 집 보러 온다는 시간에 맞춰 화장실, 베란다까지 물청소 싹 해두고 건조까지 해두고, 집안 곳곳 널브러져 있던 짐들은 일단 안 보이게 쑤셔 넣고, 커피 내리고, 라디오도 은은하게 틀어 두고 네 팀을 맞았다. 휴일이지만 시간대별로 방문하는 손님 덕에 내 집에서 밥도 편히 먹을 수 없었고, 괜히 화장실 간 시간에 초인종 울릴까 봐 화장실도 눈치 보며 가고, 식구들 쫓아다니면서 집안을 치우다 보니 이것도 힘든 일이라 집 보여 준다고 몇 달을 집안을 깨끗이 유지하는 것도 쉽지는 않겠다 싶었다. 요즘 거래가 잘 안 된다는데 과연 오늘 하루 만에 보고 가서 집이 계약될까 걱정도 됐는데, 다음날 바로 연락이 왔다. 집을 한 번 다시 보고 싶다고. 오전에 남편이랑 외출하다가 그 전화를 받자마자 다시 집으로 와서 또 창문을 활짝 열고, 치우면서도 설마 이렇게 바로 나갈까 싶기도 했는데, 웬걸, 바로 계약을 한다는 것이다. 집 보여준지 하루 만에 계약이라니! 가위의 효과인가? 우연의 일치인지 아닌지 몰라도 아니 조상님들은 대체 어떻게 집에 가위를 신발장에 올려두면 집이 나간다는 사실을 알았냐는 말이다.


 그러면서 불현듯 떠오른 기억 하나. 딸애는 작년에 발가락에 사마귀로 엄청 고생을 했다. 처음엔 하나가 올라왔고, 그 후엔 작은 것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잘 걸어 다니기도 힘들 정도였는데, 본인도 그게 뭔지 모르고 엄마한테도 말을 하지 않아서 딸애 발에 사마귀가 있다는 것을 너무 한참 후에나 알게 된 것이다. 생긴 것은 티눈 같기도 하고 사마귀 같기도 한데, 어쨌든 피부과에서 의사가 해준 진단은 사마귀였다. 치료법은 여러 개가 있다고 했는데, 냉동치료요법과 레이저 요법, 약물요법이 있다고 했다. 냉동치료요법은 사마귀를 얼려서 뽑아내는 것인데 한 번에 시술되지도 않고, 없어진 후 또 생길 수도 있고, 아프기도 하댔다. 레이저 요법도 마찬가지 레이저를 이용해 없애는 건데 이것도 꽤 여러 차례 시술하고, 통증도 있다고. 제일 편한 것은 약물치료지만 사마귀가 바로 빠지진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에 선택은 환자의 몫,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된다고 했다. 뭐 어떤 것을 추천해줬으면 좋으련만 추천도 안 해주고 알아서 하라는 의사 선생님을 만난 덕에 일단 쉬운 것부터 하자고 약물치료를 했는데, 약물치료란 그저 발을 깨끗하게 씻고 매일 사마귀 자리에 약을 바르는 게 다였다. 살을 불려서 사마귀를 빼내는 방법이었는데. 몇 달을 발라도 과연 살이 불어서 사마귀가 떼어질까 싶게 차도가 없었다. 냉동 치료나 레이저 치료를 할까도 했는데, 본인은 아픈 것은 싫다고, 일단 좀 더 버텨 본다고 해서 몇 달을 매일같이 약을 발랐는데도 작은 사마귀만 떼어지고 다시 생기고를 반복해서 뭔가 다른 대안이 필요했다. 일단 시술은 최대한 미루고 다른 방법이 없나 하고 인터넷을 뒤져봤는데(왜 그때야 뒤져볼 생각을 했는지), 사마귀엔 율무가 좋단다. 이 또한 처음 들어본 얘기. 볶지 않은 율무가루를 물에 개어서 사마귀 위에 붙여 두면 바로 사마귀가 빠진다는 것인데 정말 효과만 있으면 냉동치료니 레이저 치료보다 훨씬 쉽기도 하고, 치료비도 들지 않는 치료법이 될 것이다. 자세히 찾아보니 볶은 율무는 안 된다, 볶지 않은 율무여야 한다. 율무를 집에서 갈아야 한다. 율무가루를 그냥 써도 된다. 의견이 분분했지만 일단 집 앞 마트에는 볶은 율무밖에 팔지 않길래 이 또한 밑져야 본전이지 라는 심정으로 율무를 개어 딸에 발가락에 발랐다. 그렇게 독한 약으로 몇 달을 발랐는데도 차도가 없었는데, 고작 율무가루가 바로 효과가 나타나겠어?라고 내심 생각하며 이 방법으로 안 되면 다음엔 레이저나 냉동치료를 받자고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율무가루 치료 일주일째, 지난밤에 율무 개어 동동 매어둔 발가락에서 율무 테이프를 떼어내자마자 딸이 깜짝 놀란다. “엄마 사마귀 다 없어졌어!”,“뭐라고?!”  세상에 진짜였다. 다닥다닥 붙은 사마귀가 진짜 밤새 사라진 것이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광경. 분명 지난밤엔 그대로 있었던 사마귀가 하룻밤 새 어디로 간 것인가? 이렇게 쉬운 치료가 어디 있단 말인가? 세상에 이 쉬운 방법을 왜 이때까지 아무도 나에게 알려준 자가 없는가 진짜 억울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워낙 약을 많이 발라서 그 효과가 이제 나타난 건가 하는 의심도 살짝 들었는데, 얼마 후, 딸 발에 또 작은 사마귀 하나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바로 이때다, 진짜인지 아닌지 실험해 볼 기회, 약은 바르지 말고 처음부터 율무로 해보자! 하고 바로 율무 치료 실시, 아니나 다를까 작은 사마귀는 정말 하룻밤만에 바로 떨어진 것이다. 두 번의 자체 실험 결과, 사마귀는 냉동치료니 레이저 치료니, 약물 치료니 다 필요 없구나, 이젠 어떤 사마귀가 와도 무서울 것이 없다. 민간치료법이니 미신이니 이러고 시도도 해보지 않은 분이 있다면 사마귀엔 율무를 꼭 시도해보시길 추천하며, 지금도 가끔 자주 가는 카페에 사마귀 치료에 대한 질문이 달리면 꼭 잊지 않고 사마귀엔 율무를 추천하는 댓글을 꼭 쓴다.

 그리하여 오늘은 사십 년을 넘게 살면서 내가 몰랐던 두 가지 이야기를 쓴다. 40년이라면 젊은이는 깜짝 놀랄 만큼 아득한 시간이겠지만 아직도 이렇게 모르는 게 많다. 아는 줄 알고 넘어간 것도 많고, 어떤 것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아예 모르는 것들도 부지기수다. 이쯤 되면 아예 귀를 닫고 살았던 미신이니 민간요법에도 귀가 열리는 그런 나이인가 보다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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