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eat, 스마트폰과 태블릿 PC여 나오라!)
이 전쟁이 시작된 지는 언제부터일까?
평화로운 우리 집에 휴대폰, 휴대용 태블릿 PC가 등장한 지는 이미 십 년도 더 됐는데, 잠잠하던 우리 집이 휴대폰과 태블릿 PC의 전쟁터로 바뀐 지는 언제부터였을까 되짚어 본다.
멋모르던 딸이 엄마의 스마트폰으로 사진이나 찍고, 본인의 과거 사진을 추억하며 만지작 거리다 태블릿 PC로 애니메이션이나 볼 때는 미처 짐작하지도 못한 어마어마한 사건.
딸 애가 태블릿 PC와 합체됐다.
아이는 음악을 사랑하게 되었다. 마치 12살의 나처럼. 음악을 사랑한 경험이 있는 엄마로서, 지금도 음악을 사랑하고 있는 엄마로서 딸의 음악에 대한 사랑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엄마도 12살 때는 이문세의 별밤을 12시까지 듣고, 그중 제일가는 잼 콘서트는 따로 녹음해서 돌리고 또 돌려 테이프가 늘어날 때까지 듣고, 라디오에서 언제 나올지 모르는 좋은 노래를 바로 녹음하기 위해 라디오 앞에서 상주하고 앉아 있었던 나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나의 주방 싱크대 위 라디오는 자는 시간 빼고는 늘 켜 있으니 딸의 음악사랑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우리 딸은 음악을 듣지 않고 본다.
시대는 변했다. 90년대 라디오를 얼싸안고 라디오에서 들려주는 노래 한 곡 한 곡을 감지덕지 주워듣던 시대가 아닌 것이다. 딸은 아빠가 흔쾌히 가입해준 멜론에 접속해서 언제 어디서 무엇이라도 들을 수 있다. 어디 들을 수만 있나, 궁금하면 볼 수도 있다. 신곡을 발표한 나의 가수들의 콘셉트를 보고 싶으면 뮤직비디오 틀고 가사까지 정확하게 스크롤로 올려가며 노래를 보고 듣는다. 얼마나 편한 세상인가 원하는 만큼 신나게 보고 들을 수 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서 발생한다.
까다로운 엄마를 둔 관계로 스마트폰이 없는 딸은 왜 나만 스마트폰이 없냐는 피해의식과 함께 그나마 집에 오면 아빠가 쓰다 남겨둔 10년이 다 된 태블릿 PC를 제 것처럼 사용하고 있다. 세월의 흔적으로 모서리는 다 찍히고 금도 갔지만 스카치테이프로 칭칭 감아서 딸의 멜론 전용 기계로 사용하고 있는데, 하교하는 즉시 엄마가 어딘가 쓱 치워 놓은 태블릿 PC를 꺼내 귀에 이어폰을 끼고 계속 음악을 보면서 듣는다. 그래, 뭐 여기까지도 괜찮다. 학교에서 얼마나 힘들었는가? 너에게도 쉴 시간이 필요해. 그리고 학원을 다녀와 저녁을 먹고 나서 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는다. 그래 학원도 다녀오기 얼마나 힘드니 쉴 시간이 필요해. 한 참 음악을 보고 듣다가. 더 이상 미루면 안 될 만큼 숙제할 시간이 다가온다. 태블릿 PC를 들고 방으로 간다. 귀에다 이어폰을 꽂고 숙제를 한다. 태블릿 PC 화면에서 트와이스와 볼빨간, 악뮤의 노래 가사들이 스크롤로 올라가고, 숙제하다 막히면 태블릿 PC에 눈은 고정, 노래는 계속 따라 부르고 있다. 여기서부턴 엄마는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한다. 대체 공부하면서 그렇게 신나는 노래를 들어도 공부가 되긴 되는 거냐? 하고 빽 소리지르기 일보 직전, 나의 과거를 또 돌이켜본다. 그래 나도 공부할 때 이어폰을 귀에서 빼지 않는 학생이었으니까. 나도 그러긴 했는데, 그거랑 저거랑은 뭔가 달라 보인다. 나는 공부하는 동안 음악을 BGM으로 듣고 있었는데, 사실 공부하다 보면 안 들리기도 하고, 너무 가사가 들리는 노래들은 집중에 방해가 되니 가사가 들리지 않는 팝송이나 클래식 위주로 듣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 딸은 가사를 눈으로 읽으면서 공부를 하고 앉아 있으니 저건 공부를 하며 음악을 BGM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듣기 위해 공부하는 척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강한 의심이 들기 시작한다.
참다 못해 한 마디 한다.
- 딸아, 공부할 때는 이어폰을 빼고 해 주면 안 되겠니?
- 나는 공부할 때 음악이 없으면 공부를 할 수가 없어.
- 그럼 공부할 때 만이라도 음악 취향을 바꿔서 할 수는 없겠니?
- 그런 음악은 내 취향이 아니란 말이야.
- 그럼 이어폰이라도 빼고 들을 순 없겠니? 엄마는 네가 이어폰을 꽂고 보면 안 될
동영상을 보는 게 아닌가 하고 강한 의심이 든다.
- 엄만 나를 못 믿어? 그럼 엄마가 시끄럽다고 뭐라 할 거잖아?
- 그럼 차라리 음악을 다 듣고 공부를 하면 안 되겠니?
- 그럼 엄마가 공부 안 하고 음악만 듣는다고 뭐라 할 거잖아?
이쯤 되면 신경전이다.
- 너 그럴 거면 공부하지 마. 그게 무슨 공부가 된다고. 그렇게 할 거면 하지 마.
- 알았어 알았다고 안 들으면 되잖아.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로 이어지며 언성이 오가고 딸애가 자기 방으로 들어가 울다가 잠이 드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전쟁.
언제부터였는가. 작년 말, 올해 초부터였는가 늘 똑같은 레퍼토리로 시작해 똑같은 마무리로 끝나는 이 지긋지긋한 막장 홈드라마는 연출도 주연배우도 바뀌지 않은 채 매일 밤마다 우리 집에서 벌어지는 풍경이었다. 게다가 주연배우들이 피곤하기라도 한 날이면 수위는 점점 높아졌다.
딸애한테 싫은 소리 한 번 안 하고, 친구 같은 아빠를 자처하는 남편도 스마트기기 문제에서는 엄마와 같은 노선을 취하다 보니 딸애는 남들 다 가지고 다니는 스마트폰도 없는데, 집에서 내 맘대로 음악도 못 듣는다는 생각 때문에 세상에서 제일 억울한 초등학생이 되어 밤마다 엄마 아빠는 내 맘도 모르고! 를 외치고 잠들기 일수였다.
그래 해라 해! 니 맘대로 듣고 보고 다 해라! 고 외치고 싶지만 다른 무엇보다 스마트기기 사용은 어떻게든 최대한 미루고 싶어 스마트폰을 안 사주고 버티고 있었는데, 스마트폰만 막으면 될 것이라고 생각한 우리를 비웃기라도 한 듯 문제는 도처에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음악 듣는 게 나쁜 건 아니다. 오히려 청소년기에 음악이란 권장사항이다. 지친 영혼에게 음악은 얼마나 큰 위안과 안식, 치유와 카타르시스를 주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딸애가 음악을 듣는다고 태블릿 PC에 눈을 고정하고 귀를 이어폰을 막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기에는 엄청난 참을성이 필요하다.
고함도 치고, 얼러도 보고, 싸우고, 혼내고, 미안하고, 반성도 해봤지만 지난 일 년간 우리 가족 최대 고민은 바로 저 스마트기기를 어째야 하나였다. 이미 십 년쯤 써서 고장 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기계니 내가 부숴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언젠가 딸이 자기가 그렇게 애지중지 하며 음악을 듣던 태블릿 PC를 엄마가 부숴버렸다는 것을 알면 심각한 상처를 받을 것 같단 생각에 내내 태블릿 PC가 자연사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저 물건을 어찌나 튼튼하게 잘도 만들어 놨는지 성능은 좀 떨어져도 절대로 고장 나지는 않는다. 버릴 수도 부술 수도 숨길 수도 없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이렇게 정말 전쟁 같은 사계절을 보내야 하나 싶을 때, 뭔가 공기의 흐름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하루 종일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는 딸에게 나는 제발 이어폰을 빼고 네 할 일을 하고 시간 좀 효율적으로 쓰자고 큰 소리를 치고, 딸은 문을 쾅 닫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정말 매일 똑같은 소리 나도 너무 지겹고, 그래 니 인생 네가 살지 내가 사냐 약이 바짝 올라, 나도 안방 침대에 누워 에라 모르겠다. 하고 있는데. 건넌방에서 딸애 울음소리가 다 들린다. 뭐가 그렇게 억울한지 (복에 겨워서 정말) 세상에서 제일 슬프게 울고 있는 딸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호흡을 길게 내쉰다. 그냥 둬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내일 얘기해야 하나, 아니면 한 마디 더 쏘아붙일까 최대 효과를 끌어낼 최선의 선택지를 생각해본다. 마음 같았으면 한 번 더 쏘아붙이고 내가 이기고 싶다. 그러다가 문득 저 작은 애가 안쓰럽다. 그래, 너도 네 엄마가 내가 아니라 다른 엄마였으면 얘기가 달려졌을 텐데. 딸 입장에선 귀에 이어폰 꽂고 있다고 사계절 내내 잔소리하는 엄마도 정말 참기 싫겠지. 나름 나쁜 짓 안 하고 반듯하게 살고 있는 딸에게 우리 엄마는 너무 많은 걸 요구하는 엄마일 수도 있다.
- 엄마가 소리 질러서 기분 안 좋지? 엄마가 소지 지른 건 미안해.
- 맨날 화내고 맨날 미안 하대고. 엄만 왜 맨날 똑같아? 엉엉엉
- (적반하장인 건가? 싶은데) 소리 지른 건 그런데, 계속 음악 듣느라 네가 할 일을 제대로 못 끝내고 절절 매고 있는 것을 엄마가 보기가 힘들어서 그래. 음악 안 듣고 하면 금방 끝낼 일들은 자꾸 노래 부르고 음악 듣고 하다가 늘 시간 없어서 힘들어하잖아.
- 그래도 내가 힘들고 내가 알아서 하는데 엄마가 왜 그래? 어차피 내가 다 알아서 하잖아.
- 늘 잠 모자라서 피곤해하잖아. 네가 공부하는 양이 늦은 밤까지 할 양이 아닌데 음악 듣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제대로 쉬지도 못 하고, 놀지도 못하잖아.
- 나는 그냥 그게 쉬는 거고 노는 거고 공부하는 건데 엄마가 왜 그래. 내가 알아서 하는 거잖아 어차피.
- ( 아 이 놀라운 자의식. 그래 너는 이제 독립하려고 그러는구나)
그래 알았어. 그럼 네가 무슨 시간에 뭐하는지 신경 안 쓸게. 근데 엄마는 네가 시간을 좀 더 효율적으로 썼으면 좋겠어. 음악 듣는 건 좋은데 그거 때문에 다른 일 할 때 방해가 되는 건 보기가 답답하다.
그런 밤이었다.
그리고 사실 내일이라고 뭐가 달라질까 싶었다. 그리고 다음날 저녁, 학원에서 돌아온 딸이 말한다.
- 00 패드 안방에 놨어. 나 공부 끝내고 노래 30분 이상 들을 거야. 할 일 빨리 끝내면 그래도 되지?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태블릿 PC를 안방에 가져다 놓고, 자기 할 일을 하는 딸의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이는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 아이구, 우리 딸, 왜 이렇게 알아서 잘해?
- 할 거 다 하고 속 편하게 들으면 더 좋잖아. 할 일 다 하면 음악 듣는데 터치 안 하는 거 맞지?
미묘한 차이지만 이것은 긍정적인 변화다.
그리고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일주일째.
작심삼일 아니냐고? 그렇게 허무하게 끝날 뻔했으나 3일째 나눈 딸과의 대화.
- 딸아, 작심삼일이라고 오늘로 끝은 아니겠지?
- ㅋㅋㅋ 고사성어가 틀리지 않음을 내가 보여줘야 하는데 ㅋㅋㅋ
그리하여 우리 집에서 태블릿 PC와 음악과 함께 평화로운지 일주일째.
스마트 기기와 청소년, 음악과 내 딸. 아니 어쩌면 사춘기 딸과 꼰대 엄마의 대결, 엄마 인생 최대의 위기를 시작하며, 이 위태롭고 아슬아슬한 평화를 무사히 이어가며 서로에게 너무 큰 상처는 남기지 않고 이 또한 지나갈 수 있을 것인가? 평화로운 결말을 진심으로 바라고, 또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