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자면 나도 공부하기가 되게 싫던 아이였던 것이 분명하다.
초등 5학년 때인가, 요새 아이들도 많이 하는 수학 연산 학습지를 나도 하고 있었다. 손바닥만 한 학습지를 하루에 몇 장씩 풀어두면 일주일에 한 번씩 담당 선생님이 오셔서 확인하고 새 문제집을 가져다주고 가는 형식이었다. 그때부터 수학을 싫어했던 나는 하루에 두 세장만 풀어도 되는 그 문제집이 그렇게도 풀기가 싫어서 늘 밀리기 일수였다. 밀리다 혼나고, 밀리다 풀고, 밀려서 풀다가 혼나고, 틀려서 혼나고. 혼나서 화내고, 화내서 혼나고. 수학 학습지만 보면 밀려오는 그 지긋지긋함과 무기력해짐, 짜증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그날도 영락없이 수학 학습지를 있는 대로 다 밀려 놨다. 선생님이 오는 시간까진 더 이상 내 선에서 수습할 수 없는 상황. 시간은 다가오고, 아무리 풀어도 지금부터 푼다고 문제를 풀 수도 없고, 풀지 않았다고 엄마한테 혼나기도 싫고, 선생님께 꾸중 듣기도 싫은 날. 마침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풀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풀 시간도 없고, 풀 마음도 없는 나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그때 우리 집은 작은 마당이 있는 주택이었는데, 마당에서 몇 발짝 나가 안에서 대문을 열어 줘야 집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구조였다. 하지만 대문에서 발꿈치만 들면 집 안이 훤히 보이고, 담장도 낮은 집이라서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대문 밖에서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그런 집이었다. 선생님이 올 시간이 되자 마루에 뻗어 있던 나는 슬그머니 방 안으로 들어갔다. 초인종이 울리고,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면 쪼르르 나가서 문을 열었어야 하는데, 나는 이불속으로 기어들어갔다. 쿵쿵쿵, 쾅쾅쾅, 딩동딩동, 00입니다! 00야 집에 있니? 나를 부르는 소리가 계속됐으나 나는 이불속에서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부디 저 선생님이 얼른 포기하고 다음 집으로 가시기만을 간절히 바라며 누워 있었다. 쿵쿵 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엄마 모르게 저지르는 일생일대의 반항에 조마조마하며. 제발 가라! 가라고! 어서 좀 가라고! 그때 그 선생님은 키가 큰 남자 선생님이었는데, 사계절 양복을 입고 오셨다. 더운 날, 추운 날, 그냥 양복만 입고 가만히 있는 것도 힘들 텐데 양복을 입고 다니며 가정방문까지 하는 선생님한테 연락도 없이 문을 걸어 잠그고 인기척도 하지 않다니. 그것도 숙제를 다 하지 않아서! 괘씸하기 그지없지만 어쨌든 선생님은 내 이름을 부르다가 지쳐 돌아갔고, 나는 지긋지긋한 연산 문제집을 풀지 않고, 그 날을 넘어갔다. 아무리 기억해도 그 후의 상황이 기억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 일은 엄마한테 들키진 않고 완전범죄로 넘어간 모양이다. 그러나 어찌어찌 넘어갔고, 아무도 그 일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내 마음엔 그게 무슨 원죄처럼 남아 가끔씩 기억나면 누구한테 들킬까 봐 무의식 저 밑바닥에 꽁꽁 숨겨두고 이때껏 절대 발설하지 않았다. 생애 최초의 엄청난 거짓말이었다. 그리고 30년이 흘렀지만 이 이야기는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이미 초등 2학년 때, 연산 문제집 하루 한 장을 울면서 푸는 딸에게도 말하지 못한 일이다. 하지만 그 지겨운 마음은 너무나 이해기에 나는 절대 딸에게 방문 선생님이 오시는 연산 학습지를 시키지 않는다. 비하인드 스토리를 우리 딸이 알면 깜짝 놀라긴 하겠지만.
갑자기 왜 연산 학습지 얘기를 하냐면
목요일은 일주일에 한 번, 학생 집으로 방문해 수업을 하는 날이다. 아직 아이가 어려서 학생 집으로 직접 방문해 수업을 하는데. 요 몇 주간 엘리베이터를 땡 하고 내리면 아이의 집 현관 문이 활짝 열려있다. 뭣모르던 1학년 때부터 수업을 하고 이제 2학년이 된 아이인데, 작년엔 늘 자고 있거나, 아프고 있거나, 놀고 있다가 내가 오면 졸리고, 아프고, 피곤해서 울면서 책상 앞으로 와서 앉아 있던 아이였다. 아이도 큰 건지, 아님 진짜로 이 수업이 즐거워졌는지, 지지난 주에 아이는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책상을 손수 다 펴 두고, 책을 읽고 나를 맞았고. 지난주엔 현관 앞에 나와 엘리베이터 앞에서 책을 한 손에 들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 주도 역시나 문을 활짝 열어 두고 엘리베이터가 땡 하고 멈추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아이는 쪼르르 뛰어나오고 있는 것이다.
아이의 환대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저 문을 열어 두고, 책상을 펴 두고, 선생님이 오는 시간 현관 앞을 서성인 것뿐인데, 네 시쯤이 되면 아이가 나를 기억하고, 책상을 펴고, 수업할 책을 들고 현관 앞을 몇 번씩 쳐다봤을 그 시간을 혼자 상상하며 나는 혼자 괜히 흐뭇해진다.
계산하지 않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은 상대방을 움직인다. 기억하고, 준비하고, 자리를 만들어 주는 일은 사소하지만 공기의 흐름을 바꾼다. 아이가 도착하기 전에 간식을 식탁 위에 올려 두는 일, 학생들이 오기 전에 책상을 정돈해 두는 일, 손님이 오기 전에 이불을 빨고 집안을 정돈하는 일, 남편의 늦은 귀가에 작은 불 하나를 켜 두는 일. 이렇듯 작은 환대들이 서로의 가슴에 밝고 따뜻한 불 하나씩을 켜준다. 바람은 점점 쌀쌀해지고, 현관문을 활짝 열어 두고 서로를 환대하기 좋은 계절이다. 아이의 모습에 또 하나를 배운다.
덧, 차마 환대하지 못했던 그 시절 수학 방문 선생님. 그 후로 삼십 년간 죄책감을 느끼며 살았어요. 사춘기 시절 전두엽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 철없는 제 행동으로 얼마나 마음이 상하셨을지... 너무 늦긴 했지만 당시 저의 행동을 사죄합니다. 정말 죄송해요. 그렇게 수학에 재미를 못 붙이고 선생님이나 골탕 먹인 저는 그 대가로 급기야는 수포자가 되어, 수학 때문에 고생도 많이 하고, 딸아이도 수포자가 될까 봐 전전긍긍하며 살고 있어요. 인과응보란 게 이런 건지... 다양한 아이들을 만나며 문득문득 철없던 저의 어린 시절을 반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