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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푸레나무 식탁 Nov 10. 2019

식탁 일기 - 운동만이 살길이다

발레를 자의적 타의적으로 그만둔 지 4개월째.

남편의 입원과 퇴원, 병가를 핑계로 발레를 하러 가지 않았다. 날도 덥고, 가뜩이나 움직이기 싫은데 좋은 핑곗거리가 생겼다며 운동을 그만둔 지 4개월째. 아 운동을 안 하니 이렇게 편하구나. 아침마다 늦잠도 잘 수 있고, 하루가 여유롭다며 게으른 하루하루를 즐기고 있었는데, 드디어 몸에 신호가 왔다.

환절기다. 가을인가 싶다가 바로 겨울의 길목에 들어서 버렸다. 아니나 다를까 4개월 내내 그 흔한 스트레칭 한 번 안 하고 집에만 있으면 누워 있던 몸이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먼저 편두통이 시작됐다. 자고 일어나면 목, 코가 칼칼하면서 왼쪽 관자놀이가 당기기 시작한다. 잠깐 이러다 말겠지 싶어도 하루 종일 편두통이 계속된다. 편두통이 시작되면 뒷골, 뒷목, 어깨가 3종 세트로 당긴다. 아무리 고개를 돌리며 목을 풀고 마사지기를 해봐도 소용없다. 뻣뻣하게 굳은 근육과 편두통이 시작되면 소화가 안 된다. 아침에 체할까 봐 새 모이만큼 먹은 양도 소화시키지 못하고, 몸이 이러다 보니 또 움직이기가 싫고 눕고만 싶다. 의욕은 저하되고, 무기력은 무기력을 부르고, 끙끙거리고 하루를 살고 난 저녁 무렵에야 제 컨디션을 찾을까 말까 한다.

 처음엔 그저 어제 잠을 잘 못 잤나 보다 싶었고, 둘째 날은 오늘 미세먼지라 몸이 예민하게 반응하나 보다 싶었다. 셋째 날은 뭘 잘 못 먹었나 싶었는데. 곰곰이 들여다보니 이유는 따로 있었다. 운동 부족. 몸을 움직이지 않으니 소화도 되지 않고, 날이 추워지며 해도 들어오지 않는 집에서 하루 종일 있다 보니 무기력증과 함께 드디어 몸에서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이제, 움직여! 이대론 못 버텨! 밖으로 나가!


  어떻게든 집에서 끝까지 버티고 싶었으나 일단 뜨거운 물에 반신욕을 하고 집 밖으로 나가보기로 한다. 난방을 틀어도 그렇게 썰렁한 우리 집에서 나가 보니, 세상에 밖은 이렇게 가을 햇살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오늘 하루 집 밖을 안 나왔으면 못 느꼈을 햇빛을 온몸으로 느끼며 정처 없이 걸어 본다. 하루키처럼 뛰고, 하정우처럼 세네 시간씩 걸어야 운동 좀 했다 싶겠지만 뛰는 건 질색이고 세네 시간씩 걸으면 돌아올 때가 상상이 되지 않아 일단 만보만 걷기로 해본다. 익숙한 집 앞 산책로를 지나 낯선 길도 찾아가며 빨갛게 물든 단풍을 보며 걷는다. 모든 운동을 싫어하고, 모든 운동을 잘하지 못하지만 걷는 것만큼은 자신 있다. 계절마다 지나는 풍경이 달라지고 빨리 달리려 애쓰지 않아서 더 좋다. 그저 묵묵히 걷다 보면 어디든 닿는 곳이 있다는 것은 꽤 안심이 되는 일이다.

 이번 주엔 그래서 하루, 이틀, 삼일을 (작심삼일이 걱정되긴 하지만) 걸었다. 다행히 아침엔 그렇게도 싸늘했던 공기도 정오쯤 되면 따뜻하게 데워지고, 한 여름 그렇게도 피하고 싶었던 태양을 따라 햇빛 비추는 곳만 따라 가도 좋은 날이다. 햇빛 샤워를 받고 있는 나른한 고양이들을 만나며 해를 따라 걷다 보면 땀도 송글송글 올라오고 기분 좋게 피곤해진다. 그리고 하나 더, 이렇게 걷고 나야 소화가 되고, 추워지면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체기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만성 체함을 달고 사는 나는 조금만 춥거나, 더워지면 소화가 안 되기 시작한다. 이 급체는 정말 무시무시한 것이어서 한 번 체하면 그날은 꼼짝도 못 하고 끙끙 앓고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강제 다이어트를 해야 끝난다. 워낙 체하기도 잘 체하고, 체하는 상황도 다양해서 먹는 것도 언제 어떻게 어떤 상황에서 먹느냐가 중요하다. 몸이 안 좋거나 하면 바로 두통과 함께 체기가 올라오는데 환절기를 맞아 계속 두통과 함께 체할 것 같은 기분에 뭔가 제대로 맛있게 먹지 못하고 늘 체할 것 같은 기분을 달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3일을 해를 쬐고 만보씩 걷고 나니 그 체기도 깜쪽 같이 사라지고 드디어 뭐가 먹고 싶기 시작한다. 원인을 찾아보니 이유는 딱 하나, 모든 것의 원인과 결과는 4개월 간의 운동부족과 만보 걷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제까지 취향과 선택의 문제였던 운동이 이젠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됐다는 것을 온몸으로 깨닫는다. 더 이상 운동을 하지 않으면 그 좋아하는 맛난 것들을 먹을 수도 없고 소화시킬 수도 없다. 이제까지 노력 없이 누렸던 40년 간의 건강한 시절, 밤새 먹고 마시고 놀아도 탈 나지 않던 시절과는 진정 안녕을 고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루에 적어도 만보 걷기, 무슨 일이 있어도 나가서 어떻게든 걷고 와야 하루를 버틸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긴다는 것. 불과 한 두 달 전에도 몰랐던 사실이다. 언젠가 ‘한 시간을 걸어야 하루를 더 살 수 있다.’는 말을 들었던 것도 같은데, 무심코 지나쳤던 그 얘기가 내 얘기가 될 줄이야. 그리하여 이 환절기에 나는 죽지 않고 살기 위해 밖으로 나간다. 운동만이 살길이다. 내년이면 40대의 한 복판에 서게 되는 나이가 돼서야 온몸으로 체득한 불변의 진리다. 나만 빼고 아침마다 등산복을 입고 집 밖으로 나오는 중년의 그들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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