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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푸레나무 식탁 Nov 22. 2019

독서 일기 - 중학교 2학년 D에게

이제 너와 마지막 수업을 남기고 있구나.

우리가 처음 만난 건 작년, 네가 중학교 1학년이 되고 신학기가 시작되던 무렵이었어. 중학교에 들어가고 뭐든 열심히 하려고 하는 아들을 둔 네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지. 스스로 책을 좀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책 수업에 등록해달라는 네 얘기를 전해 듣고는 스스로 책 수업을 하겠다고 하는 중학교 1학년 남학생은 어떤 남학생일까 궁금했어.

아니나 다를까. 너는 내가 상상하는 중학교 1학년이 아니었어. 중2병이 무서워서 북한군도 못 쳐들어온다는 얘기도 있는데, 그런 중2를 목전에 둔 중1은 이렇게 바른생활 학생은 아닐 텐데 하고 말이야.

수학을 좋아해서 책은 싫다는 너는 첫 수업을 하며 좀 당황했었지. 쌤은 앞에서 이건 어떻게 생각해? 저렇게 생각해? 하고 계속 물어보지 가까스로 대답하고 나면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봐라 너라면 어땠겠니? 그렇다면 이 문제는 어떠니? 하고 계속 말을 시키고, 저는 이과형이라 단답형이 좋아요 하고 단어로 대답하는 너를 끊임없이 귀찮게 했었지.

그저 모든 경험이 처음이라 얼떨떨하게 지나간 중학교 생활 1년이 지나고 네가 중학교 2학년이 되자 너는 내게 이렇게 말했지.

 “쌤, 학교는 왜 다녀요? 선생님들은 수업 시간에 학원에서 다 배워왔을 거라고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고, 알려주지도 않은 걸 시험으로 보고, 과목마다 수행평가는 줄줄이 있어요. 학교 끝나고는 바로 학원 갔다가 매일 10시가 넘어서 오고, 학원 숙제하고. 학원 가서 배우지 않으면 학교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그냥 학원만 다니는 게 더 편할 것 같아요.”

 내가 중학교를 다닌지도 이미 30년이 지났고, 우리 딸도 아직 중학교를 보내보지 못해서 대한민국의 중학 생활은 나도 전해 듣기만 했어. 공교육이 무너졌다. 학교를 이탈하는 아이들이 늘어났다는 기사들을 봤지만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진 않았지. 그 중에서도 학교에 잘 다닐 놈들은 다 잘 다닌다고. 학원 안 다니고 할 놈들은 잘한다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어. 하지만 네가 얘기하니 좀 더 심각하게 다가오더라. 너는 정말 누구보다 학교 생활을 성실히 하고 있잖아. 수행이며 시험이며 미리미리 준비하고, 누가 시키지 않은 봉사 활동도도 알아서 하고, 학교 내외 행사도 스스로 참여하는 아이잖아. 꼭 그렇게 까지 해야 해? 적당히 하면 안 되니? 하고 물어도 “ 어차피 다 언젠간 저한테 도움되는 일이겠죠. ” 하는 너였잖아. 그런 너도 학교에 대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니 나는 놀랐어.


 어제 우리는 함께 아이들이 주인공인 책을 읽었지. <아이들의 평화는 왜 오지 않을까?>라는 책을 읽고 우리는 세계 여기저기 이주민으로 살며 고통받고 방황하는 아이들의 얘기를 했어. 먹고살기 위해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밀입국 한 프레드,  정치적 탄압을 피해 베트남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보트 피플 2세대 위빈, 난민촌에서 태어난 아이 모하메드, 한국 사장님 아빠를 따라온 경은이 등의 얘기를 읽으며 우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에서 아직도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는 것에 당황하고 놀랐었지. 책 속 사연은 모두 실화인 데다 하나같이 안타까운 일들 뿐이어서 어떤 이야기가 제일 안타까웠는지 마음속으로 되짚어 보기도 쉽지 않았어. 책 내용을 더 자세히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베트남 보트피플과 코피노, 트럼프의 이민 억제 정책, 유럽의 브렉시트, 제주도 난민 문제를 함께 얘기했어. 이 모든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되는 세상의 부당함과 불평등, 억울함은 다 우리 책상머리로 옮겨온 것 같았지. “ 우리는 모두 난민이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사실 이주민, 난민이란 단어가 더 이상 먼 얘기는 아니야. 아직 어리고 창창한 네가 만나게 될 세상에서 너는 난민도, 불법체류자도, 힘없는 이민자도 아니기 위해선 우리부터 달라져야 한다는 뻔하고 도덕적인 얘기도 했지. 하지만 새벽같이 일어나 오늘도 또 하나 수행 평가를 마치고, 학원에 들러, 내일 있을 또 다른 수행평가를 준비하는 너는 내게 이렇게 말했지.

“선생님 저도 난민 신청할 수 있어요? 자기 나라에서 못 살겠으면 난민 신청하면 된다니 저도  난민신청했으면 좋겠어요. 핀란드나 독일 이런 데서 받아 줄까요?”

 이게 이렇게 돌아가는 게 맞는 얘기니?라고 말하지 않았어. 이건 너의 공감능력의 문제가 아니야. 2013 ~ 18년 전국 초등 4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 1만 명 학생을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1년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냐 ‘는 질문에 31.7%가 그렇다. 이 같은 생각을 한 이유로는 학교 성적 압박이 40.8%라는 결과가 나왔어. 아동 청소년 자살률 증가가 4년간 55% 상승하는 세대에서 살고 있는 네가 느끼는 현실은 땅굴로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밀입국해 끼니를 밥 먹듯이 굶고 있는 아이의 삶처럼 고단하게 느껴진다는 것이지. 그래도 우린 먹고 살만 하잖아. 우리는 공부만 하면 되잖아. 이런 말들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아. ”그런데 어차피 고등학교 가도 마찬가지, 대학가도 마찬가지잖아요? 지금 보다 나아질 게 없어요. “라는 말에 나는 어른으로 무슨 말을 해줘야 할까.

  너는 난민 신청서를 써보겠다고 했어.

  한국 학생들은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학교에 가고, 학교에선 각종 수행평가로 친구들과 우정을 쌓기는커녕 평가만 당하다가, 학교에서 부족한 부분은 학교가 끝나자마자 쏜살같이 학원으로 달려가 채운다고 했지. 놀고 싶지만 놀 시간도 노는 방법도 까먹은 아이들은 새벽부터 밤까지 아무것도 자유롭게 하지 못하고 유령처럼 학교와 학원을 왔다갔다 한다고. 이런 한국의 학생들을 부디 난민으로 받아 줘 한국 학생들이 그 나이에 어울리는 꿈을 꾸고 자유롭게 살게 해 달라고.  

 근데, D야 다른 나라에선 괜찮을까? 어차피 사람 사는 데 비슷해서 어디든 그만한 고통은 있을 거야.라는 말도 하지 않았어. 어쨌든 너는 이 책을 읽으며 불법체류와 밀입국, 이민과 난민, 정치, 종교, 인종의 문제로 차별당하는 많은 얘기를 읽고 너 역시 지금 나이가 어리고 학생이라는 신분으로 너의 자유를 도둑맞은 채 자기가 태어나고 15년을 산 이 땅에서도 난민처럼 주변인처럼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잖아. 질풍노도의 시기니까 어쩔 수 없잖아라고 생각하지 않을게. 목숨을 걸고 하루하루를 투쟁해서 얻어 내는 아이들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너의 하루하루도 그만큼 힘들게 버텨내고 있다는 걸 나는 느낄 수 있었어. 우리 딸한테 쉽게 하는 말, 요즘 애들은 나약해서, 결핍이 없어서 라는 말도 할 수가 없었어. 요즘 애들은 우리 때 보다 물질적인 풍요는 차고 넘치지만 너희가 그토록 원하는 자유는 오히려 더 통제 되잖아. 이렇게 잠과 자유과 결핍된 채 사는 네가 그토록 원하는 것이 “ 그저 원 없이 계속 자는 것”인 마당에 이 땅의 미래이니 주인공이니 하는 얘기가 무슨 소용이 있겠니. 이 땅의 미래와 주인공들은 지금 이렇게 피곤해 죽겠는데, 하나도 행복하지 않은데, 미래도 기대가 되지 않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평생 간이 작아 큰 외도한 번 못해보고 그럭저럭 살아온 내가 너에게 무슨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 그래서 우리가 한 얘기는 여기쯤이었지. D야, 일단은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생각해봐. 사실 뼛속까지 모범생인 네가 당장 학교를 그만둘 수도, 이민을 가고 싶은 것도 아니잖아.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게 원 없이 자고 싶은 거밖에 없다고 말하는 너는 진짜 휴식이 필요해. 하루하루를 버티듯 살아가고 있다면 그 하루하루에 작은 기쁨들을 만들어봐. 작은 기쁨들이 네가 진짜로 원하는 일이 된다면 그럼 좀 더 버티기가 쉽겠지. 물론 이게 완벽한 해결책은 될 수 없어. 그런다고 공교육이 달라질 수도 없고, 수행평가와 시험, 평가만 남은 세상이 바뀌지는 않을 테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그렇게 하루하루 버티기만 하고 살다가 삶의 기쁨들을 다 잊는 다면 네가 아무리 사회가 원하는 학생이, 신입사원이, 인간이 된다고 한들 너는 행복하겠니? ( 하다못해 좋아하는 여학생이라도 생긴다면 조금 더 버틸힘이 생기련만 하고 말하려 했는데, 연애는 부모님이 싫어하시겠지? ^^;)


 D야.

이렇게 말을 해봐도 너보다 20년도 넘게 산 나도, 정답을 줄 수 없네.

하지만 너는 이미 자신의 인생을 성실하게 꾸려 가려고 하는 마음을 가졌어. 누구보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기에 아마 지금 너의 결핍과 불평등한 상황이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는 것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너에겐 네 인생을 네 마음대로 꾸려가려는 의지가 있다는 것이겠지. 지금은 아직 어려서 이게 맞는 건지, 세상이 왜 내 맘대로 안 되는 것인지, 왜 이렇게 부당하고, 억울한 마음이 계속 드는지 이해가 안 될 테지만 이 시기가 지나고 나면 너도 아마 네가 진짜로 원하는 무엇인가를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아마 그때쯤 되면 누구도 네 의지를 막지 못할 거야. 넌 진짜 네가 원하는 대로 살려고 많은 고민을 한 사람일 테니까.

얼마 전 읽은 책에 이런 구절이 있었어.

 “ 너 자신한테 먼저 충실하지 못하면 다른 이들 누구한테도 충실할 수 없다.”  - 토이 새들러, <맏이> 중

 아마 이 질풍노도의 시기는 네가 너 자신한테 충실하기 위해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지나가야 하는 시간이겠지. 그렇게나 고민한 네게 그 누가 "너 자신을 알라."고 말할 수 있겠어?

D야. 우리의 만남은 2년 남짓 했지만, 혹독한 사춘기를 지나는 너를 보며 쌤도 그 시절을 기억해보고 너와 우리 딸, 그리고 아이들을 이해해보려 했어. 쌤과의 수업이 네 긴 인생에선 정말 점보다도 작은 시간이 되고, 이 시간 동안 우리가 했던 얘기들과 고민들이 무엇을 남겼는지도 확실하지는 않아. 누가 보면 뜬 구름 잡는 얘기라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너를 포함한 다른 아이들과 뜬 구름 잡는 얘기를 하면서 쌤은 아이들을 보는 새로운 눈을 갖게 됐어. 함께 뜬 구름 잡는 얘기를 해준 너에게 고마움도 전한다.  

이렇게 갑자기 우리의 수업이 끝난다는 아쉬움과 함께.  

이제 중학교 3학년이 되는 무수한 시험과 평가가 기다리고 있을 너의 미래에 어마어마한 응원을 함께 보낼게. 이토록 열심히 고민한 네가 찾은 답은 어떤 것이 될지 궁금하다.     

  

   19년 11월 22일. 다음 수업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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