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아 설명서 보지도 않고 조립하는 사람 어떤 유형인지 알아?
어, 그거 성격 급한 유형?
본래 성격이 급한 줄 알고는 있었으나 이 정도 일 줄이야.
이사 와서 각종 가구 조립을 하며 나에 대해 알아가는 중이다. 나는 설명서를 읽지 않는 사람이구나.
오늘의 계획이 서면 일단 마음이 급해서 포장지를 전부 해체, 완성된 그림을 보고 쓱쓱 조립해 간다. 그러면 짠 하고 완성이 돼야 하는데, 그렇게 영민한 사람은 아닌지라. 틀렸다. 그럼 다시 그림을 쓱 보고 설명서 첫 째 장을 읽어 본다. 아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다시 해체 후 조립. 또 뭔가 틀림. 그제야 설명서를 본답시고 찬찬히 읽어 본다. 다시 해체 후 또 조립. 그런데도 뭔가 이상하다. 그러면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오면서 스스로를 탓한다. 그리고 이제야 정독. 이제야 처음에 안 보이던 게 보이고 뭐를 잘 못 했는지 깨닫는다. 이럴 거면 처음부터 설명서를 읽었으면 됐는데, 도대체 무슨 생각에 설명서를 들춰보지도 않고 조립할 생각을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처음에 이런 과정을 거쳤으면 다음 조립에선 설명서를 정독해야 하는 데, 똑같은 과정 반복. 바로 조금 전의 실수로 분명 깨닫기는 했을 텐데, 깨달음과 상관없이 본능적으로 조립부터 하는 나란 인간은 어떤 인간인가?
어제는 아주 간단한 이케아 선반을 사 와서, 이건 정말 십 분짜리 난이도네 생각하며 바로 포장 뜯기를 감행, 두 시간 있으면 나가야 하니 십 분 만에 조립하고 점심 먹고 나가는 게 계획이었다. 그리하여 바로 조립 시작, 이렇게 쉬울 수가 후딱 마치고 끝낼 줄 알았는데, 웬걸 이상하게 뭔가 맞지 않는다. 맞긴 맞는데 0.1 mm 간발의 차이로 안 맞아서 힘으로 맞추고 있는 나를 보더니 0.1 mm 가 안 맞으면 그건 안 맞는 거라며 당장 해체하라고 한다. 그럴 리가 없다며 이건 틀리게 조립할 수도 없는 거라고 맞다고 우기다가 아무리 우겨도 0.1 mm의 차이로 조립을 완성할 수가 없다. 그제야 설명서 정독, 아 다리를 거꾸로 붙였네? 다시 붙여 본다. 이번에도 뭔가 안 맞음. 너무 확신을 갖고 계속 틀리고 있는 나를 보며 남편도 등판. 허리 사고로 아픈 허리를 붙잡고 쪼그려 앉아서 다시 풀고 조립. 낑낑거리고 다시 조립해서 짠 하고 세웠는데, 이상하게 삐뚤어졌네. 이번엔 좌우가 바뀜. 하아. 세 번을 풀었다 조이고 풀었다 조이고 나니 벌써 두 시간. 십 분 만에 조립하고 점심 먹고 나가는 계획은 모두 어그러지고, 두 시간 동안 조립하고 밥도 못 먹고, 완성도 못한 채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왜 인간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가?
처음부터 설명서는 보지도 않고 동물적인 감각으로 무턱대고 조립하는 나와 달리 남편은 설명서를 찬찬히 보고 설명서의 행간까지 읽어내는 의외의 능력을 보여줬는데, 내 눈엔 아무리 읽어도 보이지 않던 화살표 방향 표시. 다리의 길이 표시 등등을 알려주며 이걸 다 맞춰서 하라는 대로 해야 0.1 mm의 오차도 없이 조립이 되는 거라고 알려줬다. (물론 이렇게 담백하게 썼지만 조립하며 짜증내고, 언성이 오가며, 아 그럼 니가 해! 라며 남 탓을 했음) “ 너는 왜 설명서도 안 읽고 무조건 조립하고 다시 푸냐. 읽고 해라.” 는 남편의 얘기는 이상하게 내가 딸에게 했던 얘기 “ 너는 왜 문제도 안 읽고 푸냐, 문제를 읽으면 답이 보이잖니.”와 오버랩이 되며 내게 씁쓸함을 안겨줬다.
나는 왜 설명서도 읽지 않고 조립을 하는가?
설명서도 읽지 않고 조립하는 나란 여자의 과거를 돌이켜 보며 무모한 성격의 장점을 찾아본다. 설명서도 읽지 않고, 꽂히면 하는 스타일이라 꽂히기만 하면 단점 따위 따지지 않고 바로 실행에 옮긴다는 걸 그나마 장점이라고 쳐도 될까? 설명서와 계획서 따위 필요 없이 일단 꽂히면 바로 해보는 도전정신이라고 해두자. 물론 꽂히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 않고, 설명서대로 하지 않으니 남보다 노력이 두 배 세 배 든다는 단점이 아주 크긴 하지만.
그리하여 나는 또 그렇게 손발이 고생하고 나서야 이제야 진짜로 깨닫지 않았는가. 이케아 조립은 진짜 정말로 설명서가 시키는 대로 해야만 한다. 꼭, 그렇다.
머리 나쁘면 손발이 힘들다고 이렇게 머리 나쁜 것을 인증하며 새집으로 이사하며 보낸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주일. 이제 어느 정도 정리도 돼가고, 창이 넓은 새집에서 경치를 보며 뭔가를 쓸 자리도 마련해놨다. 브런치 시작도 아무런 계획이나 늘 그렇듯이 설명 없이 꽂혀서 무작정 쓰기 시작했다. 꽂히는 것의 단점은 또 하나, 꾸준하기 어렵다는 것인데 지난 1월 브런치 시작과 함께 게으른 나를 질질 끌어가며 일단 여기까지는 왔다. 12월의 중순. 이제 한 해의 마지막 달이다. 2020년에도 뭔가에 꽂혀서 무엇인가를 계속하며 기쁨과 슬픔을 느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