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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푸레나무 식탁 Feb 07. 2020

식탁 일기 - 의식의 흐름에 따라 쓴 글쓰기 모임 후기

사실 글쓰기 모임은 사심이 반이었다. 아니 사실 사심이 거의 다였다.

나의 롤모델 소희 언니가 새로 이사 간 부암 살롱에서 소수 정예로만 모아서 글쓰기를 수업한다니 얼마나 달콤한 유혹인가.

처음 공지를 봤을 때부터 심장이 뛰었으나 평정심으로 돌아가려 애썼다. 소희 언니네 집에서 하는 글쓰기 모임은 너무나 매력적이지만 그와 함께  하지 말아야 할 수많은 이유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밤 시간이었고, 하는 일이 있었고, 나하나 글 쓴다고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굳이 거기까지 가서, 처음 본 사람들 앞에서 발가벗겨질 것 같은 기분이 엄습했다. 애써 외면하고 살고 있는 스스로의 바닥을 굳이 거기까지 가서 보고 올 게 뻔했고, 그러고 나면 난 또 얼마나 상처 받을까 싶은 마음과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라 모르겠다 계좌에 입금부터 하고 생각해보기로 한 것은 나의 절친한 친구 Y 때문이었다.

그녀가 너 소희 언니 글쓰기 모임 할 거지? 딱 너를 위한 모임이다!라고 했을 때, 그것은 마치 운명처럼 지난밤 동안 고민했던 나의 모든 고민들을 날려버리며 소희 언니 글쓰기 모임은 바로 나를 위해 준비된 것처럼 느끼게 했다. 그렇게 느닷없이. 갑자기 이거 아님 안 되겠다 싶은 마음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뭐에 홀린 듯 글쓰기 모임 공지에 댓글을 달아 버렸다.  


그리고 첫 수업, 나는 헌신짝처럼 너덜너덜 해져 집으로 돌아왔다.

새 학교에 전학 가는 초등학생처럼 글쓰기 첫 모임에 대한 부담감으로 하루 종일 어찌할 바를 몰랐는데, 거기서는 소희 언니를 실물 영접한 얼떨떨한 기분에 어찌할 바를 또 모르고, 두서없는 말과 두서없는 글만 쓰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얼마나 초라한가.

내가 첫 수업에 무엇을 기대했는지는 확실히 알 수는 없으나 분명한 것은 이렇게 두서없이 어찌할 바 모른 채 건들면 울어버릴 것 같은 그런 소심한 여자애의 모습은 아니었는데. 나는 뭔가 소희 언니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고 싶었던 모양인데 그게 내 맘대로 될 턱도 없고, 소개팅에 나온 상대에게 너무 잘 보이고 싶어서 안달 난 여자애처럼 두 시간을 보내고 왔다는 생각에 스스로가 너무 부끄러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다행히(?) 옆자리에는 뛰쳐나가고 싶은 동기 분도 있었고, 너무나 겸손하신 동기들 덕에 나만 이렇게 당황하는 것은 아니야라는 모종의 연대의 분위기가 느껴졌으나 이런 중차대한 일에 청심환 하나 챙겨 오지 못한 나의 준비성을 탓할 수밖에.    


어찌 됐든 첫 수업을 끝내고 과제를 받아 들고 집으로 가는 길. 일주일간 묘사의 세계에 빠져 일상을 묘사로 가득 채워보라는 언니의 주문은 나의 가슴에 돌덩이가 되어 매달렸다. 집으로 가는 지하철 내내 뭐라도 묘사하고 싶었지만 묘사의 구멍에 빠져 묘사를 보지 못하는 묘사에 눈이 먼 여인이 되어 무엇도 묘사하지 못하고 시간만 보내다가 오늘은 목요일.

왜 내가 하는 묘사는 모두 뻔하고, 누구나 다 하는 것이고, 하나마나한 것이고, 안 해도 되는 묘사가 되어 버리는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며 이제 주말만 지나면 다시 월요일이고, 아직 숙제는 완성하지 못했다.     


소희 언니의 예고로는 다음 수업에선 여성으로 억압된 것을 파기하며 자신을 들여다보는 글쓰기를 한다는데, 나는 또 나도 모르는 어떤 나 자신을 만나게 될지. 사실 그건 사십 년이 넘게 내가 꽁꽁 감춰온 나의 모습이 될 수도 있는데, 나는 또 감춰진 내 모습을 얼마나 내 보일 수 있을지 하는 걱정이 먼저 되니 이를 어찌할 노릇인가. 아마 이 글쓰기 모임은 알고는 있지만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의 모습을 보게 되는 시간이 될 수 있겠다. 그리고 나는 그 과정을 좀 힘겨워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살짝 두렵기도 하다. 애나 어른이나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은 두렵고 어려운 일이니.

하지만 두려움은 여기까지. 나는 일단 숙제를 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발견한 내 모습이 내가 원하는 내가 아니더라도 실망하거나 내버리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흡사 선 지름, 후 수습과도 같지만 첫 글쓰기 모임을 마치고 당황한 내가 나 자신과 하는 약속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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