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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푸레나무 식탁 Apr 01. 2020

코로나 19와 독서 일기 -  <죄와 벌을> 읽고

코로나 19와 함께 생긴 너무 많은 시간에 그동안 읽지 못했던 책이라도 실컷 읽어보자며 호기롭게 <죄와 벌>을 주문했다. 5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 상, 하권을 시작하면서 다 읽을 때쯤이면 코로나 19도 끝나 있을 줄 알았건만.  

이미 너무도 유명해 제목만으로 다 읽은 느낌이 드는 <죄와 벌>을 읽으며 오래간만에 느릿느릿 고전을 읽는 재미에 빠졌다. 로지온 로마노비치 라스칼리노프, 드미트리 프로코피이치 라주미힌, 포르피리 페트로피치, 아보도치아 로마노브바 라스콜니코바, 소피아 세묘노브나 마르멜라도바처럼 이름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는 주인공을 만나며 1800년대 러시아를 여행하는 기분은 코로나로 집콕하며 즐길 수 있는 꽤 괜찮은 일들 중 하나였다. 요약하자면 가난한 법학도인 로지온이 전당포 주인 자매를 살해하고, 속죄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 이렇게 한 줄에 요약이 되는 줄거리를 가지고 장장 천 페이지를 넘게 쓰는 도스토예프스키의 필력도 그렇고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것은 등장인물 하나하나 생생한 캐릭터다. 무려 100년도 전에 1800년대에 쓰인 소설이지만 개성 가득한 등장인물들의 언행이 전혀 고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대사 치는 솜씨에 읽으면서 감탄하며 읽다 보면 주인공들과 대화를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만나게 된다.

주인공 로지온은 가난과 우울증에 제정신이 아닌 상태인데, 전혀 죄책감 없이 자신의 살인을 당당하게 여기기도 한다. 이런 그의 억지 논리가 사뭇 논리적인데,  21세기 돈과 권력을 가진 이들의 논리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 읽으면서 소름이 끼치기도 한다.

“인류는 범인과 비범인 두 부류로 나뉘는데, 범인은 법률을 따르는 대중이고 비범인은 법률을 만드는 소수로 개혁을 위해서는 장애물을 넘어설 권리를 갖고 있다.” 로지온은 마치 자기가 나폴레옹처럼 비범인이어서 사회악을 없애기 위해 살인을 행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내세우기도 하는데, 인간을 이렇게 기준을 세워 나누고, 정당화, 합리화하는 일은 얼마나 다양하며, 또 무서운 일인가.

 로지온의 동생 두냐와 결혼하기를 원하는 포르피리의 상황과 심정을 묘사하는 부분 또한 인상에 남았다. 그저 자기보다 가난하고 낮은 계급의 예쁘고 똑똑한 여자를 얻어, 평생 여자의 재능을 이용하고, 여자의 가난을 담보로 평생 존경을 받고 화목한 가정을 누리겠다는 심보라니. 이게 포르피리의 야심 찬 결혼 계획인데, 이건 결혼을 하자는 건지 예쁘고 똑똑한 노예를 얻겠다는 건지 읽으면서 혀를 끌끌 차게 한다. 심지어 이런 자신의 계획을 두냐와 미래의 장모에게도 공공연히 말하고 다니며 자신의 지위와 경제력을 핑계로 여자를 사로잡을 계획이나 하고 있는 포르피리라는 녀석, 밉상 캐릭터이긴 하지만 이토록 천연덕스럽게 밝히는 그의 결혼 요구 조건이 뭐 언제는 안 그랬나 싶기도 하고, 여하튼 여자들이여 두냐처럼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저런 남자를 거를 수 있다.

그토록 속물인 포르피리와 딸 두냐의 결혼을 대하는 엄마의 태도 또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물론 시대적 배경이 1800년대이니 소냐는 집안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어린 나이로 사창가로 가고, 두냐 역시 오빠 로지온의 남은 공부를 제대로 마치게 하기 위해 좋은 집에 팔려가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큰 오빠 공부시키겠다고 밑에 여동생들을 줄줄이 공장에 취직하는 상황은 뭐 러시아에서만 있는 일은 아니지만 동생의 희생을 당연시하며 오히려 그게 여자에겐 행복이고, 혹여라도 딸의 결정이 달라져 장남에게 해가 갈까 전전긍긍하는 엄마라니. 로지온을 향한 엄마의 갸륵한 마음과 모성애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그 희생은 본인도 아니고 딸이 대신해야 하는 현실이라니. 분명 둘 다 자기 자식인 게 맞는데 아들과 딸을 향한 분명한 온도차가 너무 극명하게 느껴진다. 심지어 엄마는 로지온이 시베리아 감옥에 수감되자 정신을 잃고, 정신을 잃은 와중에도 로지온의 범죄를 자기만의 방법으로 합리화해서 기억하고 복기하는 눈물겨운 모성이 안타깝기도 했다.

  하지만 엄마의 눈물겨운 모성에도 로지온의 살인과 방황은 멈추게 하질 못했는데, 그 어려운 걸 해낸 인물 소냐.  절대의 구원을 상징하는 마리아 같은 존재인 소냐의 사랑으로 로지온은 자신의 악행을 뉘우치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거라는 희망을 보여준다.

 “하지만 여기서 이미 새로운 이야기가. 한 인간이 점차 새로워지는 이야기자. 점차 다시 태어나는 이야기, 점차 하나의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옮겨 가 여태껏 전혀 몰랐던 새로운 현실을 알아 가는 이야기가 시작된다.” 며 토스토예프스키는 1000페이지가 넘는 이야기를 끝낸다. 소냐와 함께 구원을 받고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될 거라는 로지온. 몸을 파는 천한 여인이지만 누구보다 숭고한 정신을 가진 그녀를 통해 작가는 진정한 죄와 벌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로지온은 그녀를 통해 구원을 얻었으나 마지막 책장을 통해 아쉬웠던 것은 왜 로지온을 꼭 그녀를 통해서만 구원을 얻을 수밖에 없었나 하는 점이다. 작가도 역시 남성이라 그런 성모 마리아 같은 여인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는 건가 하는 마음도 들었다. 자신의 삶을 바꾸게 할 구원이라면 타자와의 만남으로 좌지우지되기 어려운 일이기도 한데 밀이다.  

  오늘은 코로나 19와 함께 읽은 <죄와 벌>을 정리해보았다. 오래간만에 만난 장편 고전에 자극을 받아, 차기작으론 톨스토이의 <안나 까레니나>를 주문했다. 이 또한 어마어마한 장편으로 800페이지가 넘는 두 권이 배달되었다. 요 두 권을 끝낼 즈음이면 이제 맘껏 밖으로 나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마스크 없이 만나서 이것저것 맛난 것들을 나눠 먹으며 진탕 놀고 싶다.  (고 썼으나... 이제 이런 마음은 고이 접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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