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거릿 애트우드의 전작 <시녀 이야기>를 읽고, 나는 여러 번 놀랐다.
소름 끼치는 소설 속 상황과 배경에 한 번, 1985년 작품이라는 것에 한 번, 그 끔찍한 상황이 현실과도 너무나 닮아 있다는 것에 또 한 번.
전작 <시녀 이야기>의 배경 길리어드는 여성을 자궁, 성적 대상 그 이상 이하로도 취급하지 않는 이상한 나라다. 21세기 중반, 전 지구적인 혼란, 환경오염, 출생률 감소에 대항하는 이상적인 국가를 표방하며 만든 나라 길리어드. 성경과 가부장제를 근본으로 국민들을 철저히 통제하는 그곳은 겉으로 보기엔 오류 하나 없이 완벽해 보이지만 그 속을 들춰보면 수상한 것 투성이다. 권력을 가진 남성들에겐 유리하기 짝이 없는 그 견고한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길리어드는 여성을 철저히 짓밟는다. 여성은 글도, 생각도, 욕망도, 호기심도 가질 수 없는 나라 길리어드. <시녀 이야기>는 가족과 이름도 뺏기고, 사령관의 아이를 낳아야만 하는 시녀가 된 주인공의 이야기이다. 부조리한 상황 속에서 생각을 하는 여성으로 살기는 얼마나 험난한 일인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아이를 임신해야만 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우리가 그토록 성스럽게 여기는 출산과 생명의 탄생이 얼마나 폭력적인 것으로 변할 수 있는지도 생각해 보게 한다.
<증언들>은 <시녀 이야기>의 후속 편으로 전작이 발표되고 34년 만에 나온 책이다. <시녀 이야기> 속의 길리어드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떻게 여성들을 폭력적으로 세뇌시키는지, 그 끝은 어떻게 되는지 전작 <시녀 이야기> 읽으며 느꼈던 궁금증들을 시원하게 해소시켜 준다. 여성이지만 권력에 굴복해 길리어드의 시스템을 만든 리디아와 길리아드의 소녀 아그네스와 데이지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길리어드의 추잡한 비밀이 풀린다.
나는 꽤 오래전부터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사진 증거도 수집했지만, 못 본 체 넘겼던 건 어린 소녀들의 증언은(그 애들한테서 증언을 끌어낼 수 있다면 말이지만, 이 경우에는 회의적이었다.) 효력이 아예 없거나 아주 미약하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성인일 경우에도, 여기 길리어드에서는 여자 증인을 넷 합쳐야 남자 한 명에 맞먹을 수 있었다.... 의사, 치과의사, 변호사, 회계사, 길리어드라는 신세계에서도 구세계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죄는 빈번히 용서받았다. <증언들 中>
“남자를 유혹하면 안 되지.” 베카가 말했어요. “그럴 때 일어나는 사태에는 어느 정도 여자 책임도 있는 거지.”
제이드는 우리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어요.
“희생자를 탓하는 거예요? 설마 진짜로?”
“발금 뭐라고 했니?” 베카가 말했어요.
“신경 쓰지 마세요. 그러니까 지금 하시는 말은 이게 이러나저러나 지는 게임이라는 거잖아요,” 제이드가 말했어요. “우리가 뭘 어떻게 해도 망한 거죠.” <증언들 中>
그리고 이렇게. 작가가 만든 가상의 세계 길리어드를 보고 있자니 자꾸 n번방 사건이 떠오른다. 피해자 여성은 어떻게 해도 용서받지 못하는, 범죄를 저지른 남성들은 죄를 짓고도 버젓이 살고 있는 세계. 길리어드와 현실 속 n 번방은 얼마나 닮았던가. 여성의 인권이라고는 없는 그저 아이 낳는 기계와 남성의 욕망의 대상이 되어 버린 길리아드와 2020년 대한민국 n 번방의 교차. 뉴스를 보며 답답했던 마음이 <증언들> 속 사건과 겹쳐져 읽는 내내 마음을 졸였다. 물론, 길리어드는 가상의 세계이지만 지금 n 번방의 여성들은 또 얼마나 인간이 아닌 물건이 되어야 이 이야기가 끝난단 말인가.
<증언들>은 <시녀 이야기>의 비밀과 길리어드의 시작과 끝을 명쾌하게 정리하며 끝을 맺는다. 장장 600페이지에 달하는 소설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서사와 탄탄한 구성으로 읽는 즐거움은 물론이요. 여성으로 또 우리 사회의 젠더 문제에 대해 생각할 많은 질문들을 던져준다.
전작 <시녀 이야기>에서 작가가 1985년에 던진 질문들은 왜 34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한가? 그렇다면 또, 우리는 또, 34년 후에도 이런 질문들을 할 것인가?
코로나 19와 함께 집콕 생활 중인 여러분께 추천하고 싶은 소설. <시녀 이야기>와 <증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