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암동을 가는 길은 가벼운 긴장과 설렘이 동반한다. 지난 2월, 꽁꽁 언 겨울밤의 찬 기운을 깨며 부암살롱에 첫 발을 들였다. 첫 글쓰기 수업이었고, 소희 언니와 동기들과의 첫 만남이었다. 사방은 처음에 대한 두려움과 알 수 없는 설렘들로 쉬이 놀라고 동요되고 한숨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어제는 완연한 봄빛을 가르고 부암 살롱에 도착했다. 부드러운 바람이 연둣빛 나뭇잎을 어루만져주는 저녁 무렵이었다. 부암 살롱으로 가는 길 내내, 햇빛은 안온한 기운으로 가는 걸음걸음을 밝혀주었다. 구기 터널을 벗어나자 기세 좋은 산자락 안에 아늑한 동네가 색색가지 지붕을 이고 앉아 있다. 해가 뉘엿뉘엿 지며 하늘이 주황빛으로 물들 때, 집집마다 노란 불들이 켜졌다. 조금 더 앉아 비탈진 언덕 위의 집들을 보고 싶었으나 수업 시간이 다 됐다.
마지막 수업을 앞두고 동기들 열 명은 부암 살롱에 모여 앉았다. 만남의 횟수는 그저 6번이 전부이지만 서로의 밑도 끝도 없는 속을 다 봐버린 사이가 되었다. 처음부터 눈썹을 확 지우고 민낯을 보여준 이도 있었으며, 점점 벗긴 이도 있었으며, 속을 너무 보이다 자신의 내면으로 다시금 깊이 들어선 이도 있었다. 나는 그 경계 어디선가 서성이고, 문득 이 용기 있는 아홉 명의 여자들을 본다.
마지막 수업이다.
지난 시간 우리는 에세이 한 편씩을 썼다. 자기가 생각하는 여성성과 스스로 하고 싶은 이야기의 접점을 찾다 보니 우리의 이야기는 다소 무거웠다. 30-40이 넘도록 우리는 여자이면서도 우리 안의 여성성과 인간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그간 다섯 번의 글쓰기 시간은 사실 글 쓰는 기법보다 우리의 시선을 바꾸는 시간이었다. 첫 시간부터 우리는 보지 않았던 것을 봐야 했고, 외면하던 것을 계속 직면해야 했다. 보기 싫어 고개를 돌릴 때마다, 소희 언니한테 머리채를 잡혀 질질 끌려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힘들었고, 그만두고 싶기도 했으며,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꼭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마지막 수업이 완성은 아니었다. 우리는 그제야 다섯 번의 수업을 하며 하지 않았던 질문을 하고 있었으니까. 나는 이제껏 쓰지 않던 얘기를 썼다. 그저 가벼운 일상들을 쓰던 나에게 엄마와의 이야기는 쉽지 않은 것이었다. 이 기회에 엄마 이야기를 쓰기로 한 것은 이 시간에 대한 나의 믿음이었다. 꺼내 보지 않았던 얘기를 꺼내고, 과거와 현재의 엄마와 나를 만났다. 잘 쓰고 싶었으나 좀처럼 잘 되지 않았다. 보지 않던 것을 보는데도 힘들었고, 감정을 설명할 말도 고르지 못했다. 그럴듯해 보이게 마무리는 했으나 그 행간에 내가 감추고 있는 것들을 내가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쯤에서 덮어두고 싶기도 했다.
다른 동기들도 그랬다. 우리는 그쯤에서 자신의 얘기 속으로 들어가려 문을 열고 있었다. 오랫동안 닫아둔 문이었기에 그 문 속에선 그동안 묵혀 왔던 모든 것들이 두서없이 튀어나왔다. 정리되지 못했고, 더 깊이 들어갈 용기 또한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두서없는 것들을 꿰어온 우리의 글을 읽고 소희 언니는 한 명 한 명에게 맞춤한 이야기들을 끌어내어 주었다. 그건 내가 상상했던 것이 아니었다. 나는 빨간펜을 든 언니를 상상한 글쓰기 모임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 상상력이 그저 초라해 보일 뿐이었다.
나 또한 그녀들의 글을 하나하나 다 읽었다. 읽고 공감하고 잠시 그녀들이 되어 눈물도 흘렸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사고의 틀은 아직도 글쓰기에 있었다. 그녀들의 글을 읽으며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 추가할 곳과 삭제할 곳을 찾으며 읽고 있었던 것이다. 어제 소희 언니의 피드백을 들으며 글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그녀의 얘기에 나는 수업 시간 내내 속으로 계속 작은 탄성을 내질렀다. 쓰는 이도 들여다보지 못한 이야기를 그녀는 그 네 페이지 속에서 어떻게 찾아냈단 말인가. 꽁꽁 숨겨둔 행간에서 어떻게 그런 실마리를 찾아 내미느냔 말이다. 한 편의 글을 저렇게 애정을 담아 읽고, 글쓴이도 숨겨둔 진흙탕을 헤쳐 너끈히 손을 내밀어 주다니. 두 시간 반이 넘는 수업시간 동안 나는 언니의 육성을 들으며 내내 짜릿했다. 한 편의 짧은 글을 저렇게까지 읽어내는 그녀의 집요함에 놀랐고, 그녀의 열정을 보며 한 번 더 놀랐고, 그저 글을 글로만 보는 나의 깊이 없음에 놀라 동기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나 또한 더 자세히 들여다봐야 했다. 사람을 봐야 하는데 글만 보고 있었다. 아차, 싶었다.
늦은 밤, 집으로 오늘 길 내내 수많은 질문들이 생각났다. 나는 왜 쓰는가, 나는 무엇을 쓰려하는가, 왜 쓰고 싶다고 생각하는가. 어제 글쓰기 시즌1의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나를 관통한 무엇인가가 분명히 있었는데. 나는 그것의 실체를 눈치챈 걸까 흘려보내고 있는 건가 나 또한 알 수가 없었다. 분명한 건 하나, 어제 글과 사람을 대하는 언니의 태도를 보고 나는 감동했다. 그럴 수 있다면 닮고 싶고, 배우고 싶었다.
글을 써서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었을 때, 나는 글을 써서 돈을 벌고 싶다고 했다. 글쓰기 수업을 하며 글을 써서 돈을 벌기 위한 내공에 대해 생각했다. 그것은 흡사 신기루 같은 것이기도 해서 가까이 갈수록 점점 더 멀어지기도 했고, 오히려 이럴 거면 빠져나오는 게 낫다 싶을 때도 많았다. 어제의 시즌1 수업을 마지막으로 스스로에게 다시 질문했다. 글을 써서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글을 써서 돈을 벌고 싶다에 하나를 더 한다. 이것이 만약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럴 수 있다면 글을 써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 소희 언니를 보며 생각했다.
2020년 4월 28일. 잊지 않기 위해. 오늘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