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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푸레나무 식탁 Feb 18. 2019

식탁 일기 - 소희 언니와 나  

 주위에 언니가 많다. 가족관계는 여동생 하나로 끝나지만 주위엔 언니들이 넘쳐 난다.

여대를 거쳐 여자들이 많은 직업을 가졌기 때문인지 친화력 유전자가 언니들에게만 특화돼 있어서인지, 주는 거 없이 받기만 해서인지 후배들보다 언니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천둥벌거숭이 같은 나를, 그나마 사람 구실 하게 만든 수많은 언니들.

오늘은 그중 소희 언니 얘기를 할까 한다. 나의 롤모델, 하지만 비슷하게라도 따라 살기는 너무 어려운 그녀, 소희 언니. 사실 소희 언니라고 불러도 될까 잠시 생각해본다. 그녀는 나를 모르고, 나 혼자 내 마음속의 롤모델로 정해 십 년간 짝사랑하고 있는 오소희 작가님이자 소희 언니.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육아 우울증에 걸려 허덕이고 있는 십여 년 전의 내가 우연히 그녀의 책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겠지’를 읽으며 시작됐다. 세 살 된 아들 중빈이를 데리고 터키 여행을 감행하는 그녀의 여행기를 읽고, 힘든 육아의 시기를 버텨냈다. " 나도 우리 딸이 두 돌만 지나면 아기띠를 메고서라도 배낭여행을 갈 거다! 이 년만 참자! " 수많은 눈물과 번뇌의 시간을 겪으며 내가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세 살짜리 중빈이를 데리고 터키를 여행하는 소희 언니가 있었기 때문이다. 중빈이와 함께 터키를 누비는 소희 언니의 모습은 내가 꿈꾸는 삶이었고, 그 시절 나의 교과서였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 딸이 두 돌이 되던 그 날, 나는 깨달았다. 두 돌 지난 애를 데리고, 엄마 혼자 배낭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그야말로 미친 짓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물론 소희 언니에게는 가능한 일이었으나 내게는 불가능한 일. 나는 두 돌짜리 아이와 발맞출 참을성도 체력도 끈기도 의지도 없었음을, 아이와의 여행이 아닌 그저 이 순간의 탈출만을 꿈꾸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소희 언니가 했으니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은 다 사라지고, 세상에나 이렇게나 말도 안 되는 여행을 하고 책 까지 펴낸 능력자가 소희 언니 었다는 배신감과 자괴감, 그녀는 나의 롤모델이었으나 아마 나는 다시 태어나도 그녀처럼 살지는 못하리라. 우리는 처음부터 아예 다른 그릇인 것을 말이다.   

 ‘세 살 아이와의 배낭여행 하기’ 꿈은 사라졌으나 나는 소희 언니를 응원했다. 내 대신 소희 언니가 중빈이와 함께 다닌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를 눈으로 쫓으며 저 정도면 차라리 집이 편한 것을, 저 언니는 왜 목숨 걸고 죽자고 애를 데리고 여행을 하나 저 언니가 찾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끊임없는 물음표를 던지며.     


 발에 차이듯 많은 어린이집, 유치원, 놀이학교, 영어유치원을 제치고, ‘공동육아’를 하기로 마음먹은 것도 사실 소희 언니 때문이었다. 나의 롤모델 소희 언니도 중빈이를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낸다는 것에 솔깃했고, 혼자 키우는 것이 아닌 ‘공동육아’에 대한 로망과 아이에 대한 욕심 사이에서 갈등할 때, ‘공동 육아’와  소희 언니의 이미지가 오버랩되면서 나도 한 번 여럿이 함께 사는 모임에 걸맞은 인간인지 시험해보고 싶었다. 아이의 유년기인 5,6,7살을 공동육아를 하며 체험한 ‘공동체’와 ‘함께 살기’에 대한 고민으로 이제껏 이만큼 버텨온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작년 12월, 소희 언니의 포스팅을 보고 나는 또 잠시 멍- 해졌다. 아, 이 멋진 소희 언니!

대학 입시 결과가 여기저기서 빵빵 터지고 있던, 12월. 남들보다 1년 먼저 대입을 하게 됐다는 중빈의 소식과 함께 엄마 노릇을 끝낸다는 그녀의 포스팅에서 그녀는 말했다. “중빈이가 어느 대학에 들어갔는지 궁금하실 걸로 압니다. 궁금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우리나라는 김영란법처럼 법으로 제정되어야 끝날 것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남의 자식 어느 대학 들어갔는지 묻지 않는 것, 이것도 그중 하나입니다.... 그래야 우리 아이들이 오롯이 자신의 꿈에 집중하며 그 꿈을 이뤄줄 수 있는 대학에 집중하는 세상이 올 겁니다.”

 아, 이 통쾌함, 이 박력, 이 매력. 중빈의 대학과 상관없이 이렇게 쏘쿨할 수 있는 엄마라니. 아마 나라면 우리 딸이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면 그걸 자랑하고 싶어서, 하지만 너무 속물처럼 대놓고 자랑할 수는 없고, 적당히 겸손도 섞어가며, 반면 성에 차지 않는 대학에 들어갔다면 그걸 또 어떻게든 합리화시키느라 단어를 고르고 골랐을 텐데, 그런 거 따위 중요하지 않고 그저 자기의 인생을 위해 아이 스스로 가는 길에 대한 축하와 응원만 해달라는 이렇게 멋진 엄마를 본 적이 있는가.       


 자식이란 무엇인가, 대학이란 무엇인가, 학원이란 무엇인가, 선행이란 무엇인가, 육아란 무엇인가, 부모란 무엇인가를 화두로 어느 때보다 치열한 고민하는 나는 사실 요즘 의지할 곳이 없다. 온갖 공부법과 대학 가는 법, 육아 백 단 엄마들의 노하우와 슈퍼맘이 되는 법 사이에서 겉으론 욕심 없지만 아예 욕심 없지는 않은 엄마가 그저 자기 인생 잘 꾸리며 사는 아이 하나 키우기에 대한 대답을 찾기가 어려운 까닭이다.


 물론 소희 언니와 나는 다르다. 우리 딸과 중빈이도 같을 수가 없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우리 이제 학원 따윈 집어치우고 터키라도 갈까? 한다고 우리 딸이 중빈이처럼 될 확률도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소희 언니의 포스팅을 기다린다. 포스팅이 올라오면 휴대폰에 캡처해서 문득문득 꺼내 읽는다. 남들 하는 대로 따라 살다가 여기까지 왔는데, 그리고 사실 여기가 맞는 것인지 틀린 것인지 나도 자신이 없는데, 오늘도 딸에게 남들 하는 대로 문제집 한 장 더 풀라고 하는 나를 보며, 어차피 이 아이의 길과 나의 길은 다른 것인데 나는 왜 이 아이를 내가 살아온 대로 키우지 못해 안달인가 고민하며. 어차피 네 인생은 내가 살아본 적도 없는 삶인데,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과연 학원 스케줄 짜주는 것밖에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

 

 육아의 속 뜻은 ‘입시 육아’가 되고, 자식 대학 간판에 따라 엄마의 점수가 나눠지는 대한민국에서 소희 언니는 문제집 들고 따라다니는 엄마가 아닌 인생의 ‘THE 가치’를 찾아주는 부모가 되라는데, 사실 ‘THE 가치’는 40년을 넘게 나도 찾지 못한 것인데, 이렇게 어려운 주문이 어디 있나. ‘THE 가치’를 찾지 못해 아직도 이렇게 갈팡질팡인데 ‘ 나는 어떡해야 하나, 문제는 네가 아니라 나였구나.’라는 깨달음. 그래서 오늘 하루만이라도 아이를 한 발짝 뒤로 물러서 보자는 약속과 다짐을 하게 해주는 소희 언니.     

 사실 그렇게 다른 이에게 쉽게 열광하는 스타일은 아닌데 처음부터 끝까지 구구절절 소희 언니 예찬이 되었지만 꼭 소희 언니는 아니더라도 소희 언니가 있는 삶과 없는 삶은 얼마나 다른가? 사실 소희 언니를 조금만 더 일찍 만났으면 내 삶은 이거 보단 낫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지만 ( 물론 남의 말은 또 듣지 않는 성격에 지금이랑 똑같이 살고 있을 수도) 대한민국에서 엄마로 살면서 이리저리 흔들릴 때, 쪼르르 달려갈 수 있는 믿는 구석인 소희 언니. 언니 입장에서 보면 한 없이 모자라고 답답한 동생이지만 남들 손가락질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소희 언니에게 응원을 보내며 그리고 소희 언니는 또 어떤 아줌마, 어떤 할머니의 모습으로 늙어갈지도 기대한다. 또한, 소희 언니 같은 파격은 만들어내지 못하더라도 제 나름의 길을 열심히 사느라 노력하는 엄마가 제발 좀 되어 보자고, 오늘도 다짐한다.  


덧, 나이가 40이 넘었는데도 찾지 못한

    나의 “THE 가치”를 올해는 찾자.  

    벌써 무너진 새해 결심 ㅠㅠ.  

    독자는 없어도 쓰자.   

    to do list는 딸이 아니라 내가 했어야 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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