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중에 결혼하지 말고 꼭 같이 살자.” 고 약속했던 단짝 친구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약속은 헌신짝처럼 버리고 모두 결혼해 버렸다. 절친 중에 비혼 여성은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아, 오래간만에 약속이라도 잡으려는 날엔 내 남편, 내 자식은 물론, 친구 남편, 자식, 친정, 시댁과의 스케줄을 제외한 하루를 찾다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기도 한다. 남편 욕은 내 얼굴에 침 뱉기임을 알면서도 혼자 품다가 화를 주체할 수 없는 날이면 내 얼굴에 침을 뱉으며 친구들에게 남편 욕을 하다 이렇게 마무리한다. 어린 시절에도 지키지 못했던 바로 그 약속, “ 그래, 우리 늙으면 우리끼리 같이 살자. ”
여기, 중년의 유부녀에겐 세. 젤. 부인 두 여인이 있다. 결혼의 굴레, 엄마, 아내, 가족, 며느리의 모든 역할을 벗어던지고 훨훨 자유롭게 살고 싶은 유부녀에겐 판타지로 들릴 수 있는 얘기다. 혼자 사는 것도 모자라 잘 맞는 동성 친구와 함께 사는 여자. 혼자 살기 N연차 76, 77년생 김하나, 황선우. 두 여자가 혼자 살기 레벨의 정점을 찍고, 타인과 함께 사는 삶을 살기로 결정한다. 마흔이 넘은 여자 둘이 결혼할 생각도 안 하고 같이 산다고? 공동명의로 집을 산다고? 아예 결혼할 생각은 없는 거냐? 는 수많은 질문을 뒤로한 동거생활이 시작된다. 독거 여성이 아닌 결혼은 안 했지만 가족의 있는 삶은 어떤 걸까? 두 여자가 함께 살면 진정한 독립과 자유, 거기에 삶의 안정까지 찾을 수 있을까?
“ 지금은 홀가분해진 편이지만, 결혼하지 않은 채로 나이를 한 살 한 살 더 먹어가는 일에 대해 나도 언제나 편안했던 건 아니다. 30대 중후반에는 꽤 초조함도 느꼈던 것 같은데, 이런 불안은 내 상황이나 내면보다는 주변 사람들에게서 비롯한 편이었다. 통상적인 ‘결혼 적령기’를 넘어가는 여자는 스스로가 평정심을 유지하며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어도, 잔잔한 물에다 괜히 돌 던지는 모양새로 주변에서 들 툭툭 건드리지 못해 안달이다. 서른을 넘기면서 무슨 참견 면허증이라도 딴 것처럼 온갖 사람들이 깜빡이도 안 켜고 끼고 들어왔다. p79”
“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내가 불안하고 초조했던 건 결혼을 못해서라기보다 ‘결혼 못 한 너에게 문제가 있어’‘이대로 결혼 안 하고 지내면 너에게 큰 문제가 생길 거야’라고 불안화 초조를 부추기고 겁을 줬던 사람들 때문이라는 걸. p80”
황선우의 말처럼 “때가 되면 밥을 먹듯, 졸업하면 취직하듯 결혼도 그렇게 하는 거라 믿었던” 나는 물론 그를 사랑했지만 어쩌다 보니 결혼이란 걸 덜컥해가지고 잠깐 사랑한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서로 미워하며 어느덧 결혼 13년 차를 보내고 있다. 그때, 결혼을 하긴 해야 하는데, 결혼 없이는 삶의 성적표에 낙제 점수를 맞을 것 같으니 이 정도면 괜찮을 것 같은 남자랑 덜컥 결혼하기 전에 김하나와 황선우를 만났다면 어땠을까? 최소한 결혼하지 않은 내가 ‘하자품’이 될까 봐 전전긍긍하진 않았을 텐데 말이다.
“ 이 나이가 되도록 결혼을 안 하고 있어서 좋은 점은, 세상이 말해주지 않는 비밀을 하나 알게 되었다는 거다. 그게 뭐냐면 결혼을 안 해도 별일 아니라는 사실이다. 내가 결혼 안 해봐서 아는데, 정말 큰일 나지 않는다. P80”
그렇다면 결혼만 안 하면 되는 걸까? 남편이 아닌 정말 잘 맞는 친구와 함께 하는 삶은 무조건 행복할까? 맘이 잘 맞는 절친과의 삶이란 행복을 보장할 수 있을까? 하나부터 열 끝까지 우리는 같이 살기에 딱이야!라고 생각했던 김하나. 황선우는 살림을 합친 후 그래서 둘은 행복했습니다의 결말을 맞을 수 있을까?
하지만 타인을 온전히 받아들인다는 것은 타인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받아들여야 하는 일.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것은 너와 내가 얼마나 다른지를 확인하는 과정일 수밖에 없기도 하다. 간결한 삶과 미니멀한 삶을 추구하는 정리 여왕 김하나와 맥시멀 리스트에 집안의 모든 것을 다 때려 부수는 대형견 여자 친구 황선우의 동거는 말처럼 쉽지 않다. 서울의 30평대 아파트를 같이 쓰면서 둘은 때때로 부딪히고, 어마어마하게 다른 서로의 생활 습관에 좌절하기도 한다.
“ 우리는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사람이었다. 그것도 매일매일 끝없이 들고 나는 파도처럼 이어질 ‘생활습관이라는 거대한 영역에서. p109”
“ 다시 2016년 12월 6일 2시에 그 매력적인 황선우와 함께 살 집에서 찬 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 나에게로 돌아와 보자면, 나의 머릿속은 이랬다. 나는 10개월 전에 어째서 이걸 예상치 못했던 걸까? 증거가 도처에 널려 있었는데! 옥상에 가득했던 쓰레기봉투! 두 걸음만 걸으면 무언가가 발에 차이던 그 집! 나는 어쩌자고 그 모든 물건을 내 삶에 끌어들이기로 한 거지? 내가 콩깍지가 씌어 있었나?! p106”
아무리 친구 사이라도 이 정도의 콩깍지 없인 쉽게 뛰어들 순 없는 타인과의 동거. 친구와 함께 건강한 성인의 삶을 살고자 하는 일념으로 황선우의 혼자 사는 집에 가서 셀프 우렁각시를 마다하지 않았던 김하나도 둘이 함께 사는 동거생활은 사실 정신 차려보면 미친 짓이 아닐까 싶기도 했던 것이다. 한 때 정말 잘 맞았던 서로의 고귀한 취향이 한 집에서 살면서부터 바로 참을 수 없는 취향이 되는 것처럼 13년 간 나의 결혼 생활도 늘 그 언저리에서 서로를 할퀴곤 했다. 하지만 두 여자의 이야기는 막장 로맨스인 우리 부부의 얘기와 조금은 다르다. 내가 13년 만에 이룰까 말까 한 상대의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기를 함께 살기 2-3년 만에 깨치는 내공을 보여주기도 한다. 아무래도 둘 다 여자의 감성을 가졌기 때문인가 싶기도 하지만. 서로를 못 잡아서 안달인 운명 공동체였던 나와 남편과 달리 이 여자 친구들은 함께 살면서 평화로운 합의점을 찾아간다. 김하나가 집안일을 완벽하게 하면, 그에 대한 보답으로 황하나는 진수성찬을 차린다. 그 진수성찬에 대한 보답으로 김하나는 엉망진창인 부엌을 깨끗하게 치워 새로 태어나게 한다. 내가 잘하는 것을 하고, 네가 못하는 것을 억지로 시키지 않는다. 서로 다른 두 타인은 서로의 에너지를 받고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변해가기도 한다. 남자와 여자가 되어 결혼을 하지 않아도 독립적인 두 여인이 한 집안에서 살며 서로의 보호자가 되어 주고, 혼자 살 때는 남의 손을 빌릴 수 없어서 혼자 해결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은 그들은 “두 명”이 되어 함께 헤쳐 나간다. 물론, 멀리 사는 가족을 부르지 않고 서로의 보호자가 되어 줄 수도 있으니 혼자 살 때 느낄 수 없는 안정감을 느끼게 해 준다.
W2C4. 김하나 황하나의 분자가족이다.
여자 둘에 고양이 넷. 세상의 눈으론 말도 안 되는 조합이지만 W2C4로 이렇게 행복할 수만 있다면 결혼 따위가 무슨 상관이랴. 여자 둘에 고양이 넷이 이토록 자유롭고, 이토록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더 이상 가족은 결혼한 남자와 여자 피를 나눈 자식의 조합이 아닐 수도 있겠다.
여자 둘이 살고 있다고?
사회에 적응을 못해서?
둘 중 하나 결혼하면 깨지겠지?
여자 둘은 위험해.
숱한 세상의 질문에 씩씩하게 답하는 이야기. 김하나와 황선우의 동거기.
여자 둘이 살고 있다고? 사실 이것은 완벽한 조합이었다고. 그래서 지금 당장 여자 둘이 살 수 없는 유부녀들에겐 이 책은 금서가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