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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푸레나무 식탁 Mar 11. 2019

식탁 일기  -30년 된 피아노를 조율하던 날

피아노가 우리 집에 처음 오던 날을 기억한다.

때는 88년.  올림픽 게임이 서울에서 개최된 그 해, 나는 국민학교 5학년이었다.

국민학교 1학년 때부터 배우던 피아노를 집에서 연습하고 싶다고 피아노 학원을 다니던 날부터 조른 투쟁의 결과였다.

서울 변두리 방 세 칸 자리 주택에 살던 우리의 건넌방 신혼부부가 이사를 나가며 나와 동생에게도 우리의 방이 생겼고, 부모님은 우리 자매의 공간에 당시 형편으론 상상할 수 도 없는 피아노를 무리해서 넣어 주신 것이다.

그 시절에 피아노란 여자아이들의 로망이었고, 내 방 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의 방은 평생 가져볼 수나 있으려나 싶은 것이었는데. 그 방에 반짝반짝하는 피아노가 들어오고 엄마는 재봉질을 했는지 바느질을 했는지 빨간 체크무늬 피아노 덮개와 빨간 커튼을 창에 달아주었다. 아마 엄마도 어린 시절 내내 미제 잡지를 보면서 꿈꿨던 그런 방을 우리에게 선물해 준 것이리라.  

그렇게 애지중지했던 나의 피아노.

골목에 바로 접한 내 방에서 나던 피아노 소리. 저 멀리 골목길에서 피아노 소리가 나면 누구네 집 피아노 소린지 다 알아맞힐 수 있던 그때,  음반사에서 사 온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와 은파, 가요 악보를 돌려가며 마르고 닳도록 치던 그 시절이 지나고 그 피아노는 창고방 신세가 된 지 오래였다

친정과 동생네를 떠돌다 딸내미 연습용으로 우리 집까지 온 피아노는 세월이 무색하게 멀쩡했으나 딸도 나처럼 끈기가 없는지 피아노 치기는 학원에서만 하느라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는데, 고학년이 되며 피아노 학원을 개인 교습으로 돌리면서 오래된 피아노를 조율하기로 한 것이다. 조율한 지 이십 년은 됐으려나? 엄마도 동생도 나도, 이 피아노를 언제 조율했는지가 가물가물했다. 조율사를 부르고 피아노를 여니 지나온 세월만큼이나 오래된 먼지들에 깜짝 놀랐다. 피아노 건반 사이사이 주먹만 한 먼지들 하며  자칫 늦게 열었으면 좀벌레 천국이 되었을 나의 피아노. 전문가의  손길로 2-3시간 만에 새로 태어난 피아노 앞에서 딸내미가 딩동 거리고 있는 소리를 들으니 자꾸만 마음이 말랑말랑해진다.


피아노 의자 안에는 아직도 내가 레슨을 받던 책이 그래도 들어있다. 하농과 브르크뮐라, 체르니와 소나티네가 레슨을 멈추던 그 날부터 피아노 의자에 들어 있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하나하나 꺼내 책장을 넘겨보니 연습 날짜와 연습량이 바를 정 자로 쓰인 표시가 선명하다.

욕심으로 시작했으나 체르니 30번이 끝날 때쯤, 지겨워 죽겠다며 끊어버린 피아노 레슨. 6년을 배웠으나 학원만 왔다 갔다 했는지 아직도 왼손을 칠 때면 건반을 잘 읽지 못한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세월의 저 편을 거슬러 올라 30년 된 피아노 악보를 보며 자꾸 틀리는 왼손 반주가 쉬운 곡을 찾아 더듬더듬 피아노를 치며 자꾸 12살의 나, 13살의 나, 그리고 젊은 엄마와 아빠 생각이 난다.


서울 변두리에 사는  젊은 엄마와 아빠, 우리가 살던 시절, 응답하라 1988처럼 모두 대문을 열어 놓고 살던 그 골목, 온갖 피아노 대리점을 다 돌아보고 갖고 싶은 피아노에  전부 동그라미를 치던 날,  하교 후, 피아노를 치던 시간, 마루에 배를 깔고 낮잠을 자다가 깜짝 놀라 일어나 보면 마당엔 수돗가에서 빨래를 하는 엄마, 밤 열 시부터 시작되던 별밤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듣던 나, 술 취하면 말수가 많아지던 아빠, 주말에 아빠와 둘이 새벽같이 일어나 갔던 남한산성, 사춘기였는지 등산이 가기 싫었는지 아빠를 따라 등산을 가며 한마디 말도 없이 입이 나와 올라갔던 나, 산 꼭대기에서 삼겹살을 굽자 그제야 기분이 좋아졌던 나, 하루가 너무나 길어 나는 언제 어른이 될까, 어떤 어른이 될까 생각에 유년 시절이 그저 지겹기만 했던 그때가 자꾸 떠오른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나 진짜 이제 늙은 건가? 월요일 오전부터 옛날 생각이라니? 그냥 대 놓고  “꼰대입니다.” 도 아니고 대 놓고  “ 나 어렸을 때는 말이야…” 라니…

하지만 사실 이렇게 쓰면서도 할까 말까 쓸까 말까 망설여지는 말은 따로 있다.


지난 주말, 친정에 다녀와 딸과 손녀딸이 좋아하는 반찬을 하나하나 싸주던 엄마를 보며, 사진 속에 아직 젊기만 한 아빠 모습을 보며, 딸내미 고등학교 방송반 합격 기념으로 아빠가 사준 나보다 덩치가 큰 오디오를 보며, 이제 소리도 나지 않는 그 오디오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엄마를 보며, 지난겨울 키가 훌쩍 큰 딸애가 할머니와 속살거리는 모습을 보며 자꾸 어린 나와 젊은 부모님이 , 딸애가 한 번도 보지 못한 할아버지, 아빠가 생각난다고 아무에게도 말은 못 하고 혼자만 생각한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아빠가 사준 피아노에서 딸이랑 같이 젓가락 행진곡을 치며 한 없이 행복하면서 한 없이 아빠가 생각 나는 날.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그 시간들이 이렇게 오롯이 세포 하나하나에 오래오래 기억되는 거였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크느라, 사느라, 어른이 되느라 미처 돌아보지 못하고 지나왔던 그 시간들이 딸을 키우며 이제야 선명해진다. 그 많은 유년의 시간들을 지켜준 부모님과 나, 그때의 공기에 이젠 우리 딸과의 시간들을 한 겹 덧칠한다.

30년 된 피아노를 치며 자꾸만 자꾸만 그런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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