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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푸레나무 식탁 Mar 21. 2019

식탁 일기 - 취미는 발레입니다

( 부제 :  나의 취미 방랑기 )

“취미는 발레입니다” 하고 말하면  열 중에 열은 이렇게 되묻습니다.

“그럼 다리가 이렇게 쫙 벌어져요?”   

하하하. 그에 대한 저의 답은 이렇습니다.

자그마치 취미 발레 8년 차인 저로 말할 것 같으면 초중고등 시절 모든 체력장에서 체력장 5등급을 싹 다 거머쥔 전설적인 인물로 몸으로 하는 것은 보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 전형적인 몸치입니다. 그런 제가 처음 90도도 벌어지는 않는 다리로 발레를 시작했을 땐, 아무도 제가 이렇게 오래 발레를 할 거라 상상도 못 했지만 더 놀라운 것은 취미 발레 8년 차가 되는 지금 제 발레 수준 또한 여러분이 상상하는 발레리나의 그것은 또한 아니라는 것을 미리 고백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자타가 공인하는 몸치인 네가 어찌 그리 오래 발레를 꾸준히 하냐고 묻는다면 곰곰 생각해보다가 이렇게 대답할 듯싶습니다.

“ 그건 아마도 열심히 하지 않아서?” 


그럼 이쯤에서 지난 40여 년 간의 취미 생활을 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초중고등 때는 잘하는 것도 없고, 취미를 누릴 경제적 여력도 없었던 지라 그저 책 읽기, 라디오 듣기, 노래 가사 베끼기, 테이프 만들어 선물하기 정도였던 나의 소소한 취미는 대학 입학과 함께 취미는 맥주 마시기였나?로 싶게 급선회하는가 싶더니 사회에 나가 일을 시작하고 나선 자고 일어나 회사 가는 것만으로 24시간이 벅찼던 관계로 취미라곤 5호선 타고 회사 가는 지하철 안에서 곯아떨어지지 않으면 책 읽기 정도로 끝나나 보다 싶었습니다.

물론 그 중간중간 젊은 혈기에 앞서 당시에 유행하던 재즈 댄스도 배워보고, 요가 클래스도 나가보고, 스쿼시에 인라인도 배워봤으나 워낙 몸치인 저는 남들과 같이 시작했으나 진도는 더뎠고, 그 반의 열등생이며, 옳다구나 시간도 없는지라 취미 생활을 꾸준히 이어나가긴 쉽지 않았지요.

그렇게 취미 생활의 질풍노도의 시기가 지나고 임신과 함께 집에서 근신하라는 담당의사의 처방에 드디어 취미 생활의 르네상스를 맞게 되는데, 이때부터 인생 2막, 취미 2막의 시대가 도래하게 됩니다.


제일 먼저 도전한 취미는 퀼트였습니다.

(사진은 제 작품은 아닙니다. 블로그의 베트남 퀼트샵 사진입니다. 문제시 삭제할게요.)


조각조각 조각 천을 오리고 이어 붙여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해서 인형도 만들고 가방도 만들고 이불도 만들고 액자도 만들고 세상 모든 것들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태교에 바느질이 좋다는 얘기도 있었고, 잡지에서 본 조각조각 이어진 핸드메이드 퀼트 이불은 늘 제 로망이었던 지라 나도 내 키보다 훨씬 큰 퀼트 이불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임신 기간 내내 바느질을 해댔습니다.

퀼트란  묘한 데가 있어서 자르고 오리고 이어 붙이고 하는 번거로운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바느질을 한 땀 한 땀 하다 보면 시간이 어찌나 잘 가는지 그 당시엔 집에 잠만 자러 오지도 않는 바쁜 남편의 아내가 하기엔 정말 안성맞춤인 취미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태어날 아기의 신발, 턱받이, 모자, 이불, 아기방에 걸 액자, 친정 시댁에 선물할 가방, 파우치 등등등을 만들며 10개월간을 보냈습니다. 이것은 그 당시 제가 최고로 오래 갖게 된 취미였으며 이 퀼트 초급 클래스로 저는 고급 기술은 아니지만 생활에 필요한 단순한 바느질(지퍼 달기, 단추 달기, 시접 처리하기, 바이어스 하기 등)의 기술을 익힐 수 있었어요. 무거운 배를 안고, 나중엔 아기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이불을 다 완성해야 한다는 엄청난 오기로 밤에 잠도 자지 않고 그대로 앉아서 식음을 전폐하고 바느질을 하던 기억과 함께 나중엔 허리를 펼 수도 없고 어깨에 담이 와서 심지어 침대에 거의 눕다시피 하며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딱 맞춰 완성한 퀼트 이불은 저의 처음이자 마지막 퀼트 이불이 되어 아직도 사시사철 우리 집 소파 위에 상시 대기 중입니다. 이거 엄마가 한 땀 한 땀 잠도 못 자고 널 위해 만든 이불이라며 딸에게 짐짓 생색도 내고 그러거나 말거나 딸은 그냥 태어나면서부터 덮었던 그 조각이불이 그냥 좋아서 그 이불을 덮고 앉아 동그마니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내심 흐뭇하기도 하고, 오기로 밤새 바느질을 하던 제 모습이 떠올라 혼자 빙긋 웃기도 합니다.  그 열정을 다 해 하던 취미를 지금도 하고 있냐고 묻는다면 네, 지금은 잠깐 한 십 년 쉬었습니다. ㅎㅎㅎ.  이유라면 그 일 년간 너무 많은 것들을 만들었고, 저는 고된 육아로 십 년 동안 바늘을 잡을 수 있는 심리적인 상태가 아니었으며, 예쁜 퀼트 천들은 대부분 수입이라 고가이기도 하고, 뭐 이런 거 저런 거 다 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네 저는 똥 손입니다. 저는 바느질을 못 해요, 모양은 얼추 나오지만 퀼트 선생님처럼 고운 한 땀 한 땀이 안 나오는지라 제가 해 놓은 작품들이란 정말 아마추어의 것으로 밖에 보이지가 않아요. 꼼꼼하고 솜씨 좋은 누군가는 제 작품을 보고 꼭 이렇게 한 마디 하지요. “ 여기 왜 이렇게 했어? 좀 다시 풀고 하지 그랬어?”.  그 비싼 천을 이렇게 쓰느니 좀 더 좋은 곳에 쓰는 것이 지구를 위해서 더 나은 선택이라 여기며 저는 바느질로 작품을 만드는 일은 중단했습니다. 물론 그때 사 모은 온갖 퀼트 천들은 아직도 장롱 안에 남아 가끔 딸내미 인형 옷 만드는 데 쓰이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엄마의 취미 생활 덕에 딸은 그 비싼 천들을 입맛에 맞는 대로 골라서 돈 한 푼 내지 않고 각종 인형들 드레스 해주는 데 잘 쓰고 있다는 안부를 전합니다.


두 번째 취미는 복싱입니다.

복싱이라…  갑자기  퀼트에서 복싱으로 뛰는 일관성 없는 취향 무엇? 하겠지만, 저는  아이가 두 돌 되면서 아이를 돌보미 선생님께 일주일에 세 번 두 시간을  맡기고 복싱을 다녀올 것을 공표했습니다. 남편은 이제 24개월 된 애를 두고 니가 무슨 급한 용무가 있어서 남의 손에 애를 맡기고, 그것도 복싱을 하러 일주일에 세 번 두 시간씩 복싱을 하러 나가냐고 되물었습니다. 네가 복싱선수가 될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네가 운동에 되게 취미가 있거나 운동을 엄청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그러게 이 모든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전 왜  그때 그 두 돌 짜리 애를 남의 손에 맡기고 복싱을 하러 가지 않으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일까요?  왜 복싱이냐 묻는다면  그것은 모르겠고, 아마 당시 TV 무슨 정보 프로그램이나 어떤 잡지에 복싱이 다이어트에 좋다고 나온 것을 봤겠지 싶습니다.  그냥 그 많은 것 중에 복싱이 얻어걸린 것이었을 수는 있으나 어쨌든 저는 그것을 하러 이 집에서 나가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이 열망은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점차 커다래진  것인데, 저는 애가 두 돌만 되면 이 집에서 당당하게 나갈 구실을 계속 찾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어이없다는 남편의 반응도 무시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딸은 엄마가 뭘 하러 일주일에 세 번 두 시간씩 자기를 두고 어디론가 나가는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으나 저는 정말 엄청난 포부를 갖고 복싱을 하러 집을 나섰습니다.

음.. 그래서 복싱은 어땠냐고? 물으신다면...

사실 그건 좀 제 스타일은 아니었습니다. 일단 가면 맨손으로 체조를 좀 하고요, 그리고 줄넘기를 막 오백 개 천 개 시켜요. 저는 근데 아까도 말했다시피 몸치에다 운동도 못하잖아요. 그 줄넘기하기가 되게 힘들고 재미가 없어요. 그래도 일단 참고합니다. 그러면 이제 샌드백을 치라고 하는데, 저는 또 힘도 없어요. 그래서 샌드백도 막 영화에서 처럼 세게 못 치고, 그거 치면 막 스트레스 풀리고 그럴 거 같다는 환상이 다들 있으실 텐데 그렇지도 않아서 샌드백을 치면 다시 나한테 돌아와요. 정말 맥없이 당하는 기분이랄까, 뭐 일단 그것도 참아보고. 그러면 링에서 스파링을 합니다. 이걸 관장님이랑 하는데, 이것도 뭐 영화에서 처럼 그렇게 멋지거나 막 스펙터클 하지 않고, 저란 사람이 하는 복싱이 뭐 애들 장난 수준밖에 더 되겠습니까? 영 흥미가 안 생기고, 게다가 그때엔 복싱을 하고 싶은 여자 사람은 없었는지 제가 가는 시간에만 그랬는지 그 복싱장엔 왜 학생이 저밖에 없었던 걸까요? 복싱장에서 관장님과 둘이 있으면 그것 또한 너무 어색한데, 관장님은 자꾸 말을 시키고. 이런 복잡한 상황 속에서 나는 복싱을 하겠다며 애까지 맡기고 문을 박차고 나갔으나 돌보미 선생님의 아들이 다리가 부러져  간호로 몇 달간 못 오신다는 비보와 함께 두 달만에 복싱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는 슬픈 이야기. 그래서 나는 복싱은 아닌가 보다는 깨달음을 얻고 아무리  TV에 이시영이 나와  명품 복근을 보여주며 복싱 예찬을 펼쳐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세 번째 취미는 뜨개질

(사진은 제가 좋아하는 혜밀님의 작품입니다.)

이제 딸이 어린이집에 갈 무렵, 저희 집 앞엔 손뜨개 카페가 생겼습니다. 어렸을 때 할머니랑 아랫목에 앉아 털실을 감아가며 주야장천 겉뜨기 속뜨기를 반복하던 손뜨개. 그 당시엔 여자라면 누구나 뜨개질을 할 줄 알았었는데, 할머니가 떠준 조끼도 입고, 장갑도 끼고 다니는 게 당연한 것이었는데 잊고 있었습니다. 그래, 손뜨개만 마스터한다면 나는 수세미도 목도리도, 스웨터도, 가방도, 이불도, 테이블 매트도 원하는 대로 다 뜰 수 있어. 이거 얼마나 가정 경제에 보탬이 되는 아름다운 취미란 말인가. 그 길로 당장 카페에 뜨개질 수강 등록을 하고, 각종 털실과 장비 구매, 일주일에 한 번은 카페에 도장 찍어 가며 커피와 함께 뜨개질의 매력에 또 흠뻑 빠졌습니다. 매력에 빠진다는 것은 곧 돈을 쏟아붓는다는 것과 같은 말이기도 한데, 세상엔 또 어쩜 그렇게 예쁜 실은 많고, 코바늘, 대바늘 각종 바늘은 종류도 쓰임도 다양한지  온 가족 스카프, 계절 이불, 쿠션, 매트, 수세미, 목걸이 등등을 뜨며 뜨개질 삼매경에 빠졌어요. 같은 바느질이긴 하지만 뜨개질은 바느질보다 간편한 점이 있었고,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다는 대단한 장점이 있어서 카페에 갈 때도, 친구네 갈 때도, 지하철에서도 앉아서 뜨개질을 하면 남들보다 시간을 두 배는 효과적으로 쓰는 것 같은 보람찬 기분이 들기도 했어요. 이 취미 생활은 정말 마약 같은 것이어서 문제는 뜨개질을 시작하면 정말 뜨개질만 하게 된다는 단점이 있는데, 내가 뜨개질을 시작하면 그 순간부터 집안일은 모두 중지, 나는 책도 못 읽고, 남편과 딸 말도 건성건성 듣게 되고, 아 이제 여기까지만 하고 그만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루에도 수십 번은 하지만 워낙에 목표지향성 인간인지라 빨리 완성된 모습을 보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아 정말 정지 자세로 앉아서 뜨개질만 하게 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록달록 색깔의 뜨개실을 마주하고 앉아서 이 색 저 색 어떤 색을 섞어서 어떤 모양을 만들어 볼까 혼자 구상하는 시간은 정말 행복한 것이어서 이렇게도 떠 보고 저렇게도 떠 보다 마음에 안 들면 다시 풀고, 다시 뜨고 백 번 해도 망가지는 것도 없이 계속 뜰 수 있는 뜨개질은 정말 매력적인 것이었어요. 그리하여 몇 년간 또 엄청난 뜨개질을 했으나 그 후유증으로 이제 정말 눈이 침침하고 목과 어깨에 담이 와서 좀 쉬어야겠다 생각한 지 몇 년째. 가끔 필요한 것들이 생기면 또 후르륵 떠봐야지 싶기도 하지만 요샌 사실 맘 편히 앉아서 뜨개질을 할 여유도 체력도 되지 않는지라 가끔 수세미나 뜨거나 딸내미 인형 옷 주문 들어올 때나 바늘을  잡습니다.


네 번째는 자수

( 제게 자수의 묘미를 알려준 친구의 작품입니다)


자수는 사실 취미라고 까지는 못하겠고 취미로 하고 싶었으나 영 발전이 없어서 그냥 두었다고나 할까?

친구 중에 자수 두는 친구가 있어서 옆에서 흘끗흘끗  볼 때마다  늘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어요.

“ 나는 진짜 자수까지는 하지 말자. 저렇게 고운 자수는 진짜  아무나 하는 게 아님.”

사실 그랬는데, 친구가 자꾸 옆에서 하니까 나도 하고 싶어 졌고, 자수는 너무나 예뻤고, 자수는 실만 있으면 되니까 돈도 안 들 것 같고 그래서 친구 옆에서 하나 두 개 실을 빌려서 하다가 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싶네? 그래서 정말 필요한 실만 조금만 샀더니 또, 자수 실 담을 통이 없네?  자수 틀도 필요하고, 바늘도 퀼트 바늘만으론 좀 안 되겠어  이러다 보니 또 자수 세트가 생겨버렸습니다. 그래서 지지난 겨울에는 친구 따라 옆에서 자수 도안 카피해서 이거 저거 수도 놔보고, 수놓은 것들을 여기저기 달아보기도 하고, 자랑도 해보고 했으나 역시 꼼꼼한 바느질은  나와는 어울리지 않을 뿐이고, 거기에 한 수 더 떠 나에게 자수의  재미를 알려준 친구는 멀리 이사를 가버렸고, 그렇다면 혼자 절차탁마의 자세로 열심히 한 땀 한 땀 수를 놓았으면 될 것인데.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요, 이렇게 끝날 것이라는 것을 하지만 예쁜 자수실은 고이 남았으니 이 또한 또 마음이 내키는 어느 날  한 땀 한 땀  다시 시작할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돌고 돌아 다시 발레 이야기를 하자면,

발레를 시작한 것은 무려 7년 전. 

다섯 살 된 딸애를 어린이집에 보내 두고, 급 생긴 자유 시간을 어찌할 바를 모르던 나는 많은 여인들의 로망인 발레를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발레라... 우아한 자태 하며 하늘하늘한 발레복을 입고 나도 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발레의 세계에 입문하지요. 초보의 발레란 사실 누가 보면 그냥 체조 같은 것일 수도 있는데 굳이 발레복이 필요하냐고 묻겠지만 네네 필요합니다. 이게 같은 체조라도 발레복 입고하는 체조랑 츄리닝 입고하는 체조랑 다르거든요. 그래서 저는 발레복을 또 삽니다. 그래 봐야 발레복은 좀 여유 있으면 사고, 여유 없으면 안 사고, 발레가 지겨워질 때쯤 또 하나 사고 아니면 참으면 되니 사실 여타의 취미 생활보다 경제적 부담이 없는 것도 같습니다.( 물론 이것은 개개인마다 다를 테죠.) 여하튼 이러저러한 각종 취미 생활을 전전하다가 왜 발레에 안착했냐고 물으신다면 그럼 이제부터 발레 예찬을 해보려 합니다.

태생이 몸치인지라 몸치가 아닌 사람을 동경합니다. 무용 공연 보러 다니는 것도 좋아하구요 춤 잘 추는 사람 무조건 좋아해요. 그래서 발레도 좋아합니다. 보는 것과 하는 것은 다르지만 발레는 하러 가면 일단 음악이 너무나 좋아요. 경쾌하고 우아한 피아노 반주에 맞춰서 몸을 풀고, 선생님처럼 되지는 않지만 바에 손을 얹고 팔다리 움직이다 보면 온갖 걱정이 사라지고 정말 발레리나라도 된 것 같은 마음이 들기도 해요. 물론 저는 또 여기서 엄청난 몸치인지라 남들 땅에 코 닿을 것을 저 혼자 불뚝 솟아서 낑낑 대고 하는 게 전부 거울에 그대로  보이지만 사실 그까짓 거는 좀 뻔뻔하면 되고요. 선생님도 학생들 한 두 번 보면 딱 견적이 나오시는지 저 이렇게 뻣뻣한 거 이해하십니다. 그리고 이 나이에 전공할 것도 아닌데 제가 근육 찢어지고, 인대 파열돼가면서 까지 열심히 하진 않아도 되잖아요? 그래서 저는 정말 열심히 하지 않으면서도  (그래서 실력이 정말 더디게 늡니다)  정말 발레를 좋아해요. 첨엔 그렇게 뻣뻣한 저였지만 모두가 궁금해하는 다리 벌리기는 이제 180도까지는 아니어도 160도 정도는 벌어지는 것 같고, 다리 찢기가 발레의 모든 것이 아니기에 그 수많은 발레의 동작들이 다 잘 되지는 않아도 그래도 얼추 보면 발레 스텝 비슷하게 따라 할 수는 있는 정도입니다. 아마 다른 분들이 8년을 했으면 이미 발레리나 급이겠지만 그냥 저는 이 정도도 너무 좋아요. 그렇게 일주일에 두 번 발레 학원에서 피아노 소리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그 시간이 저에겐 진짜 힐링이거든요. 그리고 내킬 때마다 밖에서는 절대 입을 수 없는 하늘하늘한 발레복도 깔 맞춰 사고하는 그런 소소한 행복들 말입니다. 그렇게 발레를 한 지 8년쯤, 지난 겨울엔 방학을 핑계로 잠시 발레를 쉬고, 정말 집에서 세끼 밥만 하다가 3월 새 학기를 시작으로 늘 혼자 하던 발레를 이제는 딸과 함께 합니다. 딸도 발레 5년 차, 엄마를 닮았는지 모든 운동을 다 싫어하는 우리 딸도 발레는 그나마 싫지 않아서 근근이 5년 동안 버티고 있는데요, 고학년이 되며 학원 스케줄이 맞지 않는 관계로 이번 달부터는 밤 9시에 성인반에서 엄마와 함께 발레 수업을 합니다. 그래서 딸과 함께  발레 수업을 한 지 2주 차, 이 것 또한 색다른 기분이네요. (물론 딸과 함께 하다 보니 내 동작은 안 보이고, 자꾸 딸내미의 틀린 동작만 보여 혼자 할 때 보다 집중이 안 되기도 합니다만) 같이 저녁을 후딱 먹고, 하루치 공부를 마무리하고, 둘이 발레복 싹 갈아 입고 발레학원으로 가는 기분이라니 이거 남자들이 아들이랑 같이 목욕탕에 처음 갈 때 마음이 이런 걸까요? 정말 인생에 아무나 느껴보지 못할 그런 기분이라는 게 있긴 합니다. 사실 밤 9시는 애 재우느라 바쁜 시기이기도 하고, 밤에 돌아다닐 곳도 없는 나이가 돼서 간만에 마셔보는 밤공기가 상쾌하기도 하고, 그 밤에 후끈한 발레학원 분위기도 엄청 자극적입니다. 그래서 저는 올해도 역시 다른 운동이나 취미로 갈아타지 않고 발레를 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뻣뻣하고, 우아하지 않지만, 8년이나 했어도 발레리나의 우아한 등근육이 전혀 생기기 않아서 떳떳하게 나 발레 하는 여자예요.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저는 발레 하는 이 시간이 정말 좋아서 저의 최애 최장 취미 생활로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이런 취미 발레인의 꿈이 있다면 죽기 전에 피아노 라이브 반주를 BGM으로  발레를 하고 싶다는 것. 아쉬운 것은 피아노 라이브 반주에  어울리지 않는 너무나도 초급인 제 수준이 미안해서 당장 피아노 연주자를 섭외할 실력도 능력도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만 제 취미 생활의 정점은 아마  라이브로  피아노가 연주되는 센터에서 발레를 하는 순간  완벽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니면 딸과 함께 언젠가 배낭여행이라도 간다면 파리 국립 발레단, 러시아 국립 발레단 뭐 그런 일일 클래스 같은 데서 길고 늘씬한 백인들 사이에서 너무 쫄리지 않을 정도로 발레 한 번 해보는 것이 취미 발레 8년 차인 저의 소박한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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