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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푸레나무 식탁 Mar 22. 2019

식탁 일기 -  발칙한 중년이 되는 법을 알려다오

발칙한 중년과 우아한 중년 사이

어제 두 젊은 작가의 글을 읽었다. 

이슬아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와 강이슬의 < 안 느끼한 산문집>.

잠깐 소파에 누워서 오전부터 움직였더니 피로가 몰려와서 잠깐 누워 십 분만 자고 일어날까? 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잠에서 홀딱 깨버렸다. 두 명의 젊은 작가들이 쌍으로 몰려와서 뒤통수를 후려치고 사라졌고, 나는 얼떨결에 제정신이 들었다.


세상에, 이토록 발칙하다니.

어쩜, 나보다 십 년도 더 어리면서.

진심, 이렇게 잘 써도 되나?

아 난, 인생 헛살았구나.

쳇, 못 하는 게 없네.

그래서, 부럽다.


무방비 상태로 있다가 깜짝 놀라 그녀들의 이력을 찾아본다.


이슬아 - 이젠 베스트셀러 작가, 연재 노동자. 하루 한 편 뭐라도 쓸 테니 돈을 내고 구독하시오 파격적인 셀프 연재 프로젝트의 창시자. 기자, 만화가, 글쓰기 교사, 누드모델을 넘나드는 팔색조 매력.


강이슬 -  브런치 북 대상 수상 작가. 예능 프로그램 작가. 욕도 많이 하고 술도 많이 마시지만 착해요. 개와 밤을 좋아한다고 한다.


통통 튀고 반짝반짝하는 것은 글뿐만이 아니었구나 그녀들은 이렇게 현실도 젊디 젊고, 반짝반짝하여 중년의 나를 주눅 들게 했다. 게다가 나이도 어리면서 사십이 넘은 나 보다 더 철이 든 것 같은, 이런 삶에 대한 통찰력의 정체는 무엇이냐?


알코올기 하나 없이 문득 나의 십오륙 년 전을 뒤돌아 보다가 불현듯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 젊은 날에 너는 왜 그렇게 생각 없이 살았느냐?

어찌 보면 심플한 인생이다. 초중고를 마치면 대학을 가라 해서 대학을 갔고, 졸업도 하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은 찾아 취직을 했고, 시키는 대로 열심히 일하다 결혼을 할 나이가 된 듯하여 결혼을 하고,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아야 하니 아이를 낳고, 그럼 또 부모의 역할과 책임을 다 해야 하니 열심히 키웠다.

그러다 보니, 어? 나 지금  사십이 넘은 거야? 이렇게 돼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나의 젊은 시절에 화가 나는 것은 그때 나는 왜 그렇게 아무 생각이 없었는가. 왜 남들처럼 대학 가고, 남들처럼 취직하고, 남들처럼 결혼해서 애 낳고 살면 경단녀가 되지요.라는 것을 알지 못했나? 왜 남들처럼 해야 한다고 생각했나? 왜 자신의 인생을 살지 못했나? 왜 질문하지 않았나? 왜 내 안의 욕구에 질끈 눈감는 법부터 배웠나?

아 , 쓰다 보니 끝도 없고, 점점 더 화가 난다.  

젊은 너는 왜 그렇게 고분고분 살았는가?  


몇 년 전, 70년도 후반생인 내가 80년도 후반생인 막내 작가를 만났을 때  느꼈던 바로 그 기분이다.

처음 방송국에 출근하면서 죄진 것도 없이 이상하게 주눅 들어 있던 나의 막내 시절과 달리 엄청난 젊음의 에너지와 행동력에 나를 감탄시키던 그 아이.

한숨만 푹푹 나오던 긴 회의 시간에 프로그램이 이 모양 이 꼴로 돌아가는 게 전부다 내 탓인 것 같아서 자괴감만 드는 나를 위로하며 젊음 특유의 재기 발랄함을 뿌려주던 아이.

나이가 어려서, 여자여서 못할 말은 없다며 당당하게 할 말 다 하던 그 아이.

이런 게 세대차이구나, 순간순간 멈칫하고 당황하기도 했지만 그 아이를 보는 내내 나중에 우리 딸도 저랬으면 하고 혼자 생각했다. 저렇게 자신의 욕구를 스스럼없이 말하고, 당당해질 수 있는 인생이라면 뭘 해도 후회 없겠다 싶었던 것이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돈을 더 벌려면 시간을 그만큼 더 쏟아야 해서, 시간 대비 고수익 일자리를 궁리하다, 나 아닌 다름 사람으로 대체될 수 없는 일을 찾아 누드모델이 되는 과감함, 스스로를 연재 노동자라 칭하며 6개월 동안  월화수목 금요일에 매일 글을 써서 독자들에게 전송했다는 성실함, 자신의 몸과 성에 대해 괜히 부끄러워하지 않고 말할 수 있는 당당함, 거기에 엄마와 가족 주변을 대하는 따뜻함.

방송 작가 하겠다고 상경하여 966천 원의 막내 작가 월급을 받고, 보증금 천만 원에 어울리는 방을 찾아 전전하지만  오늘도 열심히  일하고, 쓰는 생활인. 하나부터 열 가지 건강하다. 이토록 건강한 정신과 육체를 가진 젊은이들이라니 본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어제까지 나는 우아한 중년이 되고 싶었다.

학교 총회에 갈 때, 그물 스타킹에 미니스커트 같은 것은 천박하다고 생각하며 중년의 나이엔 그에 어울리는 에티튜드를 보여야 한다고. 나는 이제 안정적인 삶을 사는 우아한 중년으로 그에 맞는 여유와 삶을 대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그런데 왜?

왜 중년의 여자는 우아함을 최고의 미덕으로 손꼽아야 한단 말인가?  왜 중년은 조금이라도 튀면 늙기 싫어 발악하는 것밖에 안된단 말인가? 왜  중년의 삶은 가족을 위해 나를 희생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가?


그래서 난 이제 그녀들처럼 발칙한 중년이 되기로 결심한다.

발칙한 40대라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하나?

아가씨 때 입던 미니스커트와 그물 스타킹을 신고, 아니 그건 좀 무리라면 오늘처럼 강력한 꽃샘추위에도 발목 양말에 청바지를 접어 있고, 생살을 그대로 내놓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걸을 수 있어야 하나.  그것도 아니라면  애도 딸린 유부녀가 이제 와서 나의 욕망을 더 이상 숨겨둘 수 없다고 지나간 젊음에  화풀이하며 당장 내가 짊어진 일상과 책무를 내동댕이 쳐 버릴 순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젊은 작가들을 다시 샅샅이 읽는다.

젊다, 젊어서 부러운데, 젊어서 안쓰럽다가, 젊어서 다행이다, 싶다.

다시 되돌아본다 나의 젊음을.

나는 용기가 없었고, 남들 사는 대로 살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면 답을 얻을 줄 알았는데, 이만큼 살아보니 그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열심히 살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 했으나 그녀들처럼 과감하게 그것을 뛰어넘을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 나이의 젊은 여자는 적당히 욕먹지 않을 정도로 튀지 않게 살다 보면 행복해질 줄 알았다.

그 나이의 나는 젊음이 그렇게 계속되지 않을 것을 알았어야 했다.

그 젊은 나이에 남들처럼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바보짓이었다는 것도. 그때, 나는 나 자신을 고민했어야 했다. 내가 나답게 살기 위한 방법을 남들이 아닌 나에게 물어봐야 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했으니 이제 와서 이렇게 땅을 치고 후회하고, 고민하는 것이리라.

그래 놓고 이제 와서 우아한 중년이 되겠다니. 이쯤 되면 나는 우아할 자격도 없는 것이 아닌가?


우아하다:

고상하고 기품이 있으며 아름답다.


발칙하다:

하는 짓이나 말이 매우 버릇없고 막되어

괘씸하다.


인간이라면 한 번쯤은 발칙하게 살아봤어야 하는데 , 고분고분 살다 보니 중년의 내가 되었네.

이래 놓고 우아하자면 그건 사기 아닌가? 고상하고 기품 있는 아름다움은 갈고닦아야 만날 수 있는 것인데. 이제부터라도 발칙하여, 우아한 노년을 만나보세.


덧, 나도 그녀들처럼 발칙하게 살아보기로 마음먹은 지 오늘부터 1일.

잊지 않기 위해 오늘도 적는다.   

(그렇다면, 행동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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