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푸레나무 식탁 Mar 29. 2019

독서 일기 <내 꿈은 9급 공무원><벼랑에 선 사람들>

<내 꿈은 9급 공무원>, <벼랑에 선 사람들>, <인간의 조건>을 읽고

이번 달 중학 1학년 필독서로 읽은 <내 꿈은 9급 공무원>.

요즘 내 꿈도 가끔 9급 공무원일 때가 있어서, 청소년이 읽는 책에 9급 공무원은 어떤 식으로 표현돼 있는지 기대하며 책을 읽었다.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직업과 꿈에 대한 별 고민 없이 ‘9급 공무원’을 꿈으로 삼은 ‘나’가 준혁 남매의 편지를 훔쳐보며 직업과 꿈에 대해 고민을 한다는 이야기. 책 속에서는 명문대를 나와서 집에 들어오지 않고 회사에서 일만 하는 대기업 샐러리맨인 아빠. 그런 아빠와는 다르게 살고 싶어서 아예 꿈을 CEO로 삼은 준혁이, 회사원이 아니라면 안정적인 미래를 위해 ‘공무원’을 선택하는 게 좋겠다는 예은이. 아이들 가르치는 데는 영 소질이 없는 것을 알지만 여자는 교사가 최고라는 말에 교대를 꿈꾸는 세빈과 피 보는 건 싫지만 교대보다는 입학 점수가 낮아도 될 것 같은 간호대를 목표료 하는 민주 등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자신의 현재의 처지와 미래를 두고 선택을 갈등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상투적이고 뻔하게  " 좋은 직업이란 ~ 해야 한다." 로 끝날까 걱정했으나 아이들과 함께 직업과 꿈에 대해 얘기하기 좋은 소재일 것 같아 읽는 동안 아이들과 함께 진로수업을 할 때 도움이 많이 될 것이라 기대했다.


그리고 대망의 수업 시간,

“ 얘들아 이 책 엄청 재밌고, 유익하지 않았니?” 란 물음에

“그런데 9급 공무원이 뭐예요???” 

아.. 잠깐 실망할까 했으나 그래 나도 중1 때 9급 공무원이 뭐였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자세히 몰랐을 거야  그럼 그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시간에 책 소개하며 살짝 이야기해주지 않았더냐!  그리고 책을 읽는 내내 몰랐으면 좀 물어보거나 찾아보지 그랬니 아이들아.) 최대한 친절하게 9급 공무원과 그들이 하는 일을 설명하고, 9급 공무원을 선호하는 이유와, 책 속의 정규직 비정규직 문제를  아이들과 이야기 나눠봤다.

워낙 곱게 자란 아이들인지라 일단 정규직과 비정규직 이야기에 충격, 9급 공무원은 너희가 생각하는 대기업보다는 월급이 적다는 말에 또 한 번 충격,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직업이 최고라는 생각에 아이들의 의견이 모아졌다.

직업이 꼭 꿈은 아니고 직업은 꿈을 이뤄가는 수단이며 인생과 미래에 대한 목표는 무슨 직업이 아니라 그 직업을 통해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를 하며 그렇다면 우리에게 돈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없다면 너희는 어떤 직업을 택하고 싶니라는 물음에 돌아오는 대답은 이랬다.

“돈과 불안이 다 해결된다면 그냥 게임이나 하며 맛있는 거 먹고 방탄 콘서트나 찾아다닐래요.”

“게임과 방탄 콘서트가 나쁘다는 게 아니야 한 번뿐인 인생을 많은 돈과 안정까지 갖추고서도

그냥 게임만 하고 콘서트만 보면 시간을 보낸다면 행복할까?”

“그럼요 무슨 걱정이 있겠어요. 아무 걱정 없고, 하고 싶은 거 하고 게임하다 자고 게임하다 자면 진짜 좋겠어요.”

그렇다고 이 학생이 문제아이거나 공부를 안 하는 학생이 전혀 아니라는 사실을 먼저 얘기한다. 초등 5학년부터 같이 수업을 하고 있는 이 학생은 똘똘하고, 자기 할 일도 잘하고, 책도 잘 읽어오고,  자기 의견도 잘 표현하는 매사에 모범이 되는 학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는 중학교 새 학기가 시작된 후부터는 뭔가 변했다.

생글생글 눈을 반짝이며 “선생님, 이번 책 진짜 재밌었어요!” 하고 문을 열고 들어오던 아인데, 요새는 들어오는 순간 “쌤, 오늘 일찍 끝나면 안돼요?”로 시작해서, 수업하다가 급 잠이 몰려오고, 각종 당류를 제공하며 잠을 깨우면 그제야 정신 차리고 “정말 너무 피곤해서 죽을  같다.”로 마무리된다. 아침 일찍 학교 갔다가 오자마자 가방 바꿔서 수업 오고, 끝나자마자 영어 학원 가서 집에 가면 9시가 넘어야 된다고. 그리고 숙제하고 씻고 자면 또 학교, 학원, 숙제 스케줄. 그렇다고 그게 특별히 바쁜 날이 아니라 내일도 모레도 앞으로 쭉 이럴 테니 오후만 되면 체력 고갈로 전혀 수업시간에 집중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런 아이에게 직업이니 꿈이니는 하나도 공감이 안 되는 것이고  빨리 이 시간을 끝내고 영어 학원을 갔다 집에 돌아가서 그저 누워서 게임이나 하다가 좀 쉬고 싶은 게 당연한 마음 이리라.

그렇다고 내가 그렇게 힘들면 학원을 줄이라던가, 그렇다면 이 수업은 그럼 대충 하자고 말할 수도 없으니 나는 또 나대로 애들을 살살 구슬리고 달래 가며 그날 해야 할 내용들을 꾸역꾸역 끝내고, 조는 애들 깨워가며 이 피 같은 시간을 이리 보내면 안 된다며 뭐라도 쓰고 가라며 닦달하는 것이다.

새 학기라 그런가 특히 중학생 아이들은 요즘 유독 피곤해해서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나의 마음도 영 편치가 않다. 안쓰럽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그렇다고 쌤이자 엄마맘으로 하고 싶은 얘기를 하면 그것 또한 잔소리밖에 안 되는지라 아이들이 그렇게 피곤하고 소중한 이 시간에 졸음을 참아가고 앉아 있는 이 시간에 제발 뭐라도 하나 얻어서 가기만을 그리고 이제 좀 이 생활에 적응이 되면 또 활기차게 좀 나아지길 바랄 뿐이다.

비록 너무너무 졸음이 몰려오고, 지금 꿈 따위는 개나 주고 싶은 마음이었겠으나 앞으로 꿈과 직업, 진로를 선택함에 있어  우리가 꼭 생각해봐야 할 것들을 얘기해 봤다. “좋은 사회에 살아야 좋은 꿈을 꾸며 살 수 있고, 사람은 사회를 떠나 살 수 없다는 것. ‘나’만의 꿈이 아닌 ‘우리’ 모두의 꿈을 꿔야 한다.” 는 책 속의 문장처럼 이 꿈이 나만이 행복하자는 꿈인지, 우리 사회를 위해 도움이 되는 꿈인지를 생각해보자고. 그러고 보니 그저 게임이나 하고 잠이나 실컷 자고 싶은 아이들의 꿈이 더 나은 미래를 담보로 " 지금 달리지 않으면 큰일나!" 를 얘기하는 우리들 때문인 생각이 들어서 영 마음이 편치 않다.

 

제정임, 단비뉴스 취재팀 < 벼랑에 선 사람들>

친구  H의 추천으로 읽게 된 책. 이 책은 세명대 대학원생들이 만든 온라인 신문인 <단비뉴스>에서 1년 반에 걸쳐 연재한 ‘ 가난한 한국인의 5대 불안’을 묶은 책이다. 제목에서 시사한 바와 같이 한국 사회의 벼랑 끝에서 간신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얘기를 르포 형식으로 취재했다. 총 5부작으로 근로 빈곤의 현장( 가락시장 파 배달꾼, 텔레마케터, 출장 정소부, 특급호텔 하우스맨), 빈곤층 주거의 현실(하루 6천 원 쪽방, 만화방을 떠돌다 지하도로 가는 사람들, 깔세, 지하셋방, 고시원, 비닐하우스), 애 키우기 전쟁(철거촌 빈집에 방치된 아이들, 육아휴직 쓰면 책상 빼, 싱글맘 등) , 아프면 망한다(난치병, 장애아 키우는 형벌, 중병 파산, 치료하면 빈민), 저당 잡힌 인생(학자금 대출에 허덕이는 대학생, 대출과 고금리, 사채의 족쇄)으로 구성돼 있다.  


김 씨, 박 씨, 준수 형님은 모두 ‘자기 하는 만큼 벌어가니 열심히 하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술 먹느라 돈 못 모으고, 제때 안 나와서 월급 못 받고, 일 못해서 욕먹는 것은 모두 ‘내 탓’이라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사회 구조나 제도에 의문을 품는 것은 그들과 거리가 먼 일이었다. 밤새도록 뼈 빠지게 일했는데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로 벌고, 작업장에서 기계 취급을 받고, 다치거나 병이 생기는 경우에도 아무런 보장이 없는 현실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무능과 불운을 탓할 뿐이었다.(p40)


우리가 다니는 학교, 회사, 공공기관 등에 청보수가 없다고 생각해보자. 며칠 못 가 쓰레기통이 넘쳐나고 화장실에서 악취가 진동할 것이다. 청소는 너무나 필수적인 기능이고, 늘 필요한 서비스다. 지금도 필요하고, 내년에도 필요하다. 그 후년에도 없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필수적인 기능을 왜 하나같이 외부 용역에 맡기고,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방치할까? 정말 전문적인 기계작업, 혹은 야간작업이 필요한 경우라면 몰라도 일상적 청소업무는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하는 게 아닌가? 중간에서 용역업체가 떼 가는 수수료만 얹어주어도 청소원들의 임근 수준은 꽤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 p79)


반복은 ‘달인’을 낳는다. “저도 <생활의 달인>에 나가면 잘할 수 있겠죠?” 그는 누구보다 빠른 손놀림으로 보통 사람의 두 배에 가까운 일을 해낸다. ‘그런데 달인이라서 슬퍼요.” 그들이 두 몫을 하니, 경영자는 지금 인원으로 충분히 호텔이 운영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작 그 ‘달인들’에게 주어지는 보상은 겨우 최저임금을 웃도는 쥐꼬리만 한 봉급일뿐이다. 경민 씨는 경력 4년이지만, 그와 나의 월급 차는 겨우 5만 원이다. 비정규직이라 경험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P87)


이렇게 고시원에 살다 보면 라디오나 전화 통화 따위를 조심하는 것은 물론 음식 먹는 소리, 커피 마시는 소리, 심지어 기침 소리도 죽이게 돼 ‘소리 내지 않는 인간’이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p160)


“노숙인과 일반인 구분 지을 거 없어. 누구든 상황에 따라 거리로 내몰릴 수 있거든. 그런데 무료급식소에 가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준다고 벽을 보면서 밥을 먹게 해. 우리가 무슨 죄수야? 짐승이야? 밥 정도는 편안하게 먹고 싶은 게 사람의 기본적 욕구 아니야?” ( p126)


가진 것 없이 태어나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까지 열심히 했으나 늘 제자리, 공부로 신분 상승을 꾀하지만 학자금 대출에 저당 잡힌 젊음, 고시원, 만화방, 다방, 찜질방을 전전하다가 그도 어려우면 길바닥 신세, 거기에 병이라도 얻는다면 망하는 것, 한 때 잘 나가는 사장님도 한 번 삐끗하면 벼랑 끝에 설 수밖에 없는 사회가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러고 보니 사회가 이러니 우리들은 아이들에게 공부라도 해야 먹고살 수 있다며, 벼랑 끝에서 살고 싶지 않으면 공부라도 하라며 어릴 때부터 학원으로 밖으로 등을 떠밀고 있는 게 아닌가?


영화  <나, 다니엘 브레이크>를 보면 싱글맘 케이티는 새집을 얻어 어떻게든 열심히 살아보려고 하지만 그녀가 가진 돈으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집에서 그녀는 하루 종일 청소를 한다. 아무리 닦아도 닦아도 얼룩과 곰팡이가 지워지지 않는 그 집, 누구보다 열심히 타일을 닦고 마룻바닥을 닦아도 그 집은 그녀가 원하는 집이 절대로 될 수 없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평생 성실하게 살았으나 지병인 심장병이 악화되어 관공서를 매일 같이 찾아가며 실업급여를 받으려 갖은 고생을 다 하지만 복잡한 절차는 개선되지 않고, 아무리 성실하게 살았어도 아픈 순간 망해버린 인생. 우리는 지금 열심히 살고 있지만 우리의 미래는 절대로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어설픈 행운에 기대어 긍정적인 기운을 최대한 끌어모아 닥쳐올 불행은 생각하지 않으려 하지만 자칫하면 망할 수도 있는 것, 사회 최하층의 삶이 남일이라고만 할 수 없다. 이미 우리는 가구당 1인 사교육비의 증가로 노후대비는 꿈도 못 꾸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지 않은가? 다니엘처럼 아프지 않아도 노후 파산은 피할 수 없는 것이 될 수도 있다.


< 내 꿈은 9급 공무원>을 읽고 건강한 직업과 꿈을 고민했으나 아이들에겐 당장의 휴식이 더 필요했으며,  <벼랑에서 산 사람들>을 읽고 중년의 나는 곧 닥쳐올  ‘벼랑에 선 나’를 상상하며 불안해한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좀 더 건강한 꿈을 꾸기 위해, 우리는 불안한 노후 트라우마를 벗어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그저 운에 기대기엔 너무나 인생이 걸린 문제라는 것을 깨닫고. 이제껏 개인의 성취를 위해 달려왔다면 이제 우리의 성취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덧. 다소 도덕적인 끝맺음이라 맘에 들지 않지만 진실이 그런 것을 어찌하랴. 이제껏 고민만 하는 어른이었던 것에 반성을 하며 행동하는 어른의 모습을 보여줘야 진짜 어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 < 벼랑에 선 사람들>을 읽고 생각난 책 하나.  한승태의 <인간의 조건>

2013년 출간 당시 이 책을 발견해서 읽고, 읽는 내내 진도 꽃게잡이, 돼지 농장, 고시원 앞 편의점, 비닐하우스  노동자가 된 것처럼 흠씬 두들겨 맞은 느낌으로 읽다가 책을 다 읽고 나서야 혹독한 육아 현실도 감사할 지경이라며  겸손과 감사의 미덕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한  책이다. <벼랑에 선 사람들>이 예비 언론인 대학생이 잠시 그들의 세상에 들어가 느낀 것을 담아냈다고 한다면 한승태의 책은 진짜 돼지 농장 똥통에 빠진 채로 쓴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직업군이 평범한 사람은 체험해보지 못한 돼지 농장, 꽃게 잡이, 비닐하우스 등이란 점도 있지만 이렇게 날 것 그대로 인간이지 못한 노동자들을 보여주는 책은 없었으므로. 최소한 빌어 먹고살지 않고  벌어먹고살 수 있는 인간이기 위해 이토록 처절하게 일하는 인간들의 이야기는 어차피 먹고살기 위해 일하는 우리가 한 번쯤은 꼭 읽어봤으면 하는 책이다 강력 추천.

작가의 이전글 식탁 일기 -  발칙한 중년이 되는 법을 알려다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