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싸는 여자, 짐 덜어낸 남자

여행 짐가방에 담긴 삶의 태도

by Moonita




2017년 여름, 우리는 처음으로 돌로미티를 향했다.

그리고 2019년 여름, 같은 산을 다시 찾았다.

두 번의 여행. 두 번의 짐가방.

그리고 전혀 다른 무게.








나는 J형이다.

한 달 전부터 짐 리스트를 정리하고,

바이어 미팅에 입을 옷과 신발,

산행용 복장까지

일정에 따라 가방을 나누어 싸는 사람.

패션 바이어였던 나는,

출장 겸 여행이란 이름 아래

일과 생활, 현실과 판타지를

짐가방 안에 함께 담았다.


나는 하이엔드 브랜드의 바이어였다.

이탈리아의 캐시미어, 프랑스의 실크

—그것들이 내가 고르던 옷감이었다.

고어텍스는,

내 짐가방엔 들어갈 일이 없는 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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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내 남편은 전형적인 P형이다.

전날 밤에 짐을 싸도 훌륭하고,

출발 당일 아침에 챙겨도 괜찮다고 믿는다.


하지만 정작 산에 도착하니

실용적이고 잘 준비된 짐은 그의 것이었다.


남편은 스포츠웨어 브랜드의 MD였다.

고어텍스 재킷, 통기성 좋은 바람막이,

스트레치 팬츠.

고민의 흔적이 없는데도

어쩐지 모든 게 제자리에 있는 짐이었다.


나는 감성으로, 그는 실전으로 짐을 쌌다.

나는 모양을 생각했고,

그는 움직임을 상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산에서 내가 가장 자주 입었던 옷은

남편이 신혼 때 내게 선물해 준,

그때의 내가 절대 입을 일 없을 거라 생각했던

등산 재킷과 등산화였다.


그 재킷은 가볍고 따뜻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편해졌다.

기능성 때문만은 아니었다.

산을 떠날 즈음 그 옷에는

그곳의 시간의 결이 묻어 있었고,

나는 그걸 입고 자연의 리듬에

더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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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리는

둘 다 정작 중요한 걸 빠뜨렸다.

해발 2000미터의 뜨거운 태양!



첫날 산행 후,

우리는 화상 당한 것처럼 살을 태웠다.

화려한 아웃도어 장비들보다

자외선을 차단할 수 있는

선블록 하나가 간절했던 하루였다.

결국 그날 저녁,

산에서 내려와

코르티나 담페초 시내 약국에서

우리는 자외선 차단 제품들을

잔뜩 쇼핑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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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리스트를 쓰고, 패킹 순서를 정하고,

매일 아침 먹을

사과의 숫자까지 체크하는 사람이었다.

(산행 중 ‘그놈의 사과’를 먹다

여권을 잃어버릴 뻔한 해프닝이 있었지만,)


산 위에서 사과를 꺼내 먹다가

여권을 흘린 줄도 모르고

우리는 30분을 되돌아가

돌무더기 사이를 뒤져야 했다.


등골이 서늘했던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결국 호텔로 돌아왔고,

로비 직원이 여권을 깜빡하고

돌려주지 못했다며 건네주었다.

우리 부부는 잊지 못할 추억을 그렇게 만들었다.


여행에서 중요한 건 짐보다,

그 짐 밖에서 벌어지는

예상치 못한 순간들일지도 모른다.

















짐을 잘 싸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행에서 정말 오래 남는 건

짐가방 밖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놓고 간 물건의 여백에는

예상하지 못한 추억이 담기곤 한다.

짐을 싸는 일은 떠나기 위해서지만,

사실은 돌아올 나를 위한 준비이기도 하다.


가방 안에 무엇을 넣었느냐보다

그 안에 남긴 마음이 더 오래 기억된다.

가득 채우는 것보다,

가볍게 떠나는 용기가 더 필요한 순간도 있다.












짐을 싸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진짜 여행이다.





두 번의 돌로미티 트레킹에서 깨달은

실전 리스트를 공유합니다.

가볍고 실용적인 짐 꾸리기에 참고가 되길 바라며 :)



**필수 의류

고어텍스 방수 재킷

통기성 좋은 기능성 이너 (반팔/긴팔)

스트레치 팬츠 (접어 올릴 수 있는 긴바지 추천)

두꺼운 양말 2~3켤레 (트레킹용 울 소재 추천)

챙이 넓은 모자 or 버프나 넥워머

얇은 패딩 (해발 고도에 따라 기온 차 큼)

플리츠 재킷(봄, 가을에는 고어텍스와 플리츠 재킷으로 보온이 완성됩니다)

등산용 장갑


**장비 & 용품

트레킹화 (접지력과 쿠션이 좋은 제품 권장)

아웃도어용 슬리퍼 (휴식 시, 등산화를 말릴 수 있어요)

배낭 (가볍고 수납구조 좋은 것)

물통 or 하이드레이션 팩

자외선 차단제(차단율 높은 것으로) + 립밤

선글라스

개인상비약 (멀미약, 근육통 패치, 밴드, 소독약 등)

헤드랜턴 (혹시나 하산이 늦어질 때 대비)


**간식 & 여유

에너지 바, 사과, 견과류

휴대용 커피 또는 티백

여권은 꼭 깊숙한 포켓에!(※ 사과 옆은 위험합니다)




***돌로미티를 함께한 최고의 장비는,

마음이 잘 맞는 트레킹 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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