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

by 문작

둘째가 6학년 가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어느 주말 저녁, 아이는 학교생활이 힘들다며 그간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남자아이들의 세계가 정글 같다는 걸 대충은 알기에, 유순하고 갈등을 싫어하는 우리 아이가 어떻게 지냈을지 짐작이 갔다.


그전까지는 아이가 힘들다고 말할 때마다 현실적인 나는 "모든 아이가 네 마음 같지는 않아", "어딜 가나 그런 아이들은 있어"라고 말했고, 때로는 "내가 어떻게 도와주면 좋겠니?" 하고 물었었다. 그럴 때면 아이는 속마음을 들어준 것만으로도 괜찮다며, 자기가 직접 친구들과 이야기해 보겠다고 하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아이의 얼굴이 유난히 어두웠고, 지금과는 다른 환경에서 새롭게 자신을 바꿔보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의 무게가 전과는 달랐다. 남편과 나는 어떤 방법이 있을지 고민했고, 전국 단위로 모집하는 자율중학교가 떠올랐다.


사실 이 학교는 아이가 예전부터 가고 싶어 하던 곳이었다. 기숙사 생활 덕분에 매일 학원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아이에게는 매력적이었고, 나 역시 핸드폰 사용이 금지되고 자기주도학습이 가능하다는 기대감에 보내고 싶은 학교였다.


하지만 6학년이 되면서 이런 바람은 점점 흐려졌다. 학교 시험 성적이 또래에 비해 뛰어난 편이 아니었기에,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몰리는 그 학교에서는 뒤처질까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아이는 공부에만 몰두하는 스타일도 아니었고, 나 역시 아이가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환경을 바꿔보고 싶다’는 아이의 간절한 말에, 우리는 다시 그 학교를 떠올리게 됐다.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며 학교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이틀 후에 원서 접수를 받았다. 그런데 접수 기간도 이틀뿐이고 우편 접수만 가능했기에 시간이 많지 않았다. 다행히 1차에 필요한 서류는 간단했지만, 추첨으로 1차 합격자가 발표된 후엔 바로 다음 날 2차 서류를 우편으로 보내야 했다. 2차 서류에는 생활기록부와 자기소개서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결과에 관계없이 자소서는 미리 준비해야 했다.


문제는 자소서를 자필로 써야 한다는 것. 악필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 데다 뭔가를 미리 준비하기보다는 닥쳐서 처리하는 데 익숙한 우리 아이에게는 확실히 불리한 조건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환경에서 중학교 생활을 하고 싶다는 아이의 바람은 예상보다 강했고, 도전해 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다짐은 생각보다 단단했다.

자소서 작성이 익숙하지 않은 아이는 질문에 맞는 에피소드를 떠올리기 위해 곰곰이 생각해야 했고, 몇 번이고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나와 남편의 의견을 참고해 고쳐 쓰기도 했다. 하루 일과가 끝난 뒤에야 자소서에 손을 댈 수 있었기에, 매일 늦은 밤까지 고민이 이어졌다.


1차 추첨에서 지원자의 절반이 떨어진다고 하니, 이렇게 애써 준비했는데 탈락하면 어쩌나 걱정이 됐다. 하지만 이런 준비를 아무 때나 해볼 수 있는 건 아니기에, 설령 떨어지더라도 값진 경험이라 여기기로 마음먹었다.

아이는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며, 발표 전날엔 평소에 해보지 않던 108배까지 하며 간절한 마음을 담았다. 밤마다 기도하고, 절에 가서 소원도 빌었다. 아이는 진심으로, 간절히, 반드시 붙고 싶다고 했다.


드디어 1차 합격자 발표 날.
우리 가족은 각자 다른 장소에서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며, 아이의 접수 번호를 입력했다. 그리고 "합격"이라는 단 한 마디에 온 가족이 환호성을 질렀다. 마치 모든 게 다 끝난 것처럼 기뻐했다. 혹시 몰라 할머니, 할아버지께도 말씀드리지 않았고, 학원 선생님들께도 알리지 않았는데 이제는 2차 서류를 보내고, 본격적인 면접 준비에 들어가야 했다.


면접 준비를 위해 예상 질문을 뽑고, 수학 문제를 말로 설명해 보는 연습을 했다. 예상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어렵지 않게 연습할 수 있었지만, 수학 문제를 준비해서 말로 설명하는 건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결국 교육 정보를 나누는 온라인 카페와 지인들에게 물어물어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면접 준비도 늘 늦은 밤에야 가능했기에, 아이도 나도 잠이 부족해졌고, 가끔은 서로 예민해지기도 했다. 결국 아이 입에서 “괜히 지원한 것 같아. 너무 힘들어”라는 말이 나왔다. 나 역시, 면접 시간이 고작 3분 안팎이라는데, 이렇게까지 준비해야 하나 싶은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면 후회도 덜할 거야”라고 아이를 달래며, 우리 둘 다 마음을 다잡았다.


면접 당일, 아침 일찍 학교에 도착해야 했기에 새벽 6시 30분쯤 집을 나섰다. 나는 차 안에서 면접 질문을 하나라도 더 연습해 봤으면 했지만, 아이는 “더는 머릿속에 안 들어가. 그냥 좀 쉴래”라고 했다. 지치고 긴장된 모습에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면접장에 들어간 아이가 나올 때까지, 나는 학교에서 마련해 준 공간에서 조용히 책을 읽으며 기다렸다. 그러다 밖에서 나는 소리에 이끌려 나가 보니, 면접을 끝낸 아이들이 동시에 신발을 갈아 신고 있었고, 이들을 맞는 부모들은 박수를 보내며 아이들에게 고생했다고, 애썼다고 기운을 불어넣어 주고 있었다. 아직 초등학생티를 벗지 못한 얼굴들에서는 해방감과 아쉬움이 묻어났다.


“나 아무래도 떨어질 것 같아. 그래도 뭐… 고등학교 때 다시 도전해 보면 되지, 안 그래?”


아이는 나를 보더니 겸연쩍은 듯 웃으며 말했다. 3분 남짓한 면접을 위해 노심초사하며 준비한 날들은 6학년 아이가 감내하기엔 분명 버거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을 거치며 아이가 한 뼘 더 성장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학교 운동장 주변을 거닐며 점심은 뭘 먹을지, 오늘 하루는 무얼 하며 보낼지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래서였을까. 최종 합격자 발표 날, 나는 오히려 태연하게 내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오후 5시 발표였고, 마침 학생들과 수업 중이라 컴퓨터 앞에 앉을 틈도 없었다. 그런데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고, 곧이어 ‘합격’이라는 단어가 찍힌 화면이 도착했다.


학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걸자, 아이는 기쁨에 젖어 울먹였다. 그리고는 바쁜 엄마, 아빠를 대신해 양가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에게 직접 연락해 합격 소식을 전했다.


우리 아이를 포함해 합격한 아이들은 수십 명 남짓. 1차 서류 접수에 천 명이 넘는 아이들이 지원했다고 하니 가히 엄청난 경쟁률을 뛰어넘은 순간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우리에게 시간은 충분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