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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요일은 쉽니다 Feb 13. 2016

응답하라 1988
18화 그 후, 그 뒷 이야기

에필로그, 다 말하지 못한 속마음




“정환아, 너한테 할 말이 있어서”


“뭐? 뭔데?”


찌개 한 그릇 퍼주려는데

문득 네 목소리가 너무 진지해서

마주치지 않으려 했던 네 눈빛을

똑바로 마주하고야 말았다


“그때 네 지갑 열어봤느냐고 물어봤잖아

나, 그때 사실 봤어”


말하지 않아도 서로 짐작하고 있던 사실을

시간이 흘러 없었던 일인 듯 묻어버린 지금

눈치만 보며 마음을 묵혔던 지난해들을

이제 우리 터놓고 정리할 때가 와버린 것인지


“알아”


“알고… 있었어?”


“너 그래서 그 날 덕선이랑 약속 취소했잖아

다 알아 인마”


“아…”


상대방의 생각을 미리 꿰뚫어 보아야

다음 수를 놓을 수 있다면

상대방의 마음은 미리 꿰뚫어 보아야

다음 수를 놓을 수 없으니


“네가 그럴 놈이 아닌데

갑자기 약속을 취소하고

그것도 없는 핑계 만들어서”


차라리 바둑으로 이겨야 하는 사이로 만났으면 좋았을걸

차라리 바둑으로 끝낼 수 있는 사이로 만났으면 좋았을걸



“그냥, 그때 네 지갑 속 사진을 보고

어떻게 해야 될지 몰랐어”


한 그릇 가득 채워서 네 앞에 건네주고서는 내 그릇도 채우고

6년이 되었나 이제

이 대화가 유효했던 시간을 지난 지


“너도 내 마음 알고 네 마음 모른 척 한 거잖아”


“정환아”


“야, 최택

바둑은 이기려 하면서

왜 마음은 지려 하냐

이런 거 너답지 않아

여러 사람 피곤하게 하지 말고, 얼른 덕선이 잡아”



“그럼 너는?”


어쩌면 서로 솔직하게 나가는 것이

그때의 정답이었을까

그렇다면 그때 서로 숨기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나도 덕선이 많이 좋아했었다

꽤 오래 좋아하기도 했고


그래서 한평생 친구로서, 또 좋아한 남자로서

덕선이가 정말 행복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덕선이를 정말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었으면 좋겠어


나는 그게 너라 생각해”


답답하기도 했다

짜증 나기도 했다

어쩌면 그래서 택이가 덕선이와의 약속을 취소한 걸 알면서도

모른 채 6년을 지냈다



근데 그 날

처음으로 기권을 한 채

혼자 있을 덕선이를 향해 달려가던 그 녀석의 모습을 보고서

어쩌면 덕선이 옆에 있어야 할 사람은

나보다 한 걸음 더 빠르고

한 걸음 더 간절했던

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우리가 내리는 매 순간순간의 선택들로 인해

우리의 인생이 그려지고 짜인다

어떤 상황이나, 환경, 조건, 계기, 걸림돌이 있든 상관없이

각자 선택을 내리고

그로 인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각자의 책임일 뿐


나도, 택이도

각자의 선택을 내리고

그 선택의 대가를 지불한 것뿐이었다



사실 그 날, 별똥별이 떨어지던 밤

하나의 소원만을 빌지 않았다 

한가지 간절한 소원만을 속삭여야

별들이 들어준다는 형의 말에도

하나의 소원만을 속삭이기에는

너무 많은 바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 순간 내 눈앞에 나타난

오랜 친구놈이 나쁜 새끼이기를 빌었지만


그 뒤에 조용히 추가했던

나의 두 번째 소원은

그 순간 내 앞에도, 옆에도 없었지만

늘 생각나는 덕선이가

자기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과 함께하기를 빌었다


그게 택이가 될지, 내가 될지는

저 별들에게 맡긴 채



“응, 그러니까 어머니에게 자주 전화드리고”


“알았어 형, 자주 전화 드릴게

이럴 때는 진짜 딸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게 말이다

우리 동생 밥은 먹었니? 외롭진 않니?”


“밥도 먹었고, 외롭지도 않아

형, 난 사천 체질인가 봐


너무 좋아, 재밌어 정말”


“그래 동생아

그렇다면 다행이다”


“형


그때 별똥별 떨어지던 날

만옥씨랑 행복하게 연애하게 해달라고 안 빌고

나 하고 싶은 거 하게 해달라고 빌었잖아


형 덕분이야

형 덕분에

나 하고 싶은 일 너무 재밌고, 즐겁게 하고 있어”


“그래, 고맙다

고맙다 동생아



이제 좋은 사람 만나서

연애만 하면 되겠구나”


“뭐, 나도 때가 되면 만나겠지”



“넌 여전히 이문세 노래만 듣냐?”


“당연하지”


“그러면서 내가 이문세 콘서트 가자고 할 때는

그렇게 빼더니”


“그때는 사정이 있었고”


“뭐? 무슨 사정?”


“그때는 –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어”


“치, 퍽도 그러셨겠다”


“정말 말도 안되지만 

우리 동네에 오래된 네 팬이 있어”


“누구? 너?”


“아니, 미쳤냐

아무튼, 그분이랑 가라고 그런 거지”


“근데 너는?

너는, 정환아?”



물론

나도 너를 좋아했지, 많이


네가 눈치채기를 바랬고

네가 눈치챌 수 있게 더 보여주기를 바랬고



근데

한 가지 새로운 비밀을 알게 된 후에

내 선택을 내리고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한 것뿐이야



진로에 있어서도

우정에 있어서도

마음에 있어서도


어느 것 하나 강요 없이 다 내가 내린 선택들이고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한 것뿐이야


하나의 사랑을 얻고 하나의 우정을 잃느니

둘의 우정을 선택한 것뿐이야


그게 미련하고 답답해 보여도

그게 그때와 지금의 김정환이 내린 선택이었던 거야



사람 인연은 다 정해져 있어서

내 것이 아닌 인연은 억지로 쥐고 있으려 해도 떠나고

내 것인 인연은 다 오게 돼 있더라


형을 봐도 그렇고, 선우를 봐도 그렇고

또 우리를 봐도 그렇고


살아보니 인연은 다 정해져 있더라

내 것은 내게 오게 돼 있고

내 것이 아닌 것은 나를 떠나가게 돼 있고


네가 온다면 내 인연인 것이고

네가 오지 않는다면 내 인연이 아닌 것이니

사랑에 있어서 첫사랑만 있는 것은 아닌 것처럼

서로에게 맞는 사람을 찾아가는 과정일 수도 있겠지


내가 바라는 건

인연을 정하는 데 있어서 첫사랑이 이루어지길 이라기보다

내 첫사랑이 행복 하기를 인 거야


너를 가장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과 함께





18살의 성덕선도

24살의 성덕선도





네가 있어 인생의 한 장을 적어 내려가는 데에

그 한 장이 설렘이었던 것 같다









그 동안 고마웠어, 

진심으로



1994년

정환



응답하라 1988에게 응답하다




글.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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