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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요일은 쉽니다 May 13. 2016

이미나, “사랑, 고마워요 고마워요”

VII - 기억도 나지 않는 오래전 그때부터 좋아했다고



“글쎄, 언제부터였을까?”


여자의 질문에 남자는 곰곰이 기억을 더듬기 시작합니다

여자는 조금 설레는 얼굴로 멋진 대답을 기다리고 있겠죠

언제부터 이 사람이 나를 좋아했는지


“그때 왜, 너 사흘 연속으로 지각했을 때 있었잖아

그래서 사람들 다 있는 데서 조 선배한테 엄청 깨지고

그때였던 것 같기도 하고”


남자의 대답을 듣고 여자는 생각합니다

그때라면..

예전의 그 사람과 갑자기 헤어지고 정신을 못 차리고 살 때였는데

그때 나는 아마도 문득문득 바보처럼 멍했을 텐데

술이 넘쳐서, 잠이 모자라서, 매일 눈이 빨개서 출근했을 텐데

여자는 그런 생각 끝에 다시 묻습니다


“확실해? 아닌 것 같은데

그때 나 좀 이상했던 것 같은데

다시 한 번 생각해봐, 그때는 아닐 거야”


“그럼, 그때 기억나? 삼겹살 회식 때 나는 말짱하고 넌 좀 취했었는데

내가 너한테 ‘술 먹지 말고, 사이다 마시지’ 그랬더니

네가 정말 고분고분 소주잔에다 사이다를 졸졸 따랐을 때

그래, 생각해 보니까 그때부터 내가 널 좋아했던 것 같다”


여자도 다시 생각하죠

그때도 별로 다르지 않았을 텐데

갑자기 다시 걸려온 그 사람의 전화에 하루는 울고 하루는 웃고

문득문득 미친 사람처럼 굴었을 텐데

여자는 한 번 더 물어봅니다


“그것도 아닌 것 같은데? 그때도 나 상태 안 좋았거든”


그쯤 되면 슬슬 귀찮을 법도 한데

그래서 ‘에이, 난 그냥 원래부터 너 좋아했어’ 그러고 말 법도 한데

뭐라도 생각해 내려는 이 착한 남자


“그런가? 그럼 언제지?

네가 지하 식당에서 식판 엎었던 날인가?

헬스클럽 끊는다고 큰 소리로 떠들었던 그땐가?

아니면, 이 선배 있는 줄 모르고 네가 욕하다가 딱 걸렸던 그날인가?

그것도 아니면, 음.. 네가 막 웃다가 코 고는 소리를 내서

사람들이 놀리고, 너는 얼굴 빨개지고, 그때였나?”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은 못하지만

얼마나 좋아했는지는 기억난다고





글. 이미나, “사랑, 고마워요 고마워요”

사진. 홍작가

@d.yjhong on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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