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012.05.29

사랑합니다, 아주 많이요

by 일요일은 쉽니다


"아저씨

보라매 병원, 빨리요"


엄청난 속도로 달려가던 택시 안

급했던 내 마음이 전해졌는지

매우 자유로운 차선 변경과

눈 깜빡이듯이 자주 이뤄진 신호위반

내비게이션에 카메라 있다고 띵- 하며 울리는데도

빨라지기만 하던 속도


14살

처음으로 집을 나와 홀로 유학길에 올랐을 때

룸메이트가 깰까 봐 소리 없이 우는 방법을 배웠다


그리고 지금 나,

창문 밖을 보며 소리 없이 운다


"아저씨

보라매 병원 - 빨리요"


근처에 다 와 배경이 익숙해지자

거스름돈을 받을 시간도, 정신도 없이

지갑에서 돈을 꺼내고 아저씨 옆에 놓은 후

한 손엔 가방, 한 손엔 탄산물 두 병이 든 쇼핑백을 든다

그리고 신관 앞에 다 가기도 전에 밀린 차들의 행렬을 보고

급한 마음에 거기서 내려서 가방을 들고 무작정 뛴다


올라가는데 무슨 층마다 서는지 애가 타고

드디어 10층, 간호사 언니들을 제치고

올림픽에 나간 마냥 뛴다

그냥 미친 듯이 뛴다



열려있는 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다

의사랑 간호사도 몇 명이나 보인다


그리고 눈물도 보인다


"아버님! 희원이 왔어요!"라는 말에

너무 힘들어 눈조차 감고 계셨던 분의 두 눈이

동그랗게 뜨인다

조금씩 떨리는 내 두 손은

양손의 가방을 꽉 움켜쥔다


바로 전날, 종일 찾으시던 콜라

처음에 맛은 덜해도 탄산수가 어떨까 싶었는데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 자려는데 고모가 부르셨다


계단을 내려가 무슨 일인가 하고 보니

전혀 상황을 모르시던 고모가

새로 샀는데 맛있다며 부엌에 있던 탄산물 만드는 기계를 보여주셨다

그날 밤 나는 하나님의 기가 막히신 타이밍에 감탄했고

그다음 날 점심 병원 가기 전 신나는 마음으로 탄산물을 만들었다


“엄마! 나 지금 지하철역으로 가고 있는데

무슨 역에서 내려야 하지?”


10분 후, 난 택시 안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무엇이 그리 급하셨는지

2012년 5월 29일 할아버지는

하나님의 품으로 영원히 가셨다



세브란스로 옮기기 전 필요한 짐을 챙기기 위해 서교동에 들렸다가

심부름을 받고 대문을 나와 슈퍼로 걸어가던 중

하늘을 쳐다보니 눈물이 흘렀다

먹을 빵을 좀 사러 다시 빵집으로 걸어가던 길

하늘을 올려다보니

또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더라


아침마다, 오후마다 내 손을 잡고 함께 등하교를 해주시던

10분 얼굴 보시려고 한 번도 빠짐 없이

이른 아침부터 공항에 마중 나오시던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은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새벽같이 나가 딸기랑 복숭아를 한 상자 사 오시던

고3 끝날 무렵 수화기 너머로 죄송하단 말밖에 못 하며 울던 내게

같이 우시며 사랑한다는 말로 답해주시던


그 사랑을 받은 나는 다시 태어나도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학교에 다니고 싶다


5월 셋째 주

그 한 주간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나

셋이서 서교동 집을 지키던, 그 마지막

밥 먹을 힘조차 없으시던 할아버지가

보라매에서 일주일간의 집중 예배 마지막 7일째

"하나님께 영광"이라 고백하자 옆에서 같이

손뼉 치시던 게 참 선명하게 생각난다


좋은 곳에 가시라기보단

지난 몇 년 끈질겼던 병마와의 싸움에서

진통제에마저 의지할 수 없어 지치셨을 당신은

부디 이번엔 아무런 아픔도,

또 고통도 없는 하늘나라로 가시기를


이 세상에서,

그리고 저 세상에서도

당신은 제게 최고의 할아버지이십니다


보고 싶습니다

앞으로 더 많이 보고 싶을 겁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끝나면 그때 달려갈 테니

이 땅에서 견뎌내셔야 했던 모든 고통은 잊으시고

부디 하늘나라에선 평안하시길



+


2012년 6월 7일 목요일


몇 년 전 아직 믿으시기 전,

할아버지가 천국에 가실까 참 걱정이 되던 시기가 있었다

목사님과 대화를 하던 도중 여쭤봤다

“목사님, 할아버지랑 하늘나라에서 만날 수 있을까요?”

“그럼! 장소도 미리 정해놔야 해!”


그렇게 대화를 마치고 할아버지께 들뜬 마음으로

“할아버지, 우리 목사님이

천국에서 어디서 만날지까지 정해놔야 한대요!

우리는 홈플러스에서 만나요! 홈플러스!”

라고 말하던 나의 어리고 철없던 날들


나는 벌써 뉴욕에 돌아왔지만

할아버지께 안부 전해드립니다


홈플러스에서 꼭 기다리세요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나게 되는 날, 우리

그 조그만 종이컵에 담기면 그렇게 맛있던 냉면도 먹고

할아버지 좋아하시던 초밥도 많이 사 먹어요, 우리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나는 그 날 그곳에선

여기서처럼 멀리서가 아니라

꼭 다 같이 한지붕 아래 모여 함께 해요

그 날에는 더는 멀리서 공부 안 하고

꼭 가까이서 함께 할게요


어제도 그랬듯이

오늘도, 또 내일도

사랑합니다


정말 많이요





글.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

사진. 홍작가

@d.yjhong on Instagram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존재만으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