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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애써 어른일 필요 없어요

한 겹씩 무거워지던 마음이 그 날 한층 가벼워졌다

by 일요일은 쉽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여름방학

오랜만에 준비해야 하는 시험이나 다녀야 하는 학원이 없어서

친한 친구 한 명과 함께 운전학원에 다니기로 했다


필기시험은 쉽게 통과하고 그 후 몇 주 연수를 했는데

연수 첫날 하필 비가 엄청 내리기 시작해 앞이 안 보이는 폭포를 뚫고 달리던 기억도 있고

“예쁜 길로 갈래요, 편한 길로 갈래요?”라는 질문에 주저 없이

“편한 길이요”라고 해서 선생님이 빵 터지셨던 기억도 있고

매번 겨우 아슬아슬하게 하던 주차와

연수가 끝나면 친구와 내려 이마의 땀을 쓸어내리던 기억이 있다


나와 내 친구는 그 당시 돈독하던 우리의 우정을 자랑하듯

나란히 도로주행에서 떨어지고

마침 학원에 등록한 기간도 끝이나 그 후로 각자 갈 길을 갔는데

겁이 없는 우리 첫째 사촌오빠는

정말 겁이 없이 불안 불안하게 운전하던 나에게 자기 차를 허락해주었고

그렇게 한 두어 번 더 차를 몰아보고는

두 번째 도로주행에서 깜빡이를 너무 의식한다는 지적 외에는 실점하지 않고

드디어 운전면허를 따게 되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횟수로는 면허를 딴지 5년이지만

미국에 있는 동안은 차가 없어 운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운전할 기회라고는 여름마다 한국에 나와 몇 번 한 게 전부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특히나 그 당시

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기만 하면 사람들이 그렇게 간절하게 기도를 하고는 했다)

그래서 여전히, 5년이 지난 지금도

어쩌다 아빠가 “네가 운전할래?” 하고 쳐다보시면

뒷좌석에 타고 있는 나머지 일행은 얼굴에 그늘이 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얼마 전 방학을 맞이한 동생이

운전면허를 따겠다고 학원에 등록하고 시험을 봤다

늘 나에게는 어리고 아이 같은 동생인데,

나랑 다투고, 혼나고, 그러다 또 서로 장난치는 동생인데,

운전면허를 따겠다고 하더니 가서 시험을 치고

심지어 한 번에 붙었다


한 번에 붙었는데도 불구하고

동생이 핸들을 잡자 불안해지는 마음을 보며

문득 아, 내가 운전을 할 때 뒤에 타고 있던 사람들도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싶은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났다

어렸을 때부터 전지훈련 가듯 혼자 비행기 타고 지구 반대편으로 가서

공부하고, 살림하고, 생활하던 나였지만

그런 나도 여전히 우리 엄마, 아빠가 보시기에는

그저 어리고 철없는 큰딸일 테니

너무 애써 어른일 필요 없다는 위로 같아

한 겹씩 무거워지던 마음이 그 날 한층 가벼워졌다


앞으로 더욱더 의젓한 모습 보여드려야겠다

또 앞으로 더욱더

든든하게 핸들을 잡는 모습도 보여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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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

사진. 홍작가

@d.yjhong on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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