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연모한다, 너를

(戀慕: 사랑하여 간절(懇切)히 그리워함) 그녀는 멋졌다

by 일요일은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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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慕: 사랑하여 간절(懇切)히 그리워함



“이런, 나 또 너무 일찍 왔어.”


그녀를 처음 만난 지 어언 9개월이 지나가고 있다.

시간이 참 빠르다. 우린 언제 벌써 일 년의 네 쪽 중 세 쪽을 함께 한 걸까.

서울이 지금보다도 더 익숙지 않던 두 계절 전 그녀를 처음 보았을 즈음,

속해있던 회사를 포함한 여러 공동체마다 한참 위에 선배들 틈 속에서 지내 마음이 조금 지친 상태였는데,

그녀는 나와 동갑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처음부터 마음을 참 편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 후 9개월이란 시간 동안, 그녀는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낯선 서울에서 숨을 틔게 해주는 그런 숨겨놓은 보물 같은 아이였다.

뭐랄까, 살구 같은, 자두 같은 친구라고 할까.

처음부터 참 밝고 살가웠던 그녀는, 조금씩 시간이 갈수록 그렇게 환한 모습 그대로 남아주었다.


“헛, 어디야 나도 지금 근처야!”


처음이다.

약속 장소에 20분 일찍 도착했는데 상대방도 그 부근이라는 연락은 처음이다.

출구로 나가서 그 근처를 좀 둘러볼까 하고 있던 찰나에 그녀도 이미 와있다는 연락이 반갑다.


“2번 출구 나오면 전화해!”


그 전날 이곳에 왔다가, 편안함 가득한 곳에서 짐을 내려놓고 하루를 꼬박 보내고 갔는데

하루 만에 돌아온 이곳은 또 반갑다. 더욱 반갑다.

바글바글하고 바쁘게, 또 신나게 웃고 떠들며 걸어 다니는 학생들 틈에 있으면

사람 냄새 나는 동네 같아 좋다. 나에게는 그렇다.

지나 가버린 그 시절이 떠올라서 그런 걸까. 나에게는 이 모든 것이 다 반갑고, 또 그립다.


그렇게 설레는 마음을 안고 그녀가 알려준 출구로 나가니, 전화할 필요도 없이 멀리서도 한눈에 보인다.

9개월 전 그녀를 처음 본 날도, 참 어여쁘고 참하다는 첫인상을 안고 왔는데

그녀의 미소는 날이 갈수록 화사해진다. 정말 닮고 싶은 친구다.


우리는 그녀가 아는 맛집을 찾아간다.

마음이 어찌나 잘 통했는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두 가지 메뉴가 있는 식당이라

조금 허기진 배를 안고, 설레는 마음을 안고 그녀의 옆에서 그녀의 발걸음을 따라간다.

나는 원래 누구와 함께 걸을 때면 길을 자세히 보지 않아 다시 혼자 찾아가라면 못 가겠지만,

큰길로 걷다, 골목을 꺾어, 조금 더 들어가 그녀는 숨겨진 식당을 잘만 찾아낸다.


“너무 예쁘다.”


어쩜 외관부터 마음에 쏙 든다. 벌써 다음에 또 와야지 싶다.

그렇게 우리는 자리를 잡고, 카운터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온다.

둘이서 따로 약속을 잡아 만난 건 한 달 반 전 처음 이후로 두 번째.

매주 보기 때문에 서로의 소식을 늘 어느 정도 접하며 지내지만,

이렇게 둘 만 따로 약속을 잡아 한 끼 식사를 함께하는 건 그만의 특별함이 있다.

어떠한 모임이나 의무에 의해서가 아니라, 따로 시간을 내서 밥을 먹는다는 건 정말 마법 같은 힘이 있다.

고로 그녀와 함께 그릇을 맞대어 앉은 이 시간은 더욱이 특별하다.

또 여럿 이서가 아니라 오늘은 우리 둘이기에, 둘이라는 이 시간의 특별함도 있다.

최근에 이사한 그녀의 근황을 묻고, 학부 시절 자취한 경험이 있어 나의 기억도 되살려보고,

혼자만의 공간을 갖는다는 것에 대한 장점과 단점을 나열해보니 어느새 주문한 요리가 나온다.


밥을 먹으며 그동안 있었던 나의 변화에 대해서도 몇 마디 건넨다.

잠시 스쳐 갔던 인연을 떠올리며 한 문단 남짓 되는 몇 문장으로 정리하자니,

한편으로는 그 깔끔함에 속이 시원하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그 깔끔함에 어딘가 아쉽기도 하다.

그러는 사이 그녀의 뒤로 우리와 반대편에 있는 테이블에 한 여자와 한 남자가 와서 앉는다.

저들은 어떤 사이일까. 오래된 친구일까, 아니면 오늘 처음 만나는 인연일까.

나도 조금 더 편안하게 그를 보고 웃어줄걸, 찰나의 미안함도 스쳐 간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도 잠시, 그녀가 깜짝 예고를 던진다.


“음… 나도 얘기해줄 게 있는데! 조금 있다 장소를 옮기고 얘기해줄게.”


정말 그녀의 깜짝 예고에 깜짝 놀랐다. 생각지도 못했다.

어느 정도 식사를 마친 상태라, 그곳에서 풀어놓을 이야기는 아닌듯하였다.

그 이야기를 듣기 위해 기다리는 입장도 이리 궁금하고 설레었으니,

그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기다리는 입장은 얼마나 설레고 두근거렸을까.

그렇게 우리는 얼른 그녀의 발걸음을 따라 숨겨놓은 또 하나의 공간을 찾아간다.


“자, 이제 이야기를 해보시오.”



커피와 케이크의 조화마저 완벽하다. 그리고 건너편 그녀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 보인다.

그녀는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어떠한 인연이 그녀의 마음속에 다가온 걸까.

이미 한 가지 짐작하기는, 다가왔다 다녀간 인연이 아니라 다가왔다 머무르기로 한 인연 같다.



“그러니까…”


어렸을 적부터 알아온 친구란다.

같은 동네에서 크다 같이 학교를 다닌 세월도 어언 10년, 그즈음.

예전에는, 그때는, 처음에는 그저 아는 동생, 착한 동생.

그리고 그에게도 그녀는 아는 누나, 착한 누나, 그 정도였다 한다.

그렇게 오래 함께해온 친한 사이로 지내다, 그 인연은 한 번의 변화를 앞두고 있었다.


늘 함께해 온 친구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특히나 말이 잘 통하고 또 마음이 잘 통하였단다.

이전에는 그것이 당연한 줄 알았으나 이제 우리는 그것이 그리 흔한 속성은 아니라는 걸 알기에,

함께 있으면 즐겁고, 함께 있으면 편하고, 그저 함께 있으면 좋은, 그런 인연이 되어갔다 한다.

그 친구가 입대한 이후에 휴가를 나올 때면 당시 함께 자라온 다른 친구들과 늘 모였었는데,

조금씩 조금씩 그 편안함과 친숙함 위에 다른 의미의 특별함이 덧칠해졌단다.


둘이서 마음을 터놓는 기회도 생겼고, 둘이서 깊은 대화를 나누는 시간도 잦아졌고,

그렇게 익숙하고 편하기만 했던 서로의 존재가 또 다른 익숙함과 편안함으로 다가왔다.

그와 그녀가 함께 시간을 보내던 그 공기 속에는 또 무엇이 있었을까.

오랜 시간 쌓아온 추억, 신뢰, 공감, 이해, 그런 것들로 인해 더 솔직할 수밖에 없는 소통과

더 든든할 수밖에 없는 우정. 그리고 그런 뿌리 속에서 자라나기 시작한 알 수 없는 신비스러운 감정.

감히 그와 그녀의 마음을 상상하며 듣는다.



그와 그녀가 봄에 나누었다는 대화 속에서는 벌써 그의 마음이 엿보인다.

당신이 그렇게 힘들어할 필요가 없는데. 아니, 당신은 그보다 훨씬, 너무나 멋진 사람인데…

그 진심을 전하기까지 그는 얼마나 망설였을까.

분명한 건 진심은 언제나 그렇듯, 그의 진심 또한 그녀의 마음에 따뜻하게 다가왔다.



어쩌면 그렇게 그들은 또 한 걸음 서로에게 다가간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 후 얼마의 시간 이후, 휴가를 나온 그 친구와 다시 둘이 만나게 되었을 때

사람 인연에 있어 어렵고 어렵다는 마음, 서로의 진심을 간접적으로나마 확인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흘러 우리의 사이가, 우리의 관계가 무엇인가를 놓고

궁금하기도 했고, 조금 불안하기도 했고…

그래서 내가 나는 너에게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어.”



그러니까 그 친구가 그러더라고.

누나는 내게 특별한 사람이라고.”



그녀의 설명에 의하면, 그날따라 한강이 유난히 아름다웠다고 한다.

선선한 밤공기며, 나긋나긋한 분위기며, 너무 붐비지도, 텅 비지도 않은 모든 것이 딱 알맞던 공간에서

바쁘게만 달려가는 도심 속 자연 앞에서 그들의 마음은 얼마나 설레었을까.


지금 이대로 시간이 멈추어도 좋겠다, 라는 마음이 저녁 하늘 위로 연처럼 띄워지고,

그 한가운데 서로의 존재가 있다는 게 확인되고,

그렇게 조금씩 더 소중하고 특별해지던 사람의 존재는 아마

어떠어떠한 특별한 사건들을 차례대로 나열함으로써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그저

서로의 이름 석 자가 마음속에 좀 더 선명히 새겨졌다는 것 아니었을까.


맞은편에서 기억을 되짚고 있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단서는

사실 그사이에 일어났었던 일이나, 오갔던 대화보다는

이 이야기를 전달하는 그녀의 미소를 봄으로써 이미 그 마음을 가장 정확히 알 수 있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다면, 남은 7개월을 기다릴까 말까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 거 같아.

두 사람의 마음이 하나이기까지 너무나 많은 고민과 망설임과 난관들이 많은데,

그래서 두 사람의 마음이 하나라는 것은 정말 기적과도 같은 것인데,

너와 그 사람의 마음이 일치하였다면, 그보다 중요한 것이 있을까.”



살아 보니 그러하다.

시간이 갈수록, 또 나이가 들수록 두 사람의 마음이 일치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깨닫게 된다.

‘적당히’ 서로 마음에 들기도 어려운데, 하물며 서로 사모라는 감정을 공유하게 되었다니

그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가.



“내가 널 연모한다.”


요즘 가장 인기 있는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속 대사이다.

단어가 참 몽글몽글하고 예쁘다 싶어 찾아보니 연모란 ‘사랑하여 간절히 그리워함’이란 뜻을 담고 있다.

지난주에도 그렇고 이번 주에도 역시 말로, 또 손짓으로 진심을 전하는 마음이

성시경의 목소리에 덧입혀져 참 예쁜 장면들이 계속 연출되었다.

그들의 표정과 목소리, 그 속에 떨림과 설렘을 보고 들으며


아, 연모한다는 느낌이 저런 거구나. 참 애틋하고, 애절하다 했는데

다시 보니 내 앞에 앉은 그녀의 표정에도 그러한 마음이 똑같이 녹아있다.



“나는 누구를 다시 이렇게 좋아할 수 있을지 몰랐어.”


아마 깊었던, 또 믿었던 마음이 한번 흩어지는 걸 겪어본 적 있는 사람은

그 후 회복하는 시간이 길수록 점점 더 빠져버리게 되는 늪이 아닌가 싶다.

내가 다시 누구를 그렇게 좋아할 수 있을까? 또 내가 다시 그렇게 마음을 내어줄 수 있을까?

이별을 고하던 그와 마지막 통화를 하며 겨우 꾹꾹 눌러 담아 그에게 꺼내지 않았던 말은

‘근데 내가 너만큼 좋아할 사람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이었는데,

순간 그녀의 말에 닫혀있던 마음이 조금 놀란다.

누군가를 다시 이렇게 좋아할 수 있을지 몰랐으나

긴 기다림 후 그가 찾아오고 다시 한 번 그러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가.

그와 그녀도 이미 알고 있지 않을까. 지금 그 둘은, 기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걸.


“궁금한 거야. 그 친구는 언제부터 이런 마음이었을까. 그에게는 언제부터 이런 감정들이 시작되었을까.

그래서 한 번 물어봤어. 네 마음은 언제부터 그러하였냐고.”


작년에 입대하기 전에 다 같이 모여 시간을 보낸 적이 있는데,

그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그녀가 이제는 성숙한 연애를 하고 싶다고 했었단다.



그러고 그때부터였단다.

그에게 그녀가 특별한 사람으로 새겨진 것이.



“내가 너를 연모한다.”


지난주에 그가 너무 보고 싶었다 한다.

너무 보고 싶어서, 그가 있는 곳까지 지하철을 타고 먼 걸음을 했다고 한다.

이번에는 한강의 분위기도 둔치도 없이 그저 휴게실 안에 탁상과 의자, 그리고 그 외에 여럿이 있는데도

그 시간이 너무 좋았다고 한다. 그와 이야기하는 게 너무 즐거웠다고 한다.



“기다리는 시간마저 너무 행복하고, 설레어.

난 나이가 들어가면서 다시 누구를 좋아할 때 이런 설레는 감정이나 떨리는 느낌을 못 느낄 줄 알았는데,

근데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해줘서 참 고마워, 이 친구한테.”



이러다 내년에 청첩장 돌리는 거 아니냐는 나의 장난기 가득 띈 물음에

내년은 너무 이르다며 아니라고 웃으며 고개를 저었지만,

그 뒤에 덧붙인 그녀의 말은 왠지 머지않은 미래에 그 누구보다 아름다울 그녀의 모습을 상상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정말 마지막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그녀의 얼굴을 보니 나도 그러하다.

안 그래도 천사 같은 그녀를 저렇게 미소 짓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남자라면

나도 그가 그녀의 마지막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어제 마음을 울렸던, 떠나지 말고 내 곁에 있어 달라던 세자의 대사처럼


그의 마음속의 그녀도,

그리고 그녀의 마음속의 그도,


떠나지 말고 오래, 아주 오래

서로의 곁에 있어 주기를.


서울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12. 그녀는 멋졌다.



글.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

사진. 홍작가

@d.yjhong on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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