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있잖아요

있잖아요, 그 세 번째

3. 당신의 직장은 안녕하신가요?

by 일요일은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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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요,


지난주에 금요예배 끝나고 셀장이랑 티타임을 갖기로 했어요.

그래서 바람이 선선하게 부는 밤, 테라스에 앉아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회사 얘기도 나왔죠.


“정말 회사를 행복하게 다닐 수는 없는 걸까?”


회사가 많이 힘들었던 거 같더라고요. 그리고 그 마음이 뭔지, 어떤 것인지 아니까.

“일하면서 행복할 수는 없는 걸까?”라는 질문을 듣고

나 또한 너무 많이 되뇌어본 질문이자 많이 들은 질문이기에

집에 와서도, 그다음 날도, 그 다음다음 날도 계속 고민이 되더라고요.

정말 행복하게 회사에 다닐 수는 없는 것인지, 정말 일과 행복은 같이 갈 수 없는 것인지.


이 질문은 나올 때마다 어렵지만, 언니의 고민을 들으며 그날따라 더 어려웠던 거 같아요.

들어가기 전에는 그토록 간절한 것이, 갖고 싶어서 그토록 간절한 것이,

불과 일 년도 지나지 않아서 희미해져 버려서, 손에 쥐고 나면 이토록 도망쳐버리고 싶은 것이 되어버려서.

입사할 때는 모든 취준생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데, 퇴사할 때는 전 직원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니까.


저 또한 그 질문에 대해 명쾌한 답이 없고, 어쩌면 정답을 찾지 못해 떠나왔기 때문에

수백 번도 더 들은 질문이자 수백 번도 더 물은 질문이지만, 유난히 언니의 질문이 마음속에 남아서

주말에 그 질문을 놓고 계속 씨름했어요. 내가 참 많이 아끼는 사람인데, 그 마음이 어떤지 아니까.


정말 회사를 행복하게 다닐 수는 없는 걸까?

왜 그토록 간절한 것이, 가지지 못해 그토록 간절한 것이,

이루고 나면 이토록 내려놓고 싶은 것이 되어버리는 것인지, 왜 그 간절함이 희미해져 버리는 것인지.

전에는 고개를 저으면서 반 진담 반 농담으로 “없어, 없어”라고 대답하고는 했었는데

이제는 그 질문에 더는 그렇게 쉽게 대답을 못 하겠더라고요.

정말 무거운 마음으로 고민을 나누는 친구에게, 회사는 답이 없다 하면 그건 너무 슬프니까요.


그래서 그렇게 계속 맴도는 질문을 놓고 씨름을 하니까 한 가지 마음을 주시는 거예요.

행복과 감사는 같이 붙어 다니는 친구인데,

그 순서가 잘못된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죠.


제가 생각하는 행복은 좀 더 수동적인 감정이란 말이에요. 주어지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행복이란 상태, 위치, 환경에 도달하면 행복해지는 거라고 많이 생각했죠.


근데 제가 생각하는 감사는 좀 더 능동적인 감정이에요. 내가 감사를 하는 것.

물론 감사가 나오기 더 쉬운 상황들이 있지만,

어쨌든 감사는 내가 하는 것이라고 주로 생각해 왔거든요.


그러니까 이제까지는 어떻게 작동이 됐냐면

내가 행복하면 감사한 거예요. 행복이 먼저고, 감사가 그다음이었죠.

시도 때도 없이 바뀌는 감정이란 불안정한 요소가 어쩌다 “행복”이란 곳에 도달하면,

그러면 감사하게 되었던 거죠.

근데 그 “행복”이란 곳은 너무 막연하기도 하고, 너무 까다롭기도 하고, 너무 내 마음대로기도 하고.

이러다 저러다 보니 점점 더 말이 안 되는 허공으로 띄워지고,

그러다 보면 행복도 감사도 둘 다 잃어버렸던 거죠.


즉, 저는 주로 행복에 도달한 후에 감사했는데,

순서를 바꿔서 지금, 오늘에 있어 먼저 감사하면

그 감사함으로 인해 진정한 행복(상황에 좌지우지되지 않는)이 찾아오는 거란 마음을 주시더라고요.


그 주말에 성경공부를 준비하며 저희 교재인 이찬수 목사님의 “보호하심”을 읽는데

마침 고민하던 내용이 딱 이번 주에 읽어야 할 분량 서론에 명쾌하게 나와 있는 거예요.


“온도계와 온도 조절기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자.

온도계는 현재 기온을 알려주는 역할밖에 하지 않는다.

그런데 온도 조절기는 내가 70도로 온도 조절을 결정했으면,

눈이 오든 바람이 불든 햇빛이 쏟아지든 관계없이 70도를 유지한다…


바울은 추우면 추워하고 더우면 더워하며 환경을 조금도 바꿀 수 없는 무기력한 온도계 같은 삶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기쁨을 유지하겠다고 결정하는 온도 조절기 같은 삶을 살았다.

그는 원수들이 아무리 자신을 모함하고 위협하여도 마음속에 있는 평강과 기쁨을 빼앗기지 않았다.


우리는 온도 조절기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하기로 결단하면 누구도 그것을 움직일 수 없는 인생이 되어야 한다.” (125-126)


같은 맥락에서, 제가 두 번째로 제일 좋아하는 찬양에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는 가사가 있거든요.

근데 그게 문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인데, 만약 우리의 직장이 하늘나라 같지 않다면

(이건 회사 상황이나, 실적이나, 외적인 요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직장에서 나의 마음을 놓고 말이죠),

그러면 어쩌면 문제는 그곳에 하나님을 모시지 못한 게 아닐까 하는 조심스러운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정말 하나님과 친밀한 동행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알람일 수도 있겠다 말이에요.


왜냐하면, 내가 그랬거든요.

내가 나의 마음속에 참된 주인으로 하나님을 모시지 못해

주일날 교회에서는 은혜를 받는데, 월요일만 되면 회사에서는 전혀 그러지 못했어요.

하나님과의 동행이 충분히, 온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마음속에 늘 하나님을 모시고 있지 않으니까,

내가 속해 있는 환경이 너무 어려우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힘들었던 거예요.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요즘에 배우자 기도를 많이 해요.

이제야 조금씩 옛사람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는 거 같아 이다음에 만나는 사람은 누구일까 기대도 되고,

또 한편으로는 이 시간이 길어진다고 느껴질수록 사실 걱정도 되고요.


그럼 결론적으로 상황을 놓고 보면 전 아직 배우자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되게 초조하고, 불안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결혼한 것도 아니고, 결혼할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결혼하면 쓸 냉장고가 있는 것도 아니고.

뭐하나 없거든요 지금. 정말 아무것도 없죠.


근데 하루는 어떤 마음을 주셨냐면

지금 내 마음에 들어온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이 시간 더 온전히 하나님께 집중하고 있구나,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을 기대하며, 정말 그분의 임재를 사모하고 있구나 싶은 거예요.

그러니까 결론만 놓고 보면 행복할 수 없는 상황이 감사하더라고요.

그러고 오늘도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함으로 나올 수 있어 감사하니까 행복해지는 거 있죠?


“높은 산이 거친 들이”


혹시 이 답이 마음에 차지 않으시나요? 깔끔하고 명쾌하지 않으신가요?

이미 다 아는 얘기인데, 그렇게 해봐도 안 되더라, 근데 현실은 다르더라 싶으신가요?

그렇다면 답이 하나 더 있는데…


“초막이나 궁궐이나”


우리 기도해봐요.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아와 하나님, 제가 이 시간 주님만을 구합니다 하고 고백하면

그분께서 여러분의 생각과 마음과 성격과 상황과 형편에 딱 맞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주실 것입니다.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나는 더 일찍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당신은 꼭 그러하길 바라는 진심으로.


“그 어디나, 하늘나라”


있잖아요, 그 세 번째

3. 당신의 직장은 안녕하신가요?


글.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

사진. 홍작가

@d.yjhong on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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